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신 빙속 여제’ 김민선

이상화 넘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제2의 이상화’라는 수식어를 떨쳐내고 ‘제1의 김민선’으로 우뚝 섰다. 이상화 이후 스피드스케이팅계의 최고 기대주로 꼽히는 김민선이 이상화의 기록을 하나씩 넘어서고 있다. 최근 세계대회서도 압도적인 기량을 과시하고 있는 김민선에게 ‘원조 빙속 여제’ 이상화 역시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고 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에이스’ 김민선이 제104회 전국동계체육대회(이하 동계체전)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대회 폐회일인 지난 20일, 대한체육회는 한국체육기자연맹 기자단 투표 결과 김민선이 MVP로 선정됐다고 전했다.

김민선은 이번 동계체전서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일반부 500m, 1000m, 팀추월 종목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대회 3관왕에 등극했다. 이 중 500m(37초90)와 1000m(1분16초35)에선 대회 신기록을 경신했다. 둘 모두 이상화의 종전 기록을 넘어선 것.

새로운 기록
대회 휩쓸다

사실 대회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김민선의 3관왕 기록이 희귀하다고 평할 수는 없다. 이번 대회서 3관왕을 22명이나 배출했던 데다 4관왕은 10명에, 5관왕도 2명 나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민선이 MVP로 뽑힌 이유는 최근 국제대회를 휩쓴 후광효과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김민선은 체육기자연맹 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김민선은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이 주관하는 2022-2023 시즌 월드컵서 금메달 5개를 따냈다. 올해 초에는 2023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세계대학경기대회에 출전해 3관왕에 올랐다. 이런 와중에 국내 최대 대회인 동계체전에서도 호성적을 거두자, 여러 성과를 종합해 ‘신 빙속 여제’ 대관식을 열어준 모양새다.

김민선은 “국내서 열리는 가장 큰 대회인 동계체전에서 MVP를 수상하게 돼 기쁘고 감사드린다”며 “이번 동계체전은 개인적으로는 대회 신기록을 경신해 더 큰 의미가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의미 있는 상을 받은 만큼 세계선수권대회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김민선은 11세 때 처음 스케이트를 신었다. 다른 스케이팅 선수들에 비해서는 다소 늦은 나이였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서 이상화가 스피드스케이팅 500m 종목서 금메달을 따는 모습에 반해 처음 스케이트를 신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민선은 처음에 피겨 스케이팅으로 스케이팅을 시작했다. 그러다 쇼트트랙으로 종목을 한 차례 변경했고, 다시 스피드스케이팅을 권유받았다. 김민선은 6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스피드스케이팅을 시작했다.

이후 김민선은 각종 주니어 대회를 휩쓸면서 이상화의 뒤를 이을 주역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김민선은 초·중등부 시절 동계체전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 종목(500m, 1000m)서 매번 상위권 성적을 기록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16년에는 릴레함메르 청소년 동계올림픽에 출전해 500m 금메달, 매스스타트 동메달을 획득했다.

2017년 9월 국제빙상경기연맹 폴클래식 여자 500m서 37초70을 기록했다. 이상화가 10년 전 세웠던 세계주니어신기록 37초81을 뛰어넘는 기록이었다.

하지만 당시 김민선의 기록은 공인기록으로 인정되지 못했다. ISU 규정상 세계신기록을 수립한 선수는 도핑검사를 해야 하는데, 주최 측 과실로 김민선의 도핑검사가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결국 당시 김민선이 세운 기록은 비공인 기록으로 남게 됐다.


동계체전 3관왕…대회 신기록 ‘MVP’
ISU 주관 2022-2023 월드컵 금메달 5개

김민선은 3개월 후인 2017년 12월 2017-2018 ISU 월드컵 4차 대회에 출전해 세계주니어기록을 재차 경신했다. 그는 37초78의 기록으로 이상화가 세운 기록을 0.03초 앞당겼다. 이 기록은 문제없이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았다. 

이후 김민선은 국가대표 선발전을 무난히 통과하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출전권을 자력으로 획득했다. 2017년 제50회 빙상인추모 전국 남녀 종목별 선수권 대회 1000m서도 1위를 차지하며 올림픽 호성적 기대감을 높였다.

실제로 김민선은 같은 해 월드컵 2차 대회서도 6위까지 오르며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소속팀 의정부시청 감독인 제갈성렬은 김민선의 재능과 기량에 관해 “타고난 순발력에 좋은 신체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체도 길다”며 “특히 스케이팅에 관한 이해도가 좋다. 스펀지 같은 선수다. 얼굴은 아기 같지만 승부욕과 독기가 있다”고 호평했다.

하지만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운이 따르지 않았다. 김민선은 경기 일주일 전 허리 부상을 당하면서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김민선은 부상을 안고 뛴 500m 경기서 16위를 기록했다.

올림픽서 아쉬움을 삼키고, 부상의 여파로 한동안 잠잠한 시간이 흘렀다. 그런 와중에도 김민선은 꾸준히 성장했다. 그는 2020 사대륙선수권 500m서 38초416을 기록하면서 2위 브루클린 맥두걸을 0.117초 차로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민선은 이 대회서 500m 금메달과 함께 팀스프린트에서도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의 기량이 본격적으로 만개할 조짐을 보인 건 2021-2022 시즌부터다. 김민선은 이 시즌 1차 월드컵부터 성적과 순위를 꾸준히 끌어올렸다. 특히 캐나다 캘거리 올림픽 오벌서 열린 ISU 월드컵 4차 대회에선 37.205초를 기록해 자신의 500m 최고기록을 새로 썼다. 이는 당시 빙속 여자 대표팀 중에서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김민선은 또 한 번의 올림픽을 앞두고 유망주서 기대주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기량 과시

김민선은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제48회 전국남녀 스프린트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 겸 제76회 전국남녀 종합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 여자 500m 1차 레이스서 38초13을 기록했다. 이는 앞서 이상화가 2012년 수립한 38초18을 0.05초 앞당긴 대회 신기록이다.

뒤이어 3월 네덜란드서 열린 ISU 월드컵 파이널 500m 2차레이스에선 37초58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차지했다. 이는 김민선의 첫 월드컵 메달이다.

2022 베이징올림픽 당시, 김민선은 원래 곽윤기와 함께 개막식 공동 기수로 예정돼있었다. 하지만 실제 기수로는 김아랑이 나섰다. 이는 경기에 집중하고 싶다는 김민선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김민선은 주종목인 500m서 10조로 배정받아 일본 베테랑 선수인 고 아리사와 경기를 펼쳤다. 이날 김민선은 37초60을 기록해 전체 7위에 올랐다. 4년 전 자신의 기록을 1초 앞당겼다. 1000m에서는 8조에 배정됐다. 단거리 주자인 김민선은 초반 200m서 17초71를 기록했지만, 뒷심 부족으로 1분16초49의 기록으로 전체 16위에 올랐다.

터질 듯 말 듯 꾸준한 기대를 모았던 김민선의 기량은 올림픽을 두 번 경험하면서 비로소 만개했다.

김민선은 2022-2023시즌 1차 월드컵서 37초55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베이징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에린 잭슨, 은메달리스트 다카기 미호 등 쟁쟁한 선수가 대거 출전했던 대회서 2위를 무려 0.51초 차로 따돌리고 거둔 성과였다.

이 금메달은 개인으로서도 월드컵 첫 금메달인 동시에, 한국 빙상계로서도 이상화 이후 오랜만에 탈환한 월드컵 금메달이다. 같은 대회 1000m 종목에서는 네덜란드의 유타 레이르담에게 0.21초 뒤진 기록으로 은메달을 획득했다.

2차 월드컵 500m에선 같은 조 선수보다 한발 늦게 출발했음에도, 2위를 0.27초 차이로 넉넉히 따돌리며 재차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날 김민선의 기록은 37초21이었다. 김민선은 이 기록으로 1차 월드컵의 선전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입증해보였다.

3차 월드컵에선 부정 출발을 범해 심리적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도 참가자 중 유일한 36초대 기록(36초97)을 남겼다. 100m 구간을 참가자 중 가장 빠른 10초46으로 통과한 뒤, 페이스를 끝까지 유지한 것이 주효했다. 김민선은 3연패와 함께 개인 최고기록을 경신하는 기쁨을 누렸다.


장기 집권
가능할까

이 대회 1000m서 김민선은 6위를 기록했지만 개인 최고기록(1분13초794)을 새로 쓰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4차 월드컵 500m에선 물오른 기량을 과시하며 월드컵 4연패를 달성했다. 36초96으로 개인 최고기록을 또 다시 경신했다. 유력 우승후보로 꼽혔던 다카기 미호는 37초26,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에린 잭슨은 37초35로 김민선의 뒤를 이었다.

김민선은 5차 월드컵에서도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500m서 모든 출전 선수 중 유일하게 37초대 기록(37초90)을 남겼다. 김민선은 월드컵 5연패를 달성하며 시즌 전관왕 달성 가능성을 키웠다.

하지만 김민선의 도전은 한 끝이 모자랐다. 김민선은 6차 월드컵에 출전해 500m서 38초08의 기록으로 아쉽게 2위를 차지했다. 1위 바네사 헤어초크의 37초96에 0.12초 뒤진 기록이었다. 수개월간 국내·북미·유럽을 오가며 강행군을 펼치면서 체력적 한계에 부딪힌 게 아쉬운 대목이었다.

단일 시즌 전관왕은 현역 시절 이상화도 갖지 못한 대기록이다. 이상화는 2013-2014시즌 월드컵 1~7차 레이스서 모두 우승하고도 전관왕 등극이 불발됐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서 500m 2연패에 성공한 후 남은 월드컵 대회에 모두 불참했기 때문이다.

김민선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지난해 12월 캐나다 퀘벡서 열린 ISU 스피드스케이팅 사대륙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 이 대회에서 김민선은 38초141을 기록하며 다시 금메달 사냥에 나섰다. 이번에는 뒷심이 돋보였다. 7조서 레이스를 펼친 김민선은 첫 100m 구간을 4위(10초68)로 통과하고도 무서운 뒷심으로 1위에 올랐다.

김민선은 이후 열린 1000m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상화와 예니 볼프 등 여러 전설적인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은 긴 전성기를 누렸다. 김민선 역시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장기 집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김민선 역시 현시점 정상급 선수로 꼽히지만, 지금까지 목에 건 메달 수는 전설로 불리는 선수들에 비해 한참 적은 편이다. 다만 빙상계에서는 과거 사례에 비춰 김민선이 일단 정상권에 진입하면 독주체제를 굳히길 가능성이 크다는 기대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김 “이상화 수식어 부담? 자극제 된다”
이 “‘제2 이상화’보단 본인 이름으로”

2000년대 중후반을 주름잡은 독일의 전설적인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예니 볼프는 월드컵서 금메달 49개를 휩쓸었다. 보니 블레어가 39개, 이상화 36개, 고다이라 나오 28개, 캐트리오나 르메이돈 27개 순으로 그 뒤를 잇는다.
이들은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정상권을 유지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김민선에게는 동계올림픽 금메달이 주된 동기로 작용한다. 김민선이 오는 2026년 열릴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기량을 발전시켜 나간다면 앞으로 더 많은 메달을 목에 걸 수 있다는 것.

다만 허리 부상 재발을 조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민선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직전 허리 부상을 입은 뒤 2년간 주춤한 바 있다. 빙상계에서는 김민선이 허리를 잘 관리해 부상 재발을 막을 수만 있다면 빙속 여자 500m서 김민선의 전성시대가 열릴 수 있다고 본다.

김민선은 어린 시절부터 일찌감치 ‘포스트 이상화’로 주목받으며 항상 이상화와 비교돼왔다. 전설적인 선배와 비교되는 것이 부담일 수도 있겠지만, 김민선은 오히려 긍정적인 반응이다.

김민선은 언론 인터뷰서 관련 질문을 받고 “제가 국가대표에 선발됐던 17세 때부터 저에 대해 써 주신 모든 기사에 이상화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부담으로 느껴지진 않는다”면서 “오히려 많은 분이 제가 상화 언니만큼 잘할 수 있는 선수라고 믿어 주시고 지켜봐주신다고 생각해서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자극제가 된다”고 답했다.

김민선은 이번 시즌 월드컵 1차 대회서 여자 1000m 은메달을 획득한 뒤 “상화 언니가 꿈에 나왔다”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이어 시즌 후반에는 “이번엔 꿈에 안 나왔다. 4차 대회 끝나고 축하 문자는 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상화와 김민선은 실제로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는 관계로 알려졌다. 김민선은 2020년 7월 SBS 모바일 24 <배거슨 라이브 ㅅㅅㅅ>에 출연해 이상화와의 인연을 언급했다. 

김민선은 해당 방송서 “이상화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같은 방을 썼는데, 10세 이상 나이 차가 나서 오히려 편했다”며 “이상화가 밥도 많이 사줬다”고 말했다. 

이상화 역시 꾸준히 김민선을 응원하는 모습이다. 이상화는 김민선을 두고 “성숙한 정신력과 강한 집중력을 갖춘 선수고, 마치 어렸을 적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칭찬했다.

이상화는 은퇴 후에도 각종 방송에 출연할 때 김민선을 여러 번 언급했다. 김민선은 2021년 2월 방영된 SBS <동상이몽2 너는 내 운명> 이상화&강남 편에 함께 출연했다. 김민선이 이상화 부부와 함께 식사하는 모습이 방영됐다. 방송에서 김민선은 이상화가 가장 아끼는 후배로 소개됐다.

또 이상화는 지난해 2월 E채널 <노는 언니>에 출연해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기대주로 김민선을 꼽았다. 그러면서 세간에서 김민선을 ‘제2의 이상화’라고 부르는 것을 두고 “그것보다는 본인(김민선)의 이름으로 불러주면 좋겠다”고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상화 왕관
새로운 주인

김민선은 이상화를 넘어서기 위한 발전 방향도 스스로 찾아냈다. 김민선은 이상화가 세계신기록을 세우던 시절 초반 100m 기록이 10초09였다는 점을 언급하며 “제 기록보다 0.1초가량 빠르다. 그 부분을 앞당기면 그 이후도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스타트가 마음처럼 쉽게 되진 않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보완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민선은 다음 달 치러지는 세계선수권 대회서 세계 최정상 자리에 다시 한번 도전한다. 관건은 컨디션 조절이다. 김민선이 세 대륙을 오간 강행군으로 생긴 피로를 풀고, 몸 상태를 제대로 끌어올릴 수만 있다면 우승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전망이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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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