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의혹’ 쌍방울 비선 실세 추적

“짠돌이 회장이 변호사비 대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지난 17일, 입국했다. 1년 가까이 해외 도피를 이어갔으나 검찰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사실상 일부러 잡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 전 회장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관계를 부인하면서 검찰이 두 사람 간 확실한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다는 관측에도 무게가 실린다. 김 전 회장과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인물들은 회사 내 비선 실세가 따로 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은 타인에게 돈을 빌려주거나 맡기지 않는 ‘짠돌이’로 유명하다. 특히 경제 관련 지식이 얕다 보니 회사 경영과 자금흐름 등 조언을 해준 인물이 따로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보다 10살 어린 A씨다. 쌍방울 내에서 대장동을 설계한 정영학 회계사와 비슷한 역할을 해왔다는 게 김 전 회장 측근들의 주장이다.

회장님
그림자

쌍방울그룹 실소유주인 김 전 회장은 전북 남원 출신으로 전주 지역을 연고로 활동하다 2000년대에 상경해 대부업을 시작했다. 주가조작 세력에게 자금을 대는 방식으로 자산을 키워온 김 전 회장은 2010년 위기를 겪던 쌍방울 인수에 성공했다.

이후 과거부터 깊은 친분을 유지해온 배상윤 KH그룹 회장과 거래를 이어왔다. 배 회장은 김 전 회장의 돈을 빌려 쌍방울을 인수하려 했으나 이를 갚지 못하고 지분을 대신 넘겼다. 쌍방울은 KH와 전환사채(CB)를 주고받으며 무자본 인수합병(M&A)을 상호 지원해왔다.

이 때문에 쌍방울 사업과는 관계없는 특장차 제조사와 연예기획사 등을 계열사로 끌어들이며 순환출자 구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쌍방울을 키운 이후 검사와 정치인 보좌관 출신 인사들을 쌍방울 본사 및 계열사 사외이사 또는 고문으로 대거 영입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김 전 회장이 향후 있을 검찰 수사에 대비해왔다고 보고 있다.

그는 이화영 전 국회의원이 경기도 평화부지사 역임 시절 경기도와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를 등에 업고 대북 사업까지 노렸다. 계열사 나노스(현 SBW생명과학)의 사업 목적에 해외자원 개발업을 신설하고 북한으로부터 희토류 등 북한 광물에 대한 사업권을 약정받은 것이다.

지난해 5월 말 쌍방울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김 전 회장은 싱가포르로 도주했다. 호화로운 도피 생활을 이어가던 김 전 회장은 최근 태국 빠룸타니에 위치한 골프장에서 8개월 만에 양선길 회장과 함께 검거됐다. 김 전 회장은 지난달 24일 횡령·배임 등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은 이달 초 김 전 회장을 기소할 방침인 가운데 각종 의혹을 규명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수원지검 형사6부(김영남 부장검사)는 사실상 명절 휴가를 반납하고 김 전 회장을 둘러싼 각종 혐의를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김 전 회장은 ▲4500억원 상당의 배임 및 수백억원에 이르는 횡령 ▲200억원 전환사채 허위 공시 등 자본시장법 위반 ▲500만달러(약 60억원) 대북 송금 의혹 ▲이 전 의원에 3억여원 뇌물공여 및 정치자금법 위반 ▲임직원들에게 PC 교체 등 증거인멸 교사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을 받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큰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타입”
김성태 오른팔 격…투자·자금흐름 등 책사 역할


검찰은 김 전 회장이 계열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CB를 발행하고 이를 매각, 매입하면서 불법적인 자금흐름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이 비자금이 대북 송금 또는 이 대표 변호사비로 쓰였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특히 북한에 거액의 달러를 보낸 배경에 당시 경기도 사업과 연관성은 없는지 따져보고 있다. 김 전 회장은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북한 인사에게 500만달러(약 60억원)를 전달했는데, 그 이유를 대북 경제협력 사업권 대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또 ‘경기도가 주기로 한 스마트팜 조성 사업비 50억원을 (쌍방울이)내달라’는 북한의 요구도 작용한 것으로 보고, 기소 전까지 대북 송금의 정확한 배경을 밝혀낼 계획이다.

김 전 회장의 최측근들 사이에서는 김 전 회장이 사실상 일부러 잡혔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요시사>와 만난 김 전 회장의 최측근들은 그가 한 달에 여러개의 대포폰과 차명계좌를 통해 생활비를 충당해왔다고 강조했다.

쌍방울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담당해온 B씨는 “붙잡히기 전까지 김 전 회장과 연락한 적은 없지만 도피 과정에서 여러개의 대포폰을 쓴 것으로 알고 있다”며 “마음만 먹으면 잡히지 않았을 양반”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과 수십년간 알고 지낸 C씨도 “이재명 대표 때문에 잡혀준 게 아닌 건 명확하다. 본인이 꾸려온 사업에 대한 문제점과 법적 리스크를 털 준비가 됐기 때문에 아무런 저항 없이 잡힌 것”이라고 말했다.

C씨는 “김 전 회장이 이 대표와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부인하고 있는데 그게 사실이다. 둘이 아는 사이라는 것은 이름만 전해 들었다 정도이지, 소문이 난 것은 쌍방울 내에서 이 대표에게 줄을 대려한 인물들이 많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 측근들은 ‘쌍방울 비선 실세’로 불릴 만큼 회사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따로 있다고 강조했다. 쌍방울 내에서 대장동을 설계한 데 이어 검찰에 핵심 물증을 전달한 정영학 회계사와 비슷한 역할을 해온 인물이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투자업계
인맥왕

A씨는 쌍방울 경영과 자금흐름·투자분석과 관련해 김 전 회장에게 조언하는 등 책사 역할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음지 출신인 김 전 회장에게 투자 관련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는 게 김 전 회장 측근들의 주장이다.

무자본 M&A 대가로 소문난 A씨는 여러 코스닥 상장사에도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미국 유명 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해외 증권사를 거쳐 금융투자업계에서 큰손으로 불릴 만큼 인정받은 인물이다.

김 전 회장 측근들의 말이 사실이었을까? A씨는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검찰 소환조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B씨는 “지금까지 쌍방울과 KH와 연관된 인물들의 이름은 거의 다 나왔으나 A씨의 이름은 언론에서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며 “자기관리가 굉장히 확실하다. 문제가 되지 않을 선까지만 투자하고 위험하다 싶으면 손을 떼는 성향”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A씨에게 쌍방울 투자와 비자금 조성 등에 대해 캐물은 것으로 전해졌으나 유의미한 진술을 받아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A씨와 같이 여러번 조사받았다고 털어놓은 B씨는 “대부분의 인물이 구속 기소되거나 언론에 이름이 나왔다. A씨가 철저했거나 대장동 핵심 인물 중 유일하게 구속을 피한 정영학 회계사처럼 검찰과 거래를 하는 ‘플리바게닝’ 방법을 쓴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A씨의 이름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들여다봐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쌍방울 계열사인 비비안 100만주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외에는 언급이 되지 않을 정도다. 비비안은 쌍방울 핵심 계열사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기도 하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변호사비 대납 의혹’에 연루된 나승철 변호사와 이태형 변호사는 쌍방울 계열사인 나노스와 비비안의 사외이사직을 맡았었다.

일부러
잡혔다?


이 대표의 최측근인 이 전 의원은 2017년 3월 쌍방울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지난해 9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및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된 그는 쌍방울 사외이사직을 마친 뒤 경기도 부지사를 역임한 2018년 8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이어 킨텍스 대표를 맡은 2020년 9월부터 3년여간 쌍방울로부터 법인카드와 외제차 등 차량 3대를 받는 등 뇌물 2억5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는다.

이어 자신의 측근을 쌍방울 직원으로 허위 기재해 임금 9000여만원을 수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전 의원은 2018년 경기도 평화부지사로 부임한 뒤 경기도의 대북사업 창구 역할을 맡았던 아태협에 쌍방울과 KH는 17억원 상당의 기부를 했다. 2018년 쌍방울이 6억원, 쌍방울 계열사인 나노스가 3억원을 기부했다. 2019년에는 쌍방울 및 계열사 3곳에서 현금 2억1300만원과 7600만원 상당의 의류를 지원했다.

2020년 쌍방울 및 KH 계열사가 기부금 4400만원과 1억4000만원 상당의 현물을 아태협에 제공했다.

쌍방울과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 이어지기도 한다. 천화동인1호 대표 이한성씨는 이 전 의원 시절 보좌관이었다. 이와 관련해 화천대유 최대주주인 김만배씨는 검찰 조사에서 “19대 총선 당시 이화영 의원의 선거운동을 도우면서 8000만원을 지원했다”고 진술했다.

김 전 회장은 3년 전부터 법조계 인사들을 회사로 끌어오기 시작했다. 쌍방울 간부였던 한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A씨만 김성태 회장에게 조언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다만 김 전 회장이 유독 A씨의 말은 깊이 있게 들었다”고 말했다. A씨가 김 전 회장에게 향후 있을 검찰 수사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던 걸까?

쌍방울 관계사에 검사·판사·변호사 등 법조인이 사외이사로 재직한 경우는 꽤 많다. 대외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인원만 23명이다. 이들이 A씨와 개인적 친분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중 11명은 검사나 판사 경력이 없었고, 검사 출신인 경우가 무려 9명(판사 출신 3명)이었다. 또 검사 출신 인사들 대부분은 최근 3년 동안 집중적으로 쌍방울그룹에 영입됐는데, 그중 7명이 2021년 1월∼2022년 9월 사이 자진사임했다.

무자본 M&A 대가로 알려져…인수 진두지휘
3년 전부터 특수통 출신 변호사 대거 포진

지난해 9월 공시 기준 검사 출신 현직 사외이사는 1명이다. 이들 중에는 검사 시절 김 전 회장 측을 직접 수사했거나 과거 쌍방울 주가조작 사건 등에서 김 전 회장 측을 변호한 경우도 있었다.

사법연수원 29기인 김영현 변호사는 금융감독원 법률자문관, 서울동부지검 부부장검사, 대검 방위사업비리합동수사단 2팀장, 전주지검 정읍지청장, 서울중앙지검 외사부장, 대구고검 검사 등을 역임했다. 2021년 3월 변호사 개업을 했고, 같은 달 비비안 사외이사로 선임됐다가 2022년 9월 자진사임했다.

사법연수원 38기인 김인숙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광주지검 순천지청, 청주지검, 서울동부지검, 대전지검 등에서 검사로 일했다. 2020년 8월 변호사 개업을 했고, 2021년 3월 디모아 사외이사로 선임됐다가 2022년 2월 자진사임했다.

송찬엽 변호사는 대전지검 특수부장, 대검 공안1과장, 부산지검 1차장, 서울중앙지검 1차장, 서울고검 차장, 대검 공안부장, 서울동부지검장 등을 역임했다. 2015년 변호사 개업을 했고, 2017년 2월 SBW생명과학 사외이사로 선임됐다가 2022년 9월 자진사임했다.

양재식 변호사는 광주지검 부부장, 서울중앙지검 부부장, 의정부지검 형사2부장, 서울남부지검 형사1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났다. 2011년 3월부터 변호사로 일하다가 그해 8월 쌍방울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박영수 전 특검이 국정 농단 특별검사로 임명되기 전까지 대표변호사로 있었던 법무법인 강남에서 2013년부터 일했다.

2016년 박 전 특검과 함께 국정 농단 특검보로 일하면서 2016년 12월 사외이사직을 자진사임했다.

이들 중 우선 눈에 띄는 인물은 양 변호사다. 그는 박영수 전 특검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대장동 민간개발업체에 1000억원이 넘는 대출을 알선한 브로커 조우형의 변호를 박 전 특검과 함께 맡았다. 특히 양 변호사는 사외이사 신분으로 쌍방울 주가조작 사건 당시 김 전 회장 측 변호를 직접 맡았던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은 2010년 3월∼4월에 이른바 주가 조작꾼들과 김 전 회장이 짜고 차명계좌를 이용한 통정매매 등으로 시세 조종을 해서 300억원대 부당이득을 취한 사건이다. 2013년 6월 금융감독원의 긴급 조치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출범한다.

당시 수사단에 합류한 이가 바로 김 변호사다. 인천지검 부부장검사 시절 서울중앙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 팀장으로 파견돼 김 전 회장 등에 대한 직접 수사를 진행했다. 김 전 회장은 구속 기소됐고, 2018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이 자기
배를 가를까”

최근까지 수원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한 쌍방울 출신 관계자는 “검찰이 쌍방울 수사를 제대로 하려면 자기 배를 갈라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며 “이재명 대표와의 관계에만 수사를 몰두하고 있는데 쉽지 않을 것이다. 의심은 되지만 명확하게 드러나 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공소 내용도 바뀐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A씨가 보통 짜놓은 판에는 불법으로 규정하기 애매한 게 많다. 검찰도 자금흐름을 추적하다 머리가 상당히 아픈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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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