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도?’ 역대급 단식투쟁 괴담

YS 23일 대기록에 붙은 빵과 우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협상 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방식이자 최후의 수단은 단식투쟁이다. 특히 정치인들의 단식투쟁은 막판 뒤집기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만큼 온갖 설왕설래가 단식 농성장을 뚫고 나온다. 단식투쟁의 역사 속 생긴 웃지 못할 사건들을 짚어본다.

단식투쟁은 물과 소금을 제외한 음식물은 일절 섭취하지 않는 형태의 시위를 말한다. 대개 특정한 사안에 관한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계속해서 진행된다. 노동자는 물론 일반인과 정치인까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단식투쟁을 선언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최초 정치인의 단식투쟁 역사는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YS와
보름달 빵

김영삼 전 대통령(이하 YS)은 신민당 총재 시절인 1983년 5월18일 대통령 직선제와 언론 자유 등을 조건으로 내걸고 가택 연금 상태서 단식투쟁을 진행했다. 당시 전두환정권은 해당 사건(YS 단식투쟁)이 외부로 새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언론을 통제하려 했다.

YS는 23일간 단식을 진행했다. 대부분 인간은 물 없이 3일, 음식 없이 3주밖에 살지 못한다. YS의 기록은 인간의 생존 한계에 가까웠다. 이는 정치인 단식 역사상 최장 기록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YS의 단식투쟁이 거론될 때마다 ‘보름달 빵 사건’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해당 사건은 단식투쟁 중인 YS의 상태를 걱정하던 문익환 목사가 사전 연락 없이 자택을 방문했는데, 방 문을 여는 순간 보름달 빵과 우유를 목격했다는 내용이다. 이는 각종 라디오나 프로그램 방송 등을 통해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렸다.


40년 전부터 정확한 출처 없이 내려오는 소문인 만큼 비판 목적으로 생긴 ‘도시 괴담’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단식 중 몰래 식사했다는 것 자체로 민주 진영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식의 배턴을 이어받은 인물은 김대중 전 대통령(DJ)이다. 1990년 평화민주당 총재 시절이던 DJ는 내각제 개헌 포기와 지방자치제 도입 실시 등을 요구하며 13일 동안 단식에 나섰다. 이는 여야가 극한으로 대치하던 상황서 정치협상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됐다.

이후 지방자치제 시행에 관해 최종 합의하는 성과를 얻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중단됐던 지방자치제를 30년 만에 소생한 것이다.

두 인물은 단식투쟁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불린다. 목적을 달성한 것은 물론 당내 분열을 봉합하고 호소력 있는 모습으로 여론의 지지까지 얻었다는 평이 이어지면서다. 최근 단식투쟁에 나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뜻을 이어받아 성공의 길을 걸을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지난달 31일 이 대표는 취임 1년 기자회견 도중 돌연 무기한 단식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9월 정기국회 개회를 하루 앞두고 “무능 폭력 정권을 향해 국민 항쟁을 시작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 대표는 “윤석열정권은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며 “사즉생의 각오로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겠다. 마지막 수단으로 오늘부터 무기한 단식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서는 ▲민생파괴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대국민 사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입장 표명 및 국제해양재판소 제소 ▲국정 쇄신 및 개각 등 세 가지를 요구했다.


농성장 뚫고 나오는 설왕설래
‘밥심’ 못 버린 정치인들?

뜬금없이 단식을 선언한 만큼 세간이 이목이 쏠렸다.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 대표가 단식에 나설지 그 누구도 몰랐다”며 “이야기가 새어나가면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자신과 최측근 등 몇 명만 알도록 입단속을 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입단속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 역시 단식 괴담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의 단식에는 세 가지 물건이 주목됐는데 바로 보온병과 숟가락, 그리고 소금 통이다.

이 대표는 단식을 선언한 날부터 국회 정문 앞 텐트서 투쟁을 시작했다. 다만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만 진행되고 나머지 12시간가량은 국회 본청 당 대표실서 휴식을 취하며 단식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은 “출퇴근 단식” “웰빙 단식”이라고 비판했다.

내용물을 파악할 수 없는 보온병을 사용하고 티스푼으로 무언가를 떠먹는 모습을 두고 일부 여당 지지자는 “보온병에 곰탕 같은 게 든 거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대표는 평소 당뇨를 앓는 것으로 전해졌다. 식습관이 중요한 당뇨 환자가 일주일가량 단식하면서 국회 일정을 모두 소화하는 것을 두고 몰래 영양분을 섭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이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 영상서 기자에게 “마셔보라”며 보온병을 건네기도 했다. 그는 티스푼으로 섭취한 것은 음식이 아닌 소금이라고 해명했다.

민주당 측 역시 오해의 소지를 잠재우기 위해 이 대표가 사용 중인 식품 용기를 공개했다. 용기에는 와인 소금과 마늘 소금이라는 라벨이 붙어있었다. 이번에는 소금의 종류를 두고 또다시 여론에 불씨가 붙었다.

단식 시에는 물과 소금만 섭취하는데 통상적으로는 아무런 맛이 나지 않는 천일염 등을 사용한다. 마늘 소금처럼 맛을 가미한 소금을 섭취해도 되는지를 두고 누리꾼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는 것. 게다가 멀리서 보면 소금통이 후추통과 고춧가루통으로 보이는 탓에 “이 대표가 보온병에 든 곰탕에 소금 후추를 넣고 고춧가루까지 뿌려서 야무지게 먹었다”는 소문도 한동안 온라인서 떠돌았다.

맹물일까
곰탕일까

최근에는 이 대표가 영양제를 챙겨 먹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대표는 단식을 진행한 지 약 일주일 정도 되는 날 텐트에 놓인 탁자 밑에서 약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꺼내더니 손바닥에 덜어내고 뒤를 돌아 입 안에 털어 넣는 장면이 포착된 것이다.

이 대표는 약을 입에 머금은 채 다시 앞으로 돌아 물을 마시다가 사레가 들어 기침하기도 했다.


해당 의혹에 대해 이 대표 측은 단식 초기엔 변비가 생기는 경우가 많아 변비약을 복용했을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를 두고 여당과 지지자들 측에서는 “변비약이라면 저렇게 뒤돌아서서 몰래 먹을 일이 아니다” “먹은 것도 없는데 나올 게 있느냐”며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 대표의 단식투쟁이 성공할지는 여론의 공감 정도에 달려 있다. 단식 종료 조건이 뚜렷하지 않은 것을 두고 검찰 조사를 피하기 위한 ‘방탄 단식’이라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YS·DJ의 단식투쟁은 소수 세력의 정치인으로서 소리낼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거대 야당으로 불리는 이 대표가 단식에 돌입한 것을 두고 국민의 지지를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여당에서는 이 대표의 단식이 등 떠밀리듯 끝날 것으로 예측했다. 이 대표의 강성 지지자들을 칭하는 ‘개딸’(개혁의 딸) 성원에 못 이겨 슬쩍 단식을 중단하거나 구급차를 타고 퇴장하는 것이다.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 만큼 본인의 체면은 살리고 건강 악화라는 명분도 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단식투쟁에 나선 이들 중 구급차 퇴장으로 유명한 인물이 있다. 바로 자유한국당 황교안 전 대표다. 황 전 대표는 2019년 11월20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유지와 공수처 반대, 선거법 합의 등을 조건으로 단식에 돌입했다.

하지만 당시 제1야당 대표가 단식에 나서야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 아니었다는 의견이 우세하면서 비판적인 시선도 있었다. 당시 황 전 대표는 단식 8일 차에 의식을 잃고 응급실로 이송됐다. 영하에 가까운 날씨에 몸을 혹사한 만큼 체력적으로 한계에 다다랐던 것이다. 링겔을 맞고 조치를 취하면서 자연스럽게 단식도 중단됐다.


갑자기
맛집 투어?

당시 ‘맞짱 농성’을 하던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하 대진연) 회원과 진보 성향 유튜버는 황 전 대표의 병원 이송 장면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기도 했다. 현장에 있던 일부는 “황 대표가 구급차 안에서 국밥을 먹고 있다” “김밥을 먹다 급체한 것”이라는 등 비꼬기도 했다.

단식투쟁이 발생할 때마다 크고 작은 설화들이 생기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중에서도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단식은 가장 많은 소문이 만들어진 것으로 꼽힌다. 뒤에서 몰래 음식을 먹었다는 주장이 나오거나 일부 커뮤니티 회원들이 조롱식 ‘폭식 투쟁’을 하면서다.

여기에 폭식 투쟁의 배후가 대기업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파문은 일파만파 커졌다.

2014년 7월 ‘유민이 아빠’로 알려진 김영오씨를 비롯한 유가족 20여명은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는 데 여야와 함께 가족이 참여하는 ‘3자 협의체’를 구성해달라며 광화문광장 농성에 돌입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특별위원회 구성도 함께 요구했다.

약 한 달이 지난 8월18일 김씨는 취재진 앞에서 앙상해진 갈비뼈와 헐거워진 바지를 보여줬다. 그다음 날인 19일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씨의 무리한 단식 중단을 촉구하는 동조 단식에 나섰다.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를 비롯한 각종 SNS에는 문 전 대통령이 단식 중에 감자탕과 커피를 사 먹었다는 글이 우후죽순 올라오기 시작했다. 단식 기간 동안 정치자금 사용내역을 보면 감자탕집을 비롯한 커피전문점, 빵집, 빈대떡 집 등이 기록됐다는 것이다.

당시 국민의당 김유정 대변인은 ‘단식 중에도 식비는 계속 지출한 문재인 후보,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논평을 내고 이같이 주장했다. 김 대변인은 “세월호특별법에 대처하는 민주당의 무능함을 덮기 위한 가짜 단식은 아니었는지 참으로 씁쓸하기만 하다”고 비판했다.

의혹이 커지자 문 전 대통령 측은 해당 비용은 보좌관들이 사용한 내역이라고 해명했다. 동조 단식을 진행하는 문 전 대통령의 상태를 지켜보기 위해 대기 중이던 당직자나 보좌진들이 사용한 경비라는 설명이었다.

현장에 배달된 피자 100판
일베 ‘폭식 투쟁’ 배후는?

문 전 대통령이 동조 단식을 시작한 지 보름이 지날 무렵, 극우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이하 일베)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발생했다. 단식 중인 유가족들이 효소 음료와 초콜릿바를 몰래 먹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다.

이를 두고 일베를 비롯한 유사한 성향의 커뮤니티 회원들은 광화문광장 앞에서 시민에게 초콜릿바를 나눠주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들은 2014년 8월31일부터 9월7일까지 일주일간 ‘폭식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자유청년연합, 엄마부대, 어버이부대 등 다수의 보수 단체도 동참했다.

가장 대표적인 일례로 유가족 농성장과 100m 남짓 떨어진 곳에서 ‘피자 파티’를 벌인 사건이 있다. 자신을 개인 사업자라고 밝힌 50대 일베 회원 A씨는 직접 피자 100여판을 주문해 회원들에게 나눠줬다. A씨는 “세월호특별법이 통과되면 유가족에게 너무 많은 혜택이 가게 된다”며 “세월호서 죽은 이들은 안타깝지만 이들을 이용하는 불순세력이 분탕을 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는 일베가 폭식 투쟁을 예고하자 성명을 통해 “광화문광장은 누구나 자유롭게 음식물을 먹을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농성장 앞에 취식 공간처럼 ‘일베 회원을 위한 식탁’까지 마련했다.

폭식 투쟁 첫날 농성장에 모인 일베와 커뮤니티 회원들은 피자를 받아 들고 유가족이 마련한 식탁서 음식을 먹었다. 일부러 단식 농성장을 오가며 치킨과 햄버거 등을 먹고 유가족을 배경으로 ‘인증샷’까지 남겼다.

4년 후 폭식 투쟁의 후원자가 대기업이라는 의혹이 일면서 해당 사건은 다시 수면으로 드러났다. 2018년 MBC 시사 프로그램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이하 <스트레이트>)가 “삼성과 전국경제인연합(이하 전경련)이 폭식 투쟁을 후원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다.

당시 주최 측은 음식과 주류 등을 구입한 경로에 관해 “후원금으로 마련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를 두고 <스트레이트>는 2013년 삼성이 자유청년연합에 ‘경제자유화 확산운동 지원’을 명목으로 1500만원을 지원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2014년에는 1000만원, 2015년에는 6000만원이 지원됐다. 해당 자금은 전경련을 통해 우회 입금한 것으로 해석했다.

쉰내 나는
밥그릇

단식투쟁에는 절박함이 드러나는 만큼 작은 행동도 확대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투쟁의 의미를 잊은 채 꼬투리 잡기에만 열을 올린다는 주장이 제시됐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이런 현상을 잘 보여주는 게 이 대표의 케이스”라고 말했다. 여야를 떠나서 처음 이 대표가 단식을 시작할 때 어떤 요구를 내걸었는지 기억하는 의원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는 지적이다. 이 관계자는 “단식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스럽다”며 “가진 게 없는 자들의 투쟁 수단마저 권력에게 뺏기는 것 같다”고 허탈해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제 안 먹히는 단식투쟁?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4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단식에 대해 꼬집고 나섰다.

이 대표가 단식으로 인한 건강 악화를 빌미로 검찰 조사에 영향을 줄 것이란 의혹이 나오면서다.

이에 한 장관은 “단식투쟁이 수사나 재판에 영향을 주는 선례가 남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방탄 단식’이 성공한다면 잡범을 비롯한 범죄자들이 소환 통보는 즉시 단식을 하지 않겠냐는 설명이다.

한 장관은 “단식을 하느냐 마느냐,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는 개인 자유의 문제”라면서도 “그게 수사나 재판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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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스스로 리더십 도마 위에 올라섰다. 1인1표제 재추진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라는 두 개의 승부수를 동시에 던지면서다. 양쪽에서 후폭풍이 몰아치는 형국이다. ‘자기 정치’ VS ‘당원의 뜻’이라는 명분과 명분이 거칠게 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의 합당 논의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지난달 22일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혁신당을 향해 “지방선거를 따로 치를 이유가 없다”며 손을 내밀었지만, 민주당의 반발과 ‘흡수 합당은 싫다’는 혁신당의 주장이 부딪히면서 합당 테이블조차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중구난방 가쁜 숨만 합당 논의 초반부터 혁신당 측의 반발이 이어졌다. 혁신당 서왕진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본격적인 통합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오해가 형성되는 것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통합은 뻔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가치 연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이 합당과 관련해 “민주당이라는 큰 생명체 내에서 혁신당의 DNA도 잘 섞이게 될 것”이라고 밝히자 이를 ‘흡수 합당’이라고 받아들인 것에 대한 유감 표명으로 풀이된다. 혁신당이 합당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서 원내대표는 MBC 라디오를 통해 “이미 민주당은 162명 거대 정당이고 (여기에) 혁신당 12명이 합쳐지는 것은 단순한 몸집 불리기”라며 “그 이상 의미는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합당 논의 자체를 본격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제안 방식이나 준비된 내용 자체가 없고, 오히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지방선거에 상당히 악영향이 있으니 당장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합당 논의라는 것 자체가 불가피한데 우리 원칙과 기준에 맞게, 질서 있게 논의는 진행할 필요는 있다는 긍정적 입장도 상당히 있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도 합당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지도부에서 친명(친 이재명)계로 불리는 이언주·황명선·강득구 최고위원은 합당 발표 다음 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로 된 통합을 위해서라도 정청래식 독단은 이제 끝나야 한다”며 정 대표를 겨냥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번 합당 제안에 앞서 정 대표와 이재명 대통령 간 교감이 있었던 것처럼 언론 보도가 됐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무는 당의 책임이고, 당이 결정해야 한다. 마치 대통령이 관여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합당 논의에 이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말미에 ▲정 대표의 공식 사과 ▲독선적 당 운영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합당 제안을 언제, 누구와, 어디까지, 어떻게 논의하였는지 등을 밝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합당·1인1표제, 쏟아지는 안건 “뭐부터 해결해야…” 여당도 혼란 이런 상황서 정 대표의 대표 공약인 ‘1인1표제’가 최종 관문인 당 중앙위원회(이하 중앙위) 표결에 다시 부쳐지면서 논란이 재점화할 전망이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행사 가치 비율을 현행 20대 1 이하에서 1대 1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지난해 중앙위원회에서 재적위원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됐다. 정 대표가 압도적 당심으로 당선된 만큼 정치권 일각에서는 1인1표제 통과로 인한 권력 재편을 견제해왔으나 두 달 만에 또다시 날 선 공방이 예고된 것이다. 지난달 19일 당무위원회는 해당 안건 상정을 중앙위서 결정한 뒤 같은 달 22~24일 권리당원 투표 절차를 마무리했다. 1인1표제 안건에 대한 투표 결과 ▲찬성 85.3%(31만5827명) ▲반대 14.7%(5만4295명)로 집계됐다. 당은 이달 2일 중앙위원회를 개최해 당헌·당규 개정에 대한 안건을 투표로 부칠 예정이며 중앙위원 온라인 투표는 3일까지 진행된다. 권리당원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정 대표는 “당원들의 압도적 다수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1인1표제 굳히기에 나섰다. 정 대표는 “당원들의 뜻을 받들어 민주당을 더 좋은 민주주의 정당으로 만들겠다”며 “당의 모든 의사와 진로는 당원들이 가라는 대로 가고 당원들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도 페이스북에 “참여율은 지난번 16.81%에 비해 15% 가까이 높아졌고, 찬성률은 비슷하다. 압도적인 찬성 여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힘을 실었다. 1인1표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질 때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을 방패처럼 소환했다. 정 대표는 “1인1표제는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 당원주권정당, 당원주권시대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이재명 당 대표 시절부터 3년여간 꾸준히 요구되고 논의했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이어 “당원과 대의원 1대 20 미만을 결정할 때도 많은 반대와 저항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며 “1인1표제는 논의할 만큼 논의했고 영남권 등 전략 지역 원외위원장들께서도 그 당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양해했던 사안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1인1표제는 이 대통령이 추진했던 사안인 만큼 민주당이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민주당과 당원들은 정 대표가 충분한 논의 없이 중요한 사안을 본인 페이스대로 밀어붙인다는 것에 불만을 제기했다. 지난해 27표 차이로 1인1표제가 처음 부결됐을 당시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과반에 가까운 상당수 최고위원이 우려를 표하고 숙의를 원했음에도 강행, 졸속 혹은 즉흥적으로 추진된 부분에 대해 유감”이라며 정 대표를 공개 지적하기도 했다. ‘자기 세력 강화’를 위해 합당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의심이 가라앉기도 전 1인1표제로 또다시 당을 흔들면서 반청(반 정청래) 정서가 퍼졌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여당이 흔들리자 정 대표의 진퇴를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합당 발표 이튿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선 당원들이 주도하는 합당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정청래 사퇴’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합당 반대”를 외쳤다. 민주당 일각에도 정 대표의 ‘졸속 추진’ 행보가 이어진다면 사퇴 요구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의 모든 행동이 ‘자기 정치’ 프레임으로 귀결되면서 승부수가 자충수가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정 대표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을 자신의 SNS에 공유했다. 자신의 선택을 두고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우회적으로 심경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겨냥한 듯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자신의 SNS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당원의 뜻은 독단으로 결코 꺾을 수 없나니, 흔들리는 것은 뿌리 없는 꽃뿐”이라며 저격 글을 게시했다. O? X? △도 필요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혁신당과의 합당과 1인1표제 추진에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사전 논의 없이 진행된 점 등 정 대표의 독단적인 행동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민주당 김지호 대변인 역시 “당내 문제 제기는 합당 자체보다는 의견수렴 절차가 급작스럽게 진행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가 당권을 쥐었을 당시 잡음은 예상됐으나, 일단 지르고 수습하는 예측 불허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신뢰를 잃은 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 대표 취임 이후 ‘명청 갈등’ ‘당정 불협화음’ 등으로 민주당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최고위원들의 반발 역시 당에서도 정청래 체제에 대한 위험성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근거로 해석된다. 당 대표 임기 종료까지 반년이 남았지만 정 대표의 연임 의혹은 여전한 만큼 갈등 역시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당원주권시대를 거듭 강조했지만 막상 중요한 사안은 독단으로 결정하면서 당 안팎으로 불만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1인1표제로 당원 중심 원칙을 강화하자”면서 합당 등 중요한 사안을 대표 혼자 결정하는 건 모순이라는 설명이다. 혁신당과의 합당 제안에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당원들이 이 문제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박 수석대변인은 “(합당이라는) 당 대표의 제안은 정무적 판단과 그에 따른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라며 “그렇기에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전 당원 토론, 투표 등 정해진 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활발하게 당원의 의견을 묻는 그런 토론의 장을 마련하겠다”며 “당원주권시대에 걸맞게 당원의 뜻을 최종적으로 묻고,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당원이 합당하라면 하는 것이고 하지 말라고 하면 못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정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당원에게 ‘예’ ‘아니오’로만 의견을 묻는 행위가 당원주권정당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말로만 당원 주권 시대? “이제는 숙의 민주주의로” 이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1인1표제의 경우 정 대표는 당원들의 찬성률이 압도적이었다고 말하지만 투표율은 저조했다. 이것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들여다 보지 못하고 숫자에만 매몰됐다”며 “이것을 당원주권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소수의 당원이 당의 여론을 이끌고 있다. 일반 국민의 시선에서 ‘나머지 당원들은 무책임하게 방관하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당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자, 여기에 O, X로만 투표해!’ 하는 식이니 당과 당원 간의 간극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인1표제와 혁신당과의 합당 모두 찬성 여론이 높다. 그럼에도 정 대표를 향한 반발은 거칠다. 결국 민주당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라 배의 키를 쥔 선장을 향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합당 방식에 반발한 민주당 최고위원들 역시 “정 대표의 선택적 당원주권”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통합을 가로막는 정 대표의 독선과 비민주성을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며 “선출된 최고위원들이 의견조차 낼 수 없는 구조, 대표 결정에 동의만 강요하는 구조는 민주적 당 운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같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서 파열음이 나는 만큼 결국 정 대표의 리더십이 관건이다. 3대 개혁의 빠른 추진, 혁신당과의 합당을 통한 지방선거 승리, 이정부의 성공 등 각종 요구가 쏟아지면서 이를 한데 어우르는 ‘통합형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 대표의 자기 정치 프레임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동안 자기 정치 의혹이 숱하게 제기된 만큼 조 사무총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당내 가장 큰 경쟁자인 한동훈 전 대표를 내치려고 하는 것은 당권을 계속 강화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그야말로 자기 정치 아닌가”라며 “반면 정 대표는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조국 대표와 함께하자고 하는 것인데 이걸 자기 정치라고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엄호에 나섰다. 민주당의 민주주의 체제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자이크 민주주의 평화 그룹 백왕순 대표는 <일요시사>를 통해 “숙의 민주주의의 부재”를 꼬집었다. 민주주의 제자리걸음 백 대표는 “1인 1표제가 맞냐 틀리냐 갑론을박이 이어지는데 당원주권시대에는 이 방법이 옳다. 다만 이득을 놓고 계파 간의 힘겨루기만 이어지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이라며 “혁신당과의 합당도 마찬가지다. 통합하면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 그런데 이를 차기 당권 문제와 연결해 해석하니 복잡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대한민국은 숙의 민주주의가 아닌 절차 민주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찬반이 극명한 사안에 대해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당원이 직접 토론하고 의견을 내는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안한 민주당 혁신당도 ‘흔들’ 합당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놓고 조국혁신당이 자당 의원들 입단속에 나섰다. 혁신당 황운하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할 경우 혁신당 조국 대표가 통합한 당의 공동대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경고한 것과 더불어 입조심을 당부한 것이다. 혁신당은 조국 대표가 즉각 황 의원의 이날 발언에 경고했다고 밝혔다. 혁신당 대변인실은 입장문을 통해 “혁신당 최고위는 이 문제(황 의원 발언)에 대해 논의하고, 이 같은 논의를 전혀 한 바가 없으며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며 “조 대표 역시 강한 경고를 했음을 알린다”고 밝혔다. 이어 “혁신당은 공식적 기구를 통해 합당과 관련된 논의를 해왔으며 위와 같은 논의는 전혀 언급된 바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조 대표를 비롯한 혁신당 구성원 누구도, 민주당과 합당과 관련된 실무 논의를 진행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