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대담무쌍 사기꾼 전청조

성별까지 바꾼 역대급 신분 세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전청조가 파라다이스그룹의 혼외자라는 루머는 사실이 아니었다. 전 펜싱 국가대표였던 남현희씨의 예비 신랑으로 화제가 됐지만 그의 실체는 사기 전과자였다.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판결문까지 공개되는 등 과거사가 터지자 남씨는 전청조와 결별하기로 했다. 감정적으로 감당하기 힘들었던 전청조는 스토킹 혐의 현행범으로 체포돼 조사를 받았다.

“내가 P 호텔 J 회장 혼외자야. 너 비서로 써줄게. 8000만원 줘.” 이는 전청조가 한 인사에게 사기를 치면서 했던 말이다. 이처럼 피해자 7명을 상대로 편취한 금액은 약 3억원으로 파악된다. 피해자들은 전청조의 언변에 넘어가 돈을 빌려주거나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피해자들
속속 증언

전청조는 ‘조조’라고 불리는 사기 전과자였다. <디스패치> 단독 보도에 따르면 그는 그가 주장한 승마선수 출신도 아닐뿐더러 남자가 아닌 여자였다. 그는 전 펜싱 국가대표 출신인 남현희씨를 만나 결혼을 발표했다. 남씨를 이용해 체육 교육사업을 모색하고 있었던 만큼 또 다른 사기 범죄를 저지르려던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인천지법은 2020년 12월11일, 전청조에게 징역 2년3개월을 선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전청조는 제주서 만난 A씨에게 남자로 행세하며 접근했다. 그러다 A씨에게 솔깃한 투자를 제안했다. 전청조는 A씨에게 “내 아내 친오빠가 서울서 물 관련 투자 사업을 하는데, 300만원을 투자하면 6개월 후에 50억원을 만들 수 있다”고 제안했다.

A씨가 믿지 않자 전청조는 ‘원금 보장’ 카드를 내밀었다.


전청조는 “사업에 실패하면 원금을 포함해 500만원으로 돌려주겠다”고도 했다. 전청조는 A씨에게 300만원을 계좌이체 받았다. 갚지도 않은 전청조는 A씨에게 사기죄로 고소당했다.

재판부는 “전청조는 여성이다. 따라서 아내의 친오빠가 있을 수 없다. 또 300만원으로 50억원의 수익을 낼 수도 없으며, 원금 포함 500만원도 돌려줄 의사나 능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전청조는 300만원을 기존 채무변제 및 생활비 등으로 쓰려 했다.

2019년 4월, 남자였던 전청조는 5개월 뒤 다시 여자로 돌아왔다. 다음 타깃은 남성 B씨. 둘은 ‘데이팅앱’을 통해 만났고, 연인으로 발전했다. 전청조는 그런 B씨에게 결혼을 제안했다. B씨는 약 2300만원을 보냈다. 하지만 전청조는 혼수도, 집도 구할, 아니 같이 살 생각이 없었다.

B씨는 2020년, 입출금 내역 및 카톡 대화 등을 들고 민사소송을 걸었다. 재판부는 B씨의 손을 들었다.

전청조는 ‘데이팅앱’을 통해 남자를 물색하기도 했다. 피해자 C씨 역시 2018년 해당 앱을 통해 알게 됐다. 전청조는 자신의 직업을 말 관리사로 소개했다. 그리고 4월, C씨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며 SOS를 쳤다. C씨는 의심하지 않고 99만원을 송금했다.

5월7일에는 “손님 말이 죽었다”며 380만원을 또 빌렸다. “커플티를 사자”며 90만원도 썼다.


전청조는 다양한 명목으로 돈을 빌렸다. “자신의 대출금을 갚아달라”며 2200만원을 뜯어내기도 했다.

재벌·남자인 척 과거 숨기고 접근
7번 사기 2년3개월 옥살이 드러나

그렇게 편취한 돈이 5700만원. 재판부는 전청조의 사기행각을 모두 인정했다. 재판부가 밝힌 전청조의 직업은 프리랜서 말 조련사. ‘말 조련사’ 전청조는 1년 뒤에 재벌 3세라는 탈을 썼다. 자신을 파라다이스 그룹의 혼외자라 소개했다.

이는 낸시랭의 전 남편 ‘전준주’가 쓴 수법이다. 전청조는 재벌 3세 행세를 하며 비서를 구했다. 전청조는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파라다이스 그룹서 일하려면 신용등급이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신용등급을 올려주겠다”며 8000만원을 요구했다. 이렇게 D씨는 전청조에게 7200만원을 뜯겼다.

전청조의 사기는 갈수록 대담해졌다. E씨에게 “너도 투자를 해라. 2배로 돌려받을 수 있다”고 유혹했다. 원금 보장 카드까지 내밀었다. E씨는 ‘2배 장담’과 ‘원금 보장’에 현혹됐다. 총 34회에 걸쳐 1600만원을 송금했다. 전청조는 이 돈을 기존 고급 호텔 이용료로 사용하려 했다.

전청조는 연기파였다. 이번 사기는 1인2역. 외국 취업 프로그램 알선자와 운영자로 변신했다. 우선 취업 알선자. 그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피해자 F씨에게 접근 후 외국 취업 프로그램 담당자 연기를 했다. “취업을 시켜줄 테니 돈을 보내라”며 재촉했다.

결국, F씨에게 68만원을 받아냈다. 물론 전청조는 그럴 능력도, 실력도, 의사도 없었다. F씨는 뒤늦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형사고소를 강행했다.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씨를 향한 전청조의 사기극 결말은 파국이었다. 지난 26일 경기 성남중원경찰서는 전청조를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전청조는 이날 오전 1시9분 남씨 어머니 집을 찾아가 여러 차례 문을 두드리고 초인종을 누른 것으로 알려졌다.

전청조가 “아는 사람이니 집에 들여 보내달라”며 집에 들어가기 위해 시도하자 남씨 측이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그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전청조는 최근 남씨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후 이 같은 행동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청조는 현재 석방된 상태다.

앞서 남씨는 지난 23일, 15세 연하 재벌 3세 전청조와 재혼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이후 전청조의 성별, 사기 전과 과거 등 여러 논란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주목받았다.

파라다이스
혼외자 행세

남씨는 이에 대해 “최근 보도된 기사를 통해 거짓 또는 악의적이거나 허위 내용을 담은 게시글 등으로 허위 사실이 유포될 경우 강력히 대응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청조의 과거사가 드러났다. 남씨 역시 사기에 ‘이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남씨는 <여성조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청조가 자신의 이름을 이용, 투자금을 편취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또 남씨는 최근 <디스패치> 보도 후 전청조에게 재벌 3세 진위 여부, 사기 전과 혐의 등에 대해 물었으나 그는 “사실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며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파라다이스 측은 공식 입장을 통해 “전청조의 사기 혐의와 관련해 파라다이스 혼외자라고 주장하는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최근 전청조와 관련해 보도된 기사를 통해 당사에 대한 근거 없는 내용이 온라인상에서 무분별하게 유포·게시되면서 당사의 명예를 심대하게 훼손하고 기업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키고 있다”며 “허위 사실 유포, 명예훼손, 악의적인 비방, 인신공격 등 게시글에 대해 당사는 엄중하게 법적 대응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남씨는 그동안 전청조의 사기 행각을 몰랐다고 주장, 전청조에게 “나 이제 한국서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청조는 남씨의 친척을 상대로도 투자 사기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남씨는 전청조와 거주했던 집에서 나왔고 이별을 알렸다. 남씨에 따르면, 그는 전청조의 성전환 사실을 알고도 재혼을 결심했던 바 있다. 하지만 전청조의 거짓 행적과 사기극을 알고난 후 파국을 봤다. 남씨는 전 사이클 국가대표 출신 공효석과 2011년 결혼해 슬하에 딸 한 명을 뒀지만 지난 8월, 결혼 12년 만에 이혼했다.


전청조가 과거 혼인을 한적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난 25일 유튜브 채널 ‘연예 뒤통령 이진호’에는 ‘남현희 재혼 남편 전청조의 과거’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서 기자 출신 유튜버 이진호는 전씨의 과거 행적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설명했다.

엽기적인
결혼 사기극

그는 “이 사안이 제가 여태까지 취재했던 것 중에서 충격적인 일 톱3 안에 든다. 전청조가 초혼일지 여부였다”고 운을 뗐다.

이진호는 전청조의 초혼 여부에 대해 “제보상으로는 두 차례에 걸쳐서 결혼했고, 그중 한 차례만 혼인신고를 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진호의 취재 결과, 전청조는 2017년 제주도서 여성과 결혼식을 올렸고 2020년 9월 남성과 혼인신고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진호는 “그때(2020년 9월 결혼) 당사자는 남성이었다. 전청조는 (혼인신고 당시) 2020년 7월에 (사기죄로)기소돼 복역 중이었다. 제가 너무 충격받은 게, 당시 남편이 다른 교도소에 복역 중인 남자 수감자였다. 두 사람은 교도소 펜팔을 통해 만났고 혼인신고까지 이어졌다”고 전했다.

이어 “전청조는 2년3개월을 복역했고 남성은 좀 더 오래 복역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이혼했다는 것까지 확인했다. 실제 혼인신고서 이혼까지는 1년 정도가 걸렸다”고 설명했다.

이진호는 “혼인신고가 실제로 이뤄지고 부부생활을 하지 않았다. 그런 걸 봤을 때 특수목적이 있지 않았느냐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혼인신고부터 이혼까지 있었다”며 “전청조는 가족의 도움을 받아 복역 중 이혼했다고 한다. 저도 이게 놀라웠던 부분이다. 서류상으로 확인된 부분이라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청조는 고등학교 재학 중 자퇴하기도 했다. 그는 중학교 졸업 이후 전북 남원에 있는 경마축산고에 진학했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1학년 때 자퇴했다. 말 산업 분야를 전문적으로 배우는 학교서의 경험으로 해외 취업 알선 프로그램을 매개하면서 사기 행각도 벌여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전청조의 과거 재학 시절 찍힌 영상 자료가 퍼지면서 한국경마축산고는 난처해졌다. 전국 유일한 말 산업 마이스터고로 말 산업 인재 양성에 노력하는 가운데 전청조가 주목받으면서 학교 이미지가 실추되고 있어서다.

모르고? 알면서? 결혼 발표
“이제 알았다 지금은 못 믿어”

전청조와 같은 해에 한국경마축산고를 입학해 졸업한 한 익명의 제보자는 언론을 통해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자퇴했다”며 “자퇴의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부적응으로 알고 있다. 학창 시절에도 거짓말을 잘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승마·경마를 포괄하는 말 산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전청조는 2019년을 전후해 제주서 머물면서 남성 행세를 해왔다. 어느 날은 운전기사를 대동한 채 고가의 외제차를 타고 제주시 한 승마장을 오가며 군대 얘기를 꺼냈고 “군대를 면제받는 법이 있다. 빼봐야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또 말 산업계 주변 인물들에게 해외 마필 관리 연수 프로그램 연계 등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일부 사기 행각을 벌여왔던 것으로 확인된다. 복수의 승마계 증언으로는 전청조는 승마선수로 활약하지도 않았다. 단, 경마 기수 후보 지망생으로 잠시 활동했던 적이 있다.

전청조와 남씨가 서울 강남서 운영하던 펜싱 아카데미서 미성년자 성폭력 의혹을 방치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JTBC는 지난 26일, 펜싱 아카데미에 근무하던 20대 A 코치가 여중생 한 명을 수개월 동안 성폭행하고, 여고생 한 명을 6개월 넘게 강제 추행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 사건은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A 코치가 지난 7월 숨진 채 발견돼 그대로 묻혔다. JTBC는 펜싱 아카데미의 대표를 맡은 남씨와 아카데미서 공동대표로 불리는 전청조가 경찰이 사건을 인지한 7월보다 앞선 시점에 해당 의혹을 알고 있었다는 정황을 담은 동영상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문제의 영상은 지난 7월4일 남씨와 전청조, 학부모 7명 등이 A 코치의 성폭력 의혹에 관해 얘기하는 자리서 촬영된 것이다.

영상서 남씨는 학부모들에게 “✕✕이(강제추행 피해 학생)와도 제가 단둘이 한두번 정도 얘기를 나눴어. 무슨 일 있었어? ✕✕가 선생님(A 코치)이 만졌고 뭐했고. 근데 저는 이게 ✕✕한테 들은 얘기고. 뭐가 정보가 없잖아”라고 말한다.

피해 학생으로부터 성폭력 의혹에 대해 들었지만, 피해 학생의 말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피해 학생의 어머니에 따르면 남씨는 피해 학생과 경찰 신고 6개월여 전인 지난해 12월 면담을 가졌다.

펜싱 아카데미
성폭력 은폐?

이 같은 시점을 근거로 JTBC는 남씨가 체육계 인권침해를 인지하고도 묵인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관련 법인 국민체육진흥법 제18조의4에 따르면, 체육지도자는 성폭력 피해 의심이 있을 경우 스포츠 윤리센터나 수사기관에 즉시 알려야 한다. 그러나 남씨는 해당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는 지적이다.

해당 영상에는 남씨와 전청조가 학부모 7명 앞에서 계속해서 피해 학생의 실명을 거론하는 등 2차 가해 의혹도 담겨있다. 전청조는 7월4일 간담회 자리서 남씨보다도 먼저 나서 “(A 코치가)✕✕이랑 뽀뽀하고 안은 건 사실이다. 그리고 사실 한 가지 더 있다”며 아직 피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일부 학부모들 앞에서 실명과 구체적인 피해 내용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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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