‘장고 끝 선택’ 국힘 황우여 비대위원장의 임무

결국 혁신보다 안전빵 택했나?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혁신을 위한 테이블을 마련하랬더니 여전히 주류만 이끌고 가려는 모양새다. 누구든 회초리를 들고 종아리라도 때려야 하는데, 먼 하늘만 바라보는 격이다. 도무지 나아지겠다는 의지도 없이 속절없는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4·10 총선 패배 이후 국민의힘은 여전히 반성문만 내놓고 있다. 수습 절차의 첫 단추를 제대로 꿰지 못하는 중이다. 총선 뒤 약 한 달이 지난 끝에 수습책보다는 차기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으로 누구를 앉히느냐에 혈안이 돼있었다. 방식은 개혁형이냐, 관리형이냐 두 가지 갈래였다. 

고르고 
골랐다

고민 끝에 국민의힘은 관리형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양한 인물들이 하마평에 올랐다. 비대위원장을 맡겠다고 손을 들었던 인물도 있었으나 쉽게 결론짓지 못했다. 

지난 3일, 취임 입장 발표 기자회견서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은 “먼저 당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겠다”며 “보수 가치를 약화·훼손해 사이비 보수로 변질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보수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초 비대위원장 후보로는 여러 인물들이 거론됐다. 중진 의원을 통해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의견과 당 외부서 뽑아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다. 누가 앉느냐에 따라 국민의힘의 명운이 결정될 중요한 사안이었다. 


여전히 국민의힘 내에선 주도권을 두고 다툼이 오간다. 공식적으로 큰 싸움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여전히 물밑 싸움이 치열한 모습이다. 극악으로 내몰린 상황을 종식시키기에 아직도 먼 길을 가야 한다. 처음에는 비대위원장 인선을 두고서도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차기 원내대표가 정해야 한다는 인식이, 다른 한편에서는 빠른 수습을 위해 지금의 원내대표가 뽑으면 된다는 의견이 대립됐다. 

결국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이 결정하는 것으로 일단락됐지만, 도무지 비대위원장으로 낙점될만한 인사가 없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7일, 당내 최다선인 조경태 의원(6선)이 “헌신한 각오가 돼있다. 스스로 독이 든 성배를 마시겠다”고 나섰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에 따르면, 몇몇 의원들이 조 의원을 추천해 윤 권한대행에게 의사를 전달했으나 끝내 무산됐다. 

장고 끝에 국민의힘은 같은 달 29일, 당선인 총회를 열고 비대위원장 추대 작업에 나섰다. 총회 결과 신임 비대위원장으로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가 비대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앞서 국민의힘은 지난달 22일 당선인 총회를 통해 윤 권한대행에게 비대위원장 임명권을 부여했다. 이후 윤 원내대표는 비교적 긴 시간 당내 중진들과 의견을 나누며 후보군을 좁혀왔다. 결론적으로 황 전 대표가 선임됐다. 

선거 끝난지가 언젠데 아직도 반성문?
“독 든 성배 마시겠다” 조경태는 무산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사퇴한 지 18일 만이다. 황 전 대표가 비대위원장으로 선임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선출됐던 전당대회서 관리위원장을 맡았으며, 공정한 전당대회 관리 등이 중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무엇보다 당과 정치를 잘 알고, 당 대표로서 덕망과 신망을 받을 수 있었던 것 등이 인선 배경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황 비대위원장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선당후사의 마음으로 수락했다. 할 사람이 여러 명 있었으면 나서지 않았을 텐데, 당이 어려울 때 마다하면 안 된다는 마음을 늘 가졌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윤 원내대표에게 거절의 의사를 드러냈는데, 지속적으로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시간이 없어 당의 현 상황을 매듭지어야 하는 때라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설명했다.

황 비대위원장 인선을 두고 당내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수도권 내 5선 중진의 윤상현 의원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받들고 어떤 혁신과 쇄신의 그림을 그려 나갈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당선자 총회서 아무도 ‘황우여 비대위’에 대한 반기를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장일치로 의결돼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무난한 인사라는 소리가 나오기는 하나 혁신이 필요한 상황서 전당대회만을 염두에 둔 인선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당장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명분이 없는 인선이었던 데다 밖에서 볼 때 올드한 느낌이 있다”며 “정치적으로 은퇴한 사람을 다시 세운다는 게 당 입장서 좋은 모습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황 비대위원장은 판사 출신으로 신한국당 소속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문해 19대 국회까지 5선 의원을 지냈다. 20대 총선서 낙마한 뒤 국회를 떠났고, 당명이 바뀌는 동안 정치 일선을 떠나 있었다. 박근혜정부 당시에는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지내 친박(친 박근혜)계로 불렸지만 계파색이 옅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대룰 과제
밑그림 담당

한나라당 원내대표 및 사무총장 등 핵심 당직을 지냈으며, 개혁신당 이준석 전 대표가 국민의힘 당권에 도전했던 2021년 전당대회서 선거관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결국 쇄신 대신 안정을 택한 셈이다. 황 비대위원장 앞에는 비대위구성등 여러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조만간 비대위원 지명 건을 의결해 비대위 구성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비대위원 구성에는 과연 수도권을 안배한 인사를 합류시킬지가 관건이다. 

앞서 황 비대위원장은 비대위 구성과 관련해 “수도권 민심을 반영할 수 있는 인사는 물론, 영남권에 대한 예우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수도권은 이번 총선서 국민의힘에게 역대급 패배를 기록했던 지역이었다. 서울에선 48석 중 11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고, 74석이 걸린 인천·경기에선 8석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반면 ‘보수의 텃밭’으로 불리는 PK(부산·경남)·TK(대구·경북) 지역에선 오히려 결집 현상이 두드러졌다. 선거 막판 보수세력이 한데 뭉치면서 간신히 개헌 저지선을 막아냈다. 

이런 상황서 수도권 안배 인사를 뽑지 않을 경우, 국민의힘으로서는 자멸의 길로 들어서는 것과 다름없다. 수도권 인사를 비대위에 참여시켜 수도권 민심을 반드시 보완해야 한다. 

황 비대위원장이 총선 패배를 수습하기 위해 어떤 방안을 내세울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여기에 전당대회 룰 세팅도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기존 룰인 당원 100% 투표를 어떤 방식으로 고칠지가 관건이다. 전대 룰 수정 당시에도 여러 말들이 오갔다. 

국민의힘은 김기현 전 대표가 당 대표로 선출될 당시 룰을 고쳤다. 명분은 당 대표인 만큼 당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기존 룰은 당원 70%, 여론조사 30%의 비율이었다.

당시 여론조사가 포함된 후 김 전 대표의 지지율이 밀리자, 전대 룰도 갑작스럽게 변경됐다. 전대 룰 변경을 두고 당내 곳곳서 반발이 심했다. 사실상 김 전 대표에게 유리한 구도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고스란히 나타났기 때문이다. 

친윤, 비윤
누구 손을…


결과는 좋지 않았다. 당정일체의 강한 기조로 상당히 폐쇄적인 구조로 운영됐다. 결국 당에서는 대통령실에 이렇다 할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의도하는 대로 끌려만 다녔다. 

총선 패배의 원인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지목되는 이유다. 당내서도 전대 룰의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이기도 하다. 

최대 뇌관인 전대 룰을 황 비대위원장이 고칠 것인지는 추후 지켜봐야 안다. 그러나 정치권에 따르면 친윤(친 윤석열)계는 전대 룰 변경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다. 본인들이 지난 전대 당시 급히 바꿔버린 룰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모양새다. 이들의 발언은 과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앞으로 황 비대위원장이 친윤과 비윤(비 윤석열)계 사이서 어떤 선택을 할지가 중요하다. 친윤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면 또다시 국민의힘은 당정일체의 관계로 빠져들게 된다.

이미 대통령실은 비서실장에 정진석 전 비대위원장을 임명하면서 대놓고 친윤 체제를 공고히 했다. 대표적인 친윤계인 이철규 의원이 원내대표 후보로 급부상하면서 김도읍 의원이 경쟁자로 분류됐으나, 불출마를 선언했다. 

황 비대위원장에게는 상당히 부담으로 작용할 지점이다. 당과의 대통령실 관계 설정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그가 친윤이 당을 이끌고 가려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나설 경우 당내에서는 또다시 분란이 생긴다. 

이와 관련해 황 비대위원장은 “(당정 관계는)바꾸기보다는 비대위원장이 됐으니 기존 룰을 바꾸자는 의견이 많이 있을 때 검토하게 된다. 검토 절차가 당헌·당규에 규정돼있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발언은 전대 룰 변경에 다소 회의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어 “비대위는 철저하게 사적으로 접근하는 게 아닌, 질서에 맞게 하도록 돼있다. 모든 것은 절차대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황 “선당후사 마음으로 수락” 당정 관계는?
당 일각선 “과연 개혁 잘될까” 우려 목소리

반면 수도권 당선인 중심으로는 전대 룰 변경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이 상당히 강하다. 실제로 김재섭 당선인과 안철수 의원은 “수도권 민심을 반영하기 위해서 전대 룰 변경은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나아가 수도권에 경쟁력을 가진 인물을 앞세워 중도층 포섭 구도까지 만들어 내야 한다며 확장성을 요구하기도 했다. 단순히 전대 전 비대위원장이기 때문에 잠시 거치는 직이라는 인식도 다수 있다.

하지만, 황 비대위원장의 숙제는 전대 룰만 있는 게 아니다. 우선 총선 참패를 어떻게 수습할지도 논의를 띄워야 한다. 총선 패배에 대한 반성 후 이유 등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탓이다.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다음 선거에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이미 이번 총선 결과로 ‘영남당’으로 인식이 굳혀져버린 상황이다. 영남마저 등을 돌리게 된다면 보수의 궤멸은 예정된 수순이다. 여당의 역할을 복원할 방식 등도 미리 논의돼야 한다. 

재임 기간이 짧아도 현재 처한 상황을 뚫어낼 방안 마련은 필수적이다. 당의 체질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3년 동안 집권여당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국민의힘은 벌써 4번째 비상 상황을 맞고 있다. 툭하면 꺼내드는 체제서 누구든, 성공적으로 직을 마무리지었던 전례도 전무하다. 

이번 황우여 비대위 체제마저 실패했다는 평가가 내려질 경우, 추후 대선 및 지방선거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 여전히 당 주류는 영남계로 이들의 생존을 위해 비주류를 신경쓰지 않는다면 불어닥칠 역풍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중한
스타일

정치권에 따르면 황 비대위원장은 무리하지 않는 이른바 안전형 스타일로, 파격적 선택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같은 평가에 대해 황 비대위원장은 “과연 관리형으로 끝날 수 있겠냐는 생각이다. 쇄신의 목소리가 크고 당에서 해야 하는 당무가 있다”면서도 “하루 이틀, 미룰 일이 아니다. 새로운 당 대표가 뽑히기 전까지 여러 일을 겸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황우여 비대위원장, 수락 고민했던 이유?

국민의힘 황우여 비대위원장이 수락한 배경에는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의 지속적인 요청이 있었다.

처음 제안이 왔을 때 황 비대위원장은 직을 거절했다.

그 이유는 바로 부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황 비대위원장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발을 좀 다쳤다. 사진을 찍다가 왼발을 접질렸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병원에 가 보니 봉숭아 뼈가 골절이 됐다더라”고 말했다.

이어 “큰일났다고 생각했는데, 압박붕대로 3주 정도 고생을 해야 한다. 완전히 붙으려면 3개월이 걸린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비대위원장직 수락 여부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비대위원장도 쩔뚝이고, 당도 쩔뚝이는 모양이 좋지 않다”고 하자, 윤 원내대표가 “시간이 없는 상황이다. 부탁한다”며 재차 설득에 나선 끝에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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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