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고 - 억울한 사람들> 1년 전 성폭행당한 피해자는 지금…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10.31 10:03:05
  • 호수 14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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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삶이 끝났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일요시사>는 ‘일요신문고’ 지면을 통해 억울한 사람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좋습니다. <일요시사>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이번에는 1년 전, 성폭행을 당했던 피해자가 겪는 트라우마에 관한 사연입니다.

여성 10명 가운데 4명은 한 번 이상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친밀한 관계서 폭력 범죄를 저질러 경찰에 붙잡힌 가해자도 17% 늘어 최소 1만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12월29일 발표한 ‘2022년 여성폭력통계’를 보면, 2019년 기준으로 평생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여성 비율은 38.6%로 조사됐다.

무너진 일상

2021년 경찰에 신고, 고소 등을 통해 보고되거나 경찰이 직접 인지해 형사 입건된 성폭력 범죄 사건은 총 3만9509년으로, 2020년 대비 2.3% 증가했다. 2014년부터 성폭력 범죄 중 해마다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범죄는 강간·강제추행이다.

특히, 과거 또는 현재의 배우자, 연인, 친구, 선후배 등 친밀한 관계서 발생하는 교제폭력 범죄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이 범죄로 경찰에 붙잡힌 가해자 수는 2021년 1만554명으로 전년보다 17.5% 늘었다. 이 범죄 유형 가운데 70% 이상이 폭행·상해였다.

2021년에 친한 학교 선배에게 성폭행당한 A씨도 이에 해당한다. 그 후로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A씨는 진정제를 먹어야 일상이 가능하다. 잠을 자면 사건 당시 있었던 일이 꿈에서 나온다.


그나마 A씨는 운이 좋은 편이다. 주위에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신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A씨와 성폭행 가해자인 학교 선배는 친한 사이였다. 선배는 A씨가 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전공 공부에 관해 도와주거나, 학교생활 외 조언도 많이 해줬다. 학교서 가장 친했던 선배였다.

A씨가 졸업한 후였다. 선배에게 다시 연락이 왔고, 가볍게 술을 마시기로 약속했다. 술자리서도 특별한 일은 없었다. 회사에 다니는 선배에게 사회생활에 관해 듣거나, 취업에 관한 조언을 들었다.

그러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는지, 기억이 드문드문 끊겼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니 A씨는 모텔에 혼자 누워있었다. A씨는 “눈을 떴을 때 아무 정신이 없었다. 몸은 너무 아프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너무 놀란 마음에 바로 선배한테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선배와 술 마시다 눈뜨니 모텔
병원서 강제로 피해 흔적 발견

A씨는 몸이 아팠지만, 성폭행을 당했다고 인지하지 못했다. 아직 술이 깨지 않아서도 그랬지만, 현실감이 없었다.
모텔을 나서면서 친구에게 전화해 “내가 선배랑 어제 저녁에 술을 마셨는데 눈을 뜨니 모텔이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놀란 친구는 조심스러운 어조로 A씨에게 병원을 같이 가자고 기다리라고 했다.

병원서도 A씨는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의사가 A씨에게 몸에 강제로 성관계를 한 흔적이 있다고, 성폭행을 당한 거냐고 물었다. 하지만 아무런 기억이 나지도 않았고, 성폭행이란 단어를 들을 때마다 속이 좋지 않았다. 

A씨 머릿속엔 ‘내가 성폭행 피해자라고?’ ‘내가 범죄를 당했다고?’ ‘이게 범죄라고?’라는 당장 이해할 수 없는 생각뿐이었다.


친구의 조언으로 A씨는 해바라기센터에 전화했고, 상황을 들은 상담사는 A씨에게 “강간을 당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때까지도 선배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A씨는 본인이 피해자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당연히 일상을 살아갔지만, 당연히 정상적일 순 없었다. 다음날 바로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그러나 일상이 이어지진 않았다. A씨는 평상시에 하지 않는 실수를 했고, 손님이 와서 주문해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상함을 느낀 카페 점장이 A씨에게 무슨 일이냐 묻자, 갑자기 그는 “성폭행을 당한 것 같은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며 눈물을 쏟았다. 

이때 점장은 A씨를 사람이 없는 곳으로 데려가서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나는 학생 때 겪은 일이라 돈을 받고 합의했지만, 너는 절대 그렇게 하지 마라”고 조언했고, A씨가 선배를 만나서 강제 성관계가 있었다는 증언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불안장애, 공황장애, 기분장애 진단
진정제 없으면 하루 버티기 힘들어

겨우 연락이 닿은 선배는 A씨에게 “피임 도구를 사용했으니 안심해”라고 말할 뿐 사과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A씨는 본인이 원나잇을 한 건지, 성폭행을 당한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해바라기센터서 만난 상담사와 국선변호사가 A씨를 계속 도왔다. 가장 최악의 일을 겪었지만, 주위 사람들 덕분에 경찰 신고를 했고 재판이 진행됐다. 

재판을 받으러 가기 전에는 병원에 가서 강한 진정제를 처방받았다. 구역질이 심하게 나자, 재판장은 A씨에게 재판을 미뤄도 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A씨는 그러지 않았다. 이 일이 빨리 끝나고 몸도 마음도 정상으로 돌아오길 원했다.

1심서 선배는 징역 5년을 받았다. 속이 시원할 줄 알았던 A씨였지만, 재판 과정서 상대 측 변호사는 A씨에게 “네가 원해서 모텔에 간 것” “설레서 기댄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A씨는 자신이 겪은 성폭행을 포르노로 포장했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A씨는 성폭행당한 이후부터 구역질이 끊이지 않았다. 불안장애, 공황장애, 기분장애 진단을 받았다. 진정제가 없으면 일상이 되지 않았다. 뉴스서 성폭행이란 단어를 보거나, 선배와 비슷한 나이의 남성을 보면 구역질이 났다. 그때 진정제를 먹지 않으면 공황발작을 했다.

약을 먹고 잠을 자면 무조건 악몽을 꿨다. 남자에게 쫓기거나 자연재해를 겪는 꿈이었는데, 끝은 무조건 사건 장소가 나왔다. 이제는 일상생활을 하지만 일을 할 수는 없다. 언제 공황발작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A씨의 일상 전체는 성범죄를 당한 이후 완전히 무너졌다.

무서운 PTSD


성범죄 전문 변호사는 “성범죄를 당한 이후 피해자가 일상생활서 큰 고통을 받고 있어, 그래서 경제적인 측면서 손해가 크다면 가해자를 가중처벌하는 사유가 될 수 있다”며 “가해자가 받은 형량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민사에서 인정되는 금액도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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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날 이후…친·비명 갈등 시나리오

심판의 날 이후…친·비명 갈등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결과와 이에 따른 조기 대선 여부가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다. 생각보다 이르게 정권교체의 기회를 잡은 더불어민주당이지만 친명·비명 갈등으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한 달간 통합 행보를 보이나 싶더니 또다시 서로를 향해 총구를 들이미는 형국이다. 지난달 25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최종 변론기일이 마무리된 후 모든 시선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쏠렸다. 통상적으로 2주 이내에 결과가 나오는 만큼 윤 대통령의 파면 여부는 이번 주 내로 나올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과거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때 선고기일 기간을 고려하면 오는 14일이 유력하다. 세 개의 변수 결론은 하나 현 상황서 마은혁 헌재 재판관 후보자 임명 여부가 최대 관건이다. 새로운 재판관이 합류하면 탄핵 심판 심리 과정서 나온 증거 기록과 증언 등을 살피는 ‘변론 갱신’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이 작업에만 2주가량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다만 새 재판관이 임명돼도 진행 중인 윤 대통령 사건 선고에 참여시킬지 결정하는 것은 남은 재판관의 몫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마 후보자 임명은 논의할 필요도 없는 즉시 하면 되는 일”이라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임명을 촉구했다. 최 권한대행은 헌재가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음에도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덕수 총리의 탄핵 심판이 급물살을 타거나 헌법재판관 8명의 의견이 만장일치로 모이지 않을 경우에도 선고가 미뤄질 수 있다. 후자의 경우 재판관 간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최종 결정문을 작성하는 데 다소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야당은 헌재가 사안의 중대성 등을 고려해 재판관이 전원일치로 탄핵 인용을 결정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성준 의원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12월3일 내란의 밤을 모든 사람이 봐왔고 탄핵 심판 과정서 윤 대통령의 거짓말을 다 확인한 사람들이 온 국민인데 어떻게 탄핵 심판서 헌법재판관들이 만장일치를 안 할 수가 있겠냐”고 주장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박은정 의원 역시 만장일치로 윤 대통령이 파면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박 의원은 “기각 가능성은 없다”며 “윤 대통령의 직접 지시를 받은 증인들이 넘치고, 헌재 탄핵 심판정에 나오지 않은 기록, 증거들은 더 많다. 수사 기록이 모두 확보돼 사실관계가 확정됐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윤 대통령 입장서도 탄핵 인용을 예상했을 것”이라며 “조기 대선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져가기 위해 강성 지지층을 자극하고 선동하는 정치적 메시지로 헌법재판에 임했다고 본다”고 부연했다. 오는 14일 윤 대통령이 파면된다고 가정했을 때 조기 대선은 60일 이내인 5월13일 이내에 치러져야 한다. 야권은 조기 대선과 내달 2일 예정된 상반기 재·보궐선거를 동시에 치르자고 주장하는 만큼 5월은 곳곳서 격돌이 예상되는 시기다. 운명 가를 일주일 이번 주 결정 유력 마은혁 임명 최대 관건…여야 촉각 오는 13일은 상반기 재보선 후보 등록이 시작되는 날이다. 따라서 헌재가 이보다 이른 시점에 윤 대통령 탄핵을 인용한다면 5월 조기 대선과 상반기 재보궐선거가 동시에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공직선거법 제203조 5항에 따르면 ‘보궐선거 등의 후보자 등록 신청 개시일 전일까지 대통령의 궐위로 인한 선거 또는 재선거의 실시 사유가 확정된 경우 그 보궐선거 등은 대통령의 궐위로 인한 선거 또는 재선거의 선거일에 동시에 실시한다’고 명시했다. 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이같이 밝히며 두 선거가 동시에 치러질 경우 그에 따라 절감되는 세금만 367억원이라고도 강조했다. 조기 대선이 점차 가시권에 접어들자 민주당은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 굳히기에 나섰다. 각종 여론조에서도 이 대표는 차기 대권주자 1순위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달 26일부터 28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남녀 1506명을 대상으로 ‘대선 양자 가상 대결’을 조사한 결과 이 대표가 50.0%,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31.6%를 기록했다. ‘여야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결과 역시 이 대표가 46.3%로 1위를 기록했다. 이어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18.9%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6.9% ▲홍준표 대구시장이 6.8% ▲오세훈 서울시장 5.1%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2.1%로 집계됐다. 이어 ▲이낙연 전 국무총리 1.7% ▲김동연 전 국무총리 1.4% ▲김부겸 전 국무총리·김경수 경남지사가 1.3% 순으로 나타났다. 해당 여론 조사는 무선(100%) 자동응답 방식을 활용해 진행됐으며 응답률은 6.0%에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서 ±2.5%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지율이 안정권에 접어들자 이 대표는 민주당의 최대 숙원이었던 계파 갈등 봉합에 힘을 쏟았다.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민주당 내에서 후보 경선을 해야 하는데, 이대로 이 대표의 독무대가 될 경우 1극 체제 비판은 불가피하다. 이런 프레임을 깨트리고 중도층을 견인하기 위해서라도 통합 행보는 필수라는 해석이다. 스스로 당긴 갈등의 불씨 이 대표는 지난달 13일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를 만난 데 이어 21일 박용진 전 의원과 만남을 가졌다. 이후 24일에는 김부겸 전 국무총리, 27일에는 임종석 전 청와대비서실장, 28일에는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회동했다. 이들은 웃으면서 악수하고 “더 큰 민주당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연신 강조했다. 하지만 비명(비 이재명계)의 쓴소리와 친명(친 이재명)계의 이견이 부딪쳐 이렇다 할 진척을 보이지 못하는 모습이다. 정치권에서는 비명계가 주장하는 대통령 중임제 개헌에 이 대표가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실제 통합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도 분석했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서 계파 갈등이 몰고 온 후폭풍을 몸소 경험했다. 당시 대권주자였던 이낙연 전 총리와 이 대표 간의 공방 수위가 높아지면서 사사건건 시비가 붙었고 결국 사법 리스크를 건드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대선 경선 당시 불거진 이른바 ‘무효표’ 처리를 놓고 이 전 총리 측이 크게 반발하면서 명-낙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대선서 패배한 이후 본격적으로 ‘네 탓 공방’을 벌이며 계파 갈등의 시발점이 됐다는 평이다. 이미 물밑 작업에 들어간 조기 대선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 대표는 비명계와의 화합에 공을 들였지만 2년 묵은 앙금이 좀처럼 쉽게 풀리지 않는 듯하다. 비명계는 계속해서 대통령 임기 단축을 포함한 개헌 카드로 이 대표를 압박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직격한 비판도 서슴치 않았다. 김 전 총리는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서 열린 비명계 싱크탱크 일곱번째나라랩·사의재의 공동 심포지엄에 참석해 “내란 종식은 대한민국의 틀이 어디서 새로 서서 어디서부터 출발할 것인가를 보여줘야 국민이 안심할 것”이라며 “그 첫걸음이 7공화국을 준비하는 개헌”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대표가 이 문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 고민 중인 걸로 알고 있다”며 “국민의 요구에 답할 때”라고 압박했다. 김 지사도 “탄핵과 정권교체만으로는 안 되고 국민의 삶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며 “탄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에 우리는 새로운 나라 제7공화국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힘을 보탰다. 그러면서 “내전과 같은 극단적인 갈등을 치유하는 통합의 나라가 필요하다”며 ‘경제 대연정’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무너진 공든 탑 지난 전당대회서 이 대표의 대항마로 나섰던 김두관 전 의원도 같은 날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대표를 향해 “대통령 임기 2년 단축 개헌을 약속하라”고 촉구했다. 경선 방식에 대해서도 “경선이 시작되면 이 대표의 시계만 돌아가고 나머지 후보는 비전 하나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곧바로 이 후보 추대 잔치 들러리를 서야 할 판”이라며 “어대명 경선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야 정치 원로를 비롯한 여당 대권주자 역시 저마다 개헌을 띄우고 있어 양옆으로 이 대표 압박하는 모양새다. 이들 중 일부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정조준하기도 했다. 가장 날 선 목소리를 내는 김 전 의원은 “검찰은 항소심서 이재명 대표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로 또다시 실형 2년을 구형했다”며 “이 대표가 무죄가 나오길 바라지만 선고서 유죄가 나오면, 본선 승리를 낙관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명백히 현존하는 사법 리스크를 인정하고, 민주당의 집권을 위해 당원과 국민에게 사법 리스크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필요하면 플랜B를 논의하는 것이 정상적인 민주주의 정당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 대표께서 임기 2년을 단축하는 3년짜리 대통령은 정말 못하겠다면 사법 리스크를 다 털고 법원 재판 다 받고 개헌 이후 4년 중임제 대선에 출마하길 권한다”며 “그렇게 하면 대통령을 8년까지도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사방으로 포위망을 좁혀 오자 통합 행보를 보이던 이 대표가 불과 2주 만에 다시 각을 세웠다. 2023년 친·비명 갈등의 뇌관이었던 체포동의안 사태를 놓고 이 대표가 “당내 일부와 (검찰이)다 짜고 한 짓”이라고 주장한 게 화근이다. 이 대표는 지난 5일 방송된 유튜브 채널 ‘매불쇼’에서 “(체포동의안 가결을)예상했었다”며 “2023년 그때쯤 정부와 대통령, 여당 쪽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재명을 잡아 넣는다’라는 작전을 짰던 것이고, 어쨌든 대한민국 한 개 지방 검찰청 규모의 검사 인력을 투입해서 저를 전방위로 털었다”고 말했다. 지난 2023년 9월22일 이 대표에 대한 2차 체포동의안이 국회서 가결됐다. 개표 결과 찬성 149명, 반대 136명, 기권 6명, 무효 4명으로 야권서만 최소 29명이 가결표를 던졌다는 추측이 나왔다. 당시 공개적으로 가결을 표명한 의원은 이상민·김종민·이원욱·설훈·조응천 의원 등 다섯 명이었다. 이 “체포동의안 검-비명 짜고 쳤다” “지금까지 쇼였나” 통합 행보에 찬물 이 대표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체포동의안 2차)표결을 했는데 가결되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전에 들은 얘기가 있다”며 “검찰이 수사하는 과정서 벌인 일이나 당에서 움직이면서 나한테 비공식적으로 요구한 것 등을 맞춰보니 당내 일부하고 이미 다 짜고 한 짓”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짰다는 증거는 없고 추측”이라면서도 연관성과 타이밍을 예시로 들었다. 아울러 가결파 의원들을 겨냥한 듯 “그들을 구체적으로 제거하지 않았지만 책임을 물어야 민주적 정당”이라며 “민주당을 사적 도구로 쓰고 상대 정당, 폭력적 집단과 암거래하는 이 집단이 살아남으면 당이 뭐가 되겠느냐”고 비판했다. 비명계는 저마다 입장문을 내고 즉각 반발했다. 비명계 전직 의원 모임인 초일회는 “이 대표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동료 의원들이 검찰이나 국민의힘과 내통했다고 한 것은 동료에 대한 인격모독이고 심대한 명예훼손”이라며 “이 대표가 당내 통합을 얘기하면서 분열주의적 발언을 한 것에 대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앞에서 웃고 뒤에서 칼을 꽂는 격이다. 통합 행보는 쇼였냐”며 “이 대표는 즉각 막말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전 의원은 “21대 민주당 국회의원 중 한 사람으로서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며 “국민통합을 시대정신으로 제시하고 국민 통합은커녕 당내 분열부터 조장하는 이 대표의 본 모습은 무엇인가. 발언을 공식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새미래민주당 전병헌 대표 역시 SNS를 통해 “엊그제까지 통합 행보라고 요란을 떨며 비명계 인사들과 밥을 함께 먹었던 것 또한 결국 쇼에 불과했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라며 “검찰과 비명 의원들이 공모했을 가능성보다는 이재명 대표와 김동현 판사의 공모 가능성이 훨씬 더 커 보인다. 검찰과 민주당 의원들이 짰다는 비현실적인 망상을 내뱉는 이 대표의 상식을 파괴하는 언행에 또 한 번 충격을 받는다”고 직격했다. 또다시 벌어진 간극에 한 야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이 시점서 이 대표가 저런 발언을 한 이유는 대표 본인만 알 것”이라면서도 “거친 메시지를 쏟아내는 이들을 보면 제발이 저려서 발끈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듯 기껏 쌓아둔 통합 행보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모양새다. 친·비명은 서로를 향해 다시 날을 세우며 경계 태세에 나섰다. 돌고 도는 계파 갈등 민주당 소식을 잘 아는 한 정치권 관계자는 “양쪽이 으르렁거려도 막상 조기 대선이 열리면 합심해 지지율을 견인하지 않겠냐”는 희망적인 의견을 밝혔다. 조기 대선을 통한 정권교체라는 절체절명의 이벤트를 앞두고 진영 논리에 갇히는 건 오히려 상대방을 도와주는 꼴이란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조기 대선이 열리면 60일이란 시간 동안 민주당은 격변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며 “갈등과 혐오로 얼룩졌던 지난 대선을 되풀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근소한 차이로 이긴다면 이것대로 또다시 갈등이 불거질 것 같다는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