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아줌마 특유의 입담으로 금기시 되는 영역이었던 ‘성(性)’ 이야기를 양지로 끌어올린 구성애(56)씨. 그녀가 성교육의 최전방에서 활동한지도 10년이 훌쩍 지났다. ‘행복한 성’을 강조하는 구씨는 현재 (사)푸른아우성 대표로, 이어지는 특강요청에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마침 하루가 멀다 하고 잔혹 성범죄가 터져 전국이 떠들썩할 때. 국회 사무처가 주관한 성교육 강의에서 구씨를 만났다. 거침없는 ‘구성애표 성교육’을 총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청소년이 또 다른 청소년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러 처벌 받은 사례가 10년 새 11배나 늘었다. 지난 19일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12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19세 미만 아동·청소년을 성폭행하거나 성추행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소년재판에서 보호처분을 받은 청소년은 690명으로 조사됐다. 2002년 60명인 것에 비해 11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6세 때부터 성교육
이와 같은 현상은 성에 관한 가치관이 어릴 때부터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개방화된 성문화로 인해 청소년들이 일찍 성에 노출돼 있어 많은 사람들이 성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날아가는 성문화, 기어가는 성교육’ ‘앞서가는 청소년, ?아가는 성교육’이 오늘날 우리나라 성교육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구씨는 “우리는 좋은 성교육 프로그램의 목표가 무엇인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며 “10대들이 건강과 성관계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고 결정하도록 돕는 데 목표를 두는 성교육을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구씨는 청소년 성교육에 가장 성공한 나라로 ‘네덜란드’ 사례를 꼽았다. 네덜란드 자녀들은 6세 때부터 성교육을 접하기 시작하여 심지어는 식탁에서 밥을 먹으면서 부모와 대화를 나눌 정도며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체위법도 소개된다고 한다.
구씨는 “성매매가 합법인 네덜란드는 성에 대한 모든 모습이 다 있다. 매우 개방적인 나라로 유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소년들의 성이 문란한 것은 아니다”라며 “10년 동안 청소년들에게 실질적인 성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한 결과 가장 큰 3가지 변화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첫 경험의 연령’이 늦어졌다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예상과 달리 성에 대해 이미 많은 것을 접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 교육을 한다. 여기엔 생물학적인 부분뿐 아니라 가치, 태도, 이성을 만날 때 대화의 기술 등도 포함된다.
구씨는 “네덜란드는 초등학교 5∼6학년 때부터 ‘오르가즘’이 무엇인지를 가르친다”며 “쾌락의 핵심을 궁금할 때 가르치고 스스로 어떤 성을 향해 나갈 것 인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니 음란물이 우스워지는 효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그 결과 네덜란드 청소년들의 첫 경험 연령이 2∼3년 늦어졌다. 스스로 ‘첫 경험은 늦게 하는 것이 좋다’는 가치관이 정립된 것이다. 실질적인 성교육을 받지 못 해 인터넷, 음란물 등의 매체로 자신만의 성을 정립해 나가고, 매해 첫 경험 연령이 빨라지고 있는 한국 아이들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두 번째는 첫 경험을 하게 됐더라도 피임을 완벽에 가깝게 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피임법을 교육한다. 성교육을 한다고 해서 성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거나 성행위를 많이 하게 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올바른 정보를 접하면 미리 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 결과 성 경험이 있는 네덜란드 청소년들이 첫 번째 경험에서 피임을 한 경우는 98%에 달한다. 현재는 세계에서 10대 임신율이 가장 낮은 나라로 꼽힌다.
청소년 대상 실질적인 성교육 프로그램 실시
첫 경험 연령↑ 데이트 강간↓…피임법 숙지
마지막 세 번째는 ‘데이트 강간률’이 낮다는 것이다. 데이트 강간은 교제관계에서 발생하는 강간을 말하는데, 네덜란드는 이에 대한 교육을 하는 것은 청소년 이성교제의 핵심으로 꼽는다.
네덜란드가 데이트 강간 척결을 위해 벌인 것은 ‘no means no!’캠페인이다. ‘안 돼는 안 돼!’를 인정하는 것이다. 여자 아이들에겐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성관계를 요구하더라도 싫으면 싫다고 똑 부러지게 말하도록, 남자 아이들에겐 상대가 ‘안 돼’라고 했을 경우 이를 인정해주고 참아야 한다는 것을 교육한다. 전 세계에서 제일 낮은 ‘데이트 강간율’은 이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인 결과다.
구씨는 반면 “‘안돼요 안 돼, 되요 되요’라는 논리가 깔린 우리나라에서 여자아이들의 첫 경험은 대부분 데이트강간으로 이뤄진다”며 “성적인 접촉을 가지려면 반드시 상대방의 허락을 얻어야 하며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아이들에게 교육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라고 강조한다.
좋아하니까 스킨십, 애무, 성관계로 이루어지는 게 남자 아이들의 ‘성관계 논리’라면, 여자 아이들에게 ‘한 번의 성관계’란 아이를 잉태해서, 낳아서, 양육하는 과정까지 걸려있다는 것이다.
구씨는 “흥분된 김에 밀어붙이고, 그럴 마음이 없었지만 얼떨결에 당하게 된 것이 데이트 강간”이라며 “전혀 예상 없이 진행됐기 때문에 임신율도 높고, 임신을 한 경우 낙태율도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청소년 임신상담 중 ‘엄마한테는 절대 말하지 말아달라’는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이는 부모 몰래 낙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원조교제를 쉽게 하는 등 또 다른 일탈을 낳을 수 있고, 몸조리를 못해 불임으로 이어지기도 쉽다”며 “아름다웠던 아이들이 한 순간에 타락할 수밖에 없는 것에 데이트 강간이 놓여있다”고 덧붙였다.
“부모부터 바뀌어야”
성교육의 본보기가 된 네덜란드 사례를 통해 구씨는 ‘문화는 다르지만 본질은 가져올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에 앞서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그릇된 성 가치관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구씨는 “부모들 역시 자라면서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해 ‘성’으로 아이를 자극 주는 것을 꺼린다. 내 아이만큼은 자연다큐나 보고, 수학문제나 더 풀다가 갑자기 성인이 확 되길 바라는 경우가 많다”며 “시대가 바뀌어 아이들의 성문화도 달라진 만큼 이제 부모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을 수치스럽게 보는 부모가 자녀의 성교육을 꺼리게 되면 올바른 성 개념이 안 잡힌 채 커버린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결혼 한 뒤에도 제대로 된 성생활을 누릴 수 없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것”이라며 “부모의 노력과 성교육 의무화를 입법화 시키는 등의 정부의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구성애씨는?>
1990년대말 ‘아우성(아름다운 우리 아이들의 성)’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구성애씨는 10년이 넘도록 ‘아우성’을 필생의 과제로 삼고 성교육 강의를 해왔다. 연세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그는 산부인과 조산사로서 아기 수 천명을 받아내면서 쌓은 생생하고도 풍부한 지식과 노동조합을 돌며 성문제 교양강의를 맡았던 경험으로 성교육 강사의 길로 들어섰다. 현재는 사단법인 푸른아우성 대표로 성상담을 하면서 유료사이트 아우넷을 운영하고 있다. 초딩 아우성 , 구성애의 빨간책, 니 잘못이 아니야 등 성교육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