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텐트’ 둘러싼 복잡한 방정식

꼬리에 꼬리 무는 철새들 이합집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찻잔 속 미풍에 그칠 것이란 과거의 평들이 무색할 정도로 제3지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신당을 이끄는 대표들은 각자의 자리서 정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 기세를 몰아 빅텐트가 형성된다면 이번 총선서 정의당을 제치고 당당히 3자 구도를 만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동훈·이재명과 맞먹는 체급의 선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빅텐트 주도권을 쥐기 위한 폭풍전야 기운이 감지된다.

지난 9일 국회 의원회관서 한국의희망 양향자 대표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이날 자리에는 이준석 개혁신당(가칭) 정강정책위원장, 이낙연 전 국무총리, 금태섭 새로운선택 공동대표, 정의당 류호정 의원 등이 참여했다. 총선을 앞두고 제3지대에 뛰어든 인물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인 만큼 ‘양당 기득권 타파’라는 공통된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힘입어 빅텐트를 구축하기 위한 연대 작업도 탄력받는 모양새다.

밀어주고
끌어주고

양 대표가 이끄는 한국의희망은 지난해 8월 출범한 신당으로 제3지대에 가장 먼저 깃발을 꽂았다. 한국의희망은 ‘좋은 정치’ ‘과학 정치’ ‘생활 정치’를 지향한다.

같은 해 11월 창당한 새로운선택은 금태섭·조성주 두 사람이 공동대표를 맡았다. 이들은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가 함께하는 ‘제3지대 연합정당’을 기치로 내걸었다. 정 의원도 새로운선택과 함께하는 길을 택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에는 이 위원장이 국민의힘 탈당과 함께 개혁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이 전 대표의 측근인 ‘천하용인(천하람·허은아·김용태·이기인)’ 중 김용태 최고위원을 제외한 이들이 공동창당준비위원장으로 함께하고 있다. 개혁신당은 주 시·도당 창당 및 등록신청 절차를 마무리하고 오는 20일쯤 중앙당 창당대회를 열 방침이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장기간 충돌해오던 이 전 총리가 지난 11일 민주당 탈당을 선언하며 “마음이 맞는 이들과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역시 민주당을 탈당한 ‘원칙과상식’ 의원들이 지난 14일 ‘미래대연합’ 창당발기인대회와 창당준비위원회 출범식을 열면서 본격적으로 제3지대 연합 작전이 가시권에 돌입했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제3지대 주요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이면서 이목을 끌었다. 서로 연대하고 지지하는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되면서 이들을 하나로 아우르는 ‘빅텐트’가 쳐질 가능성도 제시된다.

양 대표는 여는 말을 통해 “여기 모인 우리는 모두 정치혁신의 동지”라고 운을 띄웠다. 이어 “개혁신당이 꿈꾸는 나라도, 새로운선택이 바라는 목표도, 이낙연 신당이 이루려는 미래도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과학기술과 첨단산업”이라며 연합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이 전 총리는 “시골에 가면 펌프로 물을 뿜어내지 않나. 맑은 물을 얻으려면 허드렛물을 부어야 한다. 저더러 허드렛물 노릇을 하라는 뜻으로 알고 나왔다”며 “맑은 물은 이준석, 금태섭에게 들으시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제3지대가 확장하는 과정서 진두지휘하는 대신 뒤를 받쳐주는 ‘숨은 조력자’ 역할을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제3지대 향하는 여의도 1군 선수들
총선 앞두고 이어지는 ‘탈당 러시’

양 대표와 이 위원장은 어느 정도 뜻을 함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위원장은 이날 축사를 통해 “언젠가는 과학기술에 대한 저희의 입장도 밝힐 날이 있을 것”이라며 과학기술 정책만은 한국의희망이 제시하는 어젠다를 받아들이겠다고 시사했다.


금 대표 또한 “이 자리에 이 전 대표와 이 위원장 등이 모두 참석한 건 단순히 양 대표의 책 출간을 축하하는 게 아니다. 서로 돕고 경쟁하며 한국이 나아갈 길을 찾겠다는 의미”라며 연대 의사를 내비쳤다.

현재 3당인 정의당 소속 의원 수는 6명이다. 빅텐트로 모여든 현역 의원의 수가 정의당을 넘게 되면 정의당을 제치고 기호 3번을 받게 된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신당이 원내3당을 차지하는 건 어려운 만큼 당을 떠난 의원들이 하나의 구심점으로 모일 가능성이 있다.

제3지대가 거대 양당의 대안점이 되겠다는 목적으로 자리잡은 만큼 기호 3번이 갖는 의미는 크다. 면적이 정해진 파이를 쪼갤수록 손해인 만큼 총선서 3파전 구도를 만드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원칙과상식 조응천 의원도 CBS 라디오를 통해 “신당의 1차 목표는 7석 이상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15%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해 선거비용을 보전받는 것도 목표”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과 이 전 총리의 연대를 일컫는 ‘낙준연대’ 가능성에 대해서는 “기호 3번으로 모여야 한다는 것은 합당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이낙연 전 총리의 말씀을 들어보고 맞춰가면서(연대를) 빨리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들이 각자의 자리서 세력을 키우고 2월부터 뭉칠 것으로 예상했다. 이밖에도 ▲동일한 기호로 선거를 치른 후 갈라지는 방법 ▲지역구 후보는 함께 내되 비례대표는 따로 내는 방법 ▲각자 다른 총선 기호를 받는 방법까지 시나리오로 제시됐지만 현재로서는 빅텐트 연합을 구축하는 여론이 우세하다.

신당 하나하나가 각개전투로 움직이는 것보다 하나로 결합하는 것이 의석수 확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천군만마?
오합지졸?

2월15일에는 총선 기호와 정당보조금 액수가 결정된다. 이 시기까지 각 대표들은 몸집을 키우고 인지도를 높이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신당에 합류하는 인물이 구체화되고 양당과 차별화되는 비전을 제시한다면 2016년 안철수 국민의당과 맞먹는 파괴력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전망도 제시된다.

다른 한쪽에서는 빅텐트가 세워지더라도 각자 정치적 견해와 노선 차이가 명확해 정체성을 확립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거대 양당 타파’라는 교집합을 제외한 모든 분야서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제3지대의 정치 스펙트럼은 진보·중도·보수를 아우른다. 특히 이 위원장과 이 전 총리는 보수·진보 정당의 당 대표를 받았던 인물이다.

이 위원장의 지지층은 보수 성향의 2030세대며 이 전 총리는 민주당 성향의 중도와 고연령이 핵심 지지층이다. 추구하는 가치와 세대 간의 간극이 큰 만큼 모두를 만족시키는 대안을 제시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때 ‘안티 페미니즘’ 성향을 띠던 이 위원장의 남성 지지층과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류호정 의원 간의 충돌도 예상 가능한 지점이다. 현재로서는 마땅한 완충재가 없어 분열의 뇌관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이라는 같은 배를 탔던 이 전 총리와 원칙과상식의 미묘한 기싸움도 배제할 수 없다. 이들은 현 민주당 지도부 체제에 반발해 당을 떠났지만 원칙과상식은 이 전 총리의 신당 계획에 반대했던 이력이 있는 만큼 껄끄러운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

이처럼 각자의 정치철학과 이념, 지지층 등이 모두 다른 만큼 간극을 좁히는 과정서 난항에 부딪힐 우려가 제기된다. 창당준비위원장 논의를 시작으로 공천 과정과 비례대표 순번, 공약 등 매 순간 의견 조율이 필요한 상황을 마주한다.

남보다
빠르게

만일 이 과정서 각자의 고집을 꺾지 않고 이익을 챙기려는 모습을 보인다면 결국 유권자는 기성 정치와 차별화를 느끼지 못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치이념을 함께하는 화학적 결합이 아닌 제3지대라는 공간만 공유하는 물리적 화합이 가장 현실성이 있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제3지대를 잇는 연결고리는 원칙과상식이 맡을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총리가 이들과 “협력하게 될 것”이라고 시사하면서 그들의 역할론이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원칙과상식은 지난달부터 이 대표의 사퇴와 통합 비상대책위원회 전환을 요구해왔다. 새해가 밝았지만 당 지도부로부터 응답이 없자 예고해온 대로 탈당 기자회견을 열고 제3지대와의 협력에 나섰다. 기득권을 내려놓을 각오가 돼있다면 모든 세력과의 연대·연합은 열려있다는 뜻도 밝혔다.


김종민·이원욱·조응천 의원은 지난 10일 국회 소통관서 “새로운 가치, 새로운 비전,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는 정당이 필요하다”며 민주당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원칙과상식 모임에 함께했던 민주당 윤영찬 의원은 다른 노선을 택했다. 탈당 기자회견 직전 마음을 바꿔 당에 남겠다고 밝히면서 남은 세 명만 탈당을 선언한 것이다. 이들은 “세상을 바꾸는 정치로 가기 위한 개혁대연합, 미래대연합을 제안한다”며 흩어져 있는 제3지대 신당들을 하나로 묶는 플랫폼 역할을 예고했다.

이원욱 의원은 “이준석 신당, 이낙연 신당, 양향자, 금태섭 등 다양한 신당 그룹이 있는데 다 쪼개진 상태라면 국민께 대안정당으로서 희망을 줄 수 있겠나”라며 “전체를 통합하는 역할을 먼저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제3지대가 하나의 목적으로 뭉치게 되면 새로운 무리를 이끌 새로운 우두머리가 필요하다. 지금은 모두가 나란히 손을 잡는 수평적인 관계지만, 한 발만 나아간다면 금세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빅텐트는 누군가의 양보와 타협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 특히 여러 이해관계에 얽혀 있거나 끌고 가야 하는 세력이 있는 정치인의 경우 더욱 그렇다. 각자 추구하는 노선의 종착역이 다른 만큼 이를 하나로 잇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방정식을 대입해야 할 것이다.

‘남녀노소 우측좌측’ 한데 다 모여
‘사공 많은 배’ 누구에게 맡길까?

빅텐트 주도권과 관련해서는 이 위원장의 움직임이 가장 활발하다는 평이다. 그는 지난 9일 출판기념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빅텐트 주도권을 두고 신당 세력끼리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과거 연대 경험을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논의 테이블에 와있는 여러 세력과 다르게 과거에 큰 결합이라 생각하는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의 결합에 참여했다”며 “그때 결합이 준 교훈에 대해 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공간이 펼쳐지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상황에 대해 “주도권을 가져가기보단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내야 하는 과정”이라면서도 ‘중고 신입’ 같은 이력을 앞세운 것으로 해석된다.

원칙과상식이 꾸리는 신당은 현역 의원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여기에 ‘민주정신’을 강조하는 이 전 총리가 합류한다면 중도에 가까운 민주당 지지층을 끌어안을 가능성도 제시된다.

컷오프 등 경선 탈락에 의의를 제기한 현역 의원 3~4명만 기존 당을 이탈해 신당과 함께한다면 빅텐트에 합류하지 않고도 기호 3번을 달 수 있다. 만일 빅텐트가 실패로 끝나더라도 이 전 총리에게 가해지는 타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총리의 지지층이 탄탄한 만큼 민주 진영의 또 다른 빅텐트를 꾸리는 데 발목 잡힐 일도 없을 것이다.

결국 가장 높은 지지도를 받거나 확실한 총선 승리 어젠다를 제시하는 인물이 빅텐트의 우위에 서게 될 전망이다. ‘윤석열·이재명 때리기’만으로는 반사이익을 노리는 기성 정당과 같게 된다. ‘국민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당층을 사로잡을 수 있는 신선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인물이 모인 것만으로도 눈길을 끄는 상황이다. 양당과 비교했을 때 덩치는 작지만 강한 파급력을 지닌 만큼 총선의 주요 관전 포인트로 작용할 수 있다. 여야 모두 제3지대를 평가절하해도 예의 주시하는 이유다.

커지는
스피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빅텐트는 예견된 사안인 만큼 큰 변수는 아니라도 선거 판세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지금 국민은 양당 체제가 아닌 합리적 옵션을 갖춘 당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며 “총선이 다가올수록 여야의 정쟁은 절정에 달할 텐데 과연 이를 끝까지 지켜볼 무당층 국민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새 길 떠나는 이낙연 어디로?

이낙연 전 총리가 마침내 민주당과의 이별을 고했다.

지난 11일 이 전 총리는 “24년 동안 몸담았던 민주당을 떠난다”며 “새로운 위치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대한민국에 봉사하는 새로운 길에 나서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금의 민주당이 잃어버린 본래의 정신과 가치와 품격을 지키고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길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원칙과상식 의원들과 우선적으로 손을 잡겠다는 계획도 전했다.

이 전 총리는 “극한의 진영대결을 뛰어넘어 국가과제를 해결하고 국민 생활을 돕도록 견인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겠다”며 “그 길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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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