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살인’ 이은해 검찰 거북한 딜레마, 왜?

“공소장 변경” 요구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남정운 기자 = ‘계곡 살인사건’을 수사 중인 인천지검이 딜레마에 빠졌다. 검찰이 ‘작위에 의한 살인죄’ 혐의 입증에 애를 먹자 재판부가 직접 공소장 변경을 요구했다. 상당히 이례적이다. 검찰의 부실수사나 혐의와 맞지 않는 무리한 기소라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에 검찰이 추가한 혐의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다. 당초 경찰이 결론냈던 혐의와 같다. 동시에 인천지검이 외친 ‘검수완박 반대’의 정당성도 땅에 떨어지게 됐다.

국내 판례에서는 손도 대지 않고 사람이 살해된 적은 없다. 직접살인이 인정되면 유례없는 판결이 될 수 있다. 정신적 지배에 의한 극단적 선택 사건이 살인으로 인정된 판례도 없다. 그만큼 재판부가 짊어진 부담감은 컸을 것이다. 검찰도 난감해졌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반대를 외치며 이은해 사건을 예로 들었으나 결론적으로 경찰 수사와 큰 차이를 보이지 못하게 됐다.

‘부’한 글자에
형량 반 토막?

인천지검은 지난 4월 입장문을 통해 ‘검수완박’ 상태였다면 경찰에서 확보한 증거만으로 ‘계곡 살인사건’ 피의자들을 기소해 무죄판결을 받았거나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이 됐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검찰은 “경찰 차원의 재수사로 피해자에 대한 살인 혐의 입증이 충분했다는 취지의 일부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며 “일산서부경찰서 수사기록 검토 결과 (이 사건의)일부 피의자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송치되긴 했지만 살인의 범의를 입증할 결정적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피의자들이 부인하고 있었으므로 소추(공소 제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검찰의 이 같은 주장은 사실상 뒤집히게 됐다. 최근 인천지법 형사15부(부장판사 이규훈)가 진행한 13번째 심리에서 검찰은 피고인 이은해씨 등에 대한 공소장을 바꿨다. 지난달 30일 “부작위에 의한 살인도 염두에 두라”는 재판부의 요구 때문이다.


재판부가 검찰의 공소장 변경 신청을 허가하면서 사실상 ‘가스라이팅에 의한 살인’이라는 검찰의 논리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계곡 살인사건’ 공소장에 따르면 검찰은 2019년 6월30일 가평 용소계곡에서 피해자 윤모(당시 39세)씨가 계곡물에 빠진 뒤 이씨 등이 구호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살인 계획에 따라 피해자가 물에 뛰어든 직후 허우적대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씨는 위 계곡의 모래톱에 구명조끼가 3벌 있었고, 조모씨에게 튜브가 있어 즉각 피해자를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동행한)A씨에게 이씨는 구명튜브를 가지러 가자고 유인했다. 계곡에서 약 58m 떨어진 곳에 비치된 구명튜브를 가지러 가는 방법으로 현장에서 이탈시켜 피해자에 대한 구호조치를 적기에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씨에 대해선 “피해자와 약 5m 거리에서 튜브를 착용하고 있었음에도 피해자에게 튜브를 던져 주지 않았다”며 “피해자가 물속에 잠겼음에도 즉시 피해자가 빠진 위치 인근으로 다가가 물에 잠긴 피해자를 수색해 물 밖으로 인도하는 등의 구호 조치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혐의를 변경하지 않았다. 혐의는 유지하되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한 것이다. 쉽게 말해 작위적 요소와 부작위적 요소가 결합해있다고 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볼 땐 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법이 금지한 행위를 직접 실행한 상황에는 ‘작위’, 마땅히 해야 할 행위를 하지 않은 경우를 ‘부작위’라고 한다. 통상 작위에 의한 살인이 유죄로 인정됐을 때 부작위에 의한 살인보다 형량이 훨씬 높다.

재판부 “부작위 살인도 염두” 이례적 지적
‘가스라이팅 의한 살인’ 수사 논리 흔들려


법조계에서는 피의자들의 형량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재판부가 검찰에 공소장 변경 요청을 지적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라며 “작위로 재판을 수차례 진행하다 부작위가 추가된 것은 검찰의 논리가 흔들렸다는 것이다. 검찰의 기대와는 다르게 형량이 크게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이날 재판에서 살인 및 보험사기방지특별법위반미수 혐의를 받는 B씨에 대한 증인심문이 진행됐다. 이씨 등이 가평 용소계곡에 갈 때 동행했던 그는 이번 사건의 키맨으로 꼽힌다. 그의 증언이 공개된 건 이날이 처음이다.

B씨는 검찰 질문에 대부분 “알지 못한다, 모른다”고 말했다. B씨는 “윤씨가 물에 빠졌을 당시 현장에서 무엇을 했나”라는 검찰의 질문에 “수영을 잘하지 못하는데 경황이 없었고 물이 무서워서 물에 들어가질 않았다. 현장 주소를 몰라 인근 펜션으로 가서 주인에게 주소를 묻고 계속 개인 휴대전화로 소방대원과 통화했다”고 답했다.

피해자 윤씨의 수영 실력을 알았는지를 묻는 말엔 “수영을 잘 못하는지 몰랐다”고 했다.

B씨는 달아난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살인 혐의를 받는 피의자로선 이례적으로 불구속 수사를 받아왔다. 그는 수사기관에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나 조사에는 성실하게 임해왔다.

앞서 경기일산서부경찰서는 2020년 12월 B씨를 살인 및 보험사기방지특별법위반미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2019년 6월 30일 경기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윤씨가 살해된 사건에 B씨가 가담했다고 본 것이다. 최근 한 방송사가 공개한 영상엔 당시 B씨가 용소계곡에서 물놀이하며 윤씨를 조롱하고 괴롭히는 듯한 모습이 담겼다. B씨는 조씨와 친구 사이이며 이씨와도 알고 지낸 사이다.

가해자 형량
낮아질라 우려

앞서 B씨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지난해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인들과 공모해 2019년 9월부터 12월까지 6000만원 상당의 프로포폴을 판매한 사실이 수사기관에 적발되면서다. 그는 이 사건으로 2020년 12월 구속 기소돼 이듬해 5월 징역 1년형을 받았다.

이는 인천지검이 계곡 살인사건을 재수사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사법당국에 따르면 당시 재감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그는 지난해 말 형기를 마쳤다고 한다. 이씨 등이 2차 검찰 소환조사를 앞두고 도주한 시점과 시간상 근접해 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이씨와 조씨가 잠적한 이후에도 B씨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게다가 B씨가 수사기관에서 자신의 혐의를 줄곧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그의 신병처리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도 혐의를 부인하며 변호인을 대동해 성실하게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B씨가 자신의 공범 혐의는 부인하면서도 달아난 이·조씨와 관련해서는 모종의 구체적인 진술을 한 게 아니냐는 추론도 나온다.

검찰의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추가는 재판부의 부담이 컸다는 것을 방증한다. 특히 경찰의 수사 결론과 같아졌다.


사실상 경찰과
같은 결론으로

앞서 윤씨가 숨지자 변사사건으로 수사한 가평경찰서는 2019년 10월 내사 종결했고 유족 지인의 제보로 일산서부경찰서가 재수사를 벌여 살인 등의 혐의로 이·조씨를 불구속 입건해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로 2020년 12월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 송치했다.

고양지청은 이·조씨가 인천에 거주하는 점을 고려해 사건을 인천지검에 이송했고 인천지검이 지난해 12월까지 재수사를 하다가 이·조씨가 도주했다.

인천지검은 이례적으로 공개 입장을 밝히면서 여론몰이에 나섰다. 직접 수사에 나섰던 인천지검 박세혁 검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검수완박법이 시행됐더라면 계곡 사건 이전 두 번의 살인미수에 대해 “수법과 시기가 달라 직접 수사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계곡 살인 자체를 무혐의 처분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수사를 담당한 김창수 인천지검 형사2부 부장검사도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높은 의혹 수준의 중요사건으로 볼 수 있는 이 사건은 ‘낮은 강도’의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고 밝혔다. 김 부장검사는 “기본적으로 내사 종결 사건이다. 사건이 잘 안 될 것 같은 각이라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특별하고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구속은커녕 기소조차 담보하기 어려운 사건”이라며 “이 사건 역시 ‘선수’의 냄새는 나지만, 그렇다고 증거도 없이 잡으러 들어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고 설명했다.


인천지검, “검수완박이었으면 진실 묻혔다” 거짓 입장
일산서부서, 간접살인 불구속기소 성과 내 검찰로 송치

그러면서 “기술적으로 사건을 받았을 땐 공조할 경찰서가 없었다. 수사지휘권은 폐지됐으므로 경찰의 협조는 은혜적인 것으로 남게 됐다”며 “이씨 등의 주민등록지를 관할하는 인천 소재 경찰서들 역시 1차 수사를 하지 않은 관서라서 적극적 협조 요청은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김 부장검사는 인천지검 형사2부가 30대가 넘는 휴대전화 등을 새로 압수한 뒤 디지털 포렌식 등 증거 분석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김 부장검사는 형사2부 검사들이 온라인으로 피해자 성묘를 했다며 검수완박 국면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검사 수사 전면 폐지 이후 검찰 수사가 불가피한 영역들은 존경하는 어느 의원님 말씀처럼 ‘증발’할 것”이라며 “검찰 수사를 통해 억울함을 풀고 진실을 밝히는 것도 계속 가능하면 좋겠다”고 적었다. 이어 “할 수 있는 것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한 진실을 밝히고, 반드시 범인을 잡아 죗값을 받아내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경찰은 검찰의 사실과 다른 입장에 대해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도 이례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열어 입장을 밝혔다. 남 본부장은 “경찰이 단순 변사 종결한 것을 검찰에서 밝혀냈다는 일부 주장은 분명히 사실과 다르다는 점, 명확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초 가평경찰서에서 변사자 부검과 통화내역, 주변인 조사, 보험 관계까지 조사했으나 명확히 혐의가 드러나지 않아 일단 내사 종결한 것은 맞다”면서도 “한 달 후에 일산서부경찰서에서 재수사에 착수해 살인 혐의를 밝혀 송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난감한 검
불쾌한 경

남 본부장은 또 “그 이후 검찰에서 추가 혐의 사실을 발견해 수사 중이라는 게 팩트다. 현 시스템에서 검찰과 경찰이 각자 역할을 다한 것”이라며 “누구는 잘했고 못했고 하는 식의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곡 살인’ 최종 형량은?

이은해씨와 조모씨의 혐의가 살인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과 살인미수에 이어 부작위 살인죄까지 추가되면서 10년이 넘는 형량이 선고될 가능성은 크다.

그러나 검찰이 기대한 형량보다 적은 형량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이씨와 같이 보험금을 노린 범죄는 이전에도 있었다.

2003년 남편과 자녀, 친구 등을 독극물로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일으킨 A씨는 사건 하루 전날, 보험료가 없어서 보험 설계사에게 보험료를 대납하게 하면서까지 딸의 사망보험에 가입했다.

그리고 딸의 보험금을 청구했다.

A씨는 2년간의 재판 끝에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법원은 2005년 자신의 남편과 존속에게 상해를 입히고 살해해 보험금을 타낸 ‘엄여인 보험 살인사건’과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벌어진 ‘포천농약 살인사건’의 범죄자 두 명에게도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처럼 법원은 국민의 공분을 산 ‘보험 존속살인 사건’의 피의자들에 대해 무관용 원칙에 따라 ‘무기징역’이란 법정 최고 수준의 형벌을 내렸다.

검찰이 추가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는 ▲구조 의무가 있는지 여부 ▲살인의 고의 여부 ▲구조 의무를 얼마나 성실히 이행했는지 여부 등이 핵심이다.

부작위범 성립 여부 관련, 이씨와 조씨가 구조의 의무가 있는지를 살펴보면 이씨의 경우 법률상 배우자로서 구조의 의무가 인정된다.

또 조씨 역시도 이씨와 함께 윤씨를 계곡으로 데려가고,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윤씨를 뛰어내리도록 종용해 위험 발생을 야기한 측면에서 그 의무가 인정된다.

이씨와 조씨가 이 점을 부인한다고 해도 재판부가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2차례의 살인미수 정황, 피해자 명의의 거액의 생명보험이 가입돼있었던 점, 보험 시효가 4시간 앞둔 상황에서 발생된 (피해자의 사망)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살인의 고의 역시도 인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한 현직 판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조씨가 수영에 능숙했고 윤씨가 뛰어내린 뒤 허우적대는 상황을 지켜봤음에도 구조하지 않은 게 크다”며 “이씨도 조씨나 주변에 윤씨에 대한 구조 요청을 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때 구조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다고 볼 수 없다”고 분석했다. <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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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