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삼킨 유진그룹의 민낯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2.22 11:00:00
  • 호수 14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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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 팔아 방송사 먹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유진그룹 계열사 유진이엔티가 YTN 주식 1300만주를 취득하면서 지분율 30.95%를 확보했다. 1960년대 건빵 군납으로 출발한 회사가 국내 최초의 24시간 보도전문채널을 인수한 것이다. 돌이켜볼 때, YTN을 계열사로 거느리게 된 유진그룹의 성장 과정에는 빛과 어둠이 뚜렷하게 공존했다. 

YTN을 인수한 유진그룹은 건설자재부터 금융권을 아울러 5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70위권 기업이다. 건설 현장서 흔히 볼 수 있는 동양 레미콘부터 중견 증권사인 유진투자증권까지 소유하고 있다.

유진그룹은 1954년 유재필 창업주가 세운 대흥제과를 모태로 한다. 대흥제과는 영양제과로 이름을 바꾼 뒤 군대에 건빵을 납품하면서 사세 확장의 기반을 다졌다. 유 창업주는 이를 기반으로 1979년 유진종합개발을 세우고 레미콘 사업에 진출했다.

문어발 M&A
영역 다각화

특히, 수도권에 밀집시킨 사업장을 통해 건설 현장 공급의 어려움을 해소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경쟁사 대비 압도적인 영업 우위를 점하면서 레미콘 업계 최상위 포지션을 유지하게 했다.

창업주의 장남인 유경선 회장이 1985년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 회사는 사세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레미콘 외 건자재 유통과 건설로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다각화를 시도했다. 


지난 2004년에는 외국 업체와 경쟁 끝에 고려시멘트를 인수했다. 2007년에는 로젠택배, 하이마트를 잇달아 인수하며 물류와 유통으로 확장했다. 같은 해 서울증권 및 자회사를 인수해 금융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2007년에는 재계 30위권에 진입하기도 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건설경기 불황으로 이어지면서 유진그룹은 로젠택배와 하이마트를 매각했다. 이후 2016년 레미콘 회사인 동양과 2017년 현대저축은행(현 유진저축은행)을 인수했다. 수익구조 안정화에 성공한 유진그룹은 현재 재계 순위 78위를 차지하고 있다.

사업다각화에 열을 올리던 유진그룹이 YTN 인수전에 뛰어든 것은 과거 방송 관련 사업서 고배를 마신 탓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해석했다. 유진그룹은 1997년 부천지역 종합유선방송사인 드림씨티방송에 출자한 것을 시작으로, 은평방송을 인수했다. 

이어 부천, 김포, 은평지역에서 40만명의 사업자를 거느린 케이블TV 사업자로 승승장구했다. 당시 종합유선방송사업자로서는 처음으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하는가 하면 외국계 기업으로부터 3000만달러를 유치하기도 했다.

당시 미디어 사업을 그룹의 주력 사업으로 육성한다는 구상안을 펼쳤다. 2006년엔 대우건설 인수를 위해 드림씨티방송 지분을 CJ홈쇼핑에 매각했다. 대우건설 인수전에 실패했지만, 인지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미디어 사업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유진그룹은 지난해 10월23일 한전KDN과 한국마사회의 YTN 보유지분 30.95%를 인수했다. 이어 방송통신위원회에 최다액 출자자 변경 승인을 신청했다. 다음 날 방통위는 전체회의를 소집하고 신청 하루 만에 심사 기본계획을 의결했다.

50년대 군용 제과 납품해 동양 레미콘 인수
로젠택배·하이마트 인수···재계 30위권 진입


과거 타 방송사들이 승인 신청 접수 후 기본계획 의결까지 길게는 석 달이 걸렸던 것에 비해 방통위가 ‘졸속 심사’를 밀어붙인다는 비판이 일었다.

앞서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YTN 지부는 크게 반발했다. 노조는 지난해 11월 말, 언론노조 회의실서 기자회견을 통해 유진그룹이 YTN의 최대주주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유로는 ▲유진그룹 노조 탄압 ▲유진그룹 오너 검사 뇌물 증여 사건  ▲계열사를 통한 부당 지원 ▲ESG 경영평가 최하위로 총 4가지 항목을 들었다.

위 4가지 항목은 방송법 제15조의2 제2항에 규정된 최다액 출자자 변경 승인심사 기준에 크게 못 미친다고 강조했다.

유진그룹이 YTN 최대주주로 등극하면서 유 회장의 도덕성 논란이 재조명됐다. 유 회장은 지난 2008년 유진그룹 내사 무마 대가로,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 김광준 검사에게 5억4000만원을 빌려주는 등 뇌물죄로 기소됐다. 결국 2014년 대법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유 회장은 범행 과정서 대기업 대표 지위를 이용해 관련 임직원들에게 허위 진술을 하도록 해 사실을 은폐하려고도 했다. 또 김 전 부장검사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된 유 회장의 동생 유순태 전 EM미디어 대표도 각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2008년 김 전 부장검사는 특수3부가 내사 중이던 유진그룹의 미공개 내부정보를 이용해 유진그룹 계열사에 주식투자를 했다. 김 검사는 유진그룹과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의 측근으로부터 9억7000만원을 받기도 했다. 그 중 일부를 유진그룹 계열사에 투자한 것으로 드러났다.

혜성처럼 
나타났다

김 검사를 비롯해 특수3부 검사 3명이 유진그룹 계열사 주식에 투자했다.

검사 뇌물 사건은 경찰이 먼저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검찰이 특임검사를 임명하면서 경찰 압수수색 영장 기각 등 검·경 충돌로까지 번졌다. 당시 <법률신문> 등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2년 11월16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윤석열 부장검사)는 김 검사의 본인 실명계좌를 압수수색하기 위해 경찰이 신청한 계좌추적영장을 기각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경찰이 신청한 영장에 김 검사의 계좌 추적을 위한 구체적 비리 내용이나 차명계좌에 입금한 사람들과 관련한 수사기록 등 관계 서류가 제대로 첨부돼있지 않다”며 “만약 경찰이 차명계좌에 입금한 사람을 조사하고도 기록 편철조차 하지 않은 채 영장 신청을 했다면 이는 검사의 수사지휘를 잠탈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경찰은 “영장에 충분한 자료를 첨부했음에도 검찰이 이를 기각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당시 2심 재판부는 “대기업 회장으로서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윤리적 책임을 망각했다”고 판시했다.

문제는 유씨 일가뿐만이 아니다. 유진그룹 홍보팀은 2022년 9월 사내에 노조가 설립되자 노조위원장에게 언론 접촉을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실무자들도 부정부패의 면모를 드러냈다. 기자들에게는 자사 노조 기사를 쓰지 말라거나 쓴 기사도 삭제해 달라고 한 달 동안 요청했다. 


이를 두고 인천지방노동위원회는 “노조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가 침해될 것”이라며 “노조 관련 기사 삭제 요청은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중앙노동위원회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유진그룹은 노사협의회 설치 방해, 직원 수당 미지급 등으로 노동청의 행정지시를 받았다. 이에 YTN 노조는 유진그룹의 언론관이 왜곡됐다며 인수를 반대했다.

유진그룹 계열사 유진투자증권도 주가조작, 불법 리딩방 운영 의혹에 휩싸였다. 지난해 5월, 경찰은 유진투자증권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A 임원이 주가조작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경찰은 지난 2018년 모 에너지 관련 업체의 주가가 급등할 당시 A 임원이 작전 세력과 함께 출처가 불문명한 호재를 퍼뜨리는 등 주가조작에 관여했다고 보고 있다. 

유령회사 동원
몸집 키우기

또 지난해 6월 유진투자증권 B 이사는 불법 리딩방을 운영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B 이사는 2022년 미국 증시가 크게 떨어질 것을 예측해 주목받은 투자 전문가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인기를 끌었다. B 이사는 그해 7월 사직서를 제출하고 회사를 떠났다. 

오너 리스크로 얼룩진 유진그룹은 2017년 10년간 운영하던 ‘나눔 로또’ 사업 계약서 ‘도덕성 점수’ 미달 등으로 탈락했다. 당시 경쟁업체들은 유진그룹에 대해 ‘수억원대 뇌물 공여자가 이 같은 정부 수탁사업을 맡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흑역사가 짙은 유진그룹은 지난해 ESG 경영평가서 최하위인 D등급을 받았다.

YTN 노조는 유진그룹의 ‘회장님 회사 80억 부당 지원’ 의혹을 제기하면서 지난 2018년 금융감독원 문서를 공개했다. 자료에는 유 회장 등 오너 일가가 소유한 이른바 ‘회장님 회사’인 천안기업이 지난 2015년 여의도 신사옥을 매입하는 과정서 유진그룹으로부터 80억원을 부당 지원받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고한석 YTN 지부장은 “천안기업은 여의도 사옥 입주 계열사들을 상대로 임대사업을 하며 안정적인 부동산 임대 수익을 올리고 있다”며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사익편취’ 혐의를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방통위 심사 항목 1항 방송의 공적 책임·공정성 및 공익성의 실현 가능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유씨 일가는 천안기업을 통해 주머니를 채웠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매출이 부진했던 천안기업이 주력 계열사들로부터 임대료를 챙겨 알짜 회사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유 회장은 2018년 5월15일 천안기업 우선주 지분 23.3%를 인수했다. 매입금액은 주당 9704원(액면가 5000원)인 19억원이었다. 셋째 동생 유창수 유진투자증권 부회장도 13억원가량에 15.5%를 매입했다.

천안기업 우선주는 2015년 5월 발행한 전환상환우선주 84만2104주로 당시 발행금액은 80억원(주당 9500원·액면가 5000원)이었다. 이 가운데 38.8%를 유씨 형제가 사들였다. 당시 천안기업은 자본금 2억원, 자산은 14억원 수준의 작은 회사였다.

‘스폰서 검사’ 스캔들
오너가 리스크 재조명

천안기업의 회사 성격과 사업 내용은 오너 일가의 지분인수가 목적이라는 의혹을 키웠다. 천안기업은 1996년 4월 설립된 부동산 임대 업체다. 본사는 충남 천안에 있고, 서울 여의도 유진그룹빌딩의 임대사업을 영위했다. 여의도에 위치한 이 빌딩은 1981년 건축돼 중소기업진흥공단(중진공) 여의도 사옥으로 썼던 건물면적 1만6523㎡, 지상 15층·지하 3층짜리 건물이다. 천안기업은 해당 빌딩을 2015년 5월 중진공으로부터 645억원에 인수했다. 

자금 여력이 없던 회사가 중진공 건물을 인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NH농협은행 외 2개 금융기관 차입금 600억원과 이에 대한 760억원의 유진그룹 채무보증이 뒷받침됐다. 몸집보다 300배 이상의 자금을 총수익스와프 즉, ‘TRS’ 계약을 맺어 확보한 것이다.

자금력이 있는 유진그룹이 보증을 서고, 천안기업이 다른 투자자로부터 돈을 빌리는 방식이다. 유진그룹 덕을 본 천안기업은 더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었고, 이후 증자까지 나서며 700억대 거액을 마련한 것이다.

천안기업은 이를 계기로 급성장했다. 2016~2017년 재무실적을 보면 매출은 각각 매출 61억원, 64억원에 영업이익이 35억원, 38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은 60% 안팎이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충당하고도 남아 순이익 또한 각각 10억원, 14억원에 이른다.

수입은 관계사로부터 챙기는 임대료가 전부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건물에는 유진그룹과 유진투자증권이 입주해 있다. 2017년만 해도 유진그룹 15억원, 유진투자증권 48억원 등 사실상 이 두 관계사로부터 받는 임대수익이 천안기업의 전체 매출로 나타났다.

유진그룹 사옥의 수십억원 임대료는, 천안기업의 최대주주였던 유 회장 일가에게 돌아가는 구조가 완성된 것이다. 당시 금감원 자료를 넘겨받은 공정거래위원회는 ‘사익편취’ 혐의로 천안기업을 조사 대상으로 봤다. 하지만 당시 정식 신고가 없어 본격 조사로 이어지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2018년 대기업에 처음 이름을 올린 유씨 일가는 천안기업 지분을 20% 이하로 낮추는 방법으로 규제를 회피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사익편취 감시망이 강화되면서, 우회적인 방법으로 총수 일가에 수익을 몰아주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툭하면 
구설수

현재 천안기업 대표는 유 회장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진구 유진그룹 혁신기획실장이 맡고 있다. 김 실장은 유진그룹이 YTN 인수를 위해 자본금 약 1000만원으로 설립한 특수목적법인 유진이엔티 대표도 겸하고 있다. 자금능력이 없는 사실상 유령 계열사를 통해 막대한 임대수익을 올리면서도 유진그룹 측은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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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