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52주 신저가’ 위기의 게임업계 실상

떵떵거리다가…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국내 게임주들의 주가 흐름이 심상찮다. 미국 연준의 긴축 기조에 따른 증시 하락 여파로 게임주들의 주가가 수직낙하 했다. 주요 게임사들은 무더기로 52주 신저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여기에 올해 1분기 게임업계 전반이 저조한 실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가가 큰 폭으로 반등할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게임은 통상적으로 경제위기나 불황 때 더 잘나가는 업종으로 통한다. 경기가 안 좋을수록 실외 활동이 줄고 실내에서 게임을 즐기는 경향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이후에도 그랬다. 2020년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한 이후 대표적인 비대면 수혜 업종인 게임업계는 상승세를 탔다. 비대면 특수를 등에 업고 실적과 주가가 고공비행을 계속했다.

고공비행 후…
싸늘한 분위기

하지만 대유행이 수그러들고 점차 ’앤데믹‘ 분위기가 조성되자 최근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심상치 않은 게임업계 분위기는 최근 주요 상장 게임사들의 주가 흐름이 잘 말해준다. 증시에 상장된 메이저 게임사들이 무더기 52주 신저가를 기록하는 등 부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 증시가 미국의 3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 인상) 단행 여파로 이틀 연속 폭락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엔씨소프트 ▲카카오게임즈 ▲크래프톤 ▲넷마블 등 업계 대표 상장 게임사들이 모조리 52주 신저가를 기록하고 있다.(지난달 23일 오전 기준)

가뜩이나 올들어 게임주의 부진한 행보가 이어지고 상황인 와중에 극도의 증시 부진이 겹치면서 게임주들이 맥을 못추고 있는 것이다.


’P의 거짓‘이란 신작이 독일 게임쇼(게임스컴)에서 주요 상을 휩쓰는 등 센세이션을 일으킨 덕에 주가가 초강세인 네오위즈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게임주들이 날개없는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

이날 업계 대표 종목인 엔씨소프트는 장중 한때 33만500원까지 급락하며 전일(장중 저가 34만6500원)에 이어 이틀 연속 52주 신저가를 경신했다. 엔씨의 시가총액은 7조원대 초반까지 밀렸다.

코스닥시장 게임 대장주인 카카오게임즈도 상황이 비슷하다. 카카오게임즈는 전날보다 2.05% 하락한 4만3100원에 거래했다(같은 날 12시50분 당시). 역시 하루 만에 전날 52주 신저가를 갈아치웠다.

최대주주와 경영진의 잇따른 자사주 매입에도 추락을 거듭해온 크래프톤 역시 전일 대비 3.93% 급락한 20만8000원을 형성하며 52주 신저가 기록을 다시 쓰고 있다. 

모바일 슈팅 배틀로얄 ‘뉴스테이트 모바일’의 대대적인 업데이트도 효과가 거의 없는 부진의 연속이다.

엔씨·카카오게임즈 이용자 반발에 ‘홍역’
상장 주요게임사 총체적 주가 부진 ‘울상’

넷마블도 예외는 아니다. 넷마블은 이날 오전 전일 대비 -2.49% 하락하며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넷마블 주가는 올들어 지속적으로 우하향 곡선을 그리며 자고 나면 신저가가 바뀌는 부진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한때 20조원을 바라보던 시총은 어느새 4조7000억대까지 밀리며, 체면을 구기고 있다.


이처럼 주요 선발 게임주들이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으며 극도의 부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선 게임업계가 기존 스테디셀러 이외의 차기작의 흥행, 즉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국내는 물론 글로벌 증시에서 게임주 등 신 성장주와 기술주가 ‘신 거품론’에 휩싸이며 상대적으로 더 고전하고 있는 여파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실제 미국 증시에서도 주요 빅테크 종목과 함께 게임주들의 주가 하락폭이 다른 종목을 압도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달 20일, 애플이 5일부터 인앱결제 가격 인상을 일방적으로 통보, 국내 게임 콘텐츠 업체들이 난감한 입장이 된 것도 게임업계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애플 정책에 따라 가격이 오르면 결국 이용자로부터 화살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게임주에 대한 투자자들의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된 마당에 주요 게임사들의 운영을 둘러싼 사용자들과의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주가를 더욱 끌어내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우선 카카오게임즈의 경우 간판 게임인 ‘우마무스메’가 일본 유저와 차별대우 논란이 불거지며 유저들의 집단 반발로 큰 홍역을 앓고 있다. 급기야 강성 유저 7000명이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상황까지 사태가 악화돼 카카오 측이 거듭 사과하는 등 진화에 애를 먹고 있다.

모멘텀 부재
돈벌이 급급

엔씨소프트 역시 리니지 프랜차이즈 게임 이용자들이 엔씨의 유튜버 프로모션(광고료 지급)에 반발, 트럭 시위를 벌이는등 단체행동에 나서 진통을 겪고 있다. 유저끼리 경쟁하는 구도인 MMORPG에서 게임사가 특정 유튜버에 광고료를 지급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이유에서다.

게임계의 이 같은 총체적 부진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업계 전문가들은 주가가 과도하게 빠진 게 사실이며, 이제 어느 정도 바닥을 찍은 것 아니냐고 입을 모은다. 

그도 그럴 것이 여전히 주요 게임업체들의 실적은 다른 업종을 압도하고 남을만한 수준인데다가, 경기 부진의 반대급부로 실적이 급반등할만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탓이다.

외형상으로 보면 국내 게임회사들은 여전히 빠르게 성장 중인 것처럼 보인다. 일본 증시에 상장돼있는 넥슨은 2011년 매출 1조원을 돌파한 지 9년 만인 2020년 매출 3조원을 돌파했다. 같은 기간 엔씨소프트도 6089억원에서 1조7587억원으로 매출이 두 배 넘게 늘었다.

전체 게임산업 매출 역시 2016년 10조8945억원에서 2020년 18조8855억원으로 73% 성장했다. 음악(14%)이나 방송(27%) 등 다른 콘텐츠 산업에 비해 월등하게 빠른 성장 속도다.

하지만 전 세계 게임시장에서 K게임의 위상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한국은 전 세계에서 넷째로 큰 모바일게임 시장이지만, 한국산 게임은 전 세계 매출액 상위 9개 게임에 하나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중국 텐센트가 개발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과 ‘왕자영요’가 나란히 1, 2위에 올랐고, 중국 미호요(현 호요버스)가 개발한 ‘원신’이 3위를 차지했다. 

PC게임 분야에서도 한국산 게임은 스마일게이트가 2007년 출시한 FPS(1인칭 슈팅게임) ‘크로스파이어’ 하나만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게임의 창의성과 기술력을 가늠할 수 있는 주요 ‘올해의 게임상’ 명단에서도 한국 게임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치열하기 
어려운 구조

대신 거대 자본력과 시장을 기반으로 한 중국산 게임의 공세가 거세다. 2014년만 해도 한국과 중국의 게임 수출액은 엇비슷했지만, 2020년에는 중국이 한국을 두 배가량 앞질렀다.

2000년대 초반 탄생한 한국 게임업체들은 당시 크지 않은 규모에도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신작을 꾸준히 만들어냈다. 이때 탄생한 게임이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리니지’ ‘카트라이더’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 등이다.

해당 게임들에 대해 한 게임업계 전문가는 “꿈을 가진 개발자들이 초롱초롱한 아이디어를 갖고 만들어낸 보물이었다”고 말했다.


2010년대 이후 게임시장이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되자 한국 게임회사들은 기존 PC를 기반으로 제작했던 게임을 모바일용으로 전환한 뒤 경쟁적으로 확률형 아이템을 도입했다. 게임의 특정 캐릭터나 무기 등을 정가에 판매하는 대신 ‘뽑기’ 방식으로 판매하는 방식이다.

게임업체가 설정한 확률에 따라 게임 이용자가 낸 금액의 가치보다 더 높거나 낮은 아이템이 나올 수 있는 구조여서 게임의 재미를 키워주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런 사업모델이 성공하면서 게임사들은 국내에서 엄청난 매출과 이익 성장을 이뤄냈지만, 결과적으로 혁신에 게을러지는 부작용도 낳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직 대형 게임업체 간부는 “비슷한 스토리와 확률형 아이템 게임에 기반한 돈벌이에 익숙해진 나머지 노력을 게을리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멀어져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임업계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출시했거나 출시 예정인 국내 게임업체의 주요 신작 가운데 11개가 기존 게임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대형 업체인 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이 출시하는 4개의 게임 가운데 3개도 마찬가지다. 재탕·삼탕한 게임이 계속 쏟아지는 배경에는 편하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이 자리 잡고 있다. 

대박을 친 원작의 인지도를 활용하면 성공 가능성이 커지고, 비용은 아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겉만 번지르르’
추락하는 K게임

‘리니지’의 경우 1998년 최초 개발된 이후 리니지 시리즈로 나온 게임이 15개가 넘는다. 리니지는 지금까지도 엔씨소프트 매출의 80%를 차지한다. 2000년대 초반에 개발된 ‘라그라로크’ IP(지적재산권)로 만든 게임이 35개가 넘고, 넥슨이 제작한 ‘바람의 나라’ ‘던전앤파이터’ 등도 수십 개의 비슷한 게임이 꾸준히 제작돼왔다. 

그러다 보니 상당수 게임의 스토리와 구조도 비슷하다. 가령 ‘악당을 무찌르기 위해 뛰어든다→많은 돈을 주고 아이템을 사들여 캐릭터의 능력을 향상시킨다→악당을 무찌른다→또 다른 악당이 등장해 다시 게임이 진행된다’는 식이다.

일부 대형 게임업체의 경우 비대해진 조직도 혁신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엔씨소프트의 경우 직원 수가 2013년 1110여명이었는데, 올해 6월 현재 4700여명으로 4배 넘게 늘었다. 크래프톤은 2020년 1171명에서 올해 6월에는 1700여명으로 600여명 늘어났다.

과거 같으면 직원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고, 서둘러 아이디어를 채택 여부를 결정해 빠르게 게임을 내놨다. 그런데 조직이 커지면서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우수한 아이디어가 채택되지 못하는 일이 잦아진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국내 한 대형 게임업체에서 개발자로 근무했던 A씨는 “신작 게임 아이디어가 통과되려면 팀장·실장·본부장·CEO 4개의 결재선을 거쳐야 하는데, 팀장·실장까지 허가가 났지만 본부장이 허가하지 않아 무산된 적이 있다”며 “내가 구상했던 것과 똑같은 게임을 나중에 다른 업체가 출시해서 큰 재미를 봤다”고 말했다.

그는 “조직이 커졌으니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만, 예전 같으면 무난히 출시돼 빛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한국 게임회사들이 대기업이 되면서 설립 초기의 열정과 창의성이 사라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게임업체 간부 B씨는 “김택진·김정주 회장 같은 1세대 게임 개발자들은 야전침대에서 잠을 자면서 게임을 개발해낼 정도로 치열했는데, 지금 그들은 모두 관료화된 대기업의 오너나 최고위직이 됐다”며 “이들이 물러나고 새로운 후배 개발자들이 계속 나와야 하는데, 이미 게임업계는 조직이 너무 커졌고, 돈을 편하게 벌 수 있도록 짜여 있어서 치열하게 일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게임업계에서는 내달 17일이 분위기 반전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이 대입 수능시험일과 국내를 대표하는 국제게임쇼 ‘부산지스타’가 개막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특히 업계는 지스타 시즌을 전후에 다양한 신작게임을 공개하거나 업데이트를 단행한다.

통상 1년 중 게임시장의 최대 성수기는 11월 중순 이후부터라는 게 정설로 알려져 있다. 수능시험과 국제 게임쇼인 지스타 기간을 기점으로 게임 이용률이 급반등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후 각급 학교의 겨울방학과 맞물리며 이듬해 2월 말까지 이용자 수, 이용시간, 이용률, 객당가 등 모든 게임지표가 일제히 상승한다. 

게임시즌은 
아직 겨울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사용 가능한 모바일게임이 시장의 대세로 굳어졌지만, 여전히 게임 시즌은 겨울철이다. 오랜 부진의 늪에 빠져있는 게임업계가 위기를 딛고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을지, 지스타 시즌 이후 게임업계와 게임주의 분위기 반등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ktikt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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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당원들의 도움으로 대선후보 지위를 유지했다. 확실한 명분을 쥔 김 후보는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당권 장악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김 후보가 당내 주도권 다툼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의 대선후보 교체 시도를 당원들의 반대로 진압한 후에야 선대위를 구성했다. 김 후보는 지난 11일 대선후보로 등록했고,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을 같은 날 진행된 의원총회서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갑툭튀 위원장 권 전 비대위원장이 후보 교체 시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권 원내대표의 사퇴도 강하게 요구했지만,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했다. 이날 진행된 의원총회엔 의원 107명 중 50명만 참석했다. 후보 교체 시도에 가담한 친윤계 의원들은 대거 불참했다. 이어 지난 12일엔 국민의힘 비대위 회의가 개최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회의서 김용태·주호영·권성동·나경원·안철수·황우여·양향자 등 7인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를 발표했다. 김 후보는 후보 교체 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을 대신해 박대출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박 의원은 선대위서도 총괄지원본부장을 맡았다. 이틀 동안 확정·발표된 인선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김 비대위원장 임명이었다. 30대 중반 막내 초선 의원을 당 대표격 직책에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으로서 후보 교체 시도에 강하게 반대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2021년 전당대회서 청년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이준석 당시 대표가 이끌던 지도부에 참가했다. 이어 황우여 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도 비대위원으로 발탁됐던 경험이 있다. 이 전 대표 시절엔 소장파 ‘천아용인’ 중 1명으로 거론됐던 적이 있고, 이 전 대표가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후에도 돈독한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김 비대위원장 발탁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대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김 비대위원장에 대해선 “소장파로서의 행보가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김 비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서 “친윤계가 김 비대위원장을 화살받이·방패막이로 앞세워서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비대위원장의 역량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의 결별 및 출당을 제시했다. 함께 출연한 장윤선 정치 전문 기자는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은 김 비대위원장 자신일 것이란 얘기가 있다”며 “대선서 크게 패배하면, 그 책임을 김 후보가 아닌 김 비대위원장이 지는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고 거들었다. 친윤계는 의원총회 불참으로써 김 비대위원장 지명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김 후보는 당원투표로써 친윤계의 후보 교체 시도를 진압했기 때문에 명분을 확보했다. 국민의힘의 주도권을 휘어잡을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30대 초선 비대위원장 총알받이? 방패막이? 김 후보가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후 먼저 교체한 사람이 이 전 사무총장이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당 선거관리위원장 자격으로 김 후보 선출 취소 공고와 새 후보 등록 신청 공고를 발표했다. 후보 등록 신청 공고에 제시된 등록 신청 기간은 지난 10일 오전 3시부터 4시까지였고, 등록을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는 총 32종이었다. 등록 장소는 국회 본관 228호 비대위 회의실이었다. 이 황당한 상황은 한 편의 코미디로 남았다. 이날 오전 3시부터 4시 사이엔 공고를 본 후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등록하러 왔다”면서 국회 경비대에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조롱성 방송을 진행한 유튜버도 있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소동이 끝난 후 의원 단톡방에 김 후보를 비판하고 권 전 비대위원장을 두둔하는 취지로 어느 정치평론가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으로부터 “총장님 입맛에 맞는 정치평론가의 글을 단톡방서 읽을 이유는 없다”고 비판받았다. 김 후보로선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후보 교체 시도를 정당화하는 이 전 총장을 유임시킬 이유가 없었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으므로 권 원내대표까지 교체해 파문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김 후보가 당의 주도권을 확실히 휘어잡을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선대위를 움직일 당 사무총장은 빨리 교체해야 했다.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시켜 ‘휴전’ 메시지를 보낸 후 친윤계와의 암묵적 합의를 거쳐 김 비대위원장을 임명했다. 이어 실권을 행사하는 사무총장을 신속하게 확보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교체 시도는 1991년 8월 발생한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보수파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KGB 알파그룹과 전차부대 등이 동원돼 신속하게 진행된 군사작전이었다. 쿠데타는 실패했고, 소련은 해체됐다. 이처럼 정치적 기획을 군사작전처럼 몰아쳐 진행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당 대표 2명과 비대위원장 1명을 쫓아낸 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지난 10일 “윤석열 지령, 국민의힘 연출로 시작된 대선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행보가 약하다” 윤 전 대통령도 본의 아니게 자수 아닌 자수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게시글엔 “김 후보를 지지하셨던 분들도 이 과정을 겸허히 품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김 후보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한 게시글을 수정 없이 그대로 올렸다. 김 후보와 친윤계의 대결이 ‘휴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게시글이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등 친한계는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김 후보를 거들었다. 이 중 친한계 좌장 6선 조경태 의원은 김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 논란이 분분했던 지난 9일에도 “무책임한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대선을 치를 거라면, 경쟁력 있는 이재명 후보를 데리고 오는 게 빠른 거 아니냐”면서 김 후보를 두둔했다. 이를 두고 “당원투표서 김 후보 교체 시도가 부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친한계 당원들의 반대 움직임”이라고 보는 일각의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김 후보와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 등 여러 사안서 의견이 엇갈렸다. 두 사람은 국민의힘이 대선서 패배하면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큰 당권 투쟁의 잠재적인 경쟁 상대다. 김 후보는 56.53%를 얻어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한 전 대표가 얻은 43.47%도 무시하긴 어려운 수치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전 대표의 선대위 참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상계엄 및 탄핵 반대에 대한 사과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절연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약속을 내걸고 후보로 선출된 것에 대한 사과 등 자신의 선대위 참여 조건을 제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를 언급하면서 “김 후보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김 후보는 당내 유력 계파들인 친윤·친한과의 불씨를 두고 있다. 두 계파 모두 앙숙이기 때문에 김 후보로선 두 계파 모두를 포섭하기도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26년엔 국회의원들의 ‘대목’이라고 볼 수 있는 지방선거가 진행된다. 불씨가 들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최소한 선거 상황에선 김 비대위원장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 후보도 바보가 아닌 한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지 않단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친윤계의 쿠데타로 인해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직을 잃을 뻔했다. 대선 이후엔 곧바로 당권 투쟁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가 대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고 당을 장악하려면 당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 후보에게도 우군이 필요하다. 남겨놓은 갈등 불씨 김 후보는 지난 2020년 1월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같은 해 8월 발생한 사랑제일교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 이후에도 경찰이 자가격리 조치를 어기고 집회에 참석한 사랑제일교회 일부 신자를 연행하려고 하자 이를 막는 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김 후보는 “내가 김문수인데, 왜 가자고 그러느냐”라거나 “내가 국회의원을 3번 했다”는 등 호통을 치는 등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119에 전화해 갑질했던 ‘도지삽니다’ 사건을 연상시키는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전 목사는 후보 교체 시도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전 목사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국민운동본부(이하 대국본)는 지난 10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전 목사는 이날 “멀쩡하게 뽑아놓은 김문수를 아웃시키고, 한덕수를 영입했다”며 “국민의힘이 사기 치는 것 봤죠? 이건 완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대국본도 같은 날 배포한 입장문서 “국민의힘은 종북 좌파와 맞서 싸우겠다는 애국 보수만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 후보는 지난 8일 관훈토론회 초청 토론회서 “광장 세력과도 함께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기독교의 교회 조직과 말씀 때문에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가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전 목사 등 강경보수 성향 일부 교계를 극찬했다. 당내 지분이 전혀 없는 상황서 친윤·친한 모두와 경쟁해야 하는 김 후보로선 우군이 절실하다. 김 후보는 강경보수 세력 내부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와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 후보는 지난 4월24일 전씨의 유튜브 채널 ‘전한길뉴스’에 출연했다. 전씨는 전 목사의 경쟁자로 통하는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와 연결돼있다. 전씨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분석하면서 “김 후보가 기득권 정치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고, 호남 지역 표심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TV 토론서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하고, 막판에 보수 우파가 단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와 전씨는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 보수 진영 내부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두 사람의 영향력은 인원 동원 능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을 국민의힘 내부에 유입시켜 전당대회서 승부를 본다면, 김 후보가 국민의힘을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방선거서 급한 일은 의원들의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에 개입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 아래서 손발 노릇을 하는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장악하면, 의원들의 손발을 묶어둘 수 있다. 후보 교체 시도 5적 지역구서 공천 전쟁? 김 후보와 충돌할 가능성이 큰 의원은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 ▲성일종·박수영 의원이다. 이 중 이 전 총장을 제외한 4명에 대해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서 ‘4적’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다. 홍 전 시장은 “경선을 혼미하게 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정계 은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중 지도부였던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은 후보 교체 시도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성 의원은 김 후보와 한 전 총리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박 의원은 김 후보의 캠프에 참여했지만, 김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해 신경전을 이어가자 “김 후보 주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한 전 총리는 가라앉고, 김 후보가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는 식의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김 후보를 일컬어 “전형적인 좌파식 조직 탈취 시도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이어갔다. 김 후보는 대선후보 자격이 취소됐던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개최해 스스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김문수”라면서 지도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어 캠프 내 측근들과 함께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방문해 대통령 후보실을 점거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왕년의 투사 김문수가 돌아온 것이냐”고 반응했다. 이날 김 후보의 대응을 돌아보면, 대선 이후 당권 투쟁서 물러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독자 영역을 구축한 친윤·친한과 달리 김 후보는 외부 세력을 당내에 유입시키기 위한 명분부터 구축해야 한다.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의미 있는 득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했지만, 보수 정당이 분열됐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과 785만여표(약 24%) 득표에 그쳤다. 이는 역대 대선 직선제 2위 후보 중 당선자와 최다 표차 낙선과 보수 정당 최저 득표율이었다. 홍 전 시장은 대선 패배 이후 약 3주 동안 미국을 방문한 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로 당선됐다. 예나 지금이나 당내 세력이 미약한 홍 전 시장은 당의 하락세를 막지 못했고, 지난 2018년 지방선거 패배 책임 차원으로 당대표직서 물러났다. 대선서 많은 득표를 하지 못했던 것도 홍 전 시장의 지도력에 힘이 붙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따라서 김 후보로선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선 패배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득표를 해서 명분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 이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를 완전히 접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한선 35% 무너지나 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12일 이틀간 무선 100%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했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보다 13% 뒤처진 33%의 지지를 얻었다. 김 후보가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국민의힘을 장악하려면 40% 이상의 독자 지지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최저 하한선은 3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후보에겐 승패 여하를 떠나 많은 것이 달린 대선일 수밖에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