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김한길 역할론

‘믿을 맨’ 드디어 나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사실상 윤핵관을 버린 것과 다름없는 형국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쓰임새가 다 됐다고 판단한 듯 보인다. 이와 다르게 윤 대통령은 멘토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 틈에 멘토는 자신의 주변 사람을 쓸 것을 권유한다. 다가올 총선서도 무언가 역할을 할 듯 보인다. 

지도부도 흔들리고,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과 사이도 소원해졌다. 힘을 실어준 국민의힘 혁신위원회마저 동력을 잃어가자 ‘믿을 맨’이 몇 남지 않았다. 그러자 국민통합위원회 김한길 위원장이 주목된다. 윤 대통령도 김 위원장에게 힘을 제대로 실어주는 모양새다. 지난 10월 국민통합위원회(이하 국민통합위)와 국민의힘 지도부를 초청해 주재한 만찬서 윤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바짝 치켜세웠다. 

다가올 총선
힘 실린다

이와 함께 국민통합위 정책 제안 보고서 100부를 당에 배포하라고 지시하면서 김 위원장이 본격적으로 역할을 맡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서울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끝난 뒤, 국민의힘 내에서는 김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을 맡는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국민의힘서 김기현 지도부 체제의 유지가 힘들다고 판단될 경우 윤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무한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서 비대위를 이끌게 된다면 큰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크다. 

다만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끝난 뒤 한 차례 김 위원장의 행보가 주목됐을 당시엔 “어디 가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던 바 있다.


이때는 국민의힘 지도부에 주어졌던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였다. 우선 혁신위를 띄우는 것으로 시간을 벌었는데, 문제는 지도부가 혁신위와도 첨예한 갈등을 빚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탓에 혁신위는 갈 곳을 잃었고, 조기 해체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달 30일에는 임장미 혁신위원이 “혁신의 의지를 이어갈 수 있는 조직이 생긴다면 넘기겠다”며 “대책이 필요하다. 지금 체제로는 힘들다”고 밝혀 해체설에 무게를 실었다. 임 위원의 말대로라면 비대위 체제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해석된다.

인요한 혁신위원장도 지도부에게 “공천관리위원장 자리를 달라”며 강하게 압박하고 나섰다. 통상 혁신위가 당 대표에게 도전을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해오지 않았던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인 위원장의 요청은 김 대표 입장에선 불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혁신위는 지속적으로 지도부에 중진 의원 및 지도부, 친윤(친 윤석열)계 인사들의 불출마나 험지 출마를 강요하고 있다. 김 대표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국 대통령실서도 수를 쓸 것으로 전망된다. 

인 위원장은 윤 대통령과 김 위원장 모두와 인연이 있는 인물이다. 실제로 ‘간접적’으로 대통령의 시그널을 받는다고 밝혔던 데다, 김 위원장과도 자주 통화하는 사이라고 언급했다.

논란이 일자 잘못된 보도라고 말을 바꾸기는 했지만, 대통령실의 영향권 안에 있음을 암묵적으로 드러냈던 셈이다. 마찬가지로 김 위원장의 영향력도 국민의힘 내에 뻗어있다는 증거다. 

윤핵관과 사실상 결별 수순 밟아
총선에서 민주당 전략 카드 알아


다시 김 위원장의 역할론이 떠오르는 이유다. 김 위원장은 15대 총선 때부터 정치권에 발을 들여온 인물로 정계 입문 후 16·17·19대 총선서 당선돼 4선을 지낸 잔뼈 굵은 정치인이다. 김대중정부에서는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문화관광부 장관 등 다방면서 활동해온 이력이 있다.

정계 개편에 따라 합당, 탈당을 반복하면서 철새 정치를 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그는 10년 전부터 윤 대통령과의 인연을 맺어왔다. 2013년 국정감사 당시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장이던 윤 대통령은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당시 국정원 댓글 공작 사건 수사와 관련해 외압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국감 폭로 이후 대구로 좌천되자, 김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구명운동에 나선 바 있다. 본격적으로 김 위원장과 연이 생긴 계기가 됐다. 

정계 입문도 김 위원장의 설득으로 이뤄졌는데 대선후보 시절, 1일 1망언으로 곤욕을 치렀을 때도 김 위원장이 옆에서 코치 역할을 맡았다. 

두 인물이 한데 묶일 수 있던 계기가 반문(반 문재인)이라는 설은 정계서 유명하다. 김 위원장은 민주당 인사 출신이고 윤 대통령도 문재인정부 시절, 문 전 대통령이 직접 검찰총장으로 발탁했던 인사다. 하지만, 두 인물 모두 민주당과 결별한 후 보수 진영으로 방향을 틀었다.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 펼쳤던 전략도 반문 빅텐트 구도였다. 

대선 당시에도 연일 중도층을 공략했고, 이게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이후 윤 대통령의 직속인 새시대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새시대준비위원회는 출범부터 말이 많았다. 정계 개편을 위한 노림수였다는 말들이 정치권에서 나돌았기 때문이다. 결국 김 위원장의 뜻은 대선 준비 과정에서는 펼칠 수 없었다. 

대선이 끝난 뒤 김 위원장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서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현재 장관이 당연직 위원으로 들어와 있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활동 중이다. 

국민통합위원회는 출범부터 말이 많았다. 윤 대통령을 필두로 하는 신당을 창당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 때문이다. 비교적 잠잠해진 윤 대통령의 신당 창당설은 가능성이 아예 없다는 선 긋기가 있었지만, 선거 판세에 따라 다시 수면으로 얼마든지 떠오를 수 있는 사안이다. 

지근거리에 정치권서 ‘창당 전문가’로 불리는 김 위원장이 있기 때문이다. 몇 번의 실패가 있긴 했지만, 성과가 아예 없던 것도 아니다.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던 데다 안철수 의원을 발굴해낸 인물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의 신당 창당 시 방식은 반문 빅텐트 형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방위 활동
세지는 파워

내년 총선서 더불어민주당이 어떤 방식으로 나설 지 예측하기는 쉽지만, 김 위원장의 지원 여부에 따라 선거 구도를 흔들 수도 있다. 

게다가 내년 총선은 국정 동력을 확보하느냐, 잃느냐의 분수령이 될 수도 있고 여소야대 국면서 벗어나 거대여당이 탄생할 수도 있는 등 윤석열정부의 추후 국정운영에도 상당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윤핵관 사례서 보듯이 윤 대통령은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인사들을 총선에 내보내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이 대통령실을 잘 보조하는 역할을 원하기 때문인데, 사실상 윤핵관의 역할은 여기까지인 것으로 관측된다.

한 달에 몇 번씩 윤 대통령을 만나는 등 최근 김 위원장의 위상은 더 높아졌다. 국민통합위의 사안뿐 아니라, 정치적인 조언도 한다. 사실상 윤 대통령의 생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차기 대통령 비서실장설이 유력하게 떠오르는 이유다. 

정권 초기 윤핵관은 당에서 막대한 권력을 행사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정책보좌관도 권성동 의원의 보좌관 출신이 맡았었으며, 대통령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뒤바뀌었다. “윤핵관 세력이 험지로 출마해야 한다”는 혁신위의 요구에도 보란 듯이 그럴 뜻이 없음을 보여줬다. 대통령실의 기조는 윤핵관 정리다.

김 대표를 비롯해 1기 윤핵관 세력이 버티며 물러날 뜻이 없음을 행동을 통해 보여줬던 만큼 조만간 대통령실에도 피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서 권성동·장제원 의원은 윤 대통령과의 관계가 애매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김 위원장의 인재풀이 필요해진 셈이다. 

최근 윤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인재풀을 넓히라는 지시를 내렸다. 김 위원장도 주변에 좋은 인물이 없냐며 여기저기 문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흔들릴
선거구도

실제 최근 장관 인선 하마평을 살펴보면 국민통합위서 활동했던 위원 2명이 물망에 올랐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의 총선 출마가 기정사실화됨에 따라 해당 자리엔 서울대 김석호 사회학과 교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 청년젠더공감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이력이 있는 김 교수는 50대 초반으로 비교적 젊다.

정치권에선 김 교수 인선의 유력한 이유 중 하나가 보훈 업무의 기조를 청년세대 보훈으로 삼기 위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20대 청년 남성이 의무 복무하는데, 청년 제대 군인 정책을 강화하려는 목적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주인공은 서울대 유병준 교수로 이영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의 후임으로 거론된다. 이 장관은 아직 총선 출마에 관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최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윤정부의 스타 장관으로 불리는 이들이 속속 정치 행보를 보이면서 그 역시 중용될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국민통합위서 경제·계층 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는 유 교수 역시 나이는 50대 초반으로 젊은 축에 속한다. 벤처, 스타트업 분야의 청년 경제를 활성화시키려는 구상이다. 

조만간 윤 대통령이 두 인물을 후보로 지명하고 청문회가 시행된다면 야당은 김 위원장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질의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윤정부는 유인촌(문체부 장관), 이동관(방통위원장) 등 이명박정부 인물들을 대거 기용해 MB(이명박)정부 시즌 2라는 비판을 받았던 바 있다.

과거의 사람을 재기용해 과거로 회귀한 게 아니냐는 말도 들었다. 

결국 이 같은 논란을 종식시키고자, 김 위원장의 인재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앞으로도 여러 방면의 인선서 김 위원장의 입김이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너무 믿을 경우 시야 좁아져
“대통령 주변만 보면 안 돼”

문제는 김 위원장의 인재풀 전략이 통하지 않을 경우다. 그동안 윤정부는 인사검증 문제를 두고, 여러 문제를 일
으켰다. 이 중 5명이 중도 낙마했고, 나머지 19명은 임명을 강행했다. 문제는 장관 후보자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앞서 대통령실은 실세 차관을 뒀다. 차관은 인사청문회를 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만큼 그들에게는 더욱 힘이 실린다. 

1기 인선 때도 비교적 측근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권력을 잡았다. 전쟁같은 대선이 끝나면 주변 인물은 보상을 원한다. 정부도 주도권을 쥐기위해 측근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 2기 개각이 단행되면서 시행된 실세 차관 정치는 측근 중심 국정운영을 하겠다는 의도를 더욱 뚜렷하게 보여줬다.

앞으로 윤 대통령의 시야가 더 좁아질 수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일요시사>와 만난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인사검증 시 통상 3단계로 분류한다. 이상 없음, 다소 미흡, 불가로 나눈다”며 “수위를 낮춰 보고를 올린다면 윤 대통령이 가용할 수 있는 인재풀은 더욱 좁아진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김 위원장이 발탁한 인물이 의혹이 생기기 시작한다면, 가용할 수 있는 인물 범위는 더욱 좁아진다. 인물은 넓게 써야 한다.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은 “머리는 빌리면 된다”는 말로 여야를 가리지 않고 폭넓게 발탁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인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전 상임고문,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김무성 전 대표, 홍준표 대구시장,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등이다. 이 밖에 실무진도 의외의 인사를 발탁해 기용했다. 경계를 두지 않은 인선이었던 만큼 당시 정치권도 함께 뒤집어졌던 바 있다.

손 놓지 않을 
사람만 곁에?

반면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윤 대통령 멘토인 김 위원장이 추천한 인사인 만큼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결국 기용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기존 대통령의 검찰 세력과 김 위원장의 세력과 충돌이 불가피하다. 앞으로 김 위원장은 물밑서 윤 대통령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인재 기용 요청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김 위원장의 힘도 더욱 실릴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소통을 해야 한다. 주변 인물의 이야기만 들어선 안 된다”며 “수시로 상황을 직접 점검하고, 외부 사람을 만나면서 측근이 속이기 쉽지 않은 인물이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대통령실 새 얼굴들
윤석열 대통령이 정책실장직을 신설하고, 수석비서관 전원을 교체하며 대통령실 전면 재개편에 나섰다.

신설된 정책실장에는 이관섭 전 국정기획수석이 임명됐다.

앞서 비서실, 국가안보실 2실 체제로 운영하던 대통령실이 3실 체제로 개편된 것. 

정무수석에는 한오섭 전 국정상황실장, 시민사회수석에는 황상무 전 KBS앵커를 발탁했다.

또 김은혜 홍보수석이 맡았던 직무는 이도운 대변인이 맡는다.

이 밖에 경제수석엔 한국은행 박춘섭 전 금융통화위원, 사회수석에는 장상윤 전 교육부 차관이 각각 임명됐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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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