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계곡 살인 무기징역 이은해 검찰 ‘부실 공소장’ 의혹

인정 못 받은 ‘직접 살인’ 상고할까?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계곡 살인사건’으로 1심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은해가 2심서도 같은 판결을 받았다.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을 통한 직접 살인은 이번에도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간 검찰에 여러 차례 공소장 변경을 언급했다. 최근 선고공판 직전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직접 살인 입증에만 몰두하던 검찰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가평계곡 살인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이 지난달 26일에 있었다. 살인·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은해는 동종 전과가 없었으나 잔혹성이 인정돼 1심과 같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법원의 판단은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이은해 측 변호인은 억울한 부분이 적지 않다고 한다. 검찰이 내민 정황상 간접 증거에 의한 비상식적 판결이라는 주장이다.

인정된 범행
잔혹성

이날 서울고등법원 형사6-1부(원종찬·박원철·이의영 부장판사)는 살인·살인미수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은해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내연남이자 공범인 조현수도 1심과 같은 징역 30년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보험금 8억원을 노려 두 차례 살인미수와 살인을 저질러 죄책이 매우 무겁다”며 “양심의 가책 없이 보험금을 청구했으며 유족 피해 해소도 전혀 없었고 도주하는 등 정황도 불량하다”고 질타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은해는 조현수와 함께 2019년 6월30일, 경기도 가평군 용소계곡서 남편 윤모(사망 당시 39세)씨를 물에 빠지게 해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2019년 2월과 5월, 복어 피 등을 섞은 음식을 먹이거나 낚시터에 빠뜨려 윤씨를 살해하려 한 혐의도 받는다.


2심 재판의 쟁점은 살인이 가스라이팅에 의한 직접(작위) 살인 여부였다. 1심은 직접 살인이 아니라 물에 빠진 피해자를 일부러 구하지 않은 간접(부작위) 살인이라고 봤다. 검찰은 이은해가 윤씨를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가스라이팅을 통해 구조장비 없이 4m 높이 바위서 3m 깊이의 계곡물로 뛰어들게 했다며 직접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법이 금지한 행위를 직접 실행한 상황에는 ‘작위’, 마땅히 해야 할 행위를 하지 않은 경우를 ‘부작위’라고 한다. 통상 작위에 의한 살인이 유죄로 인정됐을 때 부작위에 의한 살인보다 형량이 훨씬 높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피해자와 이은해 사이의 심리적 주종 관계 형성과 관련해 가스라이팅 요소가 있다고는 판단하지만 지배했는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고 판단했다.

가스라이팅이 주로 경제적인 영역서 이뤄졌을 뿐 다른 영역에선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살인미수나 보험사기 등 혐의는 원심과 마찬가지로 유죄로 판단했다. 이 사건은 2019년 윤씨 사망 당시 가평경찰서가 혐의점을 찾지 못해 단순 변사사건으로 내사 종결됐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일산 서부경찰서가 재수사에 착수해 이은해와 조현수를 살인·보험사기 미수 혐의로 2020년 인천지검에 송치했다. 이들은 2021년 12월 검찰의 첫 소환조사를 받은 뒤 잠적했고, 공개수배 끝에 지난해 4월16일 경기도 고양서 검거됐다.

이들은 윤씨의 생명보험금 8억원을 노리고 계획적으로 윤씨를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스라이팅’ 인정 안 돼…유례도 없어
원심 유지…조현수 전 연인 핵심 진술


이은해는 보험사가 부당하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2020년 소송을 제기했고, 지금까지 취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6월 변론기일을 연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박준민 부장판사)는 형사재판 결과를 기다려보겠다는 취지로 다음 기일을 잡지 않았다.

윤씨의 매부는 선고 뒤 취재진과 만나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선량한 서민이 범죄자에게 피해를 보는 일이 반복되는데, 가슴 아픈 일이 다시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은해가 보험금 소송을 포기하지 않은 것을 두고는 “아직도 금전에 대한 미련이 많은 참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듯하다”고 비판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재판장 박준민 부장판사)는 이은해가 S 생명보험사를 상대로 한 8억원의 생명보험금 청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은해는 조현수와 범행 이후 윤씨 명의로 가입한 생명보험금 8억원을 청구했으나 보험사기를 의심한 S 생명보험사 측으로부터 지급을 거절당했다.

S 생명보험사 측은 이은해가 나이와 소득에 비해 생명보험 납입액수가 큰 점, 보험 수익자가 법정상속인이 아니라 이은해인 점 등을 의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은해는 현재 살인 혐의뿐만 아니라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 미수 등 혐의도 적용받은 상태다.

국내 판례에서는 지금껏 손도 대지 않고 사람이 살해된 바 없다. 이번 선고공판서 직접살인이 인정됐다면 유례없는 판결이었을 수 있었다. 재판부가 검찰에 여러 차례 공소장 변경을 언급한 것도 그 이유다. 그만큼 검찰이 직접살인을 고집한 게 재판부의 어깨를 무겁게 해왔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검찰은 지난해 인천지법 형사15부(부장판사 이규훈)가 진행한 13번째 심리서 이은해에 대한 공소장을 바꾼 바 있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도 염두에 두라”는 재판부의 요구 때문이었다.

수차례
공소장 변경

<일요시사>가 입수한 ‘계곡 살인사건’ 공소장에 따르면 검찰은 2019년 6월30일 가평 용소계곡서 피해자 윤씨가 계곡물에 빠진 뒤 이은해 등이 구호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봤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살인 계획에 따라 피해자가 물에 뛰어든 직후 허우적대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은해는 위 계곡의 모래톱에 구명조끼가 3벌 있었고, 조현수에게 튜브가 있어 즉각 피해자를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동행한)A씨에게 이은해는 구명튜브를 가지러 가자고 유인했다. 계곡서 약 58m 떨어진 곳에 비치된 구명튜브를 가지러 가는 방법으로 현장서 이탈시켜 피해자에 대한 구호조치를 적기에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현수에 대해선 “피해자와 약 5m 거리서 튜브를 착용하고 있었음에도 피해자에게 튜브를 던져주지 않았다”며 “피해자가 물속에 잠겼음에도 즉시 피해자가 빠진 위치 인근으로 다가가 물에 잠긴 피해자를 수색해 물 밖으로 인도하는 등의 구호조치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혐의를 변경하지 않았다. 혐의는 유지하되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한 것이다. 쉽게 말해 작위적 요소와 부작위적 요소가 결합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볼 땐 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검찰은 지난달 말에도 공소장을 변경했다. 피고인들이 주고받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를 바탕으로 범행 일시와 방법 등을 더욱 구체적으로 적시한 것이다. 앞서 검찰은 1심서 이은해와 정모씨가 인근서 사온 복어와 부산물 등을 넣은 매운탕을 먹였다고 밝힌 바 있다.

진술 신빙성에 문제
수상스포츠 곧잘 즐겨

해당 공소장에는 이들은 2019년 2월 강원도 양양군의 한 펜션서 미리 사둔 복어 1마리를 남겨놓고 남편에게 술을 마시도록 했다고 적시됐다. 그러나 윤씨가 거부하자 한 가게서 복어와 부산물을 추가로 구매했다. 이은해와 정씨는 남겨놨던 복어 및 부산물을 넣고 끓여 남편에게만 먹였다.

검찰은 이 정황이 직접살인의 증거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은해 측 변호인은 텔레그램 내용 자체만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은해 측 변호인은 “텔레그램상에도 복어를 손질받아왔고 피와 독성이 있는 부위도 구해오지 않았다. 독이 없는 복어로 매운탕을 끓인 것이지 윤씨를 죽이려 했던 게 아니다. 이은해 등의 주된 목적은 위자료 계획에 따라 윤씨가 술을 많이 먹도록 유도해 타 여자에게 실수하게 하려는 의도였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은해 측 변호인은 ‘키맨’이자 조현수와 연인 관계였던 증인 김모씨의 진술 신빙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김씨는 사건 당시 이은해의 살인이 계획적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을 본 이후 ‘이은해가 살인을 하려 했다’고 여기게 됐다는 게 검찰 진술 내용이다.


다른 증인은 “윤씨가 빠지서 물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싫어할 정도로 물을 무서워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그는 “윤씨가 이은해에게 ‘물에 들어가기 싫어, 물놀이 기구 안 탄다’고 말했으나 이은해가 윤씨에게 화를 내며 ‘그럼 내가 탈 것’이라고 해 윤씨가 바나나보트를 탄 것”이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 주장은 윤씨가 수영을 못 한다고 판단하는 데 중요한 진술이 됐다. 그러나 실제 윤씨는 김씨와 빠지에 자주 갔고 웨이크보드를 타고 일어설 수 있을 정도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교육을 받았었다. 물에 대한 공포심이 심해 물에만 들어가면 경직된다는 말과 달리 수상스포츠를 곧잘 즐겼다는 주변인들의 증언도 존재한다.

재판부 여러 차례 공소장 변경 언급
정황상 간접증거 의한 비상식 판결?

이은해 측 변호인은 “원심서부터 17회의 공판을 거치면서 정황 증거일 뿐 허구성이 존재한다. 검사는 피고인들이 밀복의 독이 있는 내장을 이용해 윤씨를 독살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장난처럼 이어진 텔레그램 내용만 있다”며 “실제로 복어를 구입했는지, 어디서 구입했는지, 복어의 독이 있는 내장은 구했는지, 그 내장으로 실제 매운탕을 끓여서 윤씨에게 먹였는지에 대해 어떠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 “검찰은 피고인들이 낚시터에서 윤씨를 밀어 죽이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이 제시한 증거는 김씨의 진술만 있었을 뿐이다. 김씨는 이은해가 윤씨를 미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조현수가 물속에서 윤씨를 가라앉히려 시도하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이은해 측 변호인은 2심 판단에 불복하고 대법원에 상고할 계획이다. 원칙적으로 상고는 항소심의 판결, 즉 제2심판결에 대한 불복신청이다. 제1심판결에 대해서도 이른바 비약 상고가 인정돼 예외적으로 제1심판결에 대한 상고도 포함된다.

상고심의 관할권을 가지는 법원은 어떤 경우에도 대법원이며, 그 제기 기간은 항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7일이다. 상고도 상소의 일종이므로 당사자의 구제를 목적으로 하지만, 상고심의 주된 사명은 하급법원의 법령해석·적용의 통일을 기한다.

상고는 최종심이므로 상고심의 재판에 대해서는 다시 상소의 방법이 없기 때문에 현행법원은 신중을 기하는 의미서 ‘판결의 정정’ 제도를 인정하고 있다. 상고심도 항소심과 마찬가지로 사후심으로서의 성질을 갖기 때문에, 상고심의 절차에 관해서는 특별한 규정이 없다.

검찰도 직접살인을 인정받으려 상고에 임할지는 아직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상고에 임한다 해도 판결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구체성 없는
간접 정황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1~2심서 유죄가 나온 사건이 대법원서 뒤집힐 가능성은 매우 적다. 결정적 증거가 없다면 불가능에 가깝다”며 “현재까지 채택된 증거만으로는 원심을 뒤집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변호사도 “정황 및 간접증거라고 해도 대법원 판단은 법률심이다. 법률에 반박할 수 있는 물증이 없다면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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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