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텐트’ 둘러싼 복잡한 방정식

꼬리에 꼬리 무는 철새들 이합집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찻잔 속 미풍에 그칠 것이란 과거의 평들이 무색할 정도로 제3지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신당을 이끄는 대표들은 각자의 자리서 정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 기세를 몰아 빅텐트가 형성된다면 이번 총선서 정의당을 제치고 당당히 3자 구도를 만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동훈·이재명과 맞먹는 체급의 선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빅텐트 주도권을 쥐기 위한 폭풍전야 기운이 감지된다.

지난 9일 국회 의원회관서 한국의희망 양향자 대표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이날 자리에는 이준석 개혁신당(가칭) 정강정책위원장, 이낙연 전 국무총리, 금태섭 새로운선택 공동대표, 정의당 류호정 의원 등이 참여했다. 총선을 앞두고 제3지대에 뛰어든 인물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인 만큼 ‘양당 기득권 타파’라는 공통된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힘입어 빅텐트를 구축하기 위한 연대 작업도 탄력받는 모양새다.

밀어주고
끌어주고

양 대표가 이끄는 한국의희망은 지난해 8월 출범한 신당으로 제3지대에 가장 먼저 깃발을 꽂았다. 한국의희망은 ‘좋은 정치’ ‘과학 정치’ ‘생활 정치’를 지향한다.

같은 해 11월 창당한 새로운선택은 금태섭·조성주 두 사람이 공동대표를 맡았다. 이들은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가 함께하는 ‘제3지대 연합정당’을 기치로 내걸었다. 정 의원도 새로운선택과 함께하는 길을 택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에는 이 위원장이 국민의힘 탈당과 함께 개혁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이 전 대표의 측근인 ‘천하용인(천하람·허은아·김용태·이기인)’ 중 김용태 최고위원을 제외한 이들이 공동창당준비위원장으로 함께하고 있다. 개혁신당은 주 시·도당 창당 및 등록신청 절차를 마무리하고 오는 20일쯤 중앙당 창당대회를 열 방침이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장기간 충돌해오던 이 전 총리가 지난 11일 민주당 탈당을 선언하며 “마음이 맞는 이들과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역시 민주당을 탈당한 ‘원칙과상식’ 의원들이 지난 14일 ‘미래대연합’ 창당발기인대회와 창당준비위원회 출범식을 열면서 본격적으로 제3지대 연합 작전이 가시권에 돌입했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제3지대 주요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이면서 이목을 끌었다. 서로 연대하고 지지하는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되면서 이들을 하나로 아우르는 ‘빅텐트’가 쳐질 가능성도 제시된다.

양 대표는 여는 말을 통해 “여기 모인 우리는 모두 정치혁신의 동지”라고 운을 띄웠다. 이어 “개혁신당이 꿈꾸는 나라도, 새로운선택이 바라는 목표도, 이낙연 신당이 이루려는 미래도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과학기술과 첨단산업”이라며 연합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이 전 총리는 “시골에 가면 펌프로 물을 뿜어내지 않나. 맑은 물을 얻으려면 허드렛물을 부어야 한다. 저더러 허드렛물 노릇을 하라는 뜻으로 알고 나왔다”며 “맑은 물은 이준석, 금태섭에게 들으시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제3지대가 확장하는 과정서 진두지휘하는 대신 뒤를 받쳐주는 ‘숨은 조력자’ 역할을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제3지대 향하는 여의도 1군 선수들
총선 앞두고 이어지는 ‘탈당 러시’

양 대표와 이 위원장은 어느 정도 뜻을 함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위원장은 이날 축사를 통해 “언젠가는 과학기술에 대한 저희의 입장도 밝힐 날이 있을 것”이라며 과학기술 정책만은 한국의희망이 제시하는 어젠다를 받아들이겠다고 시사했다.


금 대표 또한 “이 자리에 이 전 대표와 이 위원장 등이 모두 참석한 건 단순히 양 대표의 책 출간을 축하하는 게 아니다. 서로 돕고 경쟁하며 한국이 나아갈 길을 찾겠다는 의미”라며 연대 의사를 내비쳤다.

현재 3당인 정의당 소속 의원 수는 6명이다. 빅텐트로 모여든 현역 의원의 수가 정의당을 넘게 되면 정의당을 제치고 기호 3번을 받게 된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신당이 원내3당을 차지하는 건 어려운 만큼 당을 떠난 의원들이 하나의 구심점으로 모일 가능성이 있다.

제3지대가 거대 양당의 대안점이 되겠다는 목적으로 자리잡은 만큼 기호 3번이 갖는 의미는 크다. 면적이 정해진 파이를 쪼갤수록 손해인 만큼 총선서 3파전 구도를 만드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원칙과상식 조응천 의원도 CBS 라디오를 통해 “신당의 1차 목표는 7석 이상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15%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해 선거비용을 보전받는 것도 목표”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과 이 전 총리의 연대를 일컫는 ‘낙준연대’ 가능성에 대해서는 “기호 3번으로 모여야 한다는 것은 합당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이낙연 전 총리의 말씀을 들어보고 맞춰가면서(연대를) 빨리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들이 각자의 자리서 세력을 키우고 2월부터 뭉칠 것으로 예상했다. 이밖에도 ▲동일한 기호로 선거를 치른 후 갈라지는 방법 ▲지역구 후보는 함께 내되 비례대표는 따로 내는 방법 ▲각자 다른 총선 기호를 받는 방법까지 시나리오로 제시됐지만 현재로서는 빅텐트 연합을 구축하는 여론이 우세하다.

신당 하나하나가 각개전투로 움직이는 것보다 하나로 결합하는 것이 의석수 확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천군만마?
오합지졸?

2월15일에는 총선 기호와 정당보조금 액수가 결정된다. 이 시기까지 각 대표들은 몸집을 키우고 인지도를 높이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신당에 합류하는 인물이 구체화되고 양당과 차별화되는 비전을 제시한다면 2016년 안철수 국민의당과 맞먹는 파괴력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전망도 제시된다.

다른 한쪽에서는 빅텐트가 세워지더라도 각자 정치적 견해와 노선 차이가 명확해 정체성을 확립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거대 양당 타파’라는 교집합을 제외한 모든 분야서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제3지대의 정치 스펙트럼은 진보·중도·보수를 아우른다. 특히 이 위원장과 이 전 총리는 보수·진보 정당의 당 대표를 받았던 인물이다.

이 위원장의 지지층은 보수 성향의 2030세대며 이 전 총리는 민주당 성향의 중도와 고연령이 핵심 지지층이다. 추구하는 가치와 세대 간의 간극이 큰 만큼 모두를 만족시키는 대안을 제시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때 ‘안티 페미니즘’ 성향을 띠던 이 위원장의 남성 지지층과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류호정 의원 간의 충돌도 예상 가능한 지점이다. 현재로서는 마땅한 완충재가 없어 분열의 뇌관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이라는 같은 배를 탔던 이 전 총리와 원칙과상식의 미묘한 기싸움도 배제할 수 없다. 이들은 현 민주당 지도부 체제에 반발해 당을 떠났지만 원칙과상식은 이 전 총리의 신당 계획에 반대했던 이력이 있는 만큼 껄끄러운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

이처럼 각자의 정치철학과 이념, 지지층 등이 모두 다른 만큼 간극을 좁히는 과정서 난항에 부딪힐 우려가 제기된다. 창당준비위원장 논의를 시작으로 공천 과정과 비례대표 순번, 공약 등 매 순간 의견 조율이 필요한 상황을 마주한다.

남보다
빠르게

만일 이 과정서 각자의 고집을 꺾지 않고 이익을 챙기려는 모습을 보인다면 결국 유권자는 기성 정치와 차별화를 느끼지 못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치이념을 함께하는 화학적 결합이 아닌 제3지대라는 공간만 공유하는 물리적 화합이 가장 현실성이 있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제3지대를 잇는 연결고리는 원칙과상식이 맡을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총리가 이들과 “협력하게 될 것”이라고 시사하면서 그들의 역할론이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원칙과상식은 지난달부터 이 대표의 사퇴와 통합 비상대책위원회 전환을 요구해왔다. 새해가 밝았지만 당 지도부로부터 응답이 없자 예고해온 대로 탈당 기자회견을 열고 제3지대와의 협력에 나섰다. 기득권을 내려놓을 각오가 돼있다면 모든 세력과의 연대·연합은 열려있다는 뜻도 밝혔다.


김종민·이원욱·조응천 의원은 지난 10일 국회 소통관서 “새로운 가치, 새로운 비전,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는 정당이 필요하다”며 민주당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원칙과상식 모임에 함께했던 민주당 윤영찬 의원은 다른 노선을 택했다. 탈당 기자회견 직전 마음을 바꿔 당에 남겠다고 밝히면서 남은 세 명만 탈당을 선언한 것이다. 이들은 “세상을 바꾸는 정치로 가기 위한 개혁대연합, 미래대연합을 제안한다”며 흩어져 있는 제3지대 신당들을 하나로 묶는 플랫폼 역할을 예고했다.

이원욱 의원은 “이준석 신당, 이낙연 신당, 양향자, 금태섭 등 다양한 신당 그룹이 있는데 다 쪼개진 상태라면 국민께 대안정당으로서 희망을 줄 수 있겠나”라며 “전체를 통합하는 역할을 먼저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제3지대가 하나의 목적으로 뭉치게 되면 새로운 무리를 이끌 새로운 우두머리가 필요하다. 지금은 모두가 나란히 손을 잡는 수평적인 관계지만, 한 발만 나아간다면 금세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빅텐트는 누군가의 양보와 타협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 특히 여러 이해관계에 얽혀 있거나 끌고 가야 하는 세력이 있는 정치인의 경우 더욱 그렇다. 각자 추구하는 노선의 종착역이 다른 만큼 이를 하나로 잇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방정식을 대입해야 할 것이다.

‘남녀노소 우측좌측’ 한데 다 모여
‘사공 많은 배’ 누구에게 맡길까?

빅텐트 주도권과 관련해서는 이 위원장의 움직임이 가장 활발하다는 평이다. 그는 지난 9일 출판기념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빅텐트 주도권을 두고 신당 세력끼리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과거 연대 경험을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논의 테이블에 와있는 여러 세력과 다르게 과거에 큰 결합이라 생각하는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의 결합에 참여했다”며 “그때 결합이 준 교훈에 대해 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공간이 펼쳐지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상황에 대해 “주도권을 가져가기보단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내야 하는 과정”이라면서도 ‘중고 신입’ 같은 이력을 앞세운 것으로 해석된다.

원칙과상식이 꾸리는 신당은 현역 의원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여기에 ‘민주정신’을 강조하는 이 전 총리가 합류한다면 중도에 가까운 민주당 지지층을 끌어안을 가능성도 제시된다.

컷오프 등 경선 탈락에 의의를 제기한 현역 의원 3~4명만 기존 당을 이탈해 신당과 함께한다면 빅텐트에 합류하지 않고도 기호 3번을 달 수 있다. 만일 빅텐트가 실패로 끝나더라도 이 전 총리에게 가해지는 타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총리의 지지층이 탄탄한 만큼 민주 진영의 또 다른 빅텐트를 꾸리는 데 발목 잡힐 일도 없을 것이다.

결국 가장 높은 지지도를 받거나 확실한 총선 승리 어젠다를 제시하는 인물이 빅텐트의 우위에 서게 될 전망이다. ‘윤석열·이재명 때리기’만으로는 반사이익을 노리는 기성 정당과 같게 된다. ‘국민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당층을 사로잡을 수 있는 신선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인물이 모인 것만으로도 눈길을 끄는 상황이다. 양당과 비교했을 때 덩치는 작지만 강한 파급력을 지닌 만큼 총선의 주요 관전 포인트로 작용할 수 있다. 여야 모두 제3지대를 평가절하해도 예의 주시하는 이유다.

커지는
스피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빅텐트는 예견된 사안인 만큼 큰 변수는 아니라도 선거 판세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지금 국민은 양당 체제가 아닌 합리적 옵션을 갖춘 당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며 “총선이 다가올수록 여야의 정쟁은 절정에 달할 텐데 과연 이를 끝까지 지켜볼 무당층 국민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새 길 떠나는 이낙연 어디로?

이낙연 전 총리가 마침내 민주당과의 이별을 고했다.

지난 11일 이 전 총리는 “24년 동안 몸담았던 민주당을 떠난다”며 “새로운 위치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대한민국에 봉사하는 새로운 길에 나서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금의 민주당이 잃어버린 본래의 정신과 가치와 품격을 지키고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길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원칙과상식 의원들과 우선적으로 손을 잡겠다는 계획도 전했다.

이 전 총리는 “극한의 진영대결을 뛰어넘어 국가과제를 해결하고 국민 생활을 돕도록 견인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겠다”며 “그 길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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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청신호’ 이재명 꽃놀이패

‘대권 청신호’ 이재명 꽃놀이패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대권행 급행열차 티켓을 거머쥔 채 돌아왔다. 선거법 위반 항소심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그야말로 기사회생한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 여부다. 벼랑 끝까지 몰렸던 이 대표가 반격의 날을 세웠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법 리스크라는 족쇄에 얽매인 지 3년 만이다. 웃음을 띤 채 법원서 나온 이 대표는 “진실과 정의에 기반해서 제대로 된 판결을 해주신 재판부에 먼저 감사드린다. 이제 검찰도 자신들의 행위를 되돌아보고 더는 국력을 낭비하지 말아달라”고 밝혔다. 살아서 돌아왔다 지난 26일 서울고법 형사6-2부(부장판사 최은정·이예슬·정재오)는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 혐의 항소심 선고공판서 무죄를 선고했다. 피선거권 박탈에 해당하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1심 판결을 모두 뒤엎은 것이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이 대표가 민주당 대선후보이던 2021년 TV 프로그램서 “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모른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과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에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의 협박이 있었다고 발언한 것이다. 재판부는 두 가지 모두 허위 사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김 전 처장을 몰랐다’는 발언이 교유관계를 부인해 허위 사실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가 아닌 주관적 인식에 대해 허위 여부를 판단할 수 없고 교유행위를 부인한 발언으로도 해석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1심서 유죄가 인정됐던 ‘골프 발언’에 대해서도 TV 프로그램 진행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중 일부며 “골프를 치지 않았다고 거짓말한 것으로 볼 수 없고 허위성 인정도 어렵다”고 무죄로 봤다. 특히 이 대표가 호주 출장 중 김 전 처장과 찍은 사진에 대해서도 “10명이 한꺼번에 찍은 사진으로 골프를 쳤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수 없다”며 원본 일부를 떼어냈기 때문에 조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용도변경을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로 문제 삼겠다고 국토부가 협박했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핵심은 국토부가 법률에 의거해 변경 요청을 했고 성남시장으로서 어쩔 수 없이 변경했다는 것”이라며 “(발언의)일부가 독자성을 가지고 선거인의 판단을 그르칠 만한 발언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피선거권 박탈형 1심 몽땅 뒤집혀 무죄 선고에 한시름 놓은 민주당 이 같은 판결이 나오자 검찰은 “항소심 법원 판단은 피고인의 발언에 대한 일반 선거인들의 생각과 너무나도 괴리된 경험칙과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판단으로 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공표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판단된다”며 곧바로 상고 의사를 밝혔다. 이로써 해당 사건의 최종 판결은 대법원서 가려지게 됐다. 이 대표의 선고가 예정된 26일 이전부터 민주당은 초긴장 상태였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당의 운명이 걸려있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향후 모든 방향이 결정되는 하루일 것이다. 조기 대선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60일 이내 선거를 치를 경우 하나의 작은 변수도 나비효과처럼 커질 수 있어 고민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무죄가 선고된 후에는 “차기 대통령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완벽한 서사”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2심서 무죄를 받은 이 대표가 밝은 얼굴로 법정서 걸어 나오자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지지자들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대권주자 1위를 달리는 이 대표 앞에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사법 리스크를 겨냥해 ‘이재명 흔들기’에 나섰던 대권 잠룡들의 목소리는 당분간 사그라들 전망이다. 후보 교체론을 주장해 왔던 비명(비 이재명)계 잠룡 역시 입을 모아 “법원의 판단을 환영한다” “사필귀정” 등의 메시지를 냈다. 이 대표 대세론이 탄력을 받으면서 운신의 폭이 좁아졌지만 탄핵 정국이 현재 진행형인 만큼 총구를 밖으로 돌린 것으로 해석된다. 뒤통수 얼얼 여당 대혼란 국민의힘은 눈에 띄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당초 1심서 피선거권 박탈형이 나왔기 때문에 2심 역시 최소한 벌금 100만원을 예상했던 것이다. 국민의힘은 재판부의 판결에 문제가 있다는 여론전을 이어나갈 전망이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선고 직후 “항소심 법원의 논리를 잘 이해할 수 없다. 이 부분은 바로 잡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당으로서 대단히 유감스럽고 대법원서 신속하게 6·3·3 원칙(1심은 6개월, 2·3심은 3개월 내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재판해서 정의가 바로잡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의 최대 리스크였던 범죄자 프레임이 상당 부분 걷어지자 보수 잠룡들은 저마다 말을 얹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거짓은 죄, 진실은 선이 정의”라는 글을 게시했다. 오 시장은 “대선주자가 선거서 중대한 거짓말을 했는데 죄가 아니라면 그 사회는 바로 설 수 없다”며 “대법원이 정의를 바로 세우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이재명이 억지 무죄가 된 것은 사법부의 하나회 덕분”이라며 “사법부 조차 진영 논리로 재판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지만 사법부 현실이 그런 걸 어떡하겠나. 오히려 잘됐다. 언제가 될지 모르나 차기 대선을 각종 범죄로 기소된 사람과 하는 게 우리로서는 더 편하다”고 비꼬았다. 대세론 굳히기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2심 결과는 존중받아야 한다”며 “정치의 큰 흐름이 사법부의 판단에 흔들리는 정치의 사법화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문제의 골프 사진을 최초로 제시한 개혁신당 이기인 최고위원은 “졸지에 사진 조작범이 됐다”며 “옆 사람에게 자세하게 보여주려고 화면을 확대하면 사진 조작범이 되나? CCTV 화면 확대해서 제출하면 조작 증거이니 무효라는 말이냐? 무죄라는 결론을 정해놓고 논리를 꾸며낸 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이 상고심서 잘 다퉈주길 바란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고비를 넘긴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운명을 쥔 헌재를 최대한으로 압박하는 동시에 차기 집권여당으로서의 면모를 부각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관측된다. 무죄를 선고받은 이 대표는 곧장 안동을 찾아 대형 산불로 터를 잃은 이재민을 위로했다. 지난 26일 이 대표는 법원서 곧바로 국회로 이동해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할 예정이었지만 산불 피해가 커지자 이를 뒤로 미루고 안동으로 향했다. 안동은 이 대표의 고향이기도 하다. 앞서 이 대표는 무죄 선고 이후 취재진 앞에 서서 “이 당연한 일들을 이끌어내는 데 많은 에너지가 사용되고 국가 역량이 소진된 것에 대해서 참으로 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검찰이 또 이 정권이 이재명을 잡기 위해서 증거를 조작하고 사건을 조작하느라 썼던 그 역량을 우리 산불 예방이나 아니면 우리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썼더라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되겠나”라고 꼬집은 바 있다. 이 대표는 안동을 찾은 데 이어 27일에는 화재로 소실된 경북 의성군 고운사를 찾아 “고운사를 포함해 피해 입은 지역이나 시설 예산 걱정을 하지 않도록 국회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같은 날 오후에는 헬기로 산불 진화 작업을 벌이던 중 추락사고로 순직한 고 박현우 기장의 분향소를 찾아 헌화했다. 당분간 통하지 않을 ‘범죄 프레임’ 여권 잠룡 집중포격에도 꼿꼿하게 이 대표가 민생을 살피는 동안 나머지 민주당 의원이 장외 투쟁을 이어나갈 방침이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2심 결과가 나왔으니 헌재가 정치적 판단을 하지 않는 이상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선고를 조속히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 고궁박물관 앞 민주당 천막 당사에서 진행된 최고위원회의서 “헌법재판소는 해야 할 일을 즉시 하라”며 다시 한번 압박에 나섰다. 박 원내대표는 “오늘로 12·3 내란발발 115일째, 탄핵소추안 가결 104일째, 탄핵 심판 변론종결 31일째인데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라며 “선고가 늦어지면 늦어지는 이유라도 밝혀야 되는 것 아니냐”고 질책했다. 그러면서 “헌재가 헌법 수호라는 중대한 책무를 방기하는 사이 온갖 흉흉한 소문과 억측이 나라를 집어삼키고 있다”며 “헌재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 회의도 그만큼 커졌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 역시 “선입 선출에 따른 파면 선고라는 상식의 시간은 지났고, 오늘 오전까지도 선고기일 공지를 안 하면 명예의 시간도 넘어간다”며 “검찰의 억지 기소에 따른 이 대표의 (선거법 2심) 선고 이후로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지연하느냐는 불명예스러운 물음에 답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범죄자 이재명은 안 된다”는 국민의힘 전략이 반쪽짜리가 되면서 탄핵 정국 돌파구가 막혔다. 2심 무죄 판결이 대법원서 뒤집히길 바라며 상고심이 오는 6월26일까지 나와야 한다고 재촉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남은 건 헌재뿐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무죄를 선고받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외에도 4개의 재판을 더 받는 만큼 아직 ‘완전히’ 족쇄를 풀지 못했다는 새로운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이미 날개를 단 이 대표의 존재감만 키워줄 뿐, 큰 효과는 없을 것이란 게 야권 관계자의 공통된 설명이다. 한시름 놓은 이 대표는 본격적으로 대권주자 1위를 굳힐 일만 남았다. 중도층을 포섭하는 동시에 비호감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이 최대 과제다. 이에 맞춰 이 대표의 목소리도 더욱 날카로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피 튀기는 3월이 마무리되면서 조기 대선의 운명을 가를 헌재에 모든 시선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