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대담무쌍 사기꾼 전청조

성별까지 바꾼 역대급 신분 세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전청조가 파라다이스그룹의 혼외자라는 루머는 사실이 아니었다. 전 펜싱 국가대표였던 남현희씨의 예비 신랑으로 화제가 됐지만 그의 실체는 사기 전과자였다.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판결문까지 공개되는 등 과거사가 터지자 남씨는 전청조와 결별하기로 했다. 감정적으로 감당하기 힘들었던 전청조는 스토킹 혐의 현행범으로 체포돼 조사를 받았다.

“내가 P 호텔 J 회장 혼외자야. 너 비서로 써줄게. 8000만원 줘.” 이는 전청조가 한 인사에게 사기를 치면서 했던 말이다. 이처럼 피해자 7명을 상대로 편취한 금액은 약 3억원으로 파악된다. 피해자들은 전청조의 언변에 넘어가 돈을 빌려주거나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피해자들
속속 증언

전청조는 ‘조조’라고 불리는 사기 전과자였다. <디스패치> 단독 보도에 따르면 그는 그가 주장한 승마선수 출신도 아닐뿐더러 남자가 아닌 여자였다. 그는 전 펜싱 국가대표 출신인 남현희씨를 만나 결혼을 발표했다. 남씨를 이용해 체육 교육사업을 모색하고 있었던 만큼 또 다른 사기 범죄를 저지르려던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인천지법은 2020년 12월11일, 전청조에게 징역 2년3개월을 선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전청조는 제주서 만난 A씨에게 남자로 행세하며 접근했다. 그러다 A씨에게 솔깃한 투자를 제안했다. 전청조는 A씨에게 “내 아내 친오빠가 서울서 물 관련 투자 사업을 하는데, 300만원을 투자하면 6개월 후에 50억원을 만들 수 있다”고 제안했다.

A씨가 믿지 않자 전청조는 ‘원금 보장’ 카드를 내밀었다.


전청조는 “사업에 실패하면 원금을 포함해 500만원으로 돌려주겠다”고도 했다. 전청조는 A씨에게 300만원을 계좌이체 받았다. 갚지도 않은 전청조는 A씨에게 사기죄로 고소당했다.

재판부는 “전청조는 여성이다. 따라서 아내의 친오빠가 있을 수 없다. 또 300만원으로 50억원의 수익을 낼 수도 없으며, 원금 포함 500만원도 돌려줄 의사나 능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전청조는 300만원을 기존 채무변제 및 생활비 등으로 쓰려 했다.

2019년 4월, 남자였던 전청조는 5개월 뒤 다시 여자로 돌아왔다. 다음 타깃은 남성 B씨. 둘은 ‘데이팅앱’을 통해 만났고, 연인으로 발전했다. 전청조는 그런 B씨에게 결혼을 제안했다. B씨는 약 2300만원을 보냈다. 하지만 전청조는 혼수도, 집도 구할, 아니 같이 살 생각이 없었다.

B씨는 2020년, 입출금 내역 및 카톡 대화 등을 들고 민사소송을 걸었다. 재판부는 B씨의 손을 들었다.

전청조는 ‘데이팅앱’을 통해 남자를 물색하기도 했다. 피해자 C씨 역시 2018년 해당 앱을 통해 알게 됐다. 전청조는 자신의 직업을 말 관리사로 소개했다. 그리고 4월, C씨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며 SOS를 쳤다. C씨는 의심하지 않고 99만원을 송금했다.

5월7일에는 “손님 말이 죽었다”며 380만원을 또 빌렸다. “커플티를 사자”며 90만원도 썼다.


전청조는 다양한 명목으로 돈을 빌렸다. “자신의 대출금을 갚아달라”며 2200만원을 뜯어내기도 했다.

재벌·남자인 척 과거 숨기고 접근
7번 사기 2년3개월 옥살이 드러나

그렇게 편취한 돈이 5700만원. 재판부는 전청조의 사기행각을 모두 인정했다. 재판부가 밝힌 전청조의 직업은 프리랜서 말 조련사. ‘말 조련사’ 전청조는 1년 뒤에 재벌 3세라는 탈을 썼다. 자신을 파라다이스 그룹의 혼외자라 소개했다.

이는 낸시랭의 전 남편 ‘전준주’가 쓴 수법이다. 전청조는 재벌 3세 행세를 하며 비서를 구했다. 전청조는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파라다이스 그룹서 일하려면 신용등급이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신용등급을 올려주겠다”며 8000만원을 요구했다. 이렇게 D씨는 전청조에게 7200만원을 뜯겼다.

전청조의 사기는 갈수록 대담해졌다. E씨에게 “너도 투자를 해라. 2배로 돌려받을 수 있다”고 유혹했다. 원금 보장 카드까지 내밀었다. E씨는 ‘2배 장담’과 ‘원금 보장’에 현혹됐다. 총 34회에 걸쳐 1600만원을 송금했다. 전청조는 이 돈을 기존 고급 호텔 이용료로 사용하려 했다.

전청조는 연기파였다. 이번 사기는 1인2역. 외국 취업 프로그램 알선자와 운영자로 변신했다. 우선 취업 알선자. 그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피해자 F씨에게 접근 후 외국 취업 프로그램 담당자 연기를 했다. “취업을 시켜줄 테니 돈을 보내라”며 재촉했다.

결국, F씨에게 68만원을 받아냈다. 물론 전청조는 그럴 능력도, 실력도, 의사도 없었다. F씨는 뒤늦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형사고소를 강행했다.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씨를 향한 전청조의 사기극 결말은 파국이었다. 지난 26일 경기 성남중원경찰서는 전청조를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전청조는 이날 오전 1시9분 남씨 어머니 집을 찾아가 여러 차례 문을 두드리고 초인종을 누른 것으로 알려졌다.

전청조가 “아는 사람이니 집에 들여 보내달라”며 집에 들어가기 위해 시도하자 남씨 측이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그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전청조는 최근 남씨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후 이 같은 행동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청조는 현재 석방된 상태다.

앞서 남씨는 지난 23일, 15세 연하 재벌 3세 전청조와 재혼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이후 전청조의 성별, 사기 전과 과거 등 여러 논란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주목받았다.

파라다이스
혼외자 행세

남씨는 이에 대해 “최근 보도된 기사를 통해 거짓 또는 악의적이거나 허위 내용을 담은 게시글 등으로 허위 사실이 유포될 경우 강력히 대응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청조의 과거사가 드러났다. 남씨 역시 사기에 ‘이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남씨는 <여성조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청조가 자신의 이름을 이용, 투자금을 편취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또 남씨는 최근 <디스패치> 보도 후 전청조에게 재벌 3세 진위 여부, 사기 전과 혐의 등에 대해 물었으나 그는 “사실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며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파라다이스 측은 공식 입장을 통해 “전청조의 사기 혐의와 관련해 파라다이스 혼외자라고 주장하는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최근 전청조와 관련해 보도된 기사를 통해 당사에 대한 근거 없는 내용이 온라인상에서 무분별하게 유포·게시되면서 당사의 명예를 심대하게 훼손하고 기업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키고 있다”며 “허위 사실 유포, 명예훼손, 악의적인 비방, 인신공격 등 게시글에 대해 당사는 엄중하게 법적 대응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남씨는 그동안 전청조의 사기 행각을 몰랐다고 주장, 전청조에게 “나 이제 한국서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청조는 남씨의 친척을 상대로도 투자 사기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남씨는 전청조와 거주했던 집에서 나왔고 이별을 알렸다. 남씨에 따르면, 그는 전청조의 성전환 사실을 알고도 재혼을 결심했던 바 있다. 하지만 전청조의 거짓 행적과 사기극을 알고난 후 파국을 봤다. 남씨는 전 사이클 국가대표 출신 공효석과 2011년 결혼해 슬하에 딸 한 명을 뒀지만 지난 8월, 결혼 12년 만에 이혼했다.


전청조가 과거 혼인을 한적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난 25일 유튜브 채널 ‘연예 뒤통령 이진호’에는 ‘남현희 재혼 남편 전청조의 과거’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서 기자 출신 유튜버 이진호는 전씨의 과거 행적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 설명했다.

엽기적인
결혼 사기극

그는 “이 사안이 제가 여태까지 취재했던 것 중에서 충격적인 일 톱3 안에 든다. 전청조가 초혼일지 여부였다”고 운을 뗐다.

이진호는 전청조의 초혼 여부에 대해 “제보상으로는 두 차례에 걸쳐서 결혼했고, 그중 한 차례만 혼인신고를 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진호의 취재 결과, 전청조는 2017년 제주도서 여성과 결혼식을 올렸고 2020년 9월 남성과 혼인신고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진호는 “그때(2020년 9월 결혼) 당사자는 남성이었다. 전청조는 (혼인신고 당시) 2020년 7월에 (사기죄로)기소돼 복역 중이었다. 제가 너무 충격받은 게, 당시 남편이 다른 교도소에 복역 중인 남자 수감자였다. 두 사람은 교도소 펜팔을 통해 만났고 혼인신고까지 이어졌다”고 전했다.

이어 “전청조는 2년3개월을 복역했고 남성은 좀 더 오래 복역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이혼했다는 것까지 확인했다. 실제 혼인신고서 이혼까지는 1년 정도가 걸렸다”고 설명했다.

이진호는 “혼인신고가 실제로 이뤄지고 부부생활을 하지 않았다. 그런 걸 봤을 때 특수목적이 있지 않았느냐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혼인신고부터 이혼까지 있었다”며 “전청조는 가족의 도움을 받아 복역 중 이혼했다고 한다. 저도 이게 놀라웠던 부분이다. 서류상으로 확인된 부분이라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청조는 고등학교 재학 중 자퇴하기도 했다. 그는 중학교 졸업 이후 전북 남원에 있는 경마축산고에 진학했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1학년 때 자퇴했다. 말 산업 분야를 전문적으로 배우는 학교서의 경험으로 해외 취업 알선 프로그램을 매개하면서 사기 행각도 벌여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전청조의 과거 재학 시절 찍힌 영상 자료가 퍼지면서 한국경마축산고는 난처해졌다. 전국 유일한 말 산업 마이스터고로 말 산업 인재 양성에 노력하는 가운데 전청조가 주목받으면서 학교 이미지가 실추되고 있어서다.

모르고? 알면서? 결혼 발표
“이제 알았다 지금은 못 믿어”

전청조와 같은 해에 한국경마축산고를 입학해 졸업한 한 익명의 제보자는 언론을 통해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자퇴했다”며 “자퇴의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부적응으로 알고 있다. 학창 시절에도 거짓말을 잘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승마·경마를 포괄하는 말 산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전청조는 2019년을 전후해 제주서 머물면서 남성 행세를 해왔다. 어느 날은 운전기사를 대동한 채 고가의 외제차를 타고 제주시 한 승마장을 오가며 군대 얘기를 꺼냈고 “군대를 면제받는 법이 있다. 빼봐야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또 말 산업계 주변 인물들에게 해외 마필 관리 연수 프로그램 연계 등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일부 사기 행각을 벌여왔던 것으로 확인된다. 복수의 승마계 증언으로는 전청조는 승마선수로 활약하지도 않았다. 단, 경마 기수 후보 지망생으로 잠시 활동했던 적이 있다.

전청조와 남씨가 서울 강남서 운영하던 펜싱 아카데미서 미성년자 성폭력 의혹을 방치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JTBC는 지난 26일, 펜싱 아카데미에 근무하던 20대 A 코치가 여중생 한 명을 수개월 동안 성폭행하고, 여고생 한 명을 6개월 넘게 강제 추행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 사건은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A 코치가 지난 7월 숨진 채 발견돼 그대로 묻혔다. JTBC는 펜싱 아카데미의 대표를 맡은 남씨와 아카데미서 공동대표로 불리는 전청조가 경찰이 사건을 인지한 7월보다 앞선 시점에 해당 의혹을 알고 있었다는 정황을 담은 동영상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문제의 영상은 지난 7월4일 남씨와 전청조, 학부모 7명 등이 A 코치의 성폭력 의혹에 관해 얘기하는 자리서 촬영된 것이다.

영상서 남씨는 학부모들에게 “✕✕이(강제추행 피해 학생)와도 제가 단둘이 한두번 정도 얘기를 나눴어. 무슨 일 있었어? ✕✕가 선생님(A 코치)이 만졌고 뭐했고. 근데 저는 이게 ✕✕한테 들은 얘기고. 뭐가 정보가 없잖아”라고 말한다.

피해 학생으로부터 성폭력 의혹에 대해 들었지만, 피해 학생의 말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피해 학생의 어머니에 따르면 남씨는 피해 학생과 경찰 신고 6개월여 전인 지난해 12월 면담을 가졌다.

펜싱 아카데미
성폭력 은폐?

이 같은 시점을 근거로 JTBC는 남씨가 체육계 인권침해를 인지하고도 묵인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관련 법인 국민체육진흥법 제18조의4에 따르면, 체육지도자는 성폭력 피해 의심이 있을 경우 스포츠 윤리센터나 수사기관에 즉시 알려야 한다. 그러나 남씨는 해당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는 지적이다.

해당 영상에는 남씨와 전청조가 학부모 7명 앞에서 계속해서 피해 학생의 실명을 거론하는 등 2차 가해 의혹도 담겨있다. 전청조는 7월4일 간담회 자리서 남씨보다도 먼저 나서 “(A 코치가)✕✕이랑 뽀뽀하고 안은 건 사실이다. 그리고 사실 한 가지 더 있다”며 아직 피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일부 학부모들 앞에서 실명과 구체적인 피해 내용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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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단독기획> 26년 만에 다시 꺼낸 산업증권 파산의 비밀(상)

[창간특집 단독기획] 26년 만에 다시 꺼낸 산업증권 파산의 비밀(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997년 말 국가부도 상황이 벌어졌다. 기업이 줄줄이 도산했고 수많은 근로자들이 길거리에 나앉았다. 자본금 수천억원, 국책은행을 뒷배로 둔 대형 증권사들도 고꾸라졌다. ‘절대 망할 리 없다’던 회사의 붕괴는 30여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피해자의 마음에 상흔으로 남아 있다. 산업증권 ‘파산의 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08년 10월2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공성진 의원이 한국산업증권(이하 산업증권) 파산 문제를 언급했다. 당시 공 의원은 “산업증권이 IMF 위기 시에 불·탈법적으로 강제 파산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산업증권은 한국산업은행(이하 산업은행)이 자본금을 100% 출자해 설립했다. 산업은행이 산업증권의 1인 대주주였던 셈이다. 망하지 않는다 이날 국감에서는 산업증권이 파산에 이르는 과정서 일어난 일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공 의원은 ▲산업증권 해산 과정서 이사회와 재정경제부의 허가 여부 ▲산업증권을 파산으로 끌고 간 1041억원 ▲개인명의의 계좌 ▲개인 계좌를 통해 한국산업선물로 흘러간 54억원 등에 대해 질의했다. 1998년 산업증권 해산 이후 10년 만에 당시 상황이 국감에 언급되면서 각종 의문이 제기됐다. 특히 개인명의의 계좌를 통해 오고 간 자금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됐다. MB(이명박)정부 들어 처음 열린 국감서 산업증권 파산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자 일부 언론은 이전 정부의 비자금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국감에 증인으로 참석한 이충현 전 산업증권 채권관리팀장은 여전히 사건을 추적하고 있다. 현재 서울 강서구의원으로 활동 중인 그는 “외환위기 당시 좌파 정부의 고위관료들은 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범죄적 구조조정과 부정부패로 천문학적 비자금을 조성하고 나라와 국민에게 회복 불능의 상처를 남겼다”고 일갈했다. 이 구의원은 산업은행에 근무하다가 산업증권 설립과 동시에 이직했다. 그는 산업증권이 파산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피해자이고 ‘강제파산’ ‘사기파산’ 의혹을 제기한 제보자, 산업증권강제퇴출피해대책위원장이자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원고로 26년을 보냈다. 그사이 소송서 패소했고 법적 시효는 끝났다. 그럼에도 이 구의원을 비롯한 피해자들은 산업증권 파산 사건을 놓지 못한 상태다. 산업증권에 근무했던 직접 피해자와 가족 등이 일한 간접 피해자들은 “IMF 사태였다고 해도 산업증권이 망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개인을 고객으로 하는 일반은행이 아니라 산업자본 조달을 위해 설립된 국책은행을 등에 업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산업증권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망했다. 400여명의 근로자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다. 문제는 1997년 12월 IMF 사태 이후 1998년 해산, 1999년 파산 선고 때까지 석연치 않은 의문이 여럿 나온 점이다. 특히 청산 절차가 시작된 이후 개인명의 계좌를 통해 자금이 움직인 증거가 나왔다. 이 구의원이 가지고 있는 71개의 이른바 ‘비밀 통장’의 존재가 드러난 것이다. 산업증권은 ‘산업은행이 발행하고 있는 산업금융 채권의 원활한 소화 및 국제업무 특화’를 목적으로 1991년 4월 설립됐다. 산업은행이 100%를 댄 초기 자본금은 1500억원에 달했고 1992년 11월 1000억원, 1998년 3월 1500억원을 증자해 1998년 7월25일 해산 당시 산업증권의 자본금은 4000억원에 이르렀다. IMF 사태로 증권사 강제 퇴출 산업은행 1인 대주주로 안정성↑ IMF 사태로 휘청이긴 했지만 산업증권은 명예퇴직, 임금 반납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통해 상황을 개선하려 했다. 산업은행 역시 산업증권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증자하는 등 위기 타파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산업증권 본사에서 근무하던 이 구의원과 지방 지점에 있던 김영수(가명)씨는 “회사에 큰 문제는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기류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98년 5월 산업은행에 새 총재가 부임하면서부터다. 특히 언론을 통해 ‘산업증권 연내 폐쇄’가 발표되자 내부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고객과 채권자들은 동요했고 예금인출을 서두르는 등 대혼란이 일어났다. 당연히 신규영업도 줄어들었다. 영업 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2개월 뒤 1998년 7월 산업은행은 산업증권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해산결의를 진행했다. 이후 1999년 2월 산업증권의 청산인은 ‘부채 초과 및 지급불능’을 이유로 파산선고를 신청했고 같은 해 3월13일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산업증권은 파산했다. 연내 폐쇄 발표부터 파산까지 채 1년이 걸리지 않은 셈이다. 이 구의원에 따르면 산업은행의 산업증권에 대한 해산결의는 노동조합과의 퇴출 위로금 규모를 합의하는 사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산업증권의 노조위원장과 산업은행의 대표이사, 부총재 등이 퇴출 위로금으로 24개월치 임금을 지급하기로 구두 합의를 진행하는 과정서 해산이 결정됐다. 당시 산업증권 대구지점서 근무하던 김영수씨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명예퇴직으로 나간 직원들은 20개월치 월급을 받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 산업증권이 망한 이후 나간 직원들은 퇴직금 수준의 돈만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산업증권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명예퇴직을 신청하지 않았다.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이 구의원은 2010년 5월 산업증권 파산으로 직장을 잃은 피해자를 모아 산업은행, 금융감독원, 전 산업은행 총재와 부총재, 산업증권 청산인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산업증권 파산 과정서 피고들의 불법행위가 자행됐고 이로 인해 피해자(직원)가 생겼으니 이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해달라는 취지다. 수장 바뀌고 급변한 기류 이 구의원은 “먼저 산업은행의 산업증권에 대한 해산결의가 적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또 파산 신청의 원인이 된 자본잠식 상황은 조작됐고 1041억원의 대지급도 실제 진행됐는지 여부가 불분명하다. 무엇보다 산업증권 해산결의 이후 만들어진 수십여개의 개인명의 계좌와 이를 통한 자금흐름은 사기파산, 강제파산의 가장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1999년 2월 산업증권 청산인 명의로 서울지방법원에 제출한 파산선고신청서를 보면 ▲지급불능 ▲채무초과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1500억원에 달하는 산업은행의 유상증자, 대규모 인원 정리, 조직 슬림화 등 자구 노력에도 수습이 안 될 정도로 재정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또 회계법인의 실사 결과 부채가 자산보다 많다는 점도 명시했다. 반면 이 구의원은 결산보고서와 회계법인이 청산 가치 기준으로 작성한 조사보고서를 근거로 해산일 기준(1998년 7월25일) 자산이 부채보다 약 100억원가량 많다고 주장했다. 일반 채권자에게 변제해도 돈이 남는 만큼 파산이 아니라 청산 형태로 종결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산업은행은 청산이 아닌 파산의 방식을 택했다. 청산은 재산관계를 정리해 이를 분배하는 절차를 뜻한다. 파산은 회사의 총 재산을 총 채권자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는 절차다. 파산은 법원의 결정에 따라 진행된다. 산업증권이 청산으로 마무리됐다면 산업은행은 유일한 대주주로서 손해를 피할 길이 없다. 하지만 법원이 파산 결정을 내리면서 산업은행은 대주주이면서 채권자가 됐다. 산업증권의 파산과 관련해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1041억원’의 존재다. 산업은행이 산업증권에 빌려준 단기자금으로 파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돈이다. 산업증권은 1998년 7월28일 ‘1998년 7월25일자로 회사 해산을 결의하고 청산 절차를 진행하던 중 1998년 7월27일 교환에 회부된 어음(금액 1041억원)을 결제하지 못해 1차 부도 조치를 당했다. 자체 자금 조달도 어려우니 추가 자금 지원을 부탁한다’고 산업은행에 요청했다. 의문점 많아 국감서 다뤄 산업은행은 이 돈을 산업증권 대신 갚았다(대지급). 다시 말해 산업증권이 산업은행에 빌린 돈을, 산업은행이 산업은행에 갚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산업은행이 대지급한 1041억원은 산업증권의 채무로 잡혔다. 이 과정서 부채가 자산보다 늘어나면서 산업증권 파산의 원인, 채무초과 상태가 됐다. 실제 회계법인이 작성한 1998년 10월31일 기준 산업증권의 부채는 2190억원, 자산은 1950억원이다. 부채가 자산보다 240억원 많다. 법원은 이를 근거로 산업증권의 파산을 선고했다. 240억원이 산업증권 파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그 후폭풍은 400명이 넘는 산업증권 직원에게 미쳤다. 이 구의원은 산업은행이 대지급했다는 1041억원이 실제 거래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산업증권은 대지급 요청문서 ‘산업증권 청산 절차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라고 기술했고 현금지원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돼있지만 실제로 산업은행은 산업증권에 1041억원을 신규 지원한 사실이 없고 내부 문서에도 신규 추가지원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구의원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파산 절차 과정서 ‘사후관리대지급금’으로 1041억원을 파산채권으로 신고해 2009년 5월 기준 파산채권의 100%를 돌려받았다.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단 한 푼의 손해도 없이 대신 지급한 돈을 전부 회수한 것이다. 1041억원의 진실은 현재로선 알기 어렵다. 법원의 허가로 산업증권 메인 전산 서버가 파기된 상태기 때문이다. 다만 산업증권 청산 절차 과정서 개설된 통장은 실물로 존재한다. 이 구의원은 71개의 통장을 산업증권 전 직원에게 전달받아 보관해 왔다. 이 구의원은 해당 계좌들을 통해 수천억원에 이르는 자금이 움직였고 일부는 사용처도 불분명하며 최후의 사용처를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비자금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문제가 제기된 부분은 또 있다. 산업증권과 같은 날인 1998년 7월25일 청산 절차에 들어간 한국산업선물(이하 산업선물)에 송금된 54억원의 성격이다. 산업선물은 산업은행의 자회사로 금융 선물거래를 위해 설립됐다. 파산으로까지 이어진 산업증권과 달리 산업선물은 1998년 정상영업이 시작되기 전에 청산 종결 처리됐다. 그런 회사에 1998년 8월11일 개인 명의의 계좌서 54억원이 이체된 것이다. 이 구의원은 “산업선물은 자본금 100억원의 회사로 산업은행 해산 당시 정식으로 영업개시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무엇보다 1998년 5월 산업증권 연내 폐쇄 발표가 난 상태서 산업선물에 54억원이라는 거액을 입금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1998년 7월부터 시중은행에 개설된 통장은 모두 개인 명의로 돼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계좌 명의자 가운데 2명이 산업증권에 대한 특별검사(1998년 7월25일~8월11일)에 투입된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검사역이었다는 점이다. 직원 400여명 한순간에 길거리로 법적 판단 끝났어도 문제 제기 중 이 구의원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서 피고 측은 “1998년 당시 고객예탁금은 한국증권금융주식회사에 별도로 예치 관리되는 현행 제도와 달리 증권회사의 고유재산과 구분해 관리되지 않았다”며 “금감원(피고)은 특별검사 기간 중 고객예탁금을 안전하게 고객에게 반환되는 것을 보장하는 적법한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IMF 사태로 금융회사 파산이 일어난 것은 1998년 이전에 없던 일로 제도가 미비했고 방법을 찾던 중 금감원 검사역의 개인 명의를 이용, 계좌를 개설해 이를 고객예탁금 관리 용도로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당시 계좌를 개설했던 2명의 검사역 가운데 1명은 금감원에, 또 다른 1명은 증권사 감사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 명의 계좌와 관련해서는 2008년 국감서도 다시 한번 언급된 바 있다. 국감서 공 의원은 2명의 금감원 검사역 외 계좌를 만든 또 다른 개인 명의자에게 “누구의 지시로 개인명의 계좌를 개설했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해당 인물은 “금융감독검사국 직원들 지시로 그렇게 했다”고 답했다. 공 의원이 거듭 “산업증권의 자금을 개인, ○○○(명의 당사자)의 이름으로 관리하게 된 것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해당 인물은 “감독 당국의 지시에 의해서 한 것이다. 개인적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은 2011년 이 구의원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며 피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총 주식을 한 사람이 소유하는 이른바 1인 회사의 경우에는 주주총회 소집 절차를 밟지 않거나 총회를 개최한 사실이 없다고 하더라도 1인 주주에 의해 의결이 있었던 것으로 주주총회의사록이 작성됐다면 그 내용의 결의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고 그 결의는 유효하므로 해산결의가 무효라거나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산업은행이 산업증권의 해산을 결의하는 과정이 절차적으로 하자가 없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해산결의 절차가 적법하고 유효한 이상 근로자에 대한 해고도 위법하지 않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또 소송을 제기한 시기가 사건 발생일 이후 10년이 경과된 상황이라 손해배상채권 시효가 소멸됐다고 봤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이 구의원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법적인 판단은 끝난 셈이다. 정치적 이유 끝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구의원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다고 나섰다. 이 구의원은 2012년 법적 판결이 확정된 이후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해왔다. 현재 이 구의원이 용산 대통령실에 넣은 청원은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 반부패공공범죄수사과 등을 거쳐 금감원으로 이송된 상태다. 이 구의원은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았다면 인수합병, 매각 등의 방식을 써도 됐을 일이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1인 대주주라는 점을 이용해 산업증권을 없애버렸다. 산업증권의 파산이 정치적인 목적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정부가 산업증권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고르면서 429명의 직원과 그 가족들은 지금까지도 고통받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