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신 빙속 여제’ 김민선

이상화 넘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제2의 이상화’라는 수식어를 떨쳐내고 ‘제1의 김민선’으로 우뚝 섰다. 이상화 이후 스피드스케이팅계의 최고 기대주로 꼽히는 김민선이 이상화의 기록을 하나씩 넘어서고 있다. 최근 세계대회서도 압도적인 기량을 과시하고 있는 김민선에게 ‘원조 빙속 여제’ 이상화 역시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고 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에이스’ 김민선이 제104회 전국동계체육대회(이하 동계체전)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대회 폐회일인 지난 20일, 대한체육회는 한국체육기자연맹 기자단 투표 결과 김민선이 MVP로 선정됐다고 전했다.

김민선은 이번 동계체전서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일반부 500m, 1000m, 팀추월 종목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대회 3관왕에 등극했다. 이 중 500m(37초90)와 1000m(1분16초35)에선 대회 신기록을 경신했다. 둘 모두 이상화의 종전 기록을 넘어선 것.

새로운 기록
대회 휩쓸다

사실 대회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김민선의 3관왕 기록이 희귀하다고 평할 수는 없다. 이번 대회서 3관왕을 22명이나 배출했던 데다 4관왕은 10명에, 5관왕도 2명 나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민선이 MVP로 뽑힌 이유는 최근 국제대회를 휩쓴 후광효과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김민선은 체육기자연맹 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김민선은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이 주관하는 2022-2023 시즌 월드컵서 금메달 5개를 따냈다. 올해 초에는 2023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세계대학경기대회에 출전해 3관왕에 올랐다. 이런 와중에 국내 최대 대회인 동계체전에서도 호성적을 거두자, 여러 성과를 종합해 ‘신 빙속 여제’ 대관식을 열어준 모양새다.

김민선은 “국내서 열리는 가장 큰 대회인 동계체전에서 MVP를 수상하게 돼 기쁘고 감사드린다”며 “이번 동계체전은 개인적으로는 대회 신기록을 경신해 더 큰 의미가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의미 있는 상을 받은 만큼 세계선수권대회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김민선은 11세 때 처음 스케이트를 신었다. 다른 스케이팅 선수들에 비해서는 다소 늦은 나이였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서 이상화가 스피드스케이팅 500m 종목서 금메달을 따는 모습에 반해 처음 스케이트를 신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민선은 처음에 피겨 스케이팅으로 스케이팅을 시작했다. 그러다 쇼트트랙으로 종목을 한 차례 변경했고, 다시 스피드스케이팅을 권유받았다. 김민선은 6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스피드스케이팅을 시작했다.

이후 김민선은 각종 주니어 대회를 휩쓸면서 이상화의 뒤를 이을 주역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김민선은 초·중등부 시절 동계체전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 종목(500m, 1000m)서 매번 상위권 성적을 기록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16년에는 릴레함메르 청소년 동계올림픽에 출전해 500m 금메달, 매스스타트 동메달을 획득했다.

2017년 9월 국제빙상경기연맹 폴클래식 여자 500m서 37초70을 기록했다. 이상화가 10년 전 세웠던 세계주니어신기록 37초81을 뛰어넘는 기록이었다.

하지만 당시 김민선의 기록은 공인기록으로 인정되지 못했다. ISU 규정상 세계신기록을 수립한 선수는 도핑검사를 해야 하는데, 주최 측 과실로 김민선의 도핑검사가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결국 당시 김민선이 세운 기록은 비공인 기록으로 남게 됐다.


동계체전 3관왕…대회 신기록 ‘MVP’
ISU 주관 2022-2023 월드컵 금메달 5개

김민선은 3개월 후인 2017년 12월 2017-2018 ISU 월드컵 4차 대회에 출전해 세계주니어기록을 재차 경신했다. 그는 37초78의 기록으로 이상화가 세운 기록을 0.03초 앞당겼다. 이 기록은 문제없이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았다. 

이후 김민선은 국가대표 선발전을 무난히 통과하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출전권을 자력으로 획득했다. 2017년 제50회 빙상인추모 전국 남녀 종목별 선수권 대회 1000m서도 1위를 차지하며 올림픽 호성적 기대감을 높였다.

실제로 김민선은 같은 해 월드컵 2차 대회서도 6위까지 오르며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소속팀 의정부시청 감독인 제갈성렬은 김민선의 재능과 기량에 관해 “타고난 순발력에 좋은 신체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체도 길다”며 “특히 스케이팅에 관한 이해도가 좋다. 스펀지 같은 선수다. 얼굴은 아기 같지만 승부욕과 독기가 있다”고 호평했다.

하지만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운이 따르지 않았다. 김민선은 경기 일주일 전 허리 부상을 당하면서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김민선은 부상을 안고 뛴 500m 경기서 16위를 기록했다.

올림픽서 아쉬움을 삼키고, 부상의 여파로 한동안 잠잠한 시간이 흘렀다. 그런 와중에도 김민선은 꾸준히 성장했다. 그는 2020 사대륙선수권 500m서 38초416을 기록하면서 2위 브루클린 맥두걸을 0.117초 차로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민선은 이 대회서 500m 금메달과 함께 팀스프린트에서도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의 기량이 본격적으로 만개할 조짐을 보인 건 2021-2022 시즌부터다. 김민선은 이 시즌 1차 월드컵부터 성적과 순위를 꾸준히 끌어올렸다. 특히 캐나다 캘거리 올림픽 오벌서 열린 ISU 월드컵 4차 대회에선 37.205초를 기록해 자신의 500m 최고기록을 새로 썼다. 이는 당시 빙속 여자 대표팀 중에서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김민선은 또 한 번의 올림픽을 앞두고 유망주서 기대주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기량 과시

김민선은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제48회 전국남녀 스프린트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 겸 제76회 전국남녀 종합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 여자 500m 1차 레이스서 38초13을 기록했다. 이는 앞서 이상화가 2012년 수립한 38초18을 0.05초 앞당긴 대회 신기록이다.

뒤이어 3월 네덜란드서 열린 ISU 월드컵 파이널 500m 2차레이스에선 37초58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차지했다. 이는 김민선의 첫 월드컵 메달이다.

2022 베이징올림픽 당시, 김민선은 원래 곽윤기와 함께 개막식 공동 기수로 예정돼있었다. 하지만 실제 기수로는 김아랑이 나섰다. 이는 경기에 집중하고 싶다는 김민선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김민선은 주종목인 500m서 10조로 배정받아 일본 베테랑 선수인 고 아리사와 경기를 펼쳤다. 이날 김민선은 37초60을 기록해 전체 7위에 올랐다. 4년 전 자신의 기록을 1초 앞당겼다. 1000m에서는 8조에 배정됐다. 단거리 주자인 김민선은 초반 200m서 17초71를 기록했지만, 뒷심 부족으로 1분16초49의 기록으로 전체 16위에 올랐다.

터질 듯 말 듯 꾸준한 기대를 모았던 김민선의 기량은 올림픽을 두 번 경험하면서 비로소 만개했다.

김민선은 2022-2023시즌 1차 월드컵서 37초55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베이징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에린 잭슨, 은메달리스트 다카기 미호 등 쟁쟁한 선수가 대거 출전했던 대회서 2위를 무려 0.51초 차로 따돌리고 거둔 성과였다.

이 금메달은 개인으로서도 월드컵 첫 금메달인 동시에, 한국 빙상계로서도 이상화 이후 오랜만에 탈환한 월드컵 금메달이다. 같은 대회 1000m 종목에서는 네덜란드의 유타 레이르담에게 0.21초 뒤진 기록으로 은메달을 획득했다.

2차 월드컵 500m에선 같은 조 선수보다 한발 늦게 출발했음에도, 2위를 0.27초 차이로 넉넉히 따돌리며 재차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날 김민선의 기록은 37초21이었다. 김민선은 이 기록으로 1차 월드컵의 선전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입증해보였다.

3차 월드컵에선 부정 출발을 범해 심리적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도 참가자 중 유일한 36초대 기록(36초97)을 남겼다. 100m 구간을 참가자 중 가장 빠른 10초46으로 통과한 뒤, 페이스를 끝까지 유지한 것이 주효했다. 김민선은 3연패와 함께 개인 최고기록을 경신하는 기쁨을 누렸다.


장기 집권
가능할까

이 대회 1000m서 김민선은 6위를 기록했지만 개인 최고기록(1분13초794)을 새로 쓰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4차 월드컵 500m에선 물오른 기량을 과시하며 월드컵 4연패를 달성했다. 36초96으로 개인 최고기록을 또 다시 경신했다. 유력 우승후보로 꼽혔던 다카기 미호는 37초26,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에린 잭슨은 37초35로 김민선의 뒤를 이었다.

김민선은 5차 월드컵에서도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500m서 모든 출전 선수 중 유일하게 37초대 기록(37초90)을 남겼다. 김민선은 월드컵 5연패를 달성하며 시즌 전관왕 달성 가능성을 키웠다.

하지만 김민선의 도전은 한 끝이 모자랐다. 김민선은 6차 월드컵에 출전해 500m서 38초08의 기록으로 아쉽게 2위를 차지했다. 1위 바네사 헤어초크의 37초96에 0.12초 뒤진 기록이었다. 수개월간 국내·북미·유럽을 오가며 강행군을 펼치면서 체력적 한계에 부딪힌 게 아쉬운 대목이었다.

단일 시즌 전관왕은 현역 시절 이상화도 갖지 못한 대기록이다. 이상화는 2013-2014시즌 월드컵 1~7차 레이스서 모두 우승하고도 전관왕 등극이 불발됐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서 500m 2연패에 성공한 후 남은 월드컵 대회에 모두 불참했기 때문이다.

김민선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지난해 12월 캐나다 퀘벡서 열린 ISU 스피드스케이팅 사대륙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 이 대회에서 김민선은 38초141을 기록하며 다시 금메달 사냥에 나섰다. 이번에는 뒷심이 돋보였다. 7조서 레이스를 펼친 김민선은 첫 100m 구간을 4위(10초68)로 통과하고도 무서운 뒷심으로 1위에 올랐다.

김민선은 이후 열린 1000m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상화와 예니 볼프 등 여러 전설적인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은 긴 전성기를 누렸다. 김민선 역시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장기 집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김민선 역시 현시점 정상급 선수로 꼽히지만, 지금까지 목에 건 메달 수는 전설로 불리는 선수들에 비해 한참 적은 편이다. 다만 빙상계에서는 과거 사례에 비춰 김민선이 일단 정상권에 진입하면 독주체제를 굳히길 가능성이 크다는 기대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김 “이상화 수식어 부담? 자극제 된다”
이 “‘제2 이상화’보단 본인 이름으로”

2000년대 중후반을 주름잡은 독일의 전설적인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예니 볼프는 월드컵서 금메달 49개를 휩쓸었다. 보니 블레어가 39개, 이상화 36개, 고다이라 나오 28개, 캐트리오나 르메이돈 27개 순으로 그 뒤를 잇는다.
이들은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정상권을 유지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김민선에게는 동계올림픽 금메달이 주된 동기로 작용한다. 김민선이 오는 2026년 열릴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기량을 발전시켜 나간다면 앞으로 더 많은 메달을 목에 걸 수 있다는 것.

다만 허리 부상 재발을 조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민선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직전 허리 부상을 입은 뒤 2년간 주춤한 바 있다. 빙상계에서는 김민선이 허리를 잘 관리해 부상 재발을 막을 수만 있다면 빙속 여자 500m서 김민선의 전성시대가 열릴 수 있다고 본다.

김민선은 어린 시절부터 일찌감치 ‘포스트 이상화’로 주목받으며 항상 이상화와 비교돼왔다. 전설적인 선배와 비교되는 것이 부담일 수도 있겠지만, 김민선은 오히려 긍정적인 반응이다.

김민선은 언론 인터뷰서 관련 질문을 받고 “제가 국가대표에 선발됐던 17세 때부터 저에 대해 써 주신 모든 기사에 이상화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부담으로 느껴지진 않는다”면서 “오히려 많은 분이 제가 상화 언니만큼 잘할 수 있는 선수라고 믿어 주시고 지켜봐주신다고 생각해서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자극제가 된다”고 답했다.

김민선은 이번 시즌 월드컵 1차 대회서 여자 1000m 은메달을 획득한 뒤 “상화 언니가 꿈에 나왔다”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이어 시즌 후반에는 “이번엔 꿈에 안 나왔다. 4차 대회 끝나고 축하 문자는 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상화와 김민선은 실제로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는 관계로 알려졌다. 김민선은 2020년 7월 SBS 모바일 24 <배거슨 라이브 ㅅㅅㅅ>에 출연해 이상화와의 인연을 언급했다. 

김민선은 해당 방송서 “이상화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같은 방을 썼는데, 10세 이상 나이 차가 나서 오히려 편했다”며 “이상화가 밥도 많이 사줬다”고 말했다. 

이상화 역시 꾸준히 김민선을 응원하는 모습이다. 이상화는 김민선을 두고 “성숙한 정신력과 강한 집중력을 갖춘 선수고, 마치 어렸을 적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칭찬했다.

이상화는 은퇴 후에도 각종 방송에 출연할 때 김민선을 여러 번 언급했다. 김민선은 2021년 2월 방영된 SBS <동상이몽2 너는 내 운명> 이상화&강남 편에 함께 출연했다. 김민선이 이상화 부부와 함께 식사하는 모습이 방영됐다. 방송에서 김민선은 이상화가 가장 아끼는 후배로 소개됐다.

또 이상화는 지난해 2월 E채널 <노는 언니>에 출연해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기대주로 김민선을 꼽았다. 그러면서 세간에서 김민선을 ‘제2의 이상화’라고 부르는 것을 두고 “그것보다는 본인(김민선)의 이름으로 불러주면 좋겠다”고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상화 왕관
새로운 주인

김민선은 이상화를 넘어서기 위한 발전 방향도 스스로 찾아냈다. 김민선은 이상화가 세계신기록을 세우던 시절 초반 100m 기록이 10초09였다는 점을 언급하며 “제 기록보다 0.1초가량 빠르다. 그 부분을 앞당기면 그 이후도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스타트가 마음처럼 쉽게 되진 않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보완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민선은 다음 달 치러지는 세계선수권 대회서 세계 최정상 자리에 다시 한번 도전한다. 관건은 컨디션 조절이다. 김민선이 세 대륙을 오간 강행군으로 생긴 피로를 풀고, 몸 상태를 제대로 끌어올릴 수만 있다면 우승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전망이다.


<jeongun15@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