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최저임금위원회는 매년 이맘때 열린다. 그런데 올해 유독 눈길이 쏠리는 이유가 있다. 정권교체 이후 첫 최저임금 결정인데다, 최저임금 1만원 시대가 열릴 가능성도 엿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정까지는 갈 길이 멀고도 험하다. 불경기 탓에 노동계·경영계 태도가 더욱 강경해진 데다, 공익위원 사퇴·업종별 차등 지급 등 부차적 갈등 요소도 있기 때문이다.
올해 기준 최저임금은 시간당 9620원이다. 4% 이상 인상될 경우, 최저임금은 1만원을 돌파하게 된다. 2021년 최저임금은 전년 대비 5.1% 인상된 시간당 8720원이었고, 지난해는 전년 대비 5% 인상된 9160원이었다.
9620원
다만 과거 수치를 참고해 올해 합의 결과를 점치기는 어렵다. 문재인정부 때 결정된 최저임금은 상승 폭이 상당히 불규칙했다는 점, 윤석열정부가 전 정부와 비슷한 인상 기조를 가져가지 않을 가능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박근혜정부 당시 최저임금 인상률은 매년 7~8%대에 머무르며 큰 등락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문정부때는 인상률이 최고 16.4%, 최저 1.5%로 편차가 비교적 컸다.
문정부는 출범 이전부터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지만, 윤정부는 문정부 표 노동정책에 대립각을 세워온 점도 살펴볼 점이다.
무엇보다도 근로자와 사용자의 의견 합치 지점이 관건이다. 노동계는 최저임금을 1만2000원까지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근로자위원인 양대노총(민주노총, 한국노총)은 지난 4일 구체적 액수를 공개하면서 “고물가 속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통상적으로 근로자 위원 측 요구안은 6월쯤 공개됐다. 이례적으로 두 달가량 먼저 발표한 데에는 ‘샅바싸움’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경영계는 아직 구체적 금액을 밝히진 않았다. 하지만 최소 ‘동결’ 이상을 요구할 걸로 예상된다. 실제로 경영계 일원인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18일 기자회견서 “한계 상황에 내몰린 소상공인의 지급 능력을 고려해 내년도 최저임금을 동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측은 올해도 현격한 입장 차이를 보일 공산이 커졌다.
양측 주장은 상반되지만, 그 명분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각각 “고물가 때문에 여건이 어려워졌다”고 호소하는 모양새다. 연합회는 이날 기자회견서 “기준금리는 세 배 가까이 상승했고 올해 들어 전기료는 30%, 가스비는 37.1% 급등했다. 한계 상황에 내몰린 소상공인의 지급 능력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경영계 ‘줄다리기’ 시작
“고물가로…” 팽팽한 협상 어떻게?
미처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후유증’도 언급됐다. 연합회는 “최저임금이 2017년 6470원서 올해 9620원으로 48.7% 수직상승했지만, 코로나 이후 소상공인 영업이익은 43.1% 감소했고 대출 잔액은 1000조원을 넘었다”고 지적했다.
이 가운데 최저임금위원회(이하 최임위)의 첫 전원회의는 제대로 열리지조차 못했다.
지난 18일 양대 노총 관계자 수십명은 회의장에 들어와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의 사퇴를 촉구했다. 권 교수는 정부가 최임위에 추천하는 공익위원 중 하나다. 이날 이들은 피켓을 들고 “독립성, 공정성 훼손하는 권순원 공익위원은 사퇴하라” “69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권순원 공익위원은 사퇴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최임위는 공익위원 9명 외에도 양대 노총이 추천하는 근로자 위원 9명, 경영계가 추천하는 사용자 위원 9명 등 총 27명으로 구성된다. 공익위원은 근로자 위원과 사용자 위원이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할 때 이른바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한다.
최임위는 지난 2년간 공익위원 안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해왔다. 노동계는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 결정 기준을 무시했으며, 그 중심에 권 교수가 있다고 주장한다. 더군다나 권 교수가 ‘미래 노동시장 연구회’ 좌장을 맡은 이력 또한 노동계를 자극했다.
해당 연구회는 앞서 논란이 된 고용노동부의 ‘주 최대 69시간’ 근로시간 개편안 초석을 마련한 곳이다.
첫날부터 불참·퇴장 ‘삐거덕’
8월 고시…7월 중순 전 마쳐야
최임위 관계자 만류에도 항의는 한동안 이어졌고, 결국 회의는 30분 이상 지연됐다. 권 교수를 비롯한 공익위원들은 계속 입장하지 않았다.
그러자 근로자 위원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예정된 시간이 지났는데도 왜 공익위원들이 착석하지 않느냐” “설명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첫 회의부터 이렇게 불성실한 회의 진행이 어디 있느냐”고 따졌다.
그럼에도 공익위원들은 입장하지 않았다. 결국 근로자 위원들은 “앞으로 15분 내에 위원장이 개회를 선언하지 않으면 퇴장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결국 이들은 공식 입장을 밝히고 전원 퇴장했다.
근로자 위원 간사인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노동자들의 의사 전달 기회조차 박탈하고, 최저임금위원장으로서 직무를 유기해 상당히 안타깝다”며 “회의를 개최하지 않은 데 엄정 항의한다”고 밝혔다.
최임위 첫 회의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이날은 위원들 간 인사를 나누고 향후 일정 등을 논의하는 ‘상견례’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상호 간 상견례 자리가 불참과 항의로 얼룩진 만큼, 최임위의 향후 일정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또 올해 최임위에서는 지난해 윤정부가 화두로 던졌던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지급’ 적용 여부도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관해 경영계는 찬성, 노동계는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갈등의 불씨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갈 길이…
3자 간 갈등이 깊어지는 중에도, 기한은 계속 다가오고 있다. 최임위는 심의 요청을 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최저임금 수준을 의결해 고용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심의를 요청했으므로, 올해 최임위의 제출 기한은 6월 말까지다. 또 관련 법은 최저임금 고시 시한은 매년 8월5일로 못 박아뒀다. 이의제기 등 부차적 절차까지 모두 기한 내에 처리하기 위해선 늦어도 7월 중순까지 심의를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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