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60)지도층 세뇌와 각성된 신념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3.12.11 14:34:07
  • 호수 14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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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전쟁이 중지되어 휴전 상태로 고착된 이후 북조선 인민들은 혼을 불태워 민족의 원수들로부터 진정으로 해방된 자주적인 나라를 건설키 위해 매진했죠. 그 험난한 과정과 눈물겨운 결과에 대해 인민들은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거예요. 남한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무차별 폭격

“남한에서도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세대들은 대단히 자랑스러워하잖아요. 북조선 인민 중에도 요즘은 한강의 기적을 많이들 부러워하지만, 아직도 사쿠라 사이비 기적이라 폄하하면서 대동강의 기적이야말로 진짜 기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게 지도층의 세뇌에 의한 맹신인지 각성된 자기 신념인지 한 마디로 단정할 순 없지만….”

기록에 의하면, 미군의 화력은 북한으로 진군한 시기에 기염을 토하듯 작열했다. 1950년 가을 무렵부터 미군 전투기는 푸른 하늘을 종횡무진 날며 무차별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평양, 은률, 송화, 사리원, 남포, 안악, 원산, 해주 등 북한의 전 지역이 초토화됐다.


산업시설과 집이 대부분 파괴당하고 순수 양민만 1백만 명쯤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입었다.

특히 황해도 신천에서 자행된 양민 학살사건은 전 세계인의 주목과 지탄을 받았다.

미군은 그곳을 점령한 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마구 학살하고 어린 소녀들까지 성폭행해 국제사회로부터 ‘아름다운 베일을 쓴 악마’라는 욕을 들었다.

1950년 10월 중순부터 12월 초순까지 약 50일 동안 그곳을 장악한 미군은 당시 신천군 전체 인구 15만여명 중 3분의 1에 가까운 4만여명을 살해하고 부녀자들을 마구잡이로 강간했다.

특히나 원암리 화약창고에 모두 5백여명의 어머니와 어린이들을 가둬둔 채 불로 태워 죽인 끔찍한 사건은 북한 사람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머릿속에 자유와 평화를 외쳐대는 미국의 악마성을 각인시켜 주었다.

북한에서 민간인들의 피해가 막심했던 건 미군의 무차별 폭격 때문이었다. 북한 전역에 투하된 포탄의 수는 1평방킬로미터당 30여개였다.

뭇 생명이 살아 숨쉬는 땅에 미군은 마치 남아도는 재래식 무기를 바겐세일하듯 마구 퍼부어대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아, 왜 그래야만 했을까? 천공에서 내려다보면 작은 지구라지만…… 미국과 조선 땅은 아득한 딴 세상인데 어느 전생에 무슨 악연이 있길래 서로 이런 추악한 꼴을…… 아! 제발, 제발 그만둬…… 혹시…… 빨갱이를 때려잡는다는 위대한 터미네이터의 사명감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것보다는 한국 사람 자체를 모기나 벼룩처럼 취급한 게 아닐까 몰라…….”

윤 여사가 중얼거렸다. 무슨 슬픈 꿈을 꾸는지 눈시울에 눈물 한 방울이 돋아 반짝이다가 뺨을 굴러 내렸다. 진정시키듯 내가 말했다.

“민중들의 힘은 남북이 똑같다고 할 수 있겠군요. 서로 비방하기보다 인정하고 축복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 이런 시기에 진정 위대한 지도자가 나온다면 통일뿐 아니라 한민족의 웅비를 볼 수 있을 텐데 말예요.”

“글쎄요.”

“얘기 들으니 윤 여사님은 대학을 다니셨다던데… 김일성 대학에 관해 좀 들려 주세요.”

미국 악마성 나타난 원암리 화약창고 사건
여성·어린 아이 수백명 가두고 태워 죽여

“특별한 곳이죠. 서울대처럼 공부만 잘한다고 들어가는 데가 아니고 핏줄이 좋아야 해요. 졸업하면 북조선의 최고급 인간으로 대우받지만, 서울대생보다 더 자부심과 아집은 심한 편이죠.”

“수업 내용은 좋은가요?”

“서울대처럼 자기들이 최고 수준이라 생각하죠. 하지만 세계의 대학과 비교하면 문제가 많을 걸요. 우물 속 개구리예요. 김일성 주체사상에 대한 내용이 수업의 30% 이상을 차지한대요. 이건 물론 북조선의 모든 학교 교과과정에 해당되는 사항이지만요.”

“서울대도 타산지석 삼아 반성을 많이 해야 돼.”

피에로 씨가 불쑥 한마디 했다. 윤 여사의 대꾸가 없자 그는 말을 이었다.

“흠, 두 쪽 다 정말이지 문제야. 한쪽에서는 주체사상으로 유아 때부터 세뇌하고 대학에 가서도 그걸 계속 골 빠지도록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구? 도대체 어디에 필요하단 말인가! 오히려 두뇌에 해악을 끼치는 쓰잘데 없는 짓이 아닌지 묻고 싶군. 그럼 남반부의 현실은 과연 어떠한가?”


“유치원 때부터 영어 교육을 시작해 대학 졸업 후까지 싱싱한 뇌를 혹사하고 있는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영어를 쏼라쏼라 제대로 구사해 한미회담에서 이익을 잘 챙기는 것도 아니고, 주체사상으로 국제 무대에서 노벨상을 받는 것도 아니구 말야. 둘 다 한심해! 영어든 주체사상이든 필요한 사람만 열심히 공부하게 하고 다른 사람은 자유롭게 해방시켜라!”

흥분하여 침을 튀기는 피에로 씨를 진정시키며 내가 말했다.

“그럼요. 반성해야죠. 우상화 교육을 없애고 비효율적인 영어 교육을 개선해 참다운 인간 생활 교육으로 전환해야겠지요. 하지만 워낙 고질병이라 통일되기 전엔 고쳐질지 어떨지….”

“흥….”

나는 윤 여사를 향했다.

“수기 파일에서 탈북 후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까지의 얘기는 많이 봤는데… 구체적으로 좀 들려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소설 작업하는 데 유리하거든요.”


“아, 그래요? 그럼 잠깐 기다리세요.”

그녀는 일어나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정황을 보니 아마 자기 대신 다른 사람을 보내려는 모양이었다.

이왕이면 눈이 별빛처럼 반짝이던 그 아가씨가 오길 내심 바랐으나 좀 나이 들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다가와 앉았다.

“뭬든 물어 보시라요. 성심껏 대답할 테니까네.”

“탈북 후에 남쪽으로 직접 내려오는 경우는 거의 없죠?”

“그러문요. 대부분 제3국을 통해 들어오는데 중국 쪽 루트를 가장 많이 이용합네다레.”

“입국 후엔 어떻게 되나요?”

“국정원 등등 공안 관계 기관에서 두세 달 동안 철저히 조사를 받수다레.”

“힘들겠군요?”

“비교적 잘 대해 줍네다. 본인이 솔직한 만큼 대우받는 편이랄까? 북조선 보위부 같은 데하군 천지차이지라우.”

“혹시 간첩 취급은 받지 않으셨어요?”

“호홋, 남북이 동족이면서두 적이라는 비극적인 관계상 그런 색안경으로 바라보지라우. 슬피기도 합네다. 신상명세와 인생살이에 대해 시시콜콜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털어놓다가 보먼, 문득 나라는 사람 자체가 하얗게 바래어 버리는 느낌이 들기도 하더라우.”

“그 다음엔 하나원으로 들어가나요?”

“잘 아수다레. 거기서 6개월 정도 교육을 받으면스리 대한민국에서 살아갈 준비를 갖추는 거야요.”

“구체적으로 어떤 교육을 받죠?”

“뭐 심리 치료 시간, 진로 지도 시간, 한국 사회에 대한 교육 등이 있쥬.”

비효율적 교육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왜 없겠슴둥. 많습메. 우선 한국 사람이 동포가 아니라 뭰 외국인이나 외계인마냥 느껴진다는 사실입네다. 왜 웃음둥? 그리 징그럽게스리 웃지 말라우요. 저 아저씬 언뜻 보면 꼭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 같수다레. 좀 진실하게 살아보시라요.”

탈북민 아주머니가 피에로 씨를 향해 말했다.

“남쪽이든 북쪽이든 세상은 연극 무대가 아닐까요?”

피에로씨가 대꾸했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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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황하나 ‘경찰 야당’ 의혹

[단독] 황하나 ‘경찰 야당’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김성민 기자 =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가 스스로 입국한 지 이틀 만에 구속됐다. 도주의 우려가 크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경찰은 약 2년간 황하나의 해외 이동 경로를 추적해 왔다. 지난해에는 은거하던 장소를 특정했다. 일부러 검거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던 이유다. 정보기관 안팎에서는 그간 황하나가 경찰에 마약 관련 정보를 제공해 왔다고 보고 있다. 황하나는 지난해 초 돌연 태국으로 출국했다가 육로를 통해 캄보디아로 밀입국했다. 경찰은 공식적인 입국 기록이 없었기에 국내로 데려오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결국 황하나가 어떤 범죄에 연루됐는지 행적만 추적할 수 있었다. 은신처 알고도… 경기 과천경찰서가 황하나를 추적하기 시작한 건 지난 2023년부터다. 같은 해 황하나가 서울 강남의 모처에서 지인 2명과 필로폰을 매수해 투약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과천경찰서는 그의 해외 이동 경로를 추적했다. 압박감을 느낀 황하나는 2023년 12월 갑작스레 태국으로 출국했다. 황하나는 당시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지난해 5월 인터폴 청색수배 대상이 된 황하나는 육로를 통해 캄보디아로 밀입국했다. <일요시사> 취재와 정보기관이 파악한 내용을 종합하면, 황하나는 망고·태자 단지 배트남계 보이스피싱 조직 간부 또는 자금 세탁범들과 어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캄보디아 카르텔에 20~30대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해 성접대를 강요한 원정 성매매 알선 의혹을 받는다. 지난 24일 오전 2시 황하나는 캄보디아 프놈펜 태초국제공항 출국장에서 대한항공 항공기에 탑승했다. 경찰은 캄보디아로 건너가 현지 영사와 협의를 거쳐 항공기 내에서 체포영장을 집행했다. 5시간 후 과천경찰서 수사관들은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한 황하나를 압송했다. 황하나는 “해외로 수차례 한국 여성들을 불러들인 이유가 무엇이냐?” “마약 유통과 투약 혐의를 인정하느냐?” “자진해서 입국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일요시사>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황하나의 성매매 알선 의혹을 들여다보지 않던 과천경찰서는 갑자기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본래 황하나의 성매매 알선 의혹은 다른 청에서 내사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과천경찰서는 황하나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관련 의혹을 캐물을 방침이다. 태국·캄보디아 전전…갑자기 자진 입국 밀입국 이후 1년 넘게 고급 호텔서 생활 황하나는 이달 초 경찰 측에 자진 입국 의사를 밝혔다. 2년 가까이 해외 도피 생활을 하다 갑자기 말이다. 캄보디아에서 출산한 아이를 책임지기 위해 스스로 입국했다는 게 황하나의 입장이다. 그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캄보디아에서 출산한 아이를 제대로 책임지고 싶어 스스로 귀국을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마약 투약 혐의도 “필로폰을 투약한 사실이 없고 지인에게 투약해준 적도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수원지법 안양지원 서효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황하나가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장기간 해외에 체류하며 수사를 피해 온 점과 동종 범죄 전력이 있는 점 등이 고려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보기관은 황하나가 아이를 책임지기 위해 스스로 입국했다는 주장에 대해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캄보디아에 밀입국한 정황이 있고 1년 넘게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갈 정도로 자본적 여유가 충분했다는 게 근거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최소한 아이를 키우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게 생활하진 않았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게 더 나은 환경일 순 있겠지만, 황하나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현재 아이의 아버지와 연락이 끊겼다거나 캄보디아에서 끼니를 굶을 정도로 생활력이 되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황하나의 자진 입국이 과천경찰서와의 사전 조율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 황하나가 이달 초 과천경찰서 측에 변호사를 통해 자진 입국 의견을 전달하긴 했으나 이전부터 그가 수사기관의 ‘야당’ 역할을 해왔다는 게 골자다. 정보기관 “아이 때문에? 신빙성 부족” 마약 정보 제공 ‘플리바기닝’ 노리나 실제 황하나는 경찰 측과 직접 연락하거나 측근을 통해 특정 인물들에 대해 ‘마약을 투약했다’ ‘한국으로 유통하는 것 같다’는 등의 정보를 전달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곧 황하나에 대한 ‘플리바기닝(plea bargaining)’으로 이어질 수 있다. 플리바기닝은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거나 공범에 대해 증언하는 조건으로 검찰이 구형량을 낮춰주거나 불기소 처분하는 것을 일컫는다. 검찰뿐만 아니라 경찰도 수사 과정에서 협상의 일종인 ‘플리바기닝’을 피의자에게 제안하기도 한다. 이미 검거한 마약사범을 통해 상위 공급책을 잡으려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검찰은 지난 10년간 플리바기닝 제도화를 추진했지만, 오·남용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막혀 추진하지 못했다. 추적이 어렵고, 증거 확보가 어려운 범죄가 늘고 있어 플리바기닝 공식 제도화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한 마약 전문 변호사는 “플리바기닝은 수사기관의 오랜 관행이다. 마약범을 더 많이 잡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허위 진술이 내재돼있을 가능성이 있어 간혹 마약범에게 억울한 혐의가 추가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황하나를 국내로 데려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부터 캄보디아 당국에 황하나의 위치를 파악했으니 협조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도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또 다른 이유 경찰 관계자는 “황하나가 밀입국했기 때문에 캄보디아 입국 기록이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캄보디아에 있으니 잡아달라고 할 수 없었고 거주지를 특정한 이후 협조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며 “캄보디아 당국이 한국 경찰에 비협조하는 일이 빈번한 건 사실이지 않나”고 반문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황하나 측과 연락했던 건 ‘한국으로 들어오라’는 설득의 과정이었다”며 “일부 마약 관련 정보를 들은 경찰도 있겠지만 황하나를 비호해 온 것처럼 보인다는 건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