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에 드리우는 조국 그림자

‘나도 그처럼?’ 바람 앞 등불 신세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3일, 법원으로부터 실형을 선고받으며 ‘조국 사태’는 일가의 구속으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유죄를 선고받은 조 전 장관 뒤에서 숨죽이며 눈치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벌써 “죽은 조국이 산 이재명을 잡고 있다”는 무서운 소문까지 돌고 있다. 

친노(친 노무현)·친문(친 문재인)계가 문 전 대통령을 내세워 만든 더불어민주당은 2015년 출범한 이후 모든 선거에서 이겨왔다. 출범 직후 치른 2016년 총선에서 123석을 확보해 원내 1당을 차지했고, 2020년 총선에서는 총 180석을 확보해 거대 여당으로 자리 잡았다. ‘장미 대선’으로 불렸던 2017년 대통령선거에서는 민주당의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선되며 정권을 되찾아왔다.

이미
정해진 길?

민주당은 이 기세를 몰아 2018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승리했다. 16개의 광역단체장 자리 중 14개를 가져왔고, 기초단체장 자리도 151석을 확보했다. 지방의회에서도 민주당 지방의원 대부분이 과반 이상을 차지해 압도적 승리를 이뤄냈다.

중앙권력과 지방권력, 의회권력까지 모두 휩쓴 민주당은 지난 7년간 한국서 가장 인기있는 정당으로 거듭났었다.

그런 민주당의 전성기가 꺾이기 시작한 것은 문재인정부 임기 말부터다. 문 전 대통령의 개인 지지율은 임기 말에도 40%에 육박하며 건재함을 과시했지만, 민주당의 인기는 이때부터 조용히 빠지고 있었다. 


문정부 출범 당시 압도적이었던 민주당 지지율은 점점 국민의힘에 따라잡히기 시작했고, 제20대 대선이 코앞으로 닥칠 무렵엔 수차례나 국민의힘에 역전을 허용했다. 계속해서 국민의힘에게 ‘지는’ 결과를 받아든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를 대선후보로 내세우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대선에서 패배해 정권을 윤석열정부에 넘겨주게 됐다.

대선 후 얼마 뒤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대부분의 광역단체장 자리를 내줬고, 기초단체장과 광역의원 숫자에서도 역시 크게 밀리며 ‘총패’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민주당의 흥망성쇠를 모두 지켜본 정계 관계자들은 민주당의 부진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정리했다. 첫 번째는 문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문정부 4년간 서울 집값은 약 15% 올랐고, 경기도를 포함한 수도권 전체 집값은 약 17% 올랐다.

그러나 부동산원이 정부 산하 조직인 만큼, 집값 상승률을 너무 보수적으로 조사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랐다.

민간조사기관인 KB통계에 따르면, 서울 전체 집값 상승률은 약 35%로 집계됐고,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등록된 서울 집거래 중 집값이 두 배 이상 오른 채로 거래된 곳도 허다했다. 국민들이 실제 피부로 느끼고 있는 집값 상승률이 문정부가 우려했던 것보다 심각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끼리 공공연하게 떠들었던 말은 “권력을 민주당에 몰아줬더니 돌아오는 건 집값 상승 뿐이더라”였고, 국민의힘에선 이 프레임을 선거에 적극 활용했다.


민주당 패착 원인으로 ‘조국 사태’ 거론
조 전 장관, 1심 실형 선고로 다시 각인

부동산정책 실패와 더불어 정계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지적한 민주당의 패착은 민주당의 ‘내로남불’식 비리 대응이었다.

대선 당시 만난 국민의힘 청년 지지자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은 ‘국민의힘보다 도덕적이고 정의롭다’는 항간의 인식을 스스로 내려놨다. 지난 5년간 무능한 정부였던 점은 참아도 저런 내로남불은 참을 수가 없었다”고 국민의힘 지지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이처럼 청년세대들이 민주당에 날선 비판을 가하는 주된 이유는 이른바 ‘조국 사태’ 때문이다. 조국 일가가 저지른 입시 비리는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고, 민주당으로부터 마음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됐다.

문정부의 ‘황태자’라 불렸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임기 초반부터 차기 대권후보로 거론될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임기 초, 조 전 장관은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발탁돼 문 전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필했다. 

그는 20만개 이상의 동의를 받은 글에 민정비서관이 직접 대답하는 이른바 ‘청와대 국민청원’ 운동에 매번 등장하며 본인의 이름을 국민에게 알렸다. 당시 다수의 민주당 관계자들은 사실상 문 전 대통령이 ‘문정부의 간판’으로 조 전 장관을 키우는 것이라고 인식했다.

‘검찰개혁’을 국정사업으로 인식하던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장관을 ‘적임자’라고 지켜세우며 장관직으로 임명할 것이라 공식적으로 밝혔고, 절차에 따라 인사청문 요청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문 전 대통령은 별 무리 없이 그가 청문회를 통과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조국 가족을 둘러싼 각종 비리들이 터져나온 것이다. 조 전 장관 본인이 연루된 사모펀드, 웅동학원 위장 소송 등이 거론됐고, 동생 부부의 위장 이혼 의혹도 함께 불거졌다.

가장 크게 문제가 된 건 요청안 공개일로부터 며칠이 지난 시점에 불거진 그의 딸 조민씨의 부정 입학, 부정 장학금 수령 의혹이었다. 부정 입학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조씨는 한영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 환경생태공합부를 졸업한 뒤,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이었다. 

국민의힘은 조씨가 세 학교를 입학하는 과정에서 모두 시험을 치르지 않은 ‘무시험 전형’으로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한영외고 입학에는 ‘정원 외 귀국자’ 전형으로, 고려대 입학엔 의학 논문 제1저자에 이름을 올리는 등의 방법을 활용한 ‘세계선도인재’ 전형으로, 부산 의전원 입학에선 의학교육 입문검사(MEET)가 없는 면접 전형으로 입학했다는 것이었다.

한 방에 
훅 갔다


조 전 장관 측은 해당 의혹들을 하나하나 반박하며 조씨가 합당한 방법으로 입시를 치렀다고 반박했다. 한영외고 입시에서는 정당한 과정을 치렀고, 고대 입시에서도 의학 논문이 반영되지 않았고, 이는 부산 의전원 입학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해당 의혹을 취재한 언론 매체들은 끊임없이 조씨의 허위 스펙을 파고들었고, 여러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나며 조씨 일가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결국 검찰은 해당 의혹들을 취합해 조 전 장관과 정 교수를 기소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1월 재판서 대법원은 검찰 측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2부는 업무방해와 자본시장법 위반, 증거인멸교사 등에서 정 교수의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면서 징역 4년과 벌금 5000만원, 추징금 약 1000만원을 선고했다. 

조 전 장관도 지난 3일, 1심서 징역 2년형과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받았다.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1부는 조 전 장관이 조씨의 부산대 의전원 입시에서 허위 공문 작성, 업무방해, 사문서 위조 등의 죄를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법정 구속을 피한 조 전 장관은 판결 후 기자들과 만나 “혐의 중 8~9개 정도가 무죄로 판결났다”며 “이 점에 대해 재판부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정의로운 법조인’이 ‘자녀 입시 부정 범죄자’로 바뀌는 데 꼬박 4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조국 일가뿐만 아니라 문정부와 민주당은 많은 것을 잃어야만 했다. 


학교서 청년들에게 공정과 정의를 가르치던 조 전 장관이 부정을 저질렀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대중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번 재판 결과를 지켜본 여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본인의 SNS 등으로 부패한 정치인들을 비판해오던 장본인이 사실은 그들과 다를 게 없었음이 드러나는 순간”이라며 “조 전 장관뿐 아니라 문정부, 민주당 진영 전체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야권 전체가 조 전 장관과 동일시되는 이유는 그와 ‘정의’를 함께 외치던 민주당 진영 전체가 그를 구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청문회 과정에서 조 전 장관에 대한 의혹이 속속 제기되자 민주당은 발벗고 ‘조국 지키기’에 뛰어들었다. 검찰개혁을 시행하려 하자 여권서 악의적인 공격을 해댄다는 게 당시 민주당의 논리였다.

흥망성쇠
학습효과 

조국 사태가 일파만파로 퍼질 때쯤 문 전 대통령은 2020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본 조국 전 장관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조 전 장관이 지금까지 겪었던 고초만으로도 아주 크게 마음에 빚을 졌다”며 “이제는(조 전 장관이 추진했던)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 등이 다 통과됐으니 조 전 장관을 놓아달라”고 그를 옹호했다.

심지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조국 가족을 ‘안중근’에 빗대기도 했다.

추 전 장관은 2021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조국을 묻어두자고 하면 뭐하러 정치하고 촛불 광장에 나왔던 것이냐”며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일본 재판관의 재판을 받아 테러리스트가 돼 사형 집행을 당했는데, 그렇게 끝났으니 일본의 지배를 받아들이고 협조하자는 얘기나 똑같다”고 주장했다.

문 전 대통령, 추 전 장관 외 많은 친문 의원들들도 조 전 장관을 공격할 때마다 그를 옹호하면서 악의적인 정치쇼라고 주장했다. 정치 평론가들은 이때 민주당이 조 전 장관을 버리지 못한 것에 큰 패착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지방선거 직후 <한겨레>는 ‘민주당의 최대 패착’에 대한 여론조사를 벌인 바 있다. 조사 대상은 정치·사회학자와 평론가, 시민사회와 법조계 인사 20명이었다.

이들 중 과반이 넘는 12명은 민주당의 패배 원인으로 ‘조국 사태’를 들었다. 응답자들은 민주당의 실패의 시작이 ‘조국 사태’라고 인식하고 있었고, 그 이후에 이어진 민주당의 ‘내로남불’식 논리가 기름을 끼얹었다고 평가했다.

조사에 참여한 김만권 경희대 교수는 “이 모든 사태의 시작은 조국 사태였다”며 “가족이 어떻게 계급 재생산, 권력 재생산의 철저한 기반이 되는지 대중에게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다른 참여자인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사회 전반적으로 (국민의힘보다 민주당이)더한다는 인식을 퍼뜨린 계기”라고 해석했다.  

이 같은 패착의 원인은 현재 민주당 현역 의원들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지난 조국 사태 때 그를 옹호했던 현역 민주당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당시에 높았던 문정부의 지지율에 취해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며 “조 전 장관을 옹호한 것을 후회하지 않으나, 국민 정서와 동떨어져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내로남불식 민주당 감싸기 이번에도?
현역 의원 “조 트라우마가 이 잡을 것”

이어 “나뿐만 아니라 여러 동료 의원들이 같은 생각일 것이다. 민주당이 더 이상 쇄락의 길로 빠지지 않게 국민의 마음을 더 면밀히 지켜보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이 대표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는 의원 중 이때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이들이 더러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원이 조 전 장관에 유죄를 선고하며 여론이 한쪽으로 기운 상황에서 대중은 이제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눈길을 돌리고 있다. 이 대표의 상황도 조 전 장관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의혹이 제기되며 언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던 조 전 장관처럼 이 대표는 연일 검찰에 출석하며 언론과 대중의 질타를 받고 있다. 아직 혐의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그는 민주당 대표로 당선되며 민주당과 동일시되고 있는 분위기다.

다만, 조 전 장관과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민주당 인사들이 그를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고 있다는 부분이다. 친명(친 이재명)계 몇몇을 제외한 민주당 의원들과 원로들은 조국 사태 때처럼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 않다.

한 친문계 의원은 <일요시사>에 “조 전 장관 사건 당시 발벗고 나섰던 의원들 중 상당수는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지난해 선거 과정에서)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직접 질책을 받기도 했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잘못된 전략이었다고 이미 결론 낸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조 전 장관 재판 이후)요즘 당내서 ‘조국이 이재명을 잡고 있다’는 소문도 들어봤다. 오히려 조 전 장관 때의 트라우마가 없었다면 이 대표를 더 적극적으로 도왔을 의원도 많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일 검찰에 출석해 포토라인에 서고 있는 이 대표를 의원들이 발 벗고 도와주지 못한다는 내부 목소리다. 조국 사태 때처럼 이 대표의 개인 비리를 당 차원서 도와준다면 지난해 대선과 지선처럼 민심의 거센 역풍을 맞을 것이란 두려움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 친명계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개인 비리라고 치부해 (도움을)꺼려하는 분위기인 것을 안다”며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의 경우도 그렇고, 이것은 야권 전체에 대한 검찰의 부당한 탄압이다. 조국 사태 때와는 본질적으로 사안이 다른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조 전 장관 건은 ‘물리적 증거’가 더러 나온 상황이고 이 대표 건은 다 ‘말’뿐인 상황서 검찰이 무리하게 망신만 주고 있는 것”이라며 “검찰이 공정함을 내세우려면 김건희 여사에 대한 수사도 적극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질적으로
사안 다르다”

조국 학습효과가 내재된 민주당은 현재 이 대표를 적극적으로 구하지 못하고 있다. 만일 그가 각종 혐의점들로 유죄 선고를 받는다면, 민심을 크게 잃었던 과거를 되풀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 대표가 조 전 장관의 길을 걷게 될지, 또 걷게 된다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계산기를 두드리며 지켜보고 있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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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