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설 끓는’ 김정은 후계자 괴소문

오빠·동생 제치고 북한 여왕?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북한의 3세대 독재자 김정은’이 4세대 독재자를 키워내고 있다. 주인공은 올해 만 9세인 장녀 김주애로, 한국식으로는 초등학교 졸업을 몇 년 앞두고 있는 미성년자다. 치열한 후계자 경쟁 끝에 친형을 살해한 김 위원장이 자녀들의 경쟁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모양새다. 이 같은 아버지의 깊은 사랑(?) 덕분에 미성년자 김주애는 벌써부터 아버지의 독재정치를 배우고 있다.

북한의 4대 세습이 시작됐다. 최근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양이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북한 전문가들은 이런 저런 해석을 내놓고 있다. 김주애가 다음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주장부터 후에 성년이 된 장남이 진짜 후계자일 거라는 주장까지 천차만별이다.

급 뜨는 장녀
그는 누구?

북한 소식통이 4대 세습을 거론하게 된 시점은 ‘김정은의 건강이상설’이 퍼지고 나서부터다. 최근 <일요시사>가 만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북한 취재 경험이 있는 기자들은 김 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김정은의 건강이 심상치 않다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다만 사실 확인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체형적으로 봤을 때 10년도 못 가 단명할 것이라는 분석은 수차례 나온 바 있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알아보는 중”이라고 부연했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체격적으로 많은 차이를 보이는 김 위원장은 현재 심각한 고도비만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소식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김 위원장이 고도비만인 이유는 ‘체제의 안정’ 때문이라고 <일요시사>를 통해 주장했다.

이 전문가는 “아버지(김정일 국방위원장)는 수십년간 후계수업을 받으면서 권력구도를 튼튼히 했던 바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빠른 시기에 권력을 승계받은 김 위원장은 불안한 권력체계를 본인의 이미지 정치로 풀어가려 했다”며 “그의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이미지를 동일화하기 위해 일부러 몸을 불렸다. 즉, 현재 그의 풍채는 불안한 권력구도의 발로”라고 해석했다.

그의 말대로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은 후계자로 낙점된 후 약 22년간을 기다렸다가 권력을 넘겨받은 바 있다. 오랜 기간 동안 김 위원장은 본인에게 충성을 맹세할 인사들을 착실히 모아왔고, 촘촘한 시스템을 건설해 ‘안전한’ 권력구도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이 정식으로 후계자 수업을 받은 기간은 고작 1년3개월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후계구도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던 김 위원장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권력을 안정시키려 했다.

김정은 건강이상설 “10년 내에 죽는다”
김주애 까메오설…장남 후계설 진실은?

북한 전문가들은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처형해 ‘공포정치’를 실행한 것도, 살을 일부러 찌워 ‘이미지 정치’를 실행한 것도 모두 이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불안한 권력구도가 김 위원장의 불안한 건강을 만들어낸 셈이다.

북한 잠입 취재 경험이 있는 한 기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의료비에만 한 해에 수십억씩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의료계 관계자들을 해외에 이주시켜 선진 의술을 배우고, 아니면 유능한 의사를 직접 초빙해 북한에 데려가기도 한다”고 건강이상설에 대해 평가했다.


그의 건강이상설이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몇 년 전부터 북한의 후계구도를 분석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이들은 김 위원장의 자녀들에게 관심을 기울였고, 김 위원장과 리설주 여사 사이에 총 세 명의 자녀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현재까지 대외에 알려진 김 위원장의 자녀는 총 세 명으로 장남(2010년생), 장녀(2013년생), 막내(2017년생)로 알려져 있다.

상당수가 2010년생 장남이 다음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요즘 언론이 주목하는 유력한 후계자는 장녀 김주애다. 김주애는 최근 여러 번 공개석상에 등장하며 후계경쟁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김 위원장의 장녀 김주애가 대외석상에 얼굴을 처음 드러낸 것은 지난해 11월18일이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17’형 시험발사를 격려하기 위해 발사장을 찾은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 김주애를 대동시켰다.

김주애는 행사 내내 김 위원장의 옆자리를 지키며 김 위원장과 스킨십을 하고 군인들을 치하하는 등 ‘어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마친 김주애는 8일 후인 26일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미사일 발사 성공을 자축하는 행사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김주애는 이날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갑자기 
왜 등장?

그는 김 위원장과 걸어갈 때 그보다 더 앞서서 걷는가 하면, 직접 공로자들과 악수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관영 매체들도 김주애의 이런 모습을 크게 부각시켜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다음 날인 27일 보도를 통해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신형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포-17형 시험발사 성공에 기여한 성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시었다”며 “경애하는 총비서 동지께서 존귀하신 자제분과 함께 촬영장에 나왔다”고 전했다.

이후 몇 개월간 잠잠했던 김주애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 8일이다. 평양 김일성광장서 열린 조선인민군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한 김주애는 검은색 코트를 입고 어머니인 리 여사와 나란히 서서 행사를 관람했다.

눈길을 끈 것은 이날 ‘김주애 백마’가 등장한 점이다. 북한에서 백마는 백두혈통의 상징으로 통한다. 실제로 역대 북한의 지도자는 모두 백마를 소유한 바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물론, 김정은도 2019년 10월 <노동신문>을 통해 본인의 백마를 세간에 알린 바 있다.


지난 13일, 조선중앙TV는 녹화중계를 통해 “우리 원수님 백두전구를 주름잡아 내달리셨던 전설의 명마, 그 모습도 눈부신 백두산군마가 기병대의 선두에 서 있다. 사랑하는 자제(김주애)분께서 제일로 사랑하시는 충마가 그 뒤를 따라 활기찬 열병의 흐름을 이끌어간다”고 보도했다.

김주애의 존재감은 열병식 후에도 이어졌다. 열병식 후 장성들과 가진 만찬 자리서 김주애는 시종일관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며 주인공이 됐다. 군 장성들도 김 위원장보다 김주애 주변에 몰렸고, 김 위원장과 리 여사는 옆으로 밀려났다.

김주애의 예사롭지 않은 존재감에 외신과 국내 언론은 김주애가 다음 후계자가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8일 “김정은은 딸이 후계자라는 분명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면서 “전문가들은 군사 고위 간부들로 가득 찬 연회장 사진의 정중앙을 차지한 소녀의 모습을 보고 김정은이 딸을 후계자로 삼고 있다는 명확한 신호를 보낸 것”이라 평가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동아시아 협력 센터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김주애가 일찍부터 중요한 정치행사에 참석해 제왕학을 습득한다면, 김정은 위원장이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처럼 갑자기 사망하더라도 안정적으로 권력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백마냐
백두냐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딸은 눈길을 끄는 의미만 있을 뿐 후에 진짜 후계자는 결국 장남이 차지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남성우월주의 문화가 팽배한 북한 사회서 ‘여성 수령’이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란 점 ▲5세대 승계서 김씨 성을 물려주지 못할 것이라는 점 ▲백두혈통의 근본이 흔들릴 것이라는 점은 모두 김주애가 다음 후계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에 힘을 싣는다.

최근까지는 이 ‘장남 후계설’이 가장 납득가는 분석으로 자리 잡아왔다. 지난해 말부터 자녀를 공개한 김 위원장이 곧 장남도 관영 매체에 공개해 북한 주민들에게 각인시킬 것으로 예측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장남의 등장은커녕 김주애의 재등장만 이뤄지고 있다. 

한 북한 소식통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후계구도가)이제 김주애로 굳어지는 것 같다. 아니라면 이렇게 자주, 많이 김주애를 관영 매체에 등장시키지 않는다. 이미 북한 주민 모두가 김주애를 봤지 않았나”라며 “후계자가 아니라면 저럴 필요가 없다. 북한 주민들이 후에 생길 진짜 후계자와 혼돈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주애가 한두 번 잠깐 나오는 수준이 아닌, 오랜 시간 북한 주민들에게 노출되고 있다는 점은 이미 그가 후계자로 키워지고 있다는 분석의 기반이 된다. 

<일요시사>와 직접 만난 다수의 북한 관련 취재원들도 한결같이 김주애가 사실상 다음 후계자일 것이라고 봤다. 이들 중 상당수는 장남 신변에 모종의 어떤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장녀인 김주애가 다음 후계자가 된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북한과의 소통업무를 맡았던 전직 공직자는 <일요시사>에 “후계 콤플렉스가 있는 김정은은 후계자 양성을 누구보다 빨리 진행시키려했다. 그 주인공은 당연히 장남이었다”며 “그러나 최근 김주애로 후계구도가 정해진 모양이다. 장남의 신변에 분명 어떤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 의견을 개진했다.

아들 장애·사망·혈통? 루머만 무성
동요하는 북 주민들…내란 가능성도

어린 시절 후계자로 지목됐던 장남이 최근 후계구도가 밀린 데 대해 여러 북한 소식통은 그가 장애인이 됐거나 아예 사망했을 것이란 이른바 ‘사망설’을 퍼뜨리기도 했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수령이라는 존재를 ’당과 인민대중의 사상의식을 이끌어내는 전일체’로 규정한다. 인민대중이 ‘강건한 지도자’로부터 옳은 지도를 받을 때만 공고한 집단이 될 수 있다는 게 주체사상의 본질이다. 여기서 말하는 강건함은 신체적, 정신적인 강건함 모두를 포함한다.

그러나 새로운 수령이 남들과 다른 조건의 신체와 몸을 가지고 있다면 주체사상의 본질이 뒤틀리게 된다. 북한 전문가들은 남성중심주의가 강한 북한서 김정은의 장녀가 후계자가 된 것에는 모두가 납득할만한 충분한 사유가 있을 것이라 보고 있다.

후계자로 지목받았던 장남이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어릴 때는 몰랐던 치명적인 병이 발견됐거나,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됐을 것이란 추측이다.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던 한 의원실 관계자는 장남이 아예 죽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이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2013년생인 김주애는 여러 매체를 통해 어릴 때부터 선전하고 있는데, 장남은 그 나이 때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왔고, 현재는 생사조차 구분이 되지 않는다”며 “아예 죽었거나 혹은 없었거나 둘 중 하나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김주애보다 세 살 위인 알려진 장남은 올해 만 13세가 됐을 것으로 추측되며 현재까지 대외적으로 노출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김주애가 만 9세 나이 때부터 여러 행사장에 따라다닌 것에 비하면 장남은 이상하리만큼 베일에 쌓여있다.

그는 “이렇게 장남의 존재가 지워질 수 있을까 싶다. 심지어 리설주가 그를 낳았는지 안 낳았는지도 사실 확인이 안 된다. 존재가 없었거나 었어졌거나라고 생각하면 앞뒤가 들어맞는다”고 말했다.

장애인설, 무존재설, 사망설 등 김정은의 장남에 관해 떠돌고 있는 소문은 무성하다. 모두 확인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후계구도가 완전히 김주애에게로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2인자
트라우마

북한 관련 강의를 하고 있는 한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주애가 이미 주민들에게 ‘각인’됐다고 분석해야 한다. 북한 사회에서는 이렇게 노출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쭉 가는 구조”라며 “한국처럼 갑자기 중간에 나와서 지도자가 바뀌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선수교체가 안되는 시스템”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정은이 김주애를 후계자로 생각하고 키우고 있다고 봐야 한다. 왜 김주애를 선택했는지 미스터리지만 김주애가 4대 세습의 주인공이라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소문이 난무했던 북한의 4대 세습은 이제 현실화됐다. 무늬만 ‘민주국가’인 김씨 왕국은 미성년자인 딸에게 벌써부터 새 지도자 육성에 들어갔다. 이제 한국은 4세대 리더로 추대되고 있는 김주애가 어떤 인물인지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이제 고작 9세인 김주애에게 한반도의 운명이 달려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의 기사> 배 다른 형제 가능성은?

북한의 첫 여성 지도자 탄생을 두고 많은 사람이 의아해하고 있다.

사실상 왕국을 건설한 북한이 ‘여왕’의 탄생을 쉽게 받아들일 것이냐는 의구심이다.

일각에선 북한 지도부가 새로운 자녀의 탄생을 기다릴 것이라고 예측이 나오기도 하지만 북한 관련 취재원은 이 같은 예측 또한 신빙성이 많이 낮다고 주장한다.

김정은의 여성편력이 할아버지나 아버지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김정은의 머리부터 발까지 다 체크한다. 그런데 여자 문제는 하나도 없다. 다른 문제는 여러 가지 일으킨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여자 관련 이슈는 없었다”며 “리설주가 김정은에게 잘해주어서 그런 것도 있고, 김정은 스스로도 그런 욕구가 적은 편으로 파악 중”이라고 전했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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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