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마약 다단계’ 대해부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11.21 15:36:31
  • 호수 14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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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돈이 돌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옥장판, 다이어트 식품, 화장품 등은 대표적인 다단계 제품으로 꼽힌다. 이 틈새를 노린 상품이 있다. 바로 마약이다. 한때 건설업자들 사이서 마약이 유행했고, 이들은 다단계 유통을 통해 판매했다. 덩치가 커지면서 눈에 쉽게 띄자, 마약밀매는 점조직 형태로 바뀌었다.

보통 다단계는 ‘제조업자→도매업자→소매업자→소비자’와 같은 일반적인 유통경로를 거치지 않는다. 다단계라는 이름처럼 많은 단계의 회사와 판매원이 거래에 참여하는 유통 방식을 말한다. 즉, 자사 제품을 구입한 고객을 판매원으로 이용해 제품 판매와 유통망을 확대해나가는 판매 방식이다. 

피라미드식
유통 방식

본사는 상품 판매 출자자를 모집하고, 출자자가 다시 다른 출자자를 가입시키면 보수를 받는 구조다. 통상 이를 두고 피라미드식 판매 방식이라고 말한다. 다단계 특징은 판매원의 능력에 따라 이익을 받는다는 것인데, 문제는 판매조직이 상품의 판매와 관계없이 무원칙적으로 확대되고 말단 출자자가 대량의 재고를 책임지게 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다단계 제품엔 딱히 제한이 없지만 화장품, 다이어트 식품, 건강식품 등이 가장 많이 유통된다. 최근에는 코인(가상화폐)까지 다단계 제품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마약도 다단계 판매가 이뤄진 적이 있다. 지금은 마약 다단계 조직이 사라졌지만, 마약은 한때 다단계 블루오션으로 큰돈을 벌게 했다. 


당시는 지금처럼 마약이 널리 퍼지기 전의 일이다. 지금은 마약사범이 2만명이 넘을 것이 확실시된다. 16세부터 69세 이상 성인 5000명을 대상으로 한 마약 실태 설문조사에서 “평생 단 한 번이라도 ‘의사의 적절한 처방 없이 치료 목적 이외의 용도’로 마약을 사용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3.2%가 “사용한 적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는 전체 국민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3.2%는 약 160만명, 조사 대상인 19~69세를 기준으로 보면 최소 120만명에 달하는 수치다. 연간 출생아 수가 25만명 남짓이니 5년간 태어나는 국민을 모두 더한 숫자와 비슷하다.

마약 다단계 판매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A씨는 공업고등학교 토목과를 졸업하고 지방 건설업체에 입사했다. 당시 주택건설은 호황기였고, 자연스레 그의 꿈은 현장 소장이 되는 것이었다. 현장 소장은 하도급 업자 선정, 근로자 합숙소 운영자 선정 등 건설업체 현장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이 같은 연유로 당시 건설 쪽 하청업자들은 일이 끝나면 항상 현장 소장을 데리고 술집을 갔다. A씨는 현장 소장을 따라다니면서 유흥주점에 들러 건설업자들과 도박을 했다.

술 대신 하니 피로가 없다고?
건설 노동자 은밀히 총책 활동

그는 “하청업자는 현장에 있는 사람과 친해져야 한다. 그런 과정서 술을 마시고 노름을 한다. 보통 고스톱을 치는데 투고까지는 아니고 쓰리고, 포고까지 간다”며 “건설 현장은 돈 판이다. 소장에게는 100만원을 주는데, 나한테는 10만~20만원 준다. 이러니 소장은 못 되더라도 현장서 ‘돈이나 모으고, 벌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A씨는 건설 현장서 벌어지는 도박판을 보고 자신도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돈맛’을 봤지만, 애당초 건설 현장서 이뤄지는 도박판은 큰 규모가 아니었다. 게다가 도박을 해보니 자신이 재능이 있지도 않았다. 

A씨는 도박에 빠져 일이 끝나면 음주와 함께 도박을 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냈다. 현장 소장이 돼 일찍 결혼하고 싶다는 꿈도 물거품이 됐다. 또 건설업체 현장 일 자체가 체력적으로 힘들어 일을 계속하기 위해 술을 마셨다. 문제는 과음하면 숙취로 결근이 잦아졌고 작업에도 차질이 생겼다.

이때 우연히 목수 기능공이 A씨에게 필로폰을 권유했다. 필로폰은 술과 다르게 숙취가 없어 A씨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 

그는 단순히 필로폰을 투약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A씨에게 필로폰은 돈을 끊임없이 벌도록 해주는 통로였다. 건설 노동자에게 필로폰을 판매해 돈을 벌겠다고 마음먹었다. 필로폰은 숙취가 없어 다음 날 일에 지장이 없는 데다 작업 능률까지 높일 수 있었다.

목수 기능공을 찾아가 마약을 구하는 상선을 집요하게 캐물었던 A씨는 상선에게 마약을 댄 공급자를 찾았고 또 다른 공급자까지 찾았다. 그는 건설 노동자들에게 필로폰을 “지친 몸을 회복시키고 며칠을 야간 작업해도 끄떡없는 신비한 약”이라고 꼬드겼다.

능력에 따라
이익 받는다

다만 마약이라고 설명하진 않았지만, 건설 노동자들은 A씨가 판매하는 약이 마약인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 건설 노동자들은 주말도 없고 잔업과 철야 작업이 많아 비가 와야 쉴 수 있는 형편이었다.

A씨는 “그때 건설경기가 제일 좋을 때였다. 주택 100만호 건설이라고 해서 여기저기 말뚝 박고 아파트와 빌라를 지었다. 일을 많이 하는 만큼 몸은 피곤했지만, 돈을 벌었다”며 “지금은 상상하지 못하지만, 내가 그때 마약 한 방에 10만원 받았는데 술값보다 쌌다”고 말했다.

이어 “술을 과하게 마시면 다음 날 일을 못 하니까. 그런데 필로폰 주사를 맞으면 다음 날 힘이 엄청나게 난다. 그러니 한 번 마약을 맞으면 뽕뽑았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마약을 투약하고 밤새 일을 지속하면 몸이 축날 수밖에 없다. 건설 노동자들은 마약에 중독됐고, 그만큼 A씨는 돈을 쓸어모았다. 이미 수익 기반이 잡혔지만,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때 A씨의 머리에 스친 것이 바로 다단계였고, 바로 다단계 사업을 모방한 영업전략을 구축했다.

마약 판매에 이어 다단계 사업을 하는 것은 큰 부담을 주는 일이었다. 둘 다 불법이었기 때문인데, 분명한 것은 마약 다단계가 제대로 자리만 잡으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었다. 

A씨의 영업전략은 마약에 중독된 사람을 판매자로 변화시켜 등급(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을 만들고 판매량과 소비자 모집 능력을 고려해 승급 기회와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었다. 다단계 사업은 호황이었다. ‘육체노동을 하지 않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일부 건설 노동자들은 본업을 그만두고 다단계 사업에 뛰어드는 사람도 생겼다.


A씨는 “나는 국내 최초로 마약을 다단계 판매에 적용했다. 원래 마약은 점조직이라 내 밑에 누가 있어도 알 수 없는데 수익률 배분에 있어 내가 100을 먹으면 다이아몬드에 70을 주고, 사파이어에겐 50을 줬다”며 “그러니 아랫사람이 더 팔려고 엄청 열심히 영업했다. 자석 장판 이런 다단계 판매 방식을 그대로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중독 후
판매자로 

이때 번 돈으로 A씨는 현장 기능사에서 주택건설 업자로 변신했다. 건설업 경영자가 마약밀매를 하는 것은, 건설 현장 기능사가 하는 것과 질적으로 달랐다. 자신의 위치가 땅에서 하늘로 올라선 셈이었다.

원래 꿈이었던 소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애당초 A씨가 그런 꿈을 가진 것은 고졸 학력에 회사 소장 정도만 가능했다고 여겨서다. 국내 건설계서 초창기 소장은 고졸 출신이 많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것도 옛말이 됐다. 이처럼 마약 밀매 사장이 되니 더 바랄 게 없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주택건설 업자가 된 뒤 A씨는 낡은 단독주택을 매입해 그 부지에 연립주택을 신축했다. 현장 기술과 자본력이 있었지만 대형건설 실적이 없어 대규모 아파트를 신축할 기회를 잡지 못했던 탓이다.

건설업으로 제대로 성공하면 대박이 나지만, 분양이 막힐 경우 도산의 위험도 따른다. 대부분의 건설업자들은 도산했지만, A씨는 마약 다단계로 벌어들인 자금력으로 영향을 받지 않았다. A씨는 자기 삶을 보상받 듯 수입 자동차에 운전기사까지 고용했다. 밤에는 유흥주점서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시는 등 말 그대로 돈을 하늘에 뿌리고 다녔다.


그렇다고 마약 다단계가 현금이 무한정 솟아나는 화수분은 아니었다. 주택 경기가 퇴보하고 마약 다단계 자금마저 바닥이 나자 A씨는 도산했다. 바로 계속된 과소비 때문이었다.

A씨는 “원래 땅장사, 노가다, 건축업자는 술을 엄청나게 많이 마신다. 그전에 룸살롱에선 맥주도 팔았는데 양주만 마셨다”며 “그것도 국산 양주 먹으면 격 떨어진다고 외국 양주만 먹었다. 팁을 주면 하루에 100~200만원 깨지는 건 일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단계별 승급 기회와 인센티브
상선에 또 다른 공급자 연결

이어 “주머니에 늘 돈이 있으니 아무 생각 없이 썼다. 돈을 벌려고 건설업을 했는지, 술을 먹기 위해 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때 사업한 사람들 거의 다 망했는데, 나는 마약을 판매했기 때문에 오래 버틴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주저앉을 그가 아니었다. A씨는 도산 후 마약 밀매로 재기하기 위해 상선과의 루트 재정비에 나섰다. 과거에 자신에게 마약을 공급받았던 사람들을 다시 조직해 소매 조직을 결성했고, 부활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도 잠시, 부활 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체포돼 4년 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됐다. A씨 다단계 조직과 지위를 노린 내부자에 의해 밀고돼 체포됐던 것이다.

A씨는 “만약 내가 초창기에 마약 판매했던 것까지 다 했으면 무기징역이 나왔을 텐데 용케 피했다. 원래 마약은 단순히 사용하는 사람이 잡히면 초범으로 집행유예를 받는데 공급자들은 형이 아주 세다”며 “판매자를 막아야 구매자들이 사라지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봐도 4년은 적당하다. 마약은 감형이나 가석방 같은 것이 전혀 없어 선고받은 대로 다 살아야 한다. 그만큼 판사와 법무부도 악질로 보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마약으로 번 돈으로 누렸던 호화로운 삶은 이제 끝났으며, A씨 인생은 교도소 내에서 재력과 권력을 가진 사형수를 만나면서 변했다. 사형수는 가족 면회도 오지도 않는 등 고독하고 불우한 사람이었다. 종교단체서 후원하는 약간의 영치금으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면서 생활했다.

A씨는 사형수에게 자신의 영치금을 털어 속옷, 책, 간식 등을 구매해 전달했다. 이 과정서 사형수를 교화하는 종교인들의 저서, 사형수의 일화, 일상을 직접 보면서 마약 판매가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깨달았다. 잠을 자기 전에는 누워서 교수대에 서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A씨는 “사형수 형님을 보면서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느꼈다. 나도 중국이었으면 이미 사형당했을 것이다. 이들은 단 하루의 시간이라도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지면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도록 노력할 거라고 말한다. 이제는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사형수로 한 달만 살라고 조언하고 싶다”고 말했다.

A씨는 출소 후 마약 밀매자인 것을 숨기고 일하기 위해 선원이 됐다. 선원 인력업체는 늘 인력이 부족하기에 신원을 조회하거나 과거 경력을 묻지 않고 주민등록증 하나만 보여주면 가능했다. 그는 물때를 맞추기 위해 선주의 집에 기거하며 생활했다.

그 끝은…
초라한 말로

A씨는 마약과 멀리 하기 위해, 머물던 현실과 완전히 격리된 삶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돈만 있으면 다시 마약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망망대해 위 어부의 삶은 마약 밀매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다.

A씨는 자신을 ‘마약 밀매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있는 무기수’라고 표현했다. 아울러 “마약을 팔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바닷일을 하면서 느낀 건 교도소서 느낀 것과 다르지 않다.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다. 나 같은 사람에게 돈은 망하는 지름길이고, 마약 밀매 수입은 미친 돈”이라고 덧붙였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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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