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택 강자’ 서희건설 조합 알력 리스크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2.01 10:08:50
  • 호수 1464호
  • 댓글 0개

뚜껑 열린 조합원들 ‘부글부글’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지역주택조합사업 대표주자 서희건설이 진땀을 빼는 형국이다. 조합 측과의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갈등이 전국 각지서 터지면서다. 이에 따라 공사중단과 입주 지연 사태가 속출하면서 조합원은 물론 입주자도 불안한 상황이다. 

지난해 1분기 기준 서희건설이 수주한 사업은 총 39건으로 이 중 20건이 지역주택조합사업이다. 지주택 강자로 불리는 이유다. 같은 기간 서희건설 수주총액은 5조5305억원이다. 이 중 지주택 수주금액은 4조2825억원으로 전체의 77.4%에 해당한다. 독보적인 입지를 다진 만큼 잡음도 많을 터. 서희건설이 사업 승인 시점부터 입주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설계변경과 단가 인상 등을 내세워 지주택조합 측에 공사비 증액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총 수주 39건
20건 지주택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서희건설은 시공 중인 전국 지주택 현장 곳곳서 추가 공사비(조합원 분담금 인상) 문제로 조합 측과 마찰을 빚고 있다.

입주 예정이 임박한 순으로 보면 ▲경산중방(지난해 6월 입주) ▲화성시청4차(지난해 10월 입주) ▲시흥군자(지난해 10월 입주) ▲포항흥해(지난해 11월 입주) ▲용인보평역(지난해 12월 예정이었으나 올해 3월로 연기) ▲광주탄벌1·2블럭(올해 5월 예정) ▲안성공도(올해 6월 예정) ▲평택화양8블럭(26년 4월 예정) ▲평택화양3블럭(2027년 7월 예정) 등 10여곳에 달한다.

이 중 서희건설이 올 한 해 공사비를 상향해 정정 공시한 현장은 ▲경산중방(1665억원→1778억원) ▲화성신남(1조2429억원→1조4376억원) ▲시흥군자(1556억원→1676억원) ▲포항흥해(1397억원→1517억원) ▲평택진위(2719억원→3460억원) 등이다.


최근 2~3년 사이에 금리인상과 원자잿값이 올라 시공 원가율이 높아진 탓으로 보인다. 

원인을 차치하고 조합의 원성이 커진 이유는 공사비 인상에 대한 시공사 측의 구체적인 증빙자료가 제시되지 않은 점이다. 문제는 단발성 인상 요구에 그치지 않고 입장을 번복했다는 게 조합 측의 입장이다.

일례로 용인 보평역 서희스타힐스 리버파크(용인보평역 지역주택조합) 현장이 추가 분담금 문제로 대립이 극심하다. 문제가 발생하면서 입주예정일이 지난해 12월에서 올해 3월로 연기됐다.

서희건설은 지난해 11월 공사비 증가 등을 이유로 조합 측에 960억원 규모의 추가 분담금을 요구했다. 입주 예정일까지 불과 4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조합원 1인당 추가 분담금은 1억원에 가까운 9700여만원에 달했다. 이에 조합원들은 서희건설이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한다.

공사비 증액 둘러싼 갈등 ‘펑펑’
입주 4개월 앞두고 960억원 요구

조합 측에 따르면 지난 2021년 7월12일 조합장 A씨는 서희건설 측이 요구한 추가공사비 98억원을 지급하면서 “더 이상의 공사비 인상은 없다”는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용인보평역 지주택조합과 서희건설 체결 합의문에는 ‘용인보평역 지역주택조합과 서희건설은 요청 금액 중 총 증액 금액을 상기 각호 합계액 금 98억4000만원으로 한다’고 적혀 있다. 이어 ‘설계의 누락, 불일치, 공법 변경, 물가상승을 포함해 여하한 이유로도 용인보평역 지주택조합에 공사도급금액 증액은 없는 것으로 한다’는 내용이 적시돼있다.


이후 2022년 10월 사업비 예산변경 및 추가 분담금(2차) 승인의 건에는 ‘공사 초기부터 건설노조의 공사방해와 화물연대 파업,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원자재 가격 폭등에 따른 건설자재 품귀,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인한 공사비 및 금융비용 상승으로 인해 사업비 부족분이 발생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결국 서희건설은 지난해 11월 공사비 960억원을 또 요구했다. 조합 측은 지난해 12월10일 총회를 열고 서희건설 측이 요구한 공사비 증액안을 가결했다. 이 중 385억원이 서희건설에게 지급할 추가 공사비다.

일부 조합원은 총회 의결에 대해 분노했다.

한 조합원은 “도급계약서에 있는 건설비 지수에 연동한 추가 공사비와 물가 인상 반영 후 향후 단가 인하에 따른 수정 불가 항목을 따져보지 못했다”며 “건설비 지수 변동 폭보다 훨씬 큰 폭의 증액을 요구해도 그대로 가결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용인보평역 지주택은 당초 지난해 12월 입주 예정이었지만 결국 올해 3월로 연기됐다. 현재 공정률은 95%다.

추가 분담금
“약속 어겼다”

안성 공도 서희스타힐스 스타허브(공도스타허브 지역주택조합)도 추가 공사비를 두고 갈등을 겪고 있다. 공도스타허브 지주택은 실착공 시기 지연 등으로 2021년 3월, 조합원 1명당 2500만원의 추가 분담금이 발생한 데 이어 지난해 11월 2차 추가 부담금 총 270억원이 발생하자 조합 측은 분노한 상태다.

서희건설과 조합 간 협의 끝에 추가 분담금은 220억원으로 낮춰졌지만 조합원 한 사람당 기존에 낸 2500만원 외에 3600만원을 추가로 내야 하는 상황이다. 낮출 수 있지만 지르고 본 셈이다. 지난해 11월 기준 공정률은 67%다.

평택화양센트럴 지주택조합의 경우 착공 전부터 말썽이었다. 오는 4월 착공을 앞두고 지난해 10월 서희건설이 공사비를 기존 1373억원서 1800억원으로 인상해줄 것을 요구했다. 사유는 금융비 인상과 설계변경으로 인한 일반 분양분 세대수 감소로 전해졌다.

서희건설이 시공하는 지주택 사업장서 유사한 방식의 추가 분담금이 발생한 사실이 알려지자 전국의 조합원들이 뭉치는 모양새다. ‘서희스타힐스 전국연합연대’라는 이름으로 개설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는 현재 270여명이 참여해 서희건설의 추가 분담금 요구에 대한 각 사업장별 상황을 공유하고 집회 개최 등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지난해 말 기준 시공능력평가 20위에 오른 서희건설의 능력이 의심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주택 사업의 최대 장점은 가격 경쟁인데, 서희건설과 계약한 조합 측은 “사실상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를 매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무주택·서민들이 대부분인 지주택 조합원들은 공사비 추가 증액 안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기존 주택을 처분하고 전세를 빼면서까지 입주 준비를 마친 조합원들은 추가 분담금을 승인하지 않을 경우, 서희건설의 공사중단 등으로 더욱 많은 금전적 부담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재무상황

다수의 조합 측은 서희건설이 공사비를 증액해주지 않으면 공사중단과 입주 지연, 도급 계약이 파기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주택법상 지주택 사업 조합에 가입한 뒤 한 달 이내에만 탈퇴 후 예치금 전액 반환이 가능하다. 이후부터는 거액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실제로 관련법에 따르면, 지주택조합 설립 및 사업 추진을 목적으로 한 계약서 민법상 취소나 무효, 해제 사유 등이 있으면 조합서 탈퇴할 수 있다.

이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한 채 지주택 사업서 중도 탈퇴할 경우, 분양가 총액의 20~30%와 1000만~1500만원가량의 업무대행비를 내야 한다. 서희건설과 대치하는 10여곳의 지주택 조합원들 사이에선 “서희건설이 위약금 조항 등에 발이 묶였다는 약점을 파고드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형성됐다.

서희건설의 주력인 지주택 사업구조에 대한 리스크가 커진 가운데 재무 상황도 복잡하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지난해 서희건설이 분양을 실시한 4곳(조합원 취소분 단지 제외) 중 3곳서 미분양이 대거 발생했다.


지난해 3월 분양한 ‘경산 서희스타힐스’ 일반공급 접수 결과 64가구 모집에 5명이 신청해 평균 경쟁률 약 7%(0.07대 1)를 기록했다. 이어 ‘평택화양 서희스타힐스 센트럴파크’는 703가구 모집에 105건이 접수돼 15%(0.15대 1), ‘진위역 서희스타힐스 더 파크뷰’는 21%(0.21대 1)의 평균 경쟁률을 각각 기록했다. 

미분양 우려는 지난해부터 이어졌다. 서희건설은 ‘서희스타힐스 더 도화’ ‘남전주IC 서희스타힐스’ ‘두류 스타힐스’ ‘인천강화 서희스타힐스 1단지’ ‘광주탄벌 서희스타힐스 1·2단지’ 등 6개 단지의 분양을 2023년 실시했다. 이 중 4곳서 청약이 미달인 것으로 드러났다.

채무보증 총액 5조원
상호협력평가 최하위

청약 미달을 간신히 피한 ‘서희스타힐스 더 도화’는 100세대 넘는 미분양이 발생해 계약자에게 위약금을 주고 분양계약 해지를 결정했다. 서희건설이 지주택 사업의 강자라는 명성도 옛말이다. 특히, 미분양이 대거 발생하면서 지급보증액도 급증해 유동성 여유가 눈에 띄게 줄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금융시스템에 따르면 지급보증 금액도 급증했다. 서희건설의 채무보증 총 잔액은 올해 1월 기준 5조257억원으로 2022년 3분기(3조5083억원)와 비교하면 2조원 가까이 늘었다.

대부분 지주택 사업은 자금력이 충분하지 못해 건설사의 중도금대출 보증이나 연대보증이 불가피한 구조다. 미분양과 계약취소가 지속된다면 서희건설이 책임을 떠안게 된다. 건설사들이 주택을 분양받은 계약자에게 계약금과 중도금을 받아 공사비를 충당하는 구조 탓이다.

불안한 사업구조에 따라 실적도 주춤하는 모습이다. 서희건설의 지난해 3분기 매출은 3111억원으로 전년 동기(3363억원) 대비 7.49% 줄어들면서 2분기 연속 역성장했다. 영업이익(490억원)은 전년 동기(493억원)보다 0.64% 줄어 3분기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준공된 아파트 미분양이나 계약 취소가 이어지면 서희건설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올해에는 하도급업체와의 상생 협력이 가장 부진한 건설사로 꼽히면서 이미지에도 타격을 받게 됐다. 

서희건설은 위기를 모면하려 신사업에 뛰어든 상황이다. 2015년부터 편의점사업과 폐기물처리업, 농산물 판매·가공업 등 신사업 추진과 상생 경영을 겸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서희건설이 건설경기 침체에 대응하는 새로운 사업구조를 반드시 모색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한편, 서희건설은 1982년 운송업체인 영대운수㈜로 설립됐다. 1994년에 건설업으로 업종을 전환한 뒤 이봉관 회장이 과거 13년간 근무한 포항종합제철(현 포스코)이 발주하는 토건정비공사를 위주로 입지를 다졌다. 이후 지주택 사업이라는 수익모델을 주력으로 사세를 넓혔고 1999년에 코스닥에 상장했다. 대표 아파트 브랜드는 기존 ‘아리채’서 2008년 ‘스타힐스’로 변경해 현재까지 쓰고 있다.

미분양에
계약 취소

서희건설의 자산총액은 2019년 말 9761억원서 지난해 상반기 말 1조5612억원(연결기준)으로 59.9% 급증했다. 반면 부채비율은 2019년 말 147.5%서 지난해 상반기 88.8%로 큰 폭으로 낮아졌다. 이는 최근 대다수 대형·중견 건설사들의 부채비율이 200~300%를 넘긴 점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반면, 올해 건설사업자 간 상호협력평가(하도급사 상생지수, 국토부 통계)서 평가 대상 대형 건설사 54곳 중 최하위인 60점 이상~70점 미만 구간에 속하기도 했다.

<smk1@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