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위·김건희 디올백’ 결론 미루는 권익위 속셈

총선 간보기? “독립성 상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민권익위원회의 독립성이 상실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문제 발표 시점이 미뤄진 까닭이다. 22대 총선이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인지라 더욱 민감하다. 그간의 소극적 조사도 문제라는 지적이 거세다. ‘총선 눈치 보기’라는 비판에도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는 타 정부 기관보다 강한 독립성과 중립성이 요구된다. 정치적 외풍에 흔들릴 때가 많지만 해야 할 일을 멈춘 적은 없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청부 민원 의혹과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논란이 그렇다. 처리기간 연장을 통해 결론 발표를 미루고 있다.

갑자기
“다음에”

권익위는 지난달 말 류 위원장의 청부 민원 의혹과 관련해 “신고사항에 대한 사실확인과 법률검토 등을 위해 부득이하게 처리 기간을 연장한다”며 처리 기간 연장 통지서를 제보자 측에 보냈다.

권익위는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감사관실에 류 위원장의 청부 민원 의혹에 대한 해명 자료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익위는 두 달 전, 제보자 측에 류 위원장과 민원 신청인의 사적 이해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제보자 측은 방심위에 제기된 방송 보도 관련 민원이 류 위원장의 가족과 지인으로 추정되는 이들에 의해 이뤄졌다고 신고한 바 있다. 류 위원장이 이를 청부했고 해당 민원에 대한 심의를 회피하지 않고 회의에 참석해 방송사들에 대한 과징금 징계를 주도했다는 게 골자다.


지난해 12월23일부터 조사를 시작한 권익위의 행보는 소극적이다. 현행법상 권익위는 공익신고를 받은 날부터 60일(업무일 기준) 안에 사건을 조사기관에 이첩 또는 송부하거나 종결해야 한다. 조사 연장은 사유가 있으면 30일까지 연장할 수 있다.

제보자에 대한 보호조치 관련 조사는 일부 진전이 있었다. 제보자 측은 지난달 중순 권익위 공익제보자보호과 관계자들과 면담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관들은 제보 경위와 제보자가 받은 불이익 조치 등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방심위는 공익제보자 색출을 위한 방심위 내부 감사를 진행 중이다.

류 위원장의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한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월5일 류 위원장이 해당 민원을 직접 심의한 것이 이해충돌방지법에 위반된다며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고, 현재 양천경찰서가 사건을 넘겨받아 수사 중이다. 고발인인 민주당 고민정·조승래 의원은 “고발 후 2개월째 피고발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는 내용의 서한을 양천서에 전달했다.

류희림 ‘청부 민원 의혹’ 제보자 색출
이해충돌 불구 방송사 징계 ‘마이웨이’

양천서의 미적지근한 움직임은 류 위원장이 제보자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처벌해달라고 수사 의뢰한 건과 대비된다. 류 위원장은 제보자를 서울남부지검에 지난해 12월27일 수사 의뢰했고,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3주 만인 지난 1월15일 방심위 압수수색에 나섰다.

권익위는 부서 배정과 업무 분장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지난달 초에는 ‘검토 결과 더 진행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종결을 시사했다는 것이 제보자 측의 주장이다.


공익신고자 쪽 변호인단은 최근 권익위에 의견서를 보내 “업무 관할을 이유로 이 사건 신고를 종결 처리하는 것은 법치주의 위반이자 직무유기”라고 반발했다. 이 같은 사정이 보도되고 얼마 뒤 권익위는 기간을 연장하고 자료 보완을 요청했다. 신고 접수 후 60일이 임박해서 내린 결정이다.

류 위원장은 내부고발자들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 ‘대파’ 발언 관련 보도 민원 출처가 국민의힘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방심위는 직원 비밀엄수 규칙 위반 시 형사처벌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공지사항을 사내에 올리기까지 했다.

방심위 감사실은 지난 2일 ‘업무상 비밀엄수 위반 등에 대한 유의사항 안내’ 공지를 올리며 “최근 언론 보도서 공식적인 절차에 의한 취재 및 사무처리 과정 등을 따르지 않은 사무처 내부 문서, 민원 내용 등이 공개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관련 규칙 및 법률 등을 위반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하는 척만?
소극적 조사

방심위 감사실은 ▲방심위 사무처 취업세칙 제4조(성실의무)와 제6조(업무상 비밀엄수) ▲방송통신위원회 설치법 제27조(청렴 및 비밀유지의무) 등을 나열하며 형법 제127조를 인용해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을 누설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밝혔다.

권익위는 김 여사의 디올백 논란과 관련해 지난해 12월19일 수수 의혹 신고를 받았다. 같은 달 신고인에게 신고 경위·추가 제출 자료 유무 등 사실확인 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당시 권익위는 “신고사건은 부패방지권익위법, 청탁금지법 등에 따라 진행하고 있으며 조사는 신고 내용에 따라 대면·서면·전화·현장조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실시하고 있다”고 공식 입장을 냈다.

권익위의 부정 청탁금지법 조사는 ▲신고 접수 후 사실확인 및 직접 조사 ▲수사가 필요한 경우 감사원, 수사기관 등에 이첩 ▲조사 결과 신고자에 통보 등의 절차를 거친다.

김 여사 논란의 경우 ▲김 여사가 가방을 받았는지 ▲해당 가방은 어떻게 됐는지 ▲대가성 유무 등을 본인에게 확인해야 하기에 자료 제출 등을 통한 소명은 어렵다. 김 여사의 입장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청탁금지법 제8조1항에 따르면 공직자 등은 직무 관련 여부 및 기부·후원·증여 등 그 명목에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아서는 안 된다. 같은 조 4항에는 공직자 등의 배우자는 공직자 등의 직무와 관련해 금지된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하거나 제공받기로 약속해서는 안 된다.

현 권력
눈치 보기?

김 여사가 가방을 받았다는 것이 인정되면 청탁금지법 위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권력의 정점에 있는 윤 대통령의 부인을 직접 조사하는 건 쉽지 않다. 대면이 아닌 서면조사로 사건이 마무리되거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사례처럼 거부될 가능성이 크다.

앞서 권익위가 공수처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후임 공수처장 인선을 문자메시지로 논의한 것을 조사하려 했으나 공수처는 이를 거부했다.

당시 공수처는 권익위의 조사 시도 직후 입장문을 통해 “문자메시지 수·발신은 사적인 대화에 불과해 어떠한 의혹도 없다”며 “법에 의하지 않은 조사행위에 대해서는 응할 수 없다”고 조사를 거부했다. 특히 “현행 부패방지법에 따라 권익위는 피신고자인 공수처의 동의 없이 강제로 조사할 권한이 없다”고 강조했다.

신고인 측인 참여연대는 지난달 26일 성명을 통해 “권력의 눈치를 보며 판단을 총선 이후로 미룬 권익위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김 여사는 공수처 수사 대상이기도 하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검사를 검사하는 변호사 모임’ 대표인 오동현 변호사는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청탁금지법 및 대통령경호법 위반 등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명품 논란 결론 선거 이후로 ‘시간 끌기’
“뇌물·청탁금지법 처벌 어렵다” 관측도


오 변호사는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진 것과 같이 김건희 여사가 코바나컨텐츠서 478만원 상당의 명품을 수수했지만 아직도 대통령실은 아무런 언급이 없다”며 “윤 대통령이 이런 내용을 알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윤 대통령과 김 여사 부부를 공모관계에 의한 뇌물수수로 고발장을 제출했다”고 고발 취지를 설명했다.

김 여사가 고가의 선물을 받은 사실을 윤 대통령도 인지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안 소장과 오 대표의 주장이다. 하지만, 김 여사를 법적으로 처벌하는 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뇌물죄의 경우 청탁의 대가라는 점이 명확해야 하지만 디올백을 제공한 의도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청탁금지법은 뇌물죄와 달리 대가성이나 직무 관련성이 없어도 100만원을 초과한 금품을 수수하면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배우자의 경우 금품수수 금지 규정만 있을 뿐 처벌 조항은 따로 마련돼있지 않다. 청탁금지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금품을 수수한 공직자의 배우자도 처벌할 수 있도록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참여연대가 김 여사의 명품 수수 의혹을 신고한 날부터 계산하면 100일이 지났고, 영업일 기준으로는 66일이 지났다. 권익위가 영업일 기준 처리 기한 90일을 다 채우면 결론은 4·10 총선 이후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장동엽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간사는 “권익위 조사관이 ‘피신고인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수사나 감사 여부를 판단해 이첩 여부를 결정할 것’이란 취지로 얘기했다”면서 “(권익위가)처리 기간을 연장하려는 논리를 찾다 보니 기계적으로 기한을 연장한 것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권익위가 사건 조사에 착수한 상황이라고 해도, 이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 관련 사건과 대비된다.

권익위는 이 대표가 응급헬기를 이용한 지 2주 만에 관련 조사 착수 사실을 발표했다.

“기계적으로
기한 연장”

정승윤 권익위 부위원장은 당시 브리핑을 통해 “이 대표 피습 후 응급헬기를 이용해 부산대병원서 서울대병원으로 이송 전원된 사항과 관련해 부정 청탁과 특혜 제공 여부를 조사해달라는 여러 건의 신고가 접수됐다”며 “권익위는 해당 사건에 대한 높은 국민적 관심과 알 권리를 고려해 신고 접수 및 조사 착수 사실을 국민에게 공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당시 브리핑은 다른 사안과 관련해 계획된 것으로, 권익위는 브리핑 끝에 이 대표 관련 조사 착수 사실을 공개했다. 언론에는 브리핑 약 2시간 전, 브리핑에 부패 신고 관련 내용이 추가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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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