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막기로 끝난 국민의힘 공천 막전막후

대기업 경력직 뽑나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경력직만 뽑으면 우리는 어디서 경험을 쌓나요?” 회사 면접 시 신입들이 흔히들 하는 말이다. 이제는 국회마저 경력직을 우대하는 분위기다. 특히 국민의힘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진다. 신선함, 새로움을 공언해오던 입장과는 전혀 다르다. 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에 충성할 사람이 필요했던 느낌마저 든다.

양당의 공천 작업이 얼추 마무리됐다. 잡음이 컸던 쪽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다. 친명(친 이재명) 공천 논란을 시작으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취임한 이래 계파 갈등이 바람 잘 날이 없다. 반면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시스템 공천’에 지금까지는 큰 논란이 없었다. 

텃밭에
단수공천

그러나 쌍특검법의 재표결이 부결되면서 분란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2·3일에는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전 당직자의 분신 시도가 있었다. 국민의힘 서울 노원구을 장일 전 당협위원장이 정영환 공천관리위원장 등과 면담을 요구하며 인화성 물질을 몸에 뿌렸던 것. 당시 몸에 불을 붙였다가 경찰에 제압됐던 그는 다행히 큰 부상을 입진 않았다. 

현재 국민의힘에선 공천 마무리를 앞두고 잡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대구의 경우 달서갑 현역인 홍석준 의원은 최근 컷오프(공천 배제)를 당했다. 대신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유영하 변호사가 단수공천을 받았다. 

유 변호사가 공천장을 받아들자 홍 의원은 공정한 공천이 깨졌다며 강력 반발했다. 현재 국민의힘 공천은 대부분의 경력직은 생존에 성공했다. 특히 윤석열정부의 내각 출신들은 대부분 살아남았다. 다만 비서관, 행정관 출신, 검사 출신은 절반 정도의 생존율을 보였다.


이들 대부분은 정치 신인이라는 가산점을 부여받았으나 현역이라는 더 큰 산을 극복하지 못했다. 

이번 4·10 총선서 국민의힘은 승리를 위해서 제대로 이를 갈고 있다. 신인보다는 경력직을 발탁하면서 안정적으로 총선을 치르려는 판을 짠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윤정부 출신 장관들의 생존이 눈에 띈다. 이들은 대부분 현역 중진급 의원이다. 우선 원희룡 국토교통부 전 장관을 필두로 본격적으로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원 전 장관은 이 대표의 지역구에 단수공천을 받아 눈길을 끌었다. 그가 그토록 외쳐 오던 ‘명룡대전’(이재명·원희룡 대전)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그는 대선 기간 윤 대통령 옆에서 정책본부장을 맡아 언론에 자주 등장하면서 이름값을 높였다. 최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까지 힘을 실어주며 이 대표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편하고 쉬운 길 골랐다”
혁신위 무용론 다시 증명

윤정부 출신 장관 중 9명이 출사표를 던졌고, 대부분이 본선 무대에 올랐다. 경선서 가장 먼저 본선에 오른 인물은 부산 중·영도구에 출마한 조승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다. 조 전 장관이 경선 대상에 오르자, 이재균 예비후보는 크게 반발했던 바 있다.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에 이의 신청을 진행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무소속 출마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 예비후보에 따르면, 그는 유권자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공관위는 그를 컷오프했고, 조 전 장관과 박 예비후보의 2인 경선을 결정했다. 


이 밖에 권영세(통일부)·방문규(산업통상자원부)·추경호(기획재정부) 전 장관 등 예비후보들이 단수공천을 받았다. 외교부 장관 출신인 박진 의원은 기존 서울 강남을서 서대문구을 지역으로 재배치됐다. 이에 서대문을 지역도 기존에 공천 신청을 했던 송주범 예비후보가 강하게 반발했다.

송 예비후보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최측근을 공천서 배제하기 위한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그는 오 시장의 임기 초반 정무부시장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서울시부시장 직을 그만둔 뒤 당협위원장에 공모했으나 별다른 결격 사유가 있는 상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보류됐다.

또 경선 포기를 선언했던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은 서울시 강서을로 재배치됐다. 앞서 강서을은 전 당협위원장이었던 김진선 전 당협위원장이 컷오프됐던 바 있다. 

이처럼 장관 대부분은 큰 탈 없이 공천장을 받아들었다. 이들에겐 별다른 희생을 요구받지도 않았고, 대부분은 원하는 지역구로 출마하게 된 셈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스타 장관의 탄생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지명도가 높은 인물들이 필요한 상황이다. 

충성할 사람
우대 기준은?

당내에서는 컷오프된 후보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또 다른 문제는 국민의힘서도 사천 논란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바로 정 공관위원장의 제자인 채원기 예비후보가 경선을 치르게 됐기 때문이다. 채 예비후보가 출사표를 던진 지역은 대전시 중구로 지역구 후보자 추천 재공고신청이 난 곳이다.

이런 탓에 출마해 총선을 준비하던 이은권 전 대전시당 위원장과 강영환 국무총리비서실 공보실 공보협력비서관은 날벼락을 맞았다. 재공고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채 예비후보가 공모서를 냈고, 경선이 결정됐다. 채 예비후보는 정 공관위원장의 고려대 후배이자, 대학원 제자다. 또 정 공관위원장이 과거에 차렸던 법무법인 TLBS에 2014년 입사해 대표 변호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학연·지연을 통한 밀실 공천이라며 반발 목소리가 거세게 일었다. 또 채 예비후보가 대전서 중·고등학교를 나오기는 했지만, 대학 이후에는 별다른 연고가 없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몇몇 현역 의원들이 컷오프에 반발하고 있지만, 여전히 경력직 공천에 쏠림 현상이 나타난다. 결국 이름값으로 총선을 치르겠다는 셈이다. 

공천이 거의 막바지인 가운데, 정치 신인의 비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 특히 앞서 희생을 강요하다시피 하며 물갈이가 불가피하다고 언급된 영남 지역은 초선과 재선 현역 의원들이 희생양이 된 모양새다. 


영남 중진 대거 생존
윤심 가동? 사천 논란

대신 재선 의원 이상급인 인사들이 살아 남았는데, 이는 최대한 잡음을 줄여 조직을 결속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깃발만 꽂아도 당선이 된다는 지역이라면 적어도 새 인물을 수혈하려는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 물론 개혁신당이라는 변수가 있어 조금이라도 더 표를 끌어모으기 위해선 기존 인물을 공천하는 게 유리한 것은 맞다. 일단 살고 보자는 식의 공천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대구·경북(TK) 지역에서는 재배치 작업도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보수의 텃밭 중 텃밭이라고 불리는 지역인 해운대갑에는 윤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주진우 전 대통령 법률비서관이 단수공천을 받았다. 

앞서 국민의힘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은 지도부와 각을 세워가면서까지 텃밭 중진 의원들의 희생을 요구했다. 당시 당내에선 이런 인식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일부 감지됐다. 3선 중진인 하태경 의원이 당의 험지 출마 요청을 받아들였고, 기존 부산서 서울 중·성동을 출마로 변경됐다.

그러나 이 같은 시도는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대신 영남은 우려했던 대로 현역 의원들이 강세를 보였다. 여기엔 대통령실 출신도 예외는 없었다. 텃밭서 활동해 오던 기존 인물들이 대거 공천을 받았다. 당내 탈당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어서다. 현역 중진 의원들은 텃밭에 무소속으로 출마해도 생환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보수의 분열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결국 실리를 챙길 수밖에 없는데, 국민의힘에선 보수의 분열을 막기 위한 부득이한 안전장치인 셈이다. 민주당이 여러 갈래로 쪼개지고 있는 틈에, 보수당인 국민의힘은 조직을 지키면서 이탈표를 최소화하겠다는 방안이다. 여기에 전직 의원들도 다수 전진 배치됐다.

대표적인 인물이 나경원 전 원내대표다. 동작을 출마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펼쳐왔던 나 전 원내대표는 당 대표 출마를 고민했으나 끝내 마음을 접었고, 원하는 지역구에 단수공천을 받아 다시 국회의원직에 도전하게 됐다. 

다 보이는
비윤 학살

또 단수공천을 받았던 김현아 전 의원의 공천을 취소하고, 3선 중진의 김용태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을 ‘경쟁력을 가진 후보’라며 전략공천해 버렸다. 심지어 김용태 전 의원은 공천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지난달 19일, 민주당을 탈당했던 김영주 의원도 영입했다. 김 의원은 민주당서 국회부의장까지 역임했던 인사로 컷오프를 당하자 지난 4일,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다만 컷오프, 당선만을 위해 당적을 옮긴 것을 두고 여러 말들이 나온다.

게다가 비윤(비 윤석열)계로 불리는 후보들의 상황도 녹록지만은 않다. 최근 경쟁력 평가서 과반에 가까운 1위를 기록했으나 컷오프된 ‘유승민계’ 유경준 의원이 주인공이다. 유 의원의 컷오프를 두고 일각에선 친윤(친 윤석열)이 아니라는 계파 때문에 컷오프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밖에 부친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되자 스스로 사퇴했던 윤희숙 전 의원이 다시 공천을 받았고, 김경진·오신환 전 의원도 단수공천을 받았다. 대통령 홍보수석 출신의 김은혜 전 의원과 심재철 전 원내대표도 각각 본선행을 확정지었다. 

이처럼 국민의힘은 전직, 중진, 탈당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경력직 우대 공천’이라는 비아냥 섞인 말도 나왔다. 물론 이들은 이번 총선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적 자산이다. 

한 비대위원장은 이번 22대 총선서 운동권 인사들을 청산하자고 목소리 높였다. 이른바 고인물 대신 새로운 인물, 신선한 인물이 필요하다는 인식서 비롯된 말로 해석된다. 하지만, 돌려쓰는 인물로는 분명 확장성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앞서 국민의힘은 시스템 공천을 내세웠으나, 정작 기존 인물들을 대부분 그대로 앉혔다.

그럼에도 의문이 생기는 지점은 ‘변화’를 찾아볼 수 없다는 부분이다. 게다가 국민의힘은 조직만으로 총선을 치르지 못한다. 한 비대위원장이 전국을 순회하는 이유도 중도층으로의 확장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다.

최근 민주당서 제기하는 문제는 당 기여도 부문이다. 채점표상 국민의힘 공천 심사 배점은 국회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의 경우 ▲여론조사 40점 ▲도덕성 15점 ▲당 기여도 15점 ▲당무감사 20점 ▲면접 10점으로 구성돼있다. 당 기여도 평가 부문은 한 비대위원장과 윤재옥 원내대표가 각각 점수를 준다. 

전체 배점 중 15%의 비율을 차지한다. 신인 가점이 있더라도 당 기여도에 따라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많은 인재들을 영입했지만, 이들이 현역과 맞붙어도 전멸할 수밖에 없던 이유다.

고양정에 단수공천을 받게 된 김 전 의원과 이 밖에 전직 의원들이 당에 어떤 기여했다고 볼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그나마 지역구 공천을 받게 된 신인, 청년은 대부분 험지에 몰려 있다. 민주당 역시 이 같은 쏠림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국민의힘은 더욱 심각하다. 

쉽고 
편하게

단순히 국민의힘이 현재 민주당에 비해 지지율을 앞서고 있다는 조사가 다수라는 이유로 안일하게 경력직을 안착시켰다면 더 문제다. 애초에 신인에게는 게임조차 되지 않은 대결이었던 셈이다. 여전히 정권 심판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우세한 가운데, 국민의힘은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쉬운 공천, 편한 공천을 하기 위함이다. 현재 판세상 국민의힘이 앞서 있지만, 여전히 정권심판론이 높다. 국민의힘은 앞으로 선거 기간 동안 어떤 캠페인을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산 넘어 산 공천…다음은 비례대표

공천 작업이 마무리 수순에 들어서면서 이제는 시선이 비례대표 공천으로 쏠린다.

국민의힘 소속 인물들도 하나둘 비례대표에 나서겠다며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는 지난 9일까지 비례대표 접수 신청을 받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비례대표 후보자 등록 기간인 오는 22일 전까지 후보를 확정할 계획으로 알려진 가운데, 국민의힘에 영입된 인재 중 지역구 출마를 하지 못하는 인물이 비례대표로 출마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대부분 청년에 해당한다.

영입한 인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마련한 방안으로 보인다.

앞서 국민의힘은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시절 띄운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과 갈등을 겪은 바 있다.

이 같은 우려를 종식시키기 위해 국민의힘은 일찌감치 손을 썼다.

국민의힘 당직자인 국민의힘 정책국장이 당 대표를 맡았다.

사무총장 역시 국민의힘 당직자가 맡게 됐다. 국민의힘서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를 확실하게 장악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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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