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TV> 일본제국 황족 장녀서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된 이방자 여사

조선의 마지막 국모 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대부분 명성황후 또는 순종효황후를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대한제국에는 마지막 왕비가 따로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바로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 황태자비입니다.

일본의 구 왕족으로 태어나 대한제국의 이은 황태자와 혼인하면서 황태자비가 됐지만 엄밀히 따지면 대한제국이 멸망한 이후 이은과 혼인했기에 그녀의 조선 황족 논란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평생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며 한일 미래세대가 소통하길 바랐던 이 마사코.

과연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에게는 여러 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대부분 어린 시절 일찍 세상을 떠나고 명성황후의 소생 순종 이척(순종), 귀인 장씨 소생 의친왕 이강, 순헌황귀비 엄씨 소생 영친왕 이은(영친왕), 복녕당 귀인 양씨 소생 덕혜옹주뿐이었습니다.

순종은 슬하에 자녀가 없어 뒤를 이을 황태자로 이은을 책봉했는데, 이은은 11살 때 유학이란 명목으로 일본에 볼모로 끌려가게 됩니다.

일본은 이은 황태자를 이용하기 위해 일본군에 입대시킨 뒤 왕족과 강제로 혼인을 시켰는데 이때 상대 여성이 바로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 이방자 여사였습니다.

이방자 여사는 구 왕족의 장녀로 어린 시절부터 적극적인 성격을 가졌으며 연극을 좋아하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동경해 여류 비행사를 꿈꾸는 평범한 소녀였는데요.

그런 그녀가 16세 되던 해 여름, 자신의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우연히 신문을 보게 되었는데 자신이 이은 황태자와 혼인한다는 소식을 보게 됩니다.
 

[이방자 여사 회고록 중]

이은 세자 전하와 내가 약혼했다는 주먹만한 활자가 내 이마를 쳤다.


이럴 수가 있나?

내가 왕세자 전하와 약혼을 한다니!

약혼 사실을 신문에서 알게 되다니!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사실에 머릿속이 핑핑 돌고 눈앞이 어지러워 활자가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
 

패망한 국가의 황태자와 혼인한다는 것은 자신이 꿈꾸었던 모든 미래가 산산조각 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방자 여사는 부모에게 이렇게 말을 전했는데요.

“잘 알겠습니다. 힘든 역할이라는 걸 잘 알겠지만 부모님의 뜻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약혼이 결정된 후 이방자 여사는 조선의 역사와 언어를 공부하며 혼인을 준비했습니다.

당시 이은 황태자는 소위에 임관했는데 매주 일요일 외출을 할 때면 이방자 여사를 만나러 갔습니다.

이방자 여사는 그때 이은을 떠올리며 회상하길 ‘키는 작지만, 어깨가 넓어 믿음직스러웠고 교양이 깊어 보였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만나 보니 무척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919년 1월25일은 이방자 여사의 결혼식 날이었는데, 나흘을 앞두고 고종 황제가 승하했습니다.

승하 원인으로 독살을 의심했고 이를 계기로 3·1 운동이 시작되면서 조선은 소란스러워졌습니다.


많은 한국인이 일제의 총검 아래 잡혀가고 학살당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반일 감정은 극으로 치달았는데요.

그 분노는 이방자 여사에게도 향했는데, 하루에도 수십통씩 결혼을 단념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 전화가 이어졌습니다.

모리마사 왕은 딸이 걱정되어 혼인을 취소할지 고민하고 있었지만,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이방자 여사는 다시 한번 결단을 내렸습니다.

1920년 4월28일, 결국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었고 결혼식 후 열린 파티는 3일간 계속됐습니다.

그러나 이때 이방자 여사에게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이 전해지는데요.

바로 결혼식에 가기 위해 그가 오른 마차에 한국인 유학생이 폭탄을 던졌던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폭탄은 터지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은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비밀로 하고 있었는데요.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이방자 여사가 크게 놀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닥칠 모든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각오한 이방자 여사는 오히려 침착했다고 전해집니다.

이은과 이방자 여사 사이에서 첫째 아들 이진이 태어납니다.

두 사람은 아들을 데리고 순종 황제를 만나러 조선을 방문하는데 비극적이게도 일본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  왕자가 청록색 젖을 토하면서 생후 7개월에 숨을 거두고 맙니다.

2년 뒤인 1923년 일본에서는 대지진이 일어납니다.

당시 일본은 자국의 불안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는데요.

당시 이방자 여사는 엄청난 수의 조선인이 학살당한 이 사건을 떠올리면서 “일본인들의 잔인한 행위는 무엇인가? 전하와 내가 결혼함으로써 한일관계를 위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가? 우리의 결혼이 무슨 의미가 있나? 나의 아들 진의 죽음조차 이제는 아무 가치가 없게 되었구나!”라고 개탄했습니다.

1주일 내내 슬픔과 분노로 떨고 있는 이은 황태자를 보며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뿐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3년 뒤 한국 정부가 수립됩니다.

이때 이방자 여사는 호적상 재일 한국인이었습니다.

영친왕 이은과 이방자 여사는 당시 이승만정부에 귀국 및 국적 취득을 타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일본 황족으로 살았기 때문에 일본으로 귀화한 것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무국적자가 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을 이어 나갔습니다.

1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국 국적은 취득할 수가 없었고 결국 둘째 아들의 장래를 위해 일본으로 귀화해 일본 국적을 취득하게 됩니다.

이방자 여사가 한국 국적을 취득한 것은 1963년 박정희정권이 들어선 뒤인데요.

이때부터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는 귀국 후 창덕궁 낙선재서 기거하며 조현병을 앓고 있던 덕혜옹주와 뇌내출혈을 앓고 있는 영친왕을 보살피며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평소 남편과 구상한 사회봉사를 시작했는데요.

신체장애자재활협의회 부회장으로 취임해 장애인들의 재활을 위한 자행회 언어장애 및 소아마비 장애인들을 위한 명휘원을 설립했습니다.

1970년 남편이 사망한 뒤에도 지적장애 학생들을 위한 특수 교육기관인 수원시 자혜학교, 안산시 명혜학교를 설립하며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방자 여사는 덕혜옹주가 세상을 떠난 지 9일 뒤인 1989년 4월30일, 창덕궁 낙선재서 향년 87세 나이로 눈을 감았습니다.
 

[이방자 여사 회고록 중]

내게는 2개의 조국이 있다.

하나는 나를 낳아준 곳이고, 하나는 나에게 삶의 혼을 넣어주고 내가 묻힐 곳이다.

내 남편이 묻혀 있고 내가 묻혀야 할 조국, 이 땅을 나는 나의 조국으로 생각한다.

 

구성&편집: 김희구
일러스트: 정두희


<khg5318@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 게시판 연루 의혹 가능성을 사실로 확정 짓고 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 축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점점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축출 의지를 드러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걸림돌’이라고 호칭했다. “제거돼야 통합 가능” 장 대표는 이날 “당내 통합에 걸림돌이 있다면 제거돼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는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당원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어떤 걸림돌은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연대·통합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됐다”는 당원 게시판 의혹이다.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한 아이디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다수 작성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이날 “비난 글을 작성한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같고, 전체 87.6%는 2개의 IP로 작성된 여론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 후 연루자들의 탈당·대규모 게시글 삭제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도 별도의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해당 IP를 사용한 계정 10개 중 4개는 같은 휴대전화 뒷번호·같은 선거구(서울 강남병)을 공유한다”며 “동명이인이 이 모든 조건을 우연히 공유할 확률은 사실상 0%고, 탈당 시점도 4일 이내로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는 당 대표 본인·가족 명의 계정을 이용해 다수 당원이 지지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며, “당심을 왜곡한 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일반 여론까지 움직이려 했다면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을 드루킹 사건과 비교했던 사람은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다. 장 부원장은 지난달 15일 임명된 후 장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이 사건을 일컬어 ‘온가족 드루킹’ 혹은 ‘한가족 드루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전 대표를 비난했다. 장에 한은 당내 통합 걸림돌 취급 “게시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 한 전 대표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한 장 부원장이 사용하는 표현을 위원장 발표 자료에 담은 것을 봐선, 이날 당무감사위의 발표는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를 확실하게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무감사위에 따르면, 한 전 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방송 출연으로써 하루 격차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엔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게시물이 당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 가족이 익명 보장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 사설·칼럼을 올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가족이 게시물을 올렸다”고 처음 인정하면서도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명의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비난받을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제가 제 이름으로 글을 쓴 게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이 ‘동명이인 한동훈’ 게시물을 제 가족 게시물인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했다”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게시물 작성 시기는 제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최근 등 무관한 것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는데, 저는 당원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장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이기는 변화’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행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 대표는 이날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으로써, 국민께 큰 혼란·불편을 끼쳤고, 당원께 큰 상처가 됐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힘이 부족했으니, 잘못·책임은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면서 “국민의힘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으니, 과거의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명 개정 추진 의사도 밝혔다. 장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입당 원서를 직접 전달하는 형식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국민의힘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어 “고씨를 입당시킨 것과 장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는 모순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씨는 평소 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날 김 최고위원도 고씨의 입당 원서 작성을 지켜보면서 “혹시 당원 게시판에 글 올리시면 들통난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거를 타선 없는 국힘?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 세력을 축출하고, 완전히 윤 어게인 세력의 당으로 만들어 훨씬 더 극우화된 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고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했고, 윤 전 대통령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도 곧 입당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은 거를 타선이 없는 정당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내보낼 것”이라는 예측은 “한 전 대표에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핵심 기반은 팬클럽 ‘위드후니’다. 위드후니는 40대 이상 여성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활동하는 노년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지역 기반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는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한 전 대표의 정치 기반에 대해선 ‘중도층·수도권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4일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중도 성향을 지닌 전국 18세 이상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5%는 보수 진영을 이끌면 가장 두려운 상대로 한 전 대표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 객관적 지표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만 겨우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묶어 ‘이조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야당이 2/3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서울 전체 48석 중 11석을 차지했고, 인천·경기 60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 전 대표가 수도권·중도층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총선 결과”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층 영향력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각에서 주장했던 ‘장·한·석(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성립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도 한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한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도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를 풀어가느냐는 문제에 왜 연대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내 인사’도 한 전 대표를 뜻한다. 따라서 장 대표의 지난 2일 발언한 “당내 통합 걸림돌을 제거해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에서 ‘걸림돌’이 한 대표라면, ‘통합’ 범위엔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지난달부터 통일교 특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장 대표도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소속이었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때문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창당됐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당시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잊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멸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축출한 후 강경 보수 세력을 당내 세력화해 ‘자강’을 이룬 후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서울 41.55% ▲경기 37.95% ▲인천 38.44% 등을 득표했다. 약 12% 이상의 부족분을 중도층으로부터 얻어와야 한단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9.67% ▲경기 8.84% ▲인천 8.74% 등 득표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혁보수·중도 제3지대에 두텁게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개혁신당이 확보한 8~9%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게 확실한지 아직 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거둔 실적이 뚜렷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최대 아킬레스건인 중도·수도권 공략을 개혁신당과 이 대표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수도권 영향력 의문…이준석으로 대체? 지방선거 앞두고 신당 창당 가능할지 의문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중징계하거나 한 전 대표가 탈당하면, 한 전 대표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질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서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다. 함께 진행되는 재보궐선거는 현시점에선 ▲인천 계양을 ▲충남 아산을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등 4곳이 확정됐다.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지역구도 가능성이 있지만, 후보로 확정된 의원만 사퇴해 재보선을 치른다. 그 외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재보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로는 3곳이 거론된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에서의 선전을 바라보고 창당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우며, 동력이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이 모두 한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무조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 구도가 특히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선거에서 각각 호남·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민주당·국민의힘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독자적인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와 비슷한 이 대표도 젊은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데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도 모두 후보를 공천한 경기 화성을에서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했다. 특히 지방선거·재보선은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만큼 보수성이 강하며 그만큼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설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 창당은 동사·벼랑 끝에 서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절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계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숙청을 시도하던 반대파 중 1명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절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 전 대표가 가족 관리에 실패했다”는 취지의 당원 게시판 의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한 전 대표를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한 전 대표는 비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총리·여당 당정 협력 담화’ 형식의 일명 ‘한덕수·한동훈 체제’ 성립을 시도했다.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 때문에 실제로 성립되진 못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친한계 일원이란 평가를 받는 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해 지도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겪었다. 한때 핵심 측근이었던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로서 한 전 대표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으로 이어진 한 전 대표 최대의 패착은 2024년 12월11일 장 의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당 대표실을 나갈 때, 문을 잡고 미소 지었던 순간이다. 폭발까지 도화선은? 폭발이 일어날 때 트리거는 하나다. 하지만 폭탄까지 가는 도화선은 여러개일 수도 있다. 트리거가 터져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까지 가는 도화선도 모두 다 터진다. 장 대표는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선을 앞두고 그 트리거를 만지고 있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선다. 한 전 대표는 과연 광야에 서게 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