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노조를 컨트롤하는 수법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9.20 10:25:48
  • 호수 13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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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해 공작…돈으로 밀어붙여”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노동조합이란 노동자가 주체가 돼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 등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다. 이런 이유로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목소리를 기업에 전하며, 노동조합은 파업으로 의견을 제시한다. 문제는 기업의 대처 방법이다. 기업은 파업을 참여한 노동조합 조합원에게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거는 방식으로 노동조합을 컨트롤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33조에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자만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법률이 정하는 주요 방위 산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이를 제한하거나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고 나와있다.

늘고 있는
소송의 길

노동조합(이하 노조)은 국가에서 헌법으로 보장한 권리다. 노동자 개인이 기업을 상대로 갑질이나 산업재해를 당해도 보상을 받기가 어렵다. 이때 노조에 가입된 노동자라면 노조를 통해 보상이나 구제를 받는다.

노조의 종류는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산별 노조와 기업별 노조로 나뉜다. 산별 노조는 동일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를 하나의 노조으로 조직한 것이다. 기업별 노조는 기업 단위로 결정한 노조다. 산업별, 기업별로 노조이 존재하는 이유다.

노조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신청하고 노조가 승낙한다는 합치에 따라 성립된다. 강제적인 노조 가입은 불법이다. 하지만 일부 회사의 어용노조는 단체교섭권을 가지기 위해 노동자를 강제로 가입시키고, 회사가 단체교섭권을 쥐고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12월30일 고용노동부(장관 안경덕)는 ‘2020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현황’을 발표했다.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노조 조직률은 14.2%, 전체 조합원 수는 280만5000명으로 나타났다. 2019년 노조 조직률은 12.5%, 전체 조합원 수는 254만명이었다.

조직 형태별 조합원 수는 초기업노조 소속이 60.4%인 169만5000명, 기업별 노조 소속이 110만9000명이었고, 상급 단체는 한국노총이 40.1%인 115만4000명, 민주노총이 40.4%인 113만4000명, 미가맹 노조가 14.9%인 41만7000명 등으로 나타났다.

부문별 노조 조직률은 민간 부분 11.3%, 공공 부문 69.3%, 공무원 부문 88.5%, 교원 부문 16.8%이었으며, 사업장 규모별 조직률은 근로자 300명이상 사업장이 49.2%, 100~299명 10.6%, 30~99명 2.9%, 30명 미만 0.2%로 나타났다.

노조가 점점 늘어나다 보니 노동자와 기업의 대립이 날로 심화하는 양상이다. 또 우리나라 경쟁력을 갉아먹는 주된 요인으로 노사간 갈등이 지목된다.

노조 인구 254만명→280만명으로 증가
양사 갈등은 노조의 파업으로 계속 심화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10월 초 발표한 141개국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를 보면 노동시장 효율성은 전년보다 세 계단 하락한 51위에 그쳤다. 노사 간 협력도 지난해 124위에서 130위로 내려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36개국 회원국 중 노사 협력은 꼴찌였다.

파업은 노사 간 갈등을 심화시키는 이유 중 하나다. 노조는 파업으로 노조 조합원에게 존재감을 인지시키고, 노조원은 파업 참여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노조 파업에 대한 사측 대응 수단은 직장 폐쇄가 있다. 여기에 더해서 기업이 파업을 참여한 노조 조합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도 그중 하나다. 대우조선해양은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해 51일간 파업을 벌인 하청노조를 상대로 5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노조를 대상으로 한 기업의 손해배상소송이 헌법상 노동 3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이는 상황이었지만, 대우조선해양은 소송을 강행하기로 한 것이다. 노동 3권은 노동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헌법에서 정한 노동자와 그 소속단체에게 부여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말한다.

지난달 23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지난달 19일 열린 이사회에서 하청노조인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안을 보고했다. 손해배상소송은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 안건은 아니지만, 중요 사안인 만큼 보고 형식을 갖춘 것으로 전해졌다.

손해배상소송의 청구 금액은 대략 500억원이다. 대우조선해양은 노조 파업에 따라 800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노조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소송은 노동자를 위축시키고 노조 탄압으로 이용된다는 지적이 많다. 또 500억원은 역사상 개인 노동자에게 청구하는 가장 큰 금액이라, 윤석열정부가 나서서 대우조선해양의 손해배상소송을 멈춰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점점 느는
노조원 수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대우조선해양의 500억원 손해배상소송 제기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생존권 말살 정책이다. 투쟁 과정에서 어떠한 책임 있는 역할도 하지 않은 대우조선해양이 이제 와서 손해배상소송을 들이미는 행위는 할 말을 잃게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8월23일부터 52일간 있었던 현대제철과 당진제철소 비정규직지회 노조 파업도 손해배상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6일 현대제철과 민주노총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조는 코로나 범유행 상황에서 당진제철소 통제센터를 불법 점거해 ‘불법 파견 사죄와 직접 고용·정규직 전환 쟁취’를 위한 총력 파업을 벌였다.

현대제철은 이와 관련해 1인당 1000만원씩 총 246억원의 파업 관련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현대제철과 사내 협력사, 협력사 노조 등은 지난해 10월13일 당진제철소에서 고용노동부 천안지청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점거 농성 상황 해소와 공장 정상화를 골자로 하는 안에 합의해 파업을 마무리했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직영노조는 지난 5월2일부터 현대자동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등 타 계열사처럼 400만원의 특별격려금 지급을 요구해 당진제철소 사장실을 점거한 채 100일 넘게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현대제철은 직영노조가 한 요구와 관련해 지난해 하반기 임금협상에서 기본급 7만5000원을 인상했고 성과급을 이미 지급해 특별격려금은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회사의 손해배상소송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노동자도 있다. 바로 한진중공업 노동자다. 한진중공업은 2011년에 대규모 정리해고를 했다. 이때 한진중공업 노조는 부산 영도의 크레인에 올라 투쟁했다.


선택은 
잔인했다

하지만 한진중공업의 선택은 잔인했다. 한진중공업은 노조를 상대로 158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2014년 1심 법원은 59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때 노조는 항소하지 않았다. 항소하지 않은 이유는 금액이 얼마든, 노동자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어야 ‘깎아달라’는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것.

한진중공업의 손해배상청구 소송판결은 확정됐지만, 집행은 하지 않았다. 노조가 다시 회사에 위협을 가하면 손해배상 가압류를 집행할 거란 이야기가 떠돌았다. 노조 간부들은 손해배상 가압류가 진행될까 염려돼 개인재산을 만들 수도 없다. 당연히 노조 조합원은 떠나갔고, 노조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도 없었다.

한진중공업이 노조 상대로 158억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걸었던 2011년 겨울, 한진중공업 노동자였던 최강서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서에는 “민주노조 사수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고 남겼다.

기업이 손해배상소송을 취소한 경우도 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달 29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소속 조합원 25명을 상대로 총 27억7000만원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해서 논란이 됐다. 기존 11명을 대상으로 한 5억8000만원 청구에서 금액 기준 5배 수준으로 늘렸다. 화물연대가 하이트진로 공장 앞 도로 점유 파업, 참이슬 등 소주 출고를 막아선 것이 이유다.


당시 하이트진로 측은 “화물연대의 도로 점유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손해액이 늘어났다”며 “경찰 조사를 통해 불법행위자 인적사항을 추가로 확보해 인원과 청구액을 늘렸다”고 말했다. 

하이트진로 소주 공장인 경기도 이천공장, 충북 청주공장 등에서는 지난 3월부터 운임료 인상 등을 요구하는 화물연대 소속 화물차주들의 도로 점유 파업이 이어졌다. 하이트진로는 화물차주의 파업으로 참이슬과 진로 등 소주 제품 운송이 차질을 빚으면서 지난 6월 생산을 중단하기도 했다.

거의 합의 후 손해배상소송 취하 
금액 때문에 극단적 선택하기도

6개월간 이어졌던 화물연대의 공장 봉쇄, 본사 옥상 점거 등 장기 파업 사태는 일단락됐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13일 “당사의 상황으로 인해 수개월 동안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하다”며 “지난 9일 합의가 이뤄진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협상이 마무리된만큼 앞으로 더 좋은 제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아울러 소비자 여러분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수양물류와 노조 간 합의는 지난 9일 이뤄졌다. ▲운송료 5% 인상 ▲공장별 복지기금 1% 조성 ▲휴일 운송단가 150% 적용 등 사안에 대해 합의했다.

하이트진로는 “손해배상소송 철회 등에 합의했고, 이외에도 수양물류와 차주 간 향후 진지하게 논의하고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유성기업은 2011년 아산공장에서 벌어진 파업으로 10년간 손해배상소송을 이어나갔다. 2심에서 10억1000만원 배상 판결이 나왔는데, 지난해에 노사 합의로 회사가 소를 취하했다. 노조는 주야 2교대를 주간 연속 2교대로 전환해줄 것을 회사에 요구했다. 

회사는 40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냈는데, 유시영 회장은 나중에 부당노동행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아 노조 파업에 직장폐쇄로 응수하고 어용노조를 만들어 기존 노조 와해 공작을 한 것이다.

파업 당시 유성기업 영동지회 지회장이었던 이정훈씨는 “우편물이 자꾸 송달되니까 가정불화가 생기고 방황하면서 조합원들이 사망하기도 했다”며 “매일 아침저녁 조합원들과 미팅하면서 소송 상황을 투명하게 알리고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예정이라는 점을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씨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 노동자에게 천문학적 액수의 소송을 내는 것은 그 돈을 정말 받겠다는 목적은 아닐 것”이라며 “손해배상소송을 걸어서 노조를 와해시키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기업이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거는 것을 방지하고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원청 책임‧손해배상 금지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는 지난 14일 오전 11시30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는 “손해배상청구는 노동자의 노동권을 파괴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합법적인 쟁의행위를 하기가 어렵다. 어렵사리 합법적인 쟁의행위를 하더라도 작은 위법을 문제 삼아 파업 전체를 불법으로 내몰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도 허다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손해배상청구는 손해를 배상받을 목적이 아니라 파업하는 노동자를 괴롭혀서 노동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목적으로 활용된다. 손해배상을 당한 노동자의 삶은 파괴되고 노조는 무력화된다”고 말했다.

노동권
무력화

이들은 “노동권을 훼손하는 노조 활동에 대한 손해배상과 원청 책임의 불인정은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사회에서도 문제라고 지적해왔다. 노동자는 단결해 파업하고, 사용자와 대등하게 교섭을 할 수 있어야 현재의 불안정하고 불평등한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그동안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노동자들이 있다. 늦었지만 노동시민 사회가 이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권이 훼손된 현실을 바꾸고자 한다”며 “향후 일정은 노동자와 시민에게 노조법 개정의 필요성을 알리고,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이들과 연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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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