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는 순방 예산 내리는 민생 예산 대해부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10.30 09:24:57
  • 호수 14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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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죽어라 하는데 국격 타령만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서민이 울고 있다. 전세 사기, 저출산, 고금리 시대를 피할 수 없지만, 그 눈물이 의미 없이 사라진다. 윤석열정부는 “민생 현장을 살피자”고 말하지만, 지갑서 나오는 돈은 다른 곳으로 들어간다. 사는 것은 결국 각자도생이라지만, 기본적으로 받았던 혜택마저 뺏기는 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9일,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민생 현장을 직접 살피라고 지시하며 “나부터 어려운 국민의 민생 현장을 더 파고들겠다”고 밝혔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이날 윤 대통령이 “용산의 비서실장부터 수석, 비서관, 그리고 행정관까지 모든 참모는 책상에만 앉아 있지 말고 국민의 민생 현장에 파고들어 살아 있는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들어라”고 말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괸다?

김 수석은 오찬 소식을 알리면서 “지금 어려운 국민, 좌절하는 청년들이 너무 많다. 당과 대통령실은 국민의 삶을 더 세심하게 살피고 챙겨야 한다. 이를 위해 당정 간 정책 소통을 더 긴밀히 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같은 결의 말을 했다.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서 한 총리는 “각 부처는 민생안정을 위해 고물가·고금리와 전쟁한다는 각오로 임해주기를 바란다”며 민생과 현장 행정을 강조했다.

그는 “나부터 늘 현장서 뛰겠다. 직급에 상관없이 모든 공직자가 현장으로 나가달라. 장차관뿐만 아니라 실‧국장, 실무자 모두가 국민을 직접 만나고 각자 위치서 무엇을 해야 할지 현장서 느끼고 고민하라”며 “위기는 공평하지 않아 사회적 약자에게 더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특히 2030 청년층과 서민층 국민들께서 힘든 여건 속에 있다. 이분들이 삶의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세계적인 고물가·고금리, 국제유가 변동 등을 언급하며 “우리 경제뿐만 아니라 국민 일상에 많은 부담을 준다. 민생을 보듬고 헤아리는 일이 정부의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한 총리는 “이제는 내용이다. 국민이 아파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에 막힌 곳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확인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 할 때”라며 “그간 추진해온 내용에 반성할 것은 없는지 다시 점검하는 기회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말을 종합하면 정부는 민생을 살피기 위해 전력을 다 쏟겠다는 의미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마음이 가는 곳에 돈을 쓴다는 말이 있는데, 윤정부가 돈을 쓰는 곳은 민생이 아니다.

실제로 내년도 예산안은 근래 가장 작은 폭으로 증가한 채 편성됐다. 내년 예산 총지출이 전년 대비 2.8%(18조2000억원) 증가한 656조9000억원으로 편성됐다. 이는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20년 만에 최소 증가 폭이다. 지난 6월 말, 윤 대통령이 주재한 재정전략 회의서 논의된 긴축안보다도 증가율이 낮다.

당시 4% 중반대 증가율이 반영된 예산안이 오르자, 기획재정부는 각 부처에 내년도 예산을 다시 짜 올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이는 “예산을 얼마나 많이 합리화하고 줄였는지에 따라 각 부처 혁신 마인드가 평가될 것”이라고 말한 윤 대통령의 회의 발언에 따라 결정된 조치다. 이 요구안으로 민생 예산이 재편성된 것이다.

“민생 살피라” 허공 속 메아리로
어린이집, 소상공인 예산 등 삭감

결국 윤정부 출범 후 계속해서 강조한 재정긴축 기조가 내년에도 이어지는 것이다. 윤 대통령, 김 수석, 한 총리가 입 모아 외친 “민생을 살피라”는 말은 허공 속의 메아리가 된 셈이다.


대표적으로 예산이 삭감된 분야는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 지원사업 예산 ▲어린이집 예산 ▲지역 소상공인 예산 ▲사회적기업 예산 ▲협동조합 예산 ▲사회서비스원 예산이다.

이 중에서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 지원 예산은 전액 삭감돼, 중증장애인을 지원하는 187명이 당장 내년부터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해당 예산은 총 23억1000만원이었다. 이 사업은 중증장애인이 취업 의욕을 갖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업이다.

대표적으로 자조 모임과 상담 활동이 있는데, 모임과 상담 활동은 동료 지원활동가로 부른다.

지난 6월30일 기준 187명의 중증장애인이 동료 지원가로 활동하고 있고, 이들은 내년부터 실직자가 될 전망이다. 이런 위기에 동료 지원가 10명이 지난달 18일 오전 7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역본부 11층 로비를 점거해 농성을 벌이다가 1시간40분 만에 전원 연행됐다.

고용노동부는 보도 설명자료를 통해 예산 삭감의 이유에 대해 “다양한 제도개선에도 불구하고 연례적인 집행이 부진하고 복지부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지원 내 동료 상담과 유사 중복해 사업 폐지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을 두고 동료 지원가들은 “예산 부진은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코로나19로 참여자들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며, 동료 지원가와 동료 상담가는 이름만 비슷할 뿐 하는 업무가 전혀 다르다”고 반박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역본부서 점거 농성을 벌인 동료 지원가는 노래를 부르며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 지원사업’ 폐지 철회와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점거 농성 1시간40분 만에 참여자들이 경찰에 연행되면서 이내 종료됐다.

요구안
재편성

저출산 대책이 필요한 시점에 어린이집 예산이 삭감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보건복지부는 내년도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분야 예산을 올해보다 15% 삭감된 417억원으로, 작년에 이어 두 자릿수 삭감률을 기록했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0.78명 출산율 충격에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과감하고 확실한 저출산 대책인 어린이집 예산을 삭감하는 건가”라고 직격했다.

강 대변인은 “그러면서 내놓은 변명이 공공보육시설의 이용률을 늘리겠다는 것인데, 예산을 이렇게나 칼질해놓고 이게 말이 되느냐? 특히 젊은 맞벌이 부부들이 아이 맡길 어린이집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가정의 양육 부담 완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어차피 아이들이 갈수록 줄어드니 국공립 어린이집을 충분히 늘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아니냐”며 “여전히 우리나라의 저출산 대응 예산과 가족 지원 예산은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윤정부는 말로만 ‘국민 체감’ ‘과감한 대책’을 외치지 말고 우리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위한 전폭적인 예산 지원에 나서라”고 덧붙였다.

윤정부는 지역 소상공인 예산인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예산도 전액 삭감을 재추진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역사랑상품권 사업을 제외한 내년도 예산 요구안을 기획재정부에 제출했다.

지난해 행안부는 ‘2023년 예산안’ 편성 과정서 4700억원 상당의 지역사랑 상품권 예산을 요구했고, 기재부는 이를 전액 삭감해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국회는 여야 대립 끝에 전년보다 3000억원가량 줄어든 3525억원을 최종 예산으로 편성했다.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의 전액 삭감을 재추진한다는 소식에 지역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들은 우려 목소리를 제기했다. 한 지역 자영업자는 “지역화폐는 사용기간이 3개월로 한정돼있는데, 시골 노인까지도 필요한 물품을 골라 구매할 수 있고 시골 식당, 슈퍼 등 매출이 활성화되고 부가가치세는 정부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말로만 
체감 정책

지역화폐 소비자들도 반발하긴 마찬가지였다. 한 지역화폐 소비자는 “학원비나 병원비, 장보기 등에 연 200만원을 알차게 활용해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없어진다니 걱정”이라며 “소비자 입장서 10%를 환급받을 수 있는 게 정말 클 수밖에 없는데, 이게 없어지면 혜택 좋은 신용카드를 찾아봐야 하나 고민”이라고 전했다.


사회서비스원은 공적 돌봄 강화를 목표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궁극적으로 사회서비스의 질을 향상하는 목적으로 설치된 기관이다. 시장·도지사가 설립해 정부 지원으로 운영하는데 2021년 관련 법이 제정되면서 경북을 제외한 16개 광역시‧도에 설치돼있다.

그러나 이런 공적 돌봄 서비스가 사라질 수도 있다. 윤정부가 민간 돌봄 기관의 역할과 지원을 강조하면서 사회서비스 시장화 정책으로 이 같은 취지를 무력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정부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서 보건복지부가 요구한 사회서비스원 운영 예산 중 지자체보조금 148억34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복지부는 최근 ‘2023년 시도 사회서비스원 표준운영지침Ⅱ’를 개정해 사회서비스원의 공적 역할과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조항을 삭제했다.

오대희 공공운수노조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지부장은 “보육환경 구축에 힘쓰겠다면서 서울 사회서비스원의 송파든든어린이집은 민간에 넘어갔다. 대책 없는 민영화에 공공보육을 위해 열심히 일했던 노동자의 일터가 갑자기 사라졌고 고용불안과 사기 저하로 올해만 직원 60명 이상이 퇴사했다”고 주장했다.

사회서비스원에서 제공하는 전문성 있는 돌봄 서비스를 앞으로 받지 못할까 걱정하는 이용자도 있었다. 한 학부모는 “오랫동안 한곳에서 경험을 축적한 선생님은 어느 민간 어린이집서도 찾아 보기 힘들다.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의 안정된 고용시스템은 어린이집의 질을 높이는 핵심 기능”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내년 사회적경제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사회적기업의 인력 구조조정 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 인해 취약계층의 일자리 감소와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조직 축소 등 지역경제의 생태계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길거리 나앉게 되는 현실
증액 항목은 해외순방뿐?

사회적기업은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사회에 공헌, 생산 및 판매 등 영업 활동을 하는 기업을 말한다. ‘사회적기업 육성법’에 따라 고용노동부 인증을 받으면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영리기업과는 달리 대다수를 취약계층으로 채용한다.

정부는 내년도 사회적경제 지원사업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직원 인건비 등 지원에 쓰이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정부의 판단이다.

고용노동부가 사회적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사회적기업 예산안은 786억2400만원으로, 올해 예산 2021억9400만원과 비교하면 60% 삭감된 규모다. 특히 내년부터 기업 직원 인건비 등에 대한 인건비는 0원으로 전액 삭감됐다.

협동조합 관련 예산은 전년 대비 91%로 줄었다. 진선미 사회적경제 위원장은 “지난 20년 동안 정권을 떠나 사회적경제 관련법을 제정하는 등 사회적경제 육성을 위해 노력해왔다. 제도 사각지대서 사회적경제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라며 내년도 사회적경제 예산안 원상 복구를 강력 촉구했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은 “지난 4월에 열린 유엔총회서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을 위한 사회적경제 활성화 결의안’이 채택됐다. 사회적경제 예산을 삭감하는 일은 세계적 흐름의 역행이자 민생 예산의 삭감이다. 사회적경제 재정 지원은 단순 보조금이 아닌 사회적 투자”라고 강조했다.

예산이 삭감된 분야가 있다면 증액된 분야도 있다. 바로 윤 대통령의 순방 예산이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긴축 재정’을 말하면서 순방 예산은 추가로 예비비 329억원을 가져갔다며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박성준 대변인은 지난 11일 서면 논평을 내고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국민을 진정 사랑한다면 선거에 지더라도 재정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게 ‘긴축 재정’을 부르짖는 윤 대통령이 올해 249억원의 순방 예산을 모두 탕진하고 지난달에 추가로 예비비 329억원을 가져갔다”고 주장했다.

“세계적인
흐름 역행”

이어 “국민은 허리띠를 졸라매라며 각종 예산을 삭감했지만 정작 대통령은 순방 예산을 물 쓰듯이 펑펑 쓰다니 기가 막힌다. 대통령의 안일함이냐, 아니면 특권의식이냐?”고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대통령 직속 기구들도 고급 음식점서 회의를 열며 식사비만 11억원을 펑펑 썼다”며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은 국민과 다르다는 몸에 밴 특권의식의 발로로 볼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국민이 맡겨 놓은 곳간을 본인 소유로 착각하고 있느냐”고 힐난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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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