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재벌 총수들 추석나기 천태만상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10.02 08: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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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송편 좀 드셨습니까?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다. 10월2일을 포함하면 장장 5일간의 연휴다. 명절을 맞아 각자의 사정대로 어떤 집안은 고향에 가족들이 다 모일 것이고, 어떤 집안은 가족여행을 계획하고 있을 것이다. 재벌 총수들은 추석연휴를 어떻게 보낼까. 주요 대기업 총수들의 추석나기를 조망해봤다.

재벌 총수들은 추석을 어떻게 보낼까. 경영구상에 골몰하며 바쁜 하루를 보낼까, 아니면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담소를 나누며 휴식을 취할까.

그 답은 '천양지차'다. 재벌 총수들도 집안 분위기가 좋으냐 혹은 나쁘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추석을 보낸다. 경영도 안정되고 친지 간 사이가 좋아 아무런 걱정이 없는 총수들은 가족들이 모여 명절을 즐길 것이고, 경영위기를 겪는 데다가 가족·친지 간 분쟁을 겪고 있는 총수들은 추석이라 해도 달갑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먼저 요사이 안팎으로 아무런 걱정이 없는 재벌 총수로는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있다. 이들은 추석 연휴 동안 온 가족들이 모여 휴식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롯데·GS
안팎으로 걱정 없어

정몽구 회장은 추석을 줄곧 경기 하남시 창우리 선영으로 성묘를 다녀온 뒤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왔다. 성묫길에는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정대선 현대 비에스앤씨 대표이사와 배우자인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정성이 이노션 고문,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 등이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신격호 회장과 신동빈 회장 부자는 일본 출장이 잦지만 이번 추석 때는 서울에서 머물며 가족과 함께 성묘를 다녀올 것으로 보인다. 추석당일 신춘호 농심 회장, 신준호 푸르밀 회장, 신동주 롯데홀딩스 부회장, 그리고 얼마 전에 롯데쇼핑 사장자리에서 물러난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 등이 함께할 것으로 보인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추석을 맞아 서울 동부이촌동 자택에서 일가친척과 함께 차례를 지낼 것으로 알려졌다. GS일가는 인화와 화목을 중요한 덕목을 내세우고, 지주회사인 (주)GS에 지분을 보유한 허씨일가가 50여 명에 달하는 만큼 추석 날 많은 사람이 모일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는 허태수 GS홈쇼핑 사장, 허진수 GS칼텍스 부회장, 허정수 GS네오텍 회장, 허명수 GS건설 사장 등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마음 편하게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낼 수 없는 처지의 총수들도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최근 '옵티머스G'에 승부를 걸었다. 과거 피처폰 시장에선 삼성과 어께를 나란히 했던 LG지만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시기 대처가 늦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구 회장은 특명을 내려 LG그룹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옵티머스G를 출시했다. 따라서 구 회장은 추석 기간 중에도 옵티머스G의 글로벌 시장 반응을 보고받을 것으로 보인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도 대규모 자본유치를 추진해 재무건전성 확보에 속도를 내며 바쁜 추석을 보낼 것으로 보인다. 계열사 주가의 발목을 잡던 'STX 자금 위기설'을 뿌리 뽑기 위해 '재무구조 개선'을 선언한 지 8개월이 지났다. 이제 그 성과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삼성 현대차 등 주요 회장 휴식 겸 경영구상
심각한 경영난으로 우울한 명절 맞은 오너도

구자홍 LS그룹 회장은 편법을 동원한 3세 지분승계를 거의 마무리 해 한시름 놓나 했더니 선박용 주물업체 '캐스코'가 골치 덩어리로 떠올랐다. 캐스코가 자본잠식에 빠지면서 LS전선, 두산, 삼양엔텍 3사간 균열이 시작된 것. 두산은 유상증자에 불참했고 삼양엔텍은 지난 캐스코의 보유지분 전량을 LS측에 매각하고 합작관계를 청산했다. 지금 최대 지분을 보유 중인 LS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형국이 된 것. 그러는 사이 '설상가상'으로 작업장 내 사망사고까지 발생했다. 따라서 LS총수 일가는 추석에 모여 '미운오리새끼' 캐스코를 앞으로 어떻게 할지 의논할 가능성이 크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추석에도 경영구상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를 위해 실사를 진행하고 있고 웅진식품 인수도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 회장은 사운을 발전 사업에 걸고 동부건설로 하여금 충남 당진의 '동부그린발전소'에 이어 강원도 삼척에 총 14조원 규모의 대규모 복합에너지 조성사업을 본격화했다. 하지만 최근 3년간 쉬지 않고 인수·합병에 나서면서 부채비율이 부쩍 높아진 데다 주력 계열사의 실적 부진이 겹쳐 재무구조가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 안팎에서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우울한 추석을 맞이할 예정이다. 지난 9월26일 웅진그룹의 지주회사 웅진홀딩스와 계열사인 극동건설이 동시에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극동건설은 지난 9월25일 현대스위스저축은행에서 돌아온 150억원 규모의 만기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를 냈다. 이에 윤 회장은 그룹의 연쇄도산을 우려해 지주회사까지 동시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 이로써 윤 회장은 악화된 재정 상황을 한시라도 빨리 잡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SK·코오롱·오리온
추석에도 재판준비

재판이 한창이라 추석 기분을 내지 못하는 총수들도 있다.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은 '듀폰 소송패소'와 '정치자금 문제'가 연달아 터지면서 악재에 휩싸인 채 추석을 맞게 됐다. 지난달 말 미국 버지니아 지방법원이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아라미드 섬유 제품인 '헤라크론'에 대해 20년간 생산 및 판매금지와 동시에 9억1990만달러(약 1조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코오롱은 발 빠르게 미국 연방 항소법원에 '집행정지를 요청하는 긴급신청'을 해 생산라인의 전면 가동중단만큼은 피했다. 일단 '급한 불'은 끈 형국이지만 향후 제대로 된 반격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 이 회장은 정치자금 문제와 관련해 현재 검찰에 피고발자 신분으로 입건돼 있다. 지난 7월 민주노총 화학섬유연맹이 앞서 구속 기소된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이 회장을 김남수 코오롱 사장과 함께 대검찰청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도 추석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공판준비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SK그룹 계열사 자금을 유용, 사적인 투자를 한 혐의로 기소됐다. 최근 검찰은 최 회장의 신한은행 계좌에서 800억원의 수표가 인출, 이 자금이 같은 날 신규로 개설된 최재원 부회장 명의의 신한은행 계좌로 입금된 내역을 공개했다. 그 가운데 680억원이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에게 송금됐다고 밝혔다. 이에 최 회장의 변호인은 최 부회장의 채무변제를 위해 형으로서 빌려준 돈일뿐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재판을 받고 있는 그룹 총수는 한 명 더 있다. 바로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으로 횡령 혐의에 대해 재판이 현재 진행 중이다. 담 회장은 고가 미술품을 법인자금으로 매입해 자택에 장식품으로 설치하는 방법 등으로 226억원을 횡령하고 74억원을 유용한 혐의로 지난해 6월 구속 기소됐고 지난해 10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올해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나 자택에서 추석을 보낼 수 있게 됐다.

보석신청으로
옥중 추석 피해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역시 1400억원대 회사 자산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돼 지난 2월 징역 4년6월에 추징금 20억원을 선고 받았다. 항소심 진행 중 지난해 간암 수술 받은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돼 구속집행정지 허가를 받은 이 회장은 구급차를 타고 법원에 나와 휠체어를 타고 재판을 받았다. 결국 지난 6월 이 회장은 보증금 10억원에 거주지를 주소와 병원으로 제한하는 것 등을 조건을 달고 보석신청을 허가받아 옥중에서 추석을 보내는 일은 피했다.

재판을 준비해야 하는 총수들보다 더 암울한 총수는 바로 옥중에서 추석을 보내야 하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일 것이다. 구속 된지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영락없이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하는 신세다.

지난 8월16일 서울서부지법은 회사에 수천억의 손실을 끼친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 회장에게 징역 4년에 벌금 51억원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김 회장은 수감 이후 가족과 법무팀을 제외한 한화 임직원 및 가까운 지인의 면회를 일절 받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김 회장은 심지어 처음엔 가족 면회도 거부했는데 변호인들의 권유를 받고 나서야 가족들을 만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 직후 2007년 청계산 보복 폭행 혐의로 수감됐을 때와 마찬가지로 김 회장이 옥중 경영을 할 것이라고 예상됐지만 수감 이후 회사 경영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김 회장이 법정 구속에 충격을 받아 다음달 중순부터 시작될 항소심 재판 준비에만 온 신경이 쏟고 있는 것 아니냐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그래도 추석이니만큼 추석 당일엔 총수일가들의 면회를 받고 얘기를 나눌 것으로 보인다.

판결 앞두고 정신없는 회장님
감옥서 외롭게 지내는 회장님
싸우고 의절해 썰렁한 회장님

추석이라 해도 절대 얼굴을 보지 않는 것 같은 총수일가들도 있다. 가족 간 분쟁이 발생해 남보다도 못한 철천지원수가 된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특히 형제 간 상속분쟁 '형제의 난'은 주요 대기업이라면 꼭 한 번은 겪었을 정도로 흔한 일이다. 같은 부모 밑에 나 피를 나눈 형제지만 돈은 피보다도 진했던 것이다.


2009년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의 자살 소식은 온 사회를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자살의 이면에는 형제 간 경영권 분쟁에 따른 재벌가의 '가족불화'가 있었다. 두산그룹은 고 박승직 창업주, 고 박두병 회장에 이어 박용곤·박용오·박용성 회장 등 형제들이 나란히 그룹 경영권을 승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집안 갈등이 쌓여왔는데 2005년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이 두산산업개발을 그룹에서 떼어내 자신과 아들들에게 달라고 요구하면서 사단이 나기 시작했다. 이에 두산일가는 2005년 7월 가족회의를 열어 그룹 회장을 차남 박용오 전 회장에서 3남 전 박용성 회장으로 교체하는 등 박용오 전 회장을 사실상 퇴출시켰다. 그러자 박용오 전 회장은 형제들을 고발하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만다. 박용성·박용만 형제가 20년 동안 총 17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를 사조직 관리와 노조 탄압에 사용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한 것. 그 결과 박용오 전 회장도 연루돼 박용성·박용만 전 회장과 함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이 사건으로 두산가는 박용오 전 회장의 두산그룹과 두산산업개발 회장직을 박탈하며 사실상 형제의 연을 끊어 버린다. 결국 박용오 전 회장은 괴로워하다 2009년 11월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 이른다.

두산가 형제분쟁과 거의 닮은꼴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형제의 난'은 2009년 7월 시작됐다.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이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을 해임 조치하고 자신도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박삼구 회장이 동반 퇴진이라는 초강수를 던진 것은 박찬구 회장이 금호산업 지분을 매각하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늘리면서 형제 간 경영상의 갈등에 이어 계열분리설까지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후 채권단의 중재로 2010년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로, 박삼구 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으로 각각 경영에 복귀했다. 그러나 박찬구 회장이 비자금 조성 및 내부자거래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는 도중 지난해 6월 사기 및 자본시장법 위반 등으로 박삼구 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현재 법적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

한진그룹도 내홍을 겪었다. 조중훈 창업주는 4명의 아들들에게 그룹의 주력사를 골고루 쪼개 줬다. 장남 조양호 회장에게는 대한항공, 차남 조남호 회장에게는 한진중공업, 3남인 조수호 회장에게는 한진해운, 4남인 조정호 회장에게는 한진투자증권(현 메리츠금융그룹)을 배분한 것. 그러나 균등한 재산배분이 아니었기에 분란이 이어졌다. 2002년 장남과 3남, 차남과 4남이 각각 편을 나눠 집안싸움을 벌이다 급기야 법정 다툼으로 비화됐다. 이후 조양호 회장과 조남호 회장은 무려 8년 이상 법적분쟁을 벌여 남남으로 갈라섰다.

불만은 '불화'낳고
분할은 '분쟁'낳고

대성그룹은 최근까지 형제 간 '골육상쟁'을 벌여 이번 추석 삼형제가 한자리에 모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0년 김수근 대성그룹 명예회장은 타계 직전 평화로운 경영권 이양을 위해 삼형제를 모은 뒤 장남에겐 모기업인 대성산업, 차남에겐 서울도시가스, 3남에겐 대구도시가스 경영권을 나눠주며 경영공조체제를 유지하도록 했다. 하지만 김 창업주가 작고한 2001년부터 지분 다툼을 벌여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후 그룹의 계열분리로 2세들의 독립경영체제를 구축했지만 2006년 김수근 창업주의 부인 여귀옥 여사가 타계하자 어머니의 유산상속을 놓고 또다시 갈등을 빚었다. 또 최근엔 '대성' 상호명을 두고 법정 싸움을 벌여 3남 김영훈 대성홀딩스 회장이 승소했다. 하지만 독자노선을 구축해오면서도 법적으로는 '한 지붕 세 가족'이나 다름없는 대성삼형제의 '불편한 동거'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형제들도 결코 한자리에 모일 수 없는 처지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상속재산을 둘러싼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법적분쟁이 발발하면서 '돈 앞에 부모·형제도 필요 없다'는 '형제의 난'이 삼성가에서도 벌어지는 중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건희 회장의 누나인 이숙희씨까지 상속소송을 제기하면서 '삼성가 소송전'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건희 회장과 이맹희 회장의 1대 1 소송에서 이건희 회장을 겨냥한 형제들의 집단 소송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는 것. 이에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의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 이병철 회장의 장녀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은 소송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힌 가운데 이명희 회장 측은 판단을 유보해 차후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이번 추석 연휴에 특별한 외부 일정을 잡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홍콩과 일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상태여서 이번 추석은 한남동 자택에 머무르며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등 자녀들과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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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