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안보수사단의 한계

국정원 노하우? 수십년 걸린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문재인정부 때부터 대북 수사 업무의 지형이 바뀐 게 크다. 경찰은 안보 우려를 잠재우려 ‘안보수사단’ 카드를 꺼내 들었다. 몸집을 키움과 동시에 수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국정원 노하우’를 습득하는 건 또 다른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경찰 안보수사단이 기존 인력의 3배로 증원된다. 이들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넘겨받은 첩보를 바탕으로 국내 주 간첩 수사를 진행한다. 해외 정보활동만 담당하게 된 국정원이 안보수사단의 파트너가 되는 셈이다. 문제는 다음이다. 사실상 전문적 대북 수사 경험이 전무한 경찰이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상실로 인한 공백을 메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매머드급
인력 증원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 산하의 안보수사단은 안보수사심의관(경무관)이 단장을 맡는다. 142명 규모, 4개의 수사대로 구성된다. 안보수사단장 아래 안보수사1과와 안보수사2과가 편성되고, 한 개 과에 각각 2개 수사대가 들어가는 식이다.

기존에도 국수본 산하에 50여명의 안보수사대가 있었지만 안보수사단 신설로 조직이 3배 가까이 커지게 됐다.

경찰은 인력 증원을 위해 일선 경찰서의 안보 경찰 정원 82명을 안보수사단으로 이관했다. 또 경험과 역량을 겸비한 안보 수사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9월 ‘안보 수사 인력풀 선발’을 진행해 298명을 뽑았고, 다음달 15일까지 366명을 추가로 선발할 계획이다.


전국 18개 시도청은 소속 안보 수사 인력 191명을 증원했다. 서울청의 경우 기존 5개이던 안보수사대를 6개로 늘렸고, 조직 규모도 190명서 280명 규모로 키웠다. 앞으로 안보 수사는 시도청 중심의 광역 수사 체계로 개편하고 일선 경찰서는 탈북민 신변 보호, 안보 상황 관리, 첩보수집 등에 집중하게 됐다.

이 같은 경찰의 개편은 2020년 말 문재인정부가 국정원법을 개정해 3년 유예기간을 두고 대공수사권을 국정원서 경찰로 넘기면서 시작됐다. ‘정보 및 보안 업무 기획·조정 규정 개정안(대통령령)’에 따라, 국정원의 안보 수사 조정권은 대폭 축소된다.

검경 등 수사기관이 정보사범에 대한 신병처리 및 공소보류 의견을 제시할 때 의무적으로 국정원장의 ‘조정’을 받도록 한 규정을 국정원장의 ‘의견을 청취’하는 권고 수준으로 낮춘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정부는 ‘대공수사에서 국정원을 전면 배제해서는 안 된다’며 일부 조정을 추진했다. 국정원이 수십년간 쌓아온 휴민트(Humint·인적 정보망) 등 해외 정보 네트워크를 사장하지 않고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의 안보 수사 역량은 여전히 시험대에 올라있다. 지난 4월 수도권에 거주하는 탈북민 A씨(44) 부부가 갑작스럽게 경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한 사례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경찰이 내민 압수수색 검증영장에는 A씨 부부가 국내 탈북민들의 의뢰로 북한에 있는 그들의 가족에게 돈을 전달한 행위가 외국환거래법 위반이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실속 없는 몸집 키우기
습득만…안보 구멍 우려

A씨 부부가 ‘재북 가족을 볼모로 탈북민을 상대로 송금을 사실상 강제’하고 있다거나, 북의 가족에게 돈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반국가단체(북한) 기관원과 공모하고 있을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대공 용의점을 시사했다.


경찰은 최근 탈북민들로부터 주로 송금받은 A씨 아내를 기소 의견(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A씨 부부는 “지금까지 탈북민을 상대로 가족 송금을 주선해주면서 문제가 불거진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처럼 탈북민 B씨도 지난달 경찰로부터 대북 송금 문제로 수사 대상이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B씨는 2020년부터 2021년에 걸쳐 약 6개월간 자신의 위안화 계좌를 이용해 다른 탈북민의 송금을 도와준 적이 있는데, 이게 문제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탈북민 대북 송금의 구조는 탈북민이 국내 브로커에게 원화계좌로 송금한 이후 국내 브로커가 중국 브로커에게 돈을 전달하게 돼있다. 중국 브로커는 이 돈을 위안화로 북측 브로커에 전달해 북한 내 가족에 전달하는 순이다.

엄밀히 말하면 외국환거래은행을 통한 정식 환전과 외환 송금이 아닌, ‘환치기’ 방식이다. 하지만 탈북민들은 중국 측 브로커가 탈북민의 돈을 북한에 전달한 내용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아 합법적 송금이 불가능하다고 토로한다.

특히 경찰이 탈북단체들에 관한 수사를 하더라도 대공 혐의를 입증하지 못해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만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간 정부는 탈북민의 가족 대상 송금은 인도적 차원서 묵인해왔다. 경찰의 대공수사권 이관 정당성을 채우기 위한 ‘실적 수사’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북 지하조직
경험이 없다

경찰의 안보 수사력 우려가 지속되면서 정부는 국정원 소관 법령인 ‘안보침해 범죄 및 활동 등에 관한 대응업무규정’ 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해당 시행령은 대공수사권 이전 뒤 유관기관과의 업무협력 방식 등을 규정한다.

구체적으로 국정원은 ▲국가안보에 반하는 행위자에 대한 정보수집 및 추적 ▲안보위해자에 대한 행정·사법 절차 지원 활동 ▲경찰·검찰 등 안보침해 범죄를 다루는 유관기관의 수사에 국정원 직원 참여 ▲국가안보 침해 활동을 저지하는 과정서 습득한 유류물이나 임의로 제출받은 물품 등을 보관할 수 있게 됐다.

국정원의 협력이 뒷받침된다고 해도 경찰이 단기간 내에 충분한 대공수사 능력을 갖출 수 있을지 우려를 표하는 시각은 여전하다. 국내외 네트워크를 활용한 첩보수집과 깊이 있는 분석평가를 통해 정보를 생산해내는 능력 등은 단기간에 갖춰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그간 북한의 대남공작을 효과적으로 차단해 온 국가 핵심 기능이 저하됨에 따라 일정 수준 안보공백 발생은 불가피하다”며 “경찰과 내수사 협업 및 직무 교육을 실시했고, 현재 ‘대공 합동수사단’을 운영하며 대공 수사기법을 경찰에 전수 중”이라며 “국가정보원법서 위임받은 직무 범위에 따라 유관기관과 직무교육 및 협업체계 구축, 합동수사 기구 참여를 통한 정보지원 등 국가 대공 역량 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정보기관 출신 한 전문가는 “경찰 실적의 세부내용을 들여다보면, 단기간에 검거가 가능한 국보법 제7조(찬양, 고무 등) 위반 사범이 대부분”이라며 “직파간첩이나 북한 연계 지하조직, 고첩망 사건과 같은 중요사건은 대부분 국정원서 처리해왔다. 이는 통계가 말해주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국정원이 5년에 걸친 내사 끝에 직파간첩을 체포한 것이 일례다. C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3년형을 선고받고 만기 복역 후 2019년 7월 출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트워크
처음부터?

정보당국에 따르면 C씨는 2011년 당시 북한서 중국으로 이동해 중국인 한족 D씨 명의로 된 여권을 위조, 한국으로 잠입했다고 한다. 정보당국은 C씨를 내사한 경위에 대해 수사기법이나 정보원 노출 등을 우려해 구체적으로 확인해주지 않았다.

다만 국정원이 5년간 내사를 거쳐 북한서 서울로 보낸 직파간첩의 혐의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증거를 수집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내사를 기반으로 정보당국이 2016년 7월 안양의 한 공사장서 일용직으로 일하던 C씨를 체포했다. 당시 C씨는 서울에 거처를 두고 있었지만 일정한 직업이 없이 일용직 등을 전전하며 생계유지를 위해 일터를 옮겨 다녔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은 C씨가 암암리에 남한 정세나 인물에 대한 정보수집 등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했을 것으로 의심했지만, C씨는 국정원과 경찰의 합동 신문서 간첩활동 유무를 묻는 질문에 대체로 부인했다.

C씨는 북한 당국으로부터 “우선 남한에 정착한 다음 한국인 여자와 결혼해서 기반이 안정되면 그때 지령을 내릴 테니 일단 기다리고 있으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신분에 위협을 느끼거나 발각됐을 경우에 대비한 지령은 사전에 전달받았다고 한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C씨가 일종의 암호로 과천 서울대공원 앞에서 신문지를 들고 있으면 자신의 신변상태가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며 “그러면 한국에 있는 다른 요원들이 C씨와 접선해 귀국을 돕기로 한 것이었다”고 전했다. 당시 정보당국은 C씨를 검거하면서 “국내에 있는 직파간첩이 50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국수본, 100명 넘게 늘려 우려 해소
“인력과 기술·수사기법은 다른 문제”

경찰은 안보수사단 인력 증원 이전에 내부적으로 아직 대공수사 역량이 미흡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경찰의 대공수사 관련 3개 과제가 모두 ‘다소 미흡’ 이하의 평가를 받았다. ‘탈북민 보호 강화’와 ‘안보수사 활동 강화’는 다소 미흡, ‘안보 정보수집’은 미흡 평가를 받았다.

보고서는 각 과제를 ‘매우 우수’부터 ‘부진’까지 7개 등급으로 평가했는데, 대공수사 관련 과제는 모두 5~6등급에 머물렀다. 경찰이 대공수사권을 넘겨받기 위한 준비 작업들이었다. 통일부와 협업해 탈북민 안전지원팀을 신설하거나, 안보수사 경력·전문성을 검증받은 수사관을 선발하는 등의 내용이다.

그러나 보고서는 “대공수사권 이관에 대비한 인프라 구축 등이 구체적으로 국민에게 미치는 기대 효과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지난 2월 작성됐다. 수사권 이관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임에도 대공수사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 9월20일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서도 국정원과 경찰로부터 대공수사권 이관 문제와 관련한 준비 상황을 보고받았으나 준비가 미흡하다고 판단해 추가 보고를 받기로 하기도 했다.

국수본 출신 한 관계자는 “해당 문건은 올 초에 작성된 것으로 지금과 수사 역량이 비슷하다고 평가하기 어렵다”면서도 “노력해야 하는 측면이 많지만 국정원과 합동수사단 및 교육·협력 과정을 통해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정원은 사이버 안보와 관련해서도 대응 중이다. 지난달 14일 국정원은 “중국 업체가 국내 언론사로 위장한 웹사이트 38개를 개설해 기사 형식 콘텐츠를 국내에 무단 유포한 사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적나라한
자체 평가

이달 국정원은 미국 국토안보부 소속 ‘사이버안보·인프라보호청(CISA)’과 사이버 안보 분야 협력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8월 미국 캠프 데이비드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서 북한의 미사일 개발 자금원으로 알려진 가상자산 탈취와 사이버 해킹 저지를 위한 실무그룹 설치를 발표한 바 있다.

<hound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한동훈 축출’ 장동혁 용꿈의 비밀

‘한동훈 축출’ 장동혁 용꿈의 비밀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한동훈 전 대표는 한때 ‘짝패’였다. 장 대표는 용꿈을 꾸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 제명에 몰두한 이유를 이해하려면, 그의 욕망 ‘용꿈’을 이해해야 한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5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제안했다. 조건은 “다음날까지 정치 생명을 걸고 재신임·사퇴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정치 생명을 건 재신임·사퇴 요구’가 있으면, 곧바로 전 당원투표를 시행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요구 기간 불과 이틀 지난 6일까지 장 대표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제안한 국민의힘 구성원은 아무도 없었다. 국민의힘 최수진 원내 수석대변인은 지난 7일 “반응이 없었으니 종결된 것”이라고 말했다. 장 대표에 대한 당내 친한(친 한동훈)계·소장파의 비판이 시작된 시점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한 지난달 29일이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 제명 조치도 지난 9일 확정됐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현직 당협위원장 신분으로 장 대표 등을 공개 비판해 왔다”는 이유로 지난달 26일 김 전 최고위원에게 ‘탈당 권유’ 징계를 결정했다. 김 전 최고위원이 탈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 제명 처리됐다. 오 시장은 지난달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기어이 당을 자멸의 길로 몰아넣었다”면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어 “장 대표는 국민의힘을 이끌 자격이 없으니, 물러나서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스트레이트뉴스>의 의뢰를 받아 지난 7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 거주 18세 이상 남녀 8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ARS 여론조사(휴대전화 가상번호 100%)에 따르면, 오 시장은 33.3%의 지지를 얻어 47.5%의 지지를 얻은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보다 14.2% 뒤처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친한계는 한 전 대표를 중심으로 뭉친 수도권·부산 내 보수 성향 엘리트 집단이다. 국민의힘이 지난 2016년부터 총선에서 연패한 탓에 당내 수도권 엘리트들의 영향력이 줄었다. 양당 체제를 선호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집단 탈당 후 창당’을 선택하기도 어렵다. 바른정당·국민의당·바른미래당 등 보수 성향 제3지대 정당 실험은 모두 실패했다. 현 시점에선 국회 의석 3석을 보유한 개혁신당만이 유일한 원내 보수 성향 제3지대 정당으로 존재한다. 4개월여 앞둔 선거가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궐선거란 사실도 이들이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를 지휘해 연이어 이긴 경험이 있다. 반면 한 전 대표는 선거를 지휘해 이긴 경험이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 2024년 비상대책위원장 자격으로 총선을 지휘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을 확보하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 제명을 사실상 주도한 장 대표에 대해선 “집단 탈당 후 신당 창당’이란 정치 실험이 성공한 사례가 드물고, 한 전 대표의 선거 지휘 능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을 토대로 강행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방선거는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고 중앙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도 적지만, 그래도 선거는 선거다. 지역 기반을 확보하는 선거가 중요하지 않을 리는 없다. 통상 선거를 앞둔 시점에선 빅텐트 설치 등 이합집산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선거를 4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당내 계파 중 하나를 와해시켜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사례는 드물다. 이 대표가 개혁신당을 창당한 시점은 총선을 약 3개월 앞둔 지난 2024년 1월이었다. 당시 국민의힘 탈당 후 개혁신당으로 옮긴 현역 의원은 허은아 대통령실 국민통합비서관 1명이었다. 그리고 개혁신당이 거둔 의석은 지역구 1석·비례대표 2석 등 총 3석이라서 정치 구도를 바꿀 만큼의 영향력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한 제명 후 오 반발 “장 물러나 책임져야” 하나뿐인 꿈…정치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장 대표의 한 전 대표 등 제명 및 오 시장과의 갈등은 “국민의힘이 수도권 내 지방선거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문으로 이어질 만큼 집요하다. 선거에선 어제 없던 조직이라도 오늘 만들어서 돌려야 하고, 어제의 원수와도 악수해서 표로 바꿔야 한다. 일정한 영향력을 당내 구성원을 내쫓아 선거에 악영향을 주는 것을 감수하는 선택은 “의아하다”는 의심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큰 지점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수도권 패배·중도층 표심 공략 실패 여파로 총선에서 연패했다. “중도층 표심을 공략하면서 수도권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선거 승리 공식이다. 국민의힘 지도부 구성원 중 가장 강경한 보수 성향을 드러내는 김민수 최고위원조차 지난 9일 보수 유튜버들이 공동 주최한 ‘대한민국 자유 유튜브 총연합회 토론회’에 출연해 “윤 어게인을 외쳐선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며 “중도층을 설득해야 하는데, 부정선거론을 10년 동안 외쳐도 영역은 좁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발언은 누구나 아는 선거 승리 공식을 그가 현실적으로 외면할 순 없으리라는 근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나라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11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김 최고위원이 우파의 짠물 지지자들을 우습게 보는 것”이라며 “윤 어게인·탄핵 반대 구호로 그들의 성원을 받았으니, 노선을 바꾸더라도 그들이 따라올 것이란 기대감을 깔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지난 2022년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충남 보령·서천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금배지를 달았다. 지난 2024년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형식적으로는 재선 의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아직 초선 의원 임기 4년도 마치지 않았다.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한 전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장 대표를 파격적으로 사무총장에 임명했다. 지난 2024년 전당대회에선 한 전 대표와 장 대표가 나란히 당 대표와 수석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지난 2024년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 해제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 18명 중엔 장 대표도 있었다. 한 전 대표와 장 대표는 이때까진 누가 보더라도 ‘짝패’였다. 그로부터 1주가 지난 12월11일에 이르러, 이들은 명백한 결별 신호를 언론·대중에게 드러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한 전 대표와 달리 장 대표는 반대했고, 굳게 입술을 다문 채 당 대표실을 나서는 모습이 포착됐다. 3일 후 장 대표는 가장 먼저 사퇴해 ‘한동훈 체제’ 붕괴에 결정적으로 일조했다. 누구나 아는 승리 공식 장 대표는 지난해 2월엔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반대하는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에 참석해 “비상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이 승리로 이끌 것”이라고 말하는 등 강경 보수 전향을 선언했다. 이는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와 차별화하면서 강경 보수의 지지를 선점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선 강경 보수의 압도적 지지를 업고 당 대표에 당선됐다. 당 사무총장엔 통상 3선 의원이 발탁된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된 후 약 1년6개월이 지난 장 대표가 사무총장으로 발탁된 것은 한 전 대표의 파격 인선으로 해석됐다. 이후 장 대표는 원내 수석대변인·수석 최고위원을 지내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지난 2024년 12월 이후엔 정치적 원수가 돼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했다. 장 대표의 변화에 대해선 “정치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은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이 대표는 지난해 9월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장 대표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충청에서 몇 안 되는 용꿈 꾸는 분’이란 평가를 받았다”며 “용꿈을 꾸는 사람답게 유연한 정치 행보를 이어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가 당 대표 당선 이후엔 굉장히 유연하게 노선을 바꿔 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한동훈’이란 이름 석 자 앞에선 유연하지 못하단 사실을 몸소 보여줬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남성은 3~5세에 이르러 처음 만나는 이성인 어머니로부터 사랑받으려고 한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어머니의 사랑을 두고 싸워야 하는 경쟁자로 인식된다. 그런데 모든 조건에서 아버지가 우월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를 거세할 것”이란 무의식적인 공포를 느낀다. 아버지의 거세 시도를 막기 위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증오·공포는 선망으로 바뀐다. 이를 일컬어, 프로이트는 ‘초자아 형성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리스 신화 속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불행한 신탁을 받는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이미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노력 때문에 정해진 운명을 맞는다”는 전형적 구조로 유명하다. 프로이트는 신화의 구조를 토대로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와 경쟁한다”는 무의식 구조를 규정한 것이다.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에 반대했고,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정치적 절정을 누렸다. 한 전 대표의 정치적 절정은 장 대표의 ‘용꿈’과 결정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전 대표가 날아오를수록 장 대표의 용꿈은 거세 공포를 느낄 수도 있다. 용꿈도 날아오르려는 욕망이다. 두 사람 모두 날아오를 순 없다. 한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서 비상계엄 해제에 참여했던 장 대표는 하루아침에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절정·비상 거세 공포 장 대표의 용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선 ‘한동훈’이란 압도적인 권위를 극복해야 한다. 당내 가장 막강한 그룹으로 거론되는 언더 찐윤엔 자체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대권주자가 없다. 용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국민의힘이란 어머니를 차지해야 한다. 장 대표의 용꿈은 한 전 대표라는 ‘이미 결별한 정치적 아버지’를 제거해야 이룰 수 있다. 한 전 대표 제명은 “한동훈의 측근이란 옛 흔적을 완전히 부순 후 독립적인 용꿈을 추구하려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또 용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언더 찐윤이란 막강한 집단도 굴복시켜야 한다. 구 친윤계 핵심이었던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은 지난해 12월 장 대표 앞에서 “국민의힘은 여전히 어이없는 비상계엄은 잘못됐단 인식을 갖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아무리 정부를 비판해도 국민 마음에 다가가지 못하니 백약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의 국정 마비가 비상계엄의 원인이란 얘기를 더는 하면 안 된다”며 “몇 달 동안은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어도 되니, 지방선거에서 이겨 대한민국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 보수를 자신의 정치적 배경으로 삼으려고 한다”고 평가받는 장 대표를 정면 비판한 것이다. 이후 장 대표는 한동안 “언더 찐윤이 장 대표를 2월에 실각시킨 후, 국민의힘 신동욱 수석 최고위원에게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맡길 것”이란 소문에 시달렸다. 언더 찐윤은 “국민의힘의 텃밭 대구·경북·강원에서 토호들과 밀착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장 대표는 윤 의원의 비판을 받는 등 구 친윤계로부터도 압박당하는 상황에서 당내 소수 계파 친한계 수장인 한 전 대표 제명에 더욱 집중했다. 이는 하향 전치란 심리학적 개념이 성립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전치는 자신의 감정·욕구를 그대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 그 감정을 덜 위협적인 대상에게 표출하는 방어기제를 말한다. 특히 자신보다 만만한 대상에게 표출하는 것을 일컬어 하향 전치라고 한다. 일상 언어로는 ‘화풀이’라고 한다. 장 대표의 정치적 상황은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의 모방 이론에 비유할 수도 있다. 지라르에 따르면, 사람의 욕망은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삼각형 구도로 발생한다. 유명 연예인이 광고·사용하는 제품을 구입하는 것처럼, 욕망의 주체·대상·체계는 상호 의존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지라르가 규정한 욕망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거나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는 것도 포함한다. 이를 욕망의 삼각형이라고 한다. 언더 찐윤 압박에 제명 더 집착…화풀이? 한은 장의 희생양…전한길도 장 노리나 이 대표 주장대로, 장 대표가 처음부터 용꿈을 염두에 두고 정계에 진출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것이라면, 장 대표는 한 전 대표와 함께 ‘짝패’를 구성하면서 자신의 용꿈도 아울러 키운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비상계엄 반대 및 해제 참여로 정치적 절정에 오른 한 전 대표가 먼저 대권이나 보수 진영 주도권을 차지한다면, 장 대표로서는 “한 전 대표가 있는 한, 내 욕망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갑자기 한 전 대표와 결별한 후 강경하게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을 외친 이유는 여전히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 한 전 대표가 ▲언더 찐윤 ▲강경 보수 ▲장 대표 등과 두루 갈등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라르는 “한 집단의 갈등은 내부에서 가장 만만하고 약한 대상을 희생시켜 해소한 후 단결한다”고 주장했다. 지라르는 이 과정을 ‘희생양 메커니즘’이라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이후 전한길씨·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를 당에 유입시켜 한 전 대표와 친한계의 공백을 채우고 언더 찐윤과 맞설 세력으로 양성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두 유튜버를 통해 한 전 대표 고유의 영향력을 재현하기는 어렵다. 특히 전씨는 지난 8일 자신의 팬카페 ‘자유한길단’에 “장 대표의 해명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글을 작성했다. 전씨는 이 글을 통해 “국민의힘 지도부는 ‘내란 세력·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세력·윤 어게인을 주장하는 세력과 함께할 수 없다’는 박성훈 수석대변인의 논평이 장 대표의 공식 입장인지 3일 안에 답변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장 대표가 답변 요구에 침묵한다면, 박 대변인의 논평이 장 대표의 공식 입장이라고 받아들일 것”이라며 “그렇다면 장 대표는 당원·윤 전 대통령을 함께 배신한 것이므로 이후 일어날 일에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장 대표가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한 것처럼, 전씨가 장 대표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단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다. 한 전 대표가 장 대표 주도로 ‘희생양’이 된 것처럼, 장 대표가 전씨 주도로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단 압박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전씨의 요구에 대해 “답변드릴 내용이 없다”면서 침묵했다. 직설적인 욕망의 덫 장 대표의 정치 행위는 직설적이어서 ‘용꿈’이란 욕망이 쉽게 드러난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국민의힘의 바닥 지지 기반이 무너진다. 이 때문에 구 친윤계 핵심이었던 윤 의원도 장 대표를 비판했다.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용꿈’은 한여름 밤의 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는 ‘욕망의 덫’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