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 ‘보호처분’의 민낯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2.13 15:06:23
  • 호수 14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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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보내도 부모가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촉법소년의 강력범죄로 사회가 떠들썩하다. 단순히 어린 나이의 범죄가 아닌, 자신이 촉법소년임을 인지하고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게 충격이다. 문제는 촉법소년의 개선·교화를 목적으로 시행되는 보호처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촉법소년의 강력범죄 재범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촉법소년은 형벌을 받을 범법행위를 한 만 10세 이상서 14세 미만의 형사 미성년자를 말한다. 형법 제9조는 ‘14세가 되지 않은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형사책임 능력이 없기에 형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더라도 형사처벌을 하지 않고, 가정법원이 소년원으로 보내거나 보호관찰을 받게 하는 ‘보호처분’을 할 수 있다.

전과 기록
남지 않아

촉법소년은 소년법에 따라 소년보호재판을 받고, 이를 통해 보호처분에 처한다. 소년보호재판 절차는 사건이 접수되면 내용에 따라 소년보호사건으로 수리된다. 재판은 소년부 판사가 관장하지만, 전문 조사관이 판사의 지시를 받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사 과정서 병원, 소년분류심사원 등에 위탁하는 조처를 할 수 있다. 이 단계서 전문가들은 아이에게 보호가 필요한지 자료를 수집하고 생활 환경이 어떤지 조사한다. 조사 내용에 따라 심리일에 10가지 보호처분 중 하나를 선택해 결정을 내리거나 검찰에 송치한다.

보호처분은 ▲보호자나 보호자를 대신해 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에게 감호 위탁 6개월 ▲수강 명령 100시간 이내 ▲사회봉사 명령 200시간 이내 ▲보호관찰관의 단기 보호관찰 1년 ▲‘아동복지법’에 따른 복지시설이나 그 밖의 소년 보호시설에 감호 위탁 6개월 ▲병원, 요양소 또는 ‘보호소년 등의 처우에 관한 법률’에 따른 소년 의료 보호시설에 위탁 6개월 ▲소년원 송치 1개월 ▲소년원 송치 6개월 ▲장기 소년원 송치로 나뉜다.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촉법소년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9월24일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23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2년 법원에 접수된 소년보호사건은 4만3042건으로 2021년 3만5438건보다 7604건 증가했다.

소년보호사건은 ▲2018년 3만3301건 ▲2019년 3만6576건 ▲2020년 3만8590건 등 증가세를 보이다가 2021년 3만5438건으로 감소했지만, 다시 큰 폭으로 오른 것이다. 2022년 처리 사건의 61.8%에 달하는 2만4933명이 보호처분을 받았는데 그중 촉법소년은 5245명으로 집계됐다.

세부적으로는 ▲만 10세 144명 ▲만 11세 523명 ▲만 12세 1196명 ▲만 13세 3382명 등으로 나타났다.

보호처분 원인으로는 우발적 행동(43.3%)과 호기심(40.4%)이 대다수를 차지했고 생활비 마련(5%), 유혹(3.9%), 사행심(2.3%) 등이 뒤를 이었다. 결국 보호처분이 소년 범죄를 막을 수 없다는 결과가 도출돼, 실효성 있게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만 10세∼14세 미만 형사 미성년자
1∼10호 10가지 중 하나 선택 결정

지난달 28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저희 아들이 집단폭행을 당했어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의 부모라고 밝힌 작성자 A씨는 “최근 아들이 상가 구석진 곳에서 집단 폭행당하는 걸 누가 신고해줘서 경찰이 출동했다. 부랴부랴 경찰서에 갔더니 아들은 만신창이였고 양쪽 귀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한쪽 귀는 퉁퉁 부어 손도 못 댈 정도였다”고 호소했다.


A씨에 따르면 아들 B군은 10대 7명에게 둘러싸여 2시간가량 폭행을 당했다. 가해자들은 돈을 빼앗고 사이버불링(온라인상 집단적 괴롭힘)을 하는 등 B군을 지속해서 괴롭혔다.

사건 발생 며칠 전부터 B군에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메시지를 보내 계좌 비밀번호를 받아낸 뒤 통장 잔액을 모두 빼갔다. 이들은 “오늘까지 30만원을 갖고 오지 않으면 옥상서 뛰어내려라”는 협박도 했다. B군의 휴대폰을 뺏어 본인들이 보낸 협박 메시지를 삭제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A씨는 “이게 중학생들이 할 짓인가”라고 울분을 토했다.

B군은 사건 당일 폭행을 예상하고 동생의 휴대폰을 가져가 녹음했다. A씨는 “녹음 듣다가 진짜 그 새끼들 찾아가서 죽여버리고 싶었다. 대부분이 우리 애가 일방적으로 맞는 소리였다. 이번 일을 경찰 신고하면 잠시 보호처분 받고나서 죽여버린다고 보복 협박 예고도 하더라”고 분노했다.

7명의 가해자 중 5명은 촉법소년이었다. 당연히 이들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고 보호관찰이나 사회봉사 명령 등의 보호처분만 받는다. 보호처분은 전과 기록이 남지 않는다.

여전히 높은
고아 비율

A씨는 “정신적, 신체적 보상 안 받고 그냥 처벌받게 할 수는 없나. 형사 사건이라 어찌 되는지 아는 게 없어 답답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달 30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한 건물서 배현진 의원을 돌덩이로 여러번 공격한 혐의(특수폭행)로 10대 C군을 체포했다. 경찰은 보호자 입회하에 C군을 조사했고, 건강 상태를 고려해 그를 인근 병원에 응급 입원시켰다.

C군은 연예인 사인을 받기 위해 미용실 인근을 돌아다니다가 배 의원을 만나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체포 당시 그는 ‘촉법소년’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나이가 15세라고 말했다.

촉법소년 3명 중 1명은 재범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전문가는 “소년 범죄자의 재범 위험이 높은 상황이다. 강력범죄 재범 소년들에 대해서는 처벌 강화를 검토해야 하지만, 이외 다른 소년들에 대해서는 교정 교화 및 범죄예방 프로그램이 확실하게 이뤄져야만 재범률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결국, 소년의 교정 교화 및 범죄예방 프로그램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인데, 바로 여기서 보호처분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소년법 제32조 제6항에는 “소년의 보호처분은 그 소년의 장래 신상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규정돼있다. 이 항목으로 인해 법원 소년부 보호처분은 형사처벌과 달라서 소년원에 송치돼도 전과 기록이 남지 않는다.


소년원 가면 
범죄만 모의

또 소년법상 제32조 제1항 보호처분 중에서는 부모나 소년보호시설에 위탁하는 경우도 있다. 소년법상 보호처분은 10가지로 규정돼있다. 크게 ▲보호자 위탁 ▲보호관찰 ▲복지시설이나 요양소 위탁 ▲소년원 송치로 구분되는데, 실질적으로 촉법소년에게 1호 처분을 제외하고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보호자 또는 보호자를 대신해 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자에게 감호를 위탁’ 처분하는 경우는 사실상 비행소년을 부모나 기타 보호자에게 전적으로 위임하는 것이다. 사법기관이 보호처분만 부과할 뿐 집행 과정이나 집행 프로그램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도화한 것도 없다.

감호를 맡은 부모나 기타 보호자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소년의 재범방지 프로그램에 따른 감호를 하기보다는 말 그대로 감시와 통제에만 급급할 뿐이다.

물론 부모의 무책임으로부터 비롯된 범죄는 부모에게 관리·감독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게 맞지만, 가정 내에서 훈계하는 것이 어려운 가정도 있고, 부모가 강력범죄를 저지른 촉법소년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다. 

더 큰 문제는 보호처분을 받은 소년들 중에는 부모, 조부모, 친척이 없어서 형제·자매가 보호자 노릇까지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소년원 송치처분의 경우에는 고아인 소년의 비율이 매우 높고, 그 다음이 보호자가 편모인 소년이 많다. 소년원에 송치된 소년 중에는 부모와 동거하지 않는 소년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것이다.


또 보호자에게 범죄 경력이나 음주벽, 정신장애와 같은 문제가 있는 소년의 비율도 상대적으로 높아, 결론적으로 보호처분이 소년의 재범률을 낮추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강력범죄 재범 절대 막을 수 없다”
보호자 없는데…1호 처분 가장 많아

성인범과 달리 소년범에게 보호처분을 내리는 이유는 소년범에 대해 사건의 경중과 관계없이 경찰, 검찰, 법원의 사법절차를 모두 거치도록 하면 사법처리 기간이 상당히 길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년이 사법절차가 종료된 후에도 정상적인 회귀가 어려워져 재사회화에 방해가 된다.

현재 촉법소년들에게 이뤄지고 있는 형사처분 중 가장 무거운 처분은 소년원 송치다. 그러나 소년원은 교육을 통해 개선하게 하는 곳이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촉법소년 강력범죄자를 교화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죄를 지었으니 감옥 생활을 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냐고 반문하지만, 보호처분의 핵심은 응보가 아닌 교화다. 그러나 소년원 등 보호시설에 있는 소년들 역시 감옥 그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

말로는 “재범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니 자신의 선택에 확신하지도 못한다. 소년원에 있는 한 소년은 “여기 애들 대부분이 달력을 보며 날짜만 센다. 나가서 어떻게 사고 칠지 궁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소년범들의 사후관리를 위해 사용되는 보호관찰의 실효성은 더 문제다. 이미 세 번째 보호처분을 받는 소년도 있을 정도다. 중학생 때 친구들과 조건 사기(성매매를 미끼로 돈을 빼앗는 범행)를 쳤다가 소년원에 한 달 가게 됐고, 그 후로는 보호관찰법 위반으로 두 번 6호 보호처분을 받았다.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보호관찰의 외출 제한 조치를 어기고 가출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시설을 들락날락하느라 학교는 일찌감치 그만뒀다. 그렇다고 달리 도움받을 곳도 없다. 집은 폭언·폭행을 일삼는 할머니와 아빠 때문에 가기 싫었고, 친구와도 사이가 틀어져 친구 집에도 갈 수 없었다.

이런 상황서 소년은 “정말 갈 곳이 없어서 노래방서 그냥 잤다. 나중에야 보호 관찰관에게 ‘그런 상황인 줄 알았으면 쉼터라도 연결해줬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적절한
대책은?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선 현재 시행 중인 소년법 보호처분 제도의 이념을 고려해 소년법 제32조에 촉법소년의 강력범죄 예방과 재범에 대한 적절한 보호처분을 마련해야 한다. 보호처분의 내용을 명확히 해서 촉법소년의 강력범죄 예방과 재범 방지를 위한 개선·교화에 실효성 있는 제도로 변모시킬 필요가 있다.

소년재판을 전담했던 한 부장판사는 “어린 나이에 소년원을 경험하면 그 안에서 고참의 문화를 배우는 한편, 눈치만 늘고 주눅이 들어 사회에 나와 원만히 관계를 맺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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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