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박이 지문’ 사교육 카르텔의 단면

뒷짐 지고 말만 척결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사교육 카르텔’ 척결을 외친 지 6개월이 지나고 사교육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2023학년도 수능 영어 지문 때문이다. 범정부 대응협의회를 구성해 총력 대응에 나섰지만, 여전히 잔재해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더 강한 감사나 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2023학년도 수능 영어 지문부터 시작된 사교육 카르텔 의혹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경찰 수사부터 감사원 감사까지 이뤄지고 있으며 전직 교육부 고위 관계자의 사교육 시장행 의혹도 점차 드러나고 있다. 이를 통해 지난해 6월 윤석열 대통령이 주문한 사교육 카르텔 척결이 이뤄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금품 제보

지난 8일, 교육부는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지문과 관련해 지난해 7월경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23번 지문은 수능 직후부터 대형 입시학원의 유명강사가 만든 사설 모의고사 지문과 한 문장을 제외하고 동일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해당 지문은 베스트셀러 <넛지> 저자인 캐스 선스타인(Cass Sunstein)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저서 <투 머치 인포메이션(Too Much Information)>서 발췌됐다. 평가원 측에도 시험이 끝난 지난 2022년 11월 당시부터 해당 문제의 지문과 조 강사의 문제집 지문이 유사하다는 취지의 이의가 127건이나 제기됐다.

그러나 당시 평가원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평가원은 당시 지문의 출처만 동일할 뿐, 문항 유형이나 선택지 구성이 다르다며 이의신청 검사 대상에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신고센터’에 현직 교사들이 대형입시학원 강사 A씨에게 문항을 제공하고 금품을 받았다는 제보를 받았다. 교육부는 해당 제보를 수사하면서 문항을 제공받은 A씨가 만든 교재 내용과 23번 지문이 유사하다는 논란을 확인하고 함께 수사 의뢰했다.

해당 지문은 이듬해 출간 예정이던 EBS 수능 교재 감수본에도 들어갔다가 최종본서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EBS 수능 교재의 감수는 수능 출제를 주관하는 평가원이 담당한다. 평가원이 수능에 나왔던 지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최종본서 제외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해 여름에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신고센터에 현직 교사들이 일타 강사 A씨에게 문항을 제공하고 금품을 받았다는 제보가 접수됐다”며 “현직 교사 4명을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수사 의뢰하면서, 영어 문항 역시 A씨가 만든 교재 내용과 유사하다는 논란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함께 수사 의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지문 논란
대응협의회 총력 대응에도 여전히 잔재

이어 “구체적인 문제점에 대해선 감사원 감사 및 경찰청 수사로 명확하게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교육부와 EBS,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데 깊은 책임을 통감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감사원은 교육부와 평가원이 23번 지문 논란을 알면서도 뒤늦게 조치한 이유에 대해 감사 중이다. 2023학년도 수능 직후 영어 23번 지문이 일타강사의 문제와 동일하다는 논란이 제기됐을 땐 문제 삼지 않다가, 8개월이 지난 뒤에야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배경에 대해 들여다보는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감사원의 감사 이후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서 작년 7월 교육부로부터 수사 의뢰를 받아 일부 사실관계를 확인·조사했다”며 “감사원서도 같은 조사를 진행 중이라 이중조사가 될 수 있어 감사원 조사를 먼저 지켜보고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지난 10일,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범정부 대응협의회(이하 대응협의회) 긴급회의를 열고 비슷한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수능과 EBS 출제 과정을 개선하기로 했다. 평가원도 수능 출제 과정서 사교육 유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출제위원의 사전 검증·사후관리를 체계화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시중에 판매되는 문제집만 확인했지만, 앞으로는 수능 출제본부에 입소한 이후에도 ‘사교육 업체의 모의고사’를 입수해 출제 중인 수능 문항과의 유사성을 검토하기로 했다.

당초 사교육 업체 모의고사라도 시중에 출판됐다면 수능 출제 과정서 비슷한 문제가 없는지 검토하지만, 홈페이지나 사교육 업체를 통해 직접 판매된 것은 걸러내지 못했었다. 논란이 된 사설 모의고사 역시 사교육 업체 홈페이지서 판매됐다.

다만 사교육 업체의 모의고사 입수에 대해서는 실효성 논란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일부 사교육 업체는 수강생에게만 모의고사를 제공하고 있으며, 입수 대상인 모의고사 규모가 방대해 평가원이 모두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 관계자는 “대대적으로 장치를 마련해(중복 출제를) 막겠다”며 “구체적인 방안은 추후 소상히 밝히겠다”고 말했다.

반 년 늦게 수사 의뢰
여전히 수사는 제자리

평가원은 수능 문항과 사교육 업체 모의고사가 유사하다는 이의가 제기될 경우에 대비해 이의신청 검토 절차와 조치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EBS는 교재 집필에 참여하는 교원의 구성·운영 원칙을 강화하기로 했다. 개발 중이거나 개발이 완료된 문항이 유출되지 않도록 보안 체제도 재정비할 계획이다.

교육부는 교원들이 사교육 업체서 강의·문항 출제·학원 교재 제작에 참여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불가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교육부는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신고센터 등을 통해 접수되는 사안에 대해 엄정 조치하겠다”며 “향후 재발을 방지하고 수능 출제 공정성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은 사교육 문제를 언급하면서 문제 해결을 포함한 교육개혁의 강력한 추진 의지를 밝혔다. 이에 교육부, 공정거래위원회, 경찰청, 시도교욱청, 한국인터넷광고재단 등 관계기관이 모여 대응협의회를 구성해 총력 대응에 나섰다.


교육부는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신고센터를 통해 629건을 접수받았다. 경찰은 지난해 10월까지 카르텔 관련 6건, 부조리 관련 73건 등 총 79건을 수사해 64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아직 수사 중인 사안도 사교육 카르텔에 관련된 인물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의 총력 대응에도 사안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서 일했던 전직 입학사정관들이 현재 대치동 입시업체서 대입 컨설턴트로 일하고, 전·현직 교육부 인사 등 고위공무원들이 사교육 관련 주식을 소유하거나 퇴직 후 사교육업체 임원으로 취업하는 등 공교육과 사교육간 유착 정황이 계속 나오고 있다.

유착 정황

교육관계자 외의 유착도 있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고위공직자 재산 등록 사항’을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전 정부와 현 정부까지 본인 혹은 가족이 사교육 주식을 보유하고 있거나 과거 보유했던 이력이 있는 전·현직 고위 공직자는 총 27명에 달한다. 사교육 카르텔 척결을 외친 윤정부의 감사 및 수사가 어디까지 나아갈지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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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