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살인’ 이은해 검찰 거북한 딜레마, 왜?

“공소장 변경” 요구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남정운 기자 = ‘계곡 살인사건’을 수사 중인 인천지검이 딜레마에 빠졌다. 검찰이 ‘작위에 의한 살인죄’ 혐의 입증에 애를 먹자 재판부가 직접 공소장 변경을 요구했다. 상당히 이례적이다. 검찰의 부실수사나 혐의와 맞지 않는 무리한 기소라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에 검찰이 추가한 혐의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다. 당초 경찰이 결론냈던 혐의와 같다. 동시에 인천지검이 외친 ‘검수완박 반대’의 정당성도 땅에 떨어지게 됐다.

국내 판례에서는 손도 대지 않고 사람이 살해된 적은 없다. 직접살인이 인정되면 유례없는 판결이 될 수 있다. 정신적 지배에 의한 극단적 선택 사건이 살인으로 인정된 판례도 없다. 그만큼 재판부가 짊어진 부담감은 컸을 것이다. 검찰도 난감해졌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반대를 외치며 이은해 사건을 예로 들었으나 결론적으로 경찰 수사와 큰 차이를 보이지 못하게 됐다.

‘부’한 글자에
형량 반 토막?

인천지검은 지난 4월 입장문을 통해 ‘검수완박’ 상태였다면 경찰에서 확보한 증거만으로 ‘계곡 살인사건’ 피의자들을 기소해 무죄판결을 받았거나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이 됐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검찰은 “경찰 차원의 재수사로 피해자에 대한 살인 혐의 입증이 충분했다는 취지의 일부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며 “일산서부경찰서 수사기록 검토 결과 (이 사건의)일부 피의자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송치되긴 했지만 살인의 범의를 입증할 결정적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피의자들이 부인하고 있었으므로 소추(공소 제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검찰의 이 같은 주장은 사실상 뒤집히게 됐다. 최근 인천지법 형사15부(부장판사 이규훈)가 진행한 13번째 심리에서 검찰은 피고인 이은해씨 등에 대한 공소장을 바꿨다. 지난달 30일 “부작위에 의한 살인도 염두에 두라”는 재판부의 요구 때문이다.


재판부가 검찰의 공소장 변경 신청을 허가하면서 사실상 ‘가스라이팅에 의한 살인’이라는 검찰의 논리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계곡 살인사건’ 공소장에 따르면 검찰은 2019년 6월30일 가평 용소계곡에서 피해자 윤모(당시 39세)씨가 계곡물에 빠진 뒤 이씨 등이 구호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살인 계획에 따라 피해자가 물에 뛰어든 직후 허우적대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씨는 위 계곡의 모래톱에 구명조끼가 3벌 있었고, 조모씨에게 튜브가 있어 즉각 피해자를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동행한)A씨에게 이씨는 구명튜브를 가지러 가자고 유인했다. 계곡에서 약 58m 떨어진 곳에 비치된 구명튜브를 가지러 가는 방법으로 현장에서 이탈시켜 피해자에 대한 구호조치를 적기에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씨에 대해선 “피해자와 약 5m 거리에서 튜브를 착용하고 있었음에도 피해자에게 튜브를 던져 주지 않았다”며 “피해자가 물속에 잠겼음에도 즉시 피해자가 빠진 위치 인근으로 다가가 물에 잠긴 피해자를 수색해 물 밖으로 인도하는 등의 구호 조치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혐의를 변경하지 않았다. 혐의는 유지하되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한 것이다. 쉽게 말해 작위적 요소와 부작위적 요소가 결합해있다고 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볼 땐 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법이 금지한 행위를 직접 실행한 상황에는 ‘작위’, 마땅히 해야 할 행위를 하지 않은 경우를 ‘부작위’라고 한다. 통상 작위에 의한 살인이 유죄로 인정됐을 때 부작위에 의한 살인보다 형량이 훨씬 높다.

재판부 “부작위 살인도 염두” 이례적 지적
‘가스라이팅 의한 살인’ 수사 논리 흔들려


법조계에서는 피의자들의 형량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재판부가 검찰에 공소장 변경 요청을 지적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라며 “작위로 재판을 수차례 진행하다 부작위가 추가된 것은 검찰의 논리가 흔들렸다는 것이다. 검찰의 기대와는 다르게 형량이 크게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이날 재판에서 살인 및 보험사기방지특별법위반미수 혐의를 받는 B씨에 대한 증인심문이 진행됐다. 이씨 등이 가평 용소계곡에 갈 때 동행했던 그는 이번 사건의 키맨으로 꼽힌다. 그의 증언이 공개된 건 이날이 처음이다.

B씨는 검찰 질문에 대부분 “알지 못한다, 모른다”고 말했다. B씨는 “윤씨가 물에 빠졌을 당시 현장에서 무엇을 했나”라는 검찰의 질문에 “수영을 잘하지 못하는데 경황이 없었고 물이 무서워서 물에 들어가질 않았다. 현장 주소를 몰라 인근 펜션으로 가서 주인에게 주소를 묻고 계속 개인 휴대전화로 소방대원과 통화했다”고 답했다.

피해자 윤씨의 수영 실력을 알았는지를 묻는 말엔 “수영을 잘 못하는지 몰랐다”고 했다.

B씨는 달아난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살인 혐의를 받는 피의자로선 이례적으로 불구속 수사를 받아왔다. 그는 수사기관에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나 조사에는 성실하게 임해왔다.

앞서 경기일산서부경찰서는 2020년 12월 B씨를 살인 및 보험사기방지특별법위반미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2019년 6월 30일 경기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윤씨가 살해된 사건에 B씨가 가담했다고 본 것이다. 최근 한 방송사가 공개한 영상엔 당시 B씨가 용소계곡에서 물놀이하며 윤씨를 조롱하고 괴롭히는 듯한 모습이 담겼다. B씨는 조씨와 친구 사이이며 이씨와도 알고 지낸 사이다.

가해자 형량
낮아질라 우려

앞서 B씨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지난해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인들과 공모해 2019년 9월부터 12월까지 6000만원 상당의 프로포폴을 판매한 사실이 수사기관에 적발되면서다. 그는 이 사건으로 2020년 12월 구속 기소돼 이듬해 5월 징역 1년형을 받았다.

이는 인천지검이 계곡 살인사건을 재수사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사법당국에 따르면 당시 재감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그는 지난해 말 형기를 마쳤다고 한다. 이씨 등이 2차 검찰 소환조사를 앞두고 도주한 시점과 시간상 근접해 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이씨와 조씨가 잠적한 이후에도 B씨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게다가 B씨가 수사기관에서 자신의 혐의를 줄곧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그의 신병처리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도 혐의를 부인하며 변호인을 대동해 성실하게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B씨가 자신의 공범 혐의는 부인하면서도 달아난 이·조씨와 관련해서는 모종의 구체적인 진술을 한 게 아니냐는 추론도 나온다.

검찰의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추가는 재판부의 부담이 컸다는 것을 방증한다. 특히 경찰의 수사 결론과 같아졌다.


사실상 경찰과
같은 결론으로

앞서 윤씨가 숨지자 변사사건으로 수사한 가평경찰서는 2019년 10월 내사 종결했고 유족 지인의 제보로 일산서부경찰서가 재수사를 벌여 살인 등의 혐의로 이·조씨를 불구속 입건해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로 2020년 12월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 송치했다.

고양지청은 이·조씨가 인천에 거주하는 점을 고려해 사건을 인천지검에 이송했고 인천지검이 지난해 12월까지 재수사를 하다가 이·조씨가 도주했다.

인천지검은 이례적으로 공개 입장을 밝히면서 여론몰이에 나섰다. 직접 수사에 나섰던 인천지검 박세혁 검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검수완박법이 시행됐더라면 계곡 사건 이전 두 번의 살인미수에 대해 “수법과 시기가 달라 직접 수사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계곡 살인 자체를 무혐의 처분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수사를 담당한 김창수 인천지검 형사2부 부장검사도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높은 의혹 수준의 중요사건으로 볼 수 있는 이 사건은 ‘낮은 강도’의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고 밝혔다. 김 부장검사는 “기본적으로 내사 종결 사건이다. 사건이 잘 안 될 것 같은 각이라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특별하고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구속은커녕 기소조차 담보하기 어려운 사건”이라며 “이 사건 역시 ‘선수’의 냄새는 나지만, 그렇다고 증거도 없이 잡으러 들어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고 설명했다.


인천지검, “검수완박이었으면 진실 묻혔다” 거짓 입장
일산서부서, 간접살인 불구속기소 성과 내 검찰로 송치

그러면서 “기술적으로 사건을 받았을 땐 공조할 경찰서가 없었다. 수사지휘권은 폐지됐으므로 경찰의 협조는 은혜적인 것으로 남게 됐다”며 “이씨 등의 주민등록지를 관할하는 인천 소재 경찰서들 역시 1차 수사를 하지 않은 관서라서 적극적 협조 요청은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김 부장검사는 인천지검 형사2부가 30대가 넘는 휴대전화 등을 새로 압수한 뒤 디지털 포렌식 등 증거 분석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김 부장검사는 형사2부 검사들이 온라인으로 피해자 성묘를 했다며 검수완박 국면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검사 수사 전면 폐지 이후 검찰 수사가 불가피한 영역들은 존경하는 어느 의원님 말씀처럼 ‘증발’할 것”이라며 “검찰 수사를 통해 억울함을 풀고 진실을 밝히는 것도 계속 가능하면 좋겠다”고 적었다. 이어 “할 수 있는 것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한 진실을 밝히고, 반드시 범인을 잡아 죗값을 받아내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경찰은 검찰의 사실과 다른 입장에 대해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도 이례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열어 입장을 밝혔다. 남 본부장은 “경찰이 단순 변사 종결한 것을 검찰에서 밝혀냈다는 일부 주장은 분명히 사실과 다르다는 점, 명확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초 가평경찰서에서 변사자 부검과 통화내역, 주변인 조사, 보험 관계까지 조사했으나 명확히 혐의가 드러나지 않아 일단 내사 종결한 것은 맞다”면서도 “한 달 후에 일산서부경찰서에서 재수사에 착수해 살인 혐의를 밝혀 송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난감한 검
불쾌한 경

남 본부장은 또 “그 이후 검찰에서 추가 혐의 사실을 발견해 수사 중이라는 게 팩트다. 현 시스템에서 검찰과 경찰이 각자 역할을 다한 것”이라며 “누구는 잘했고 못했고 하는 식의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곡 살인’ 최종 형량은?

이은해씨와 조모씨의 혐의가 살인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과 살인미수에 이어 부작위 살인죄까지 추가되면서 10년이 넘는 형량이 선고될 가능성은 크다.

그러나 검찰이 기대한 형량보다 적은 형량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이씨와 같이 보험금을 노린 범죄는 이전에도 있었다.

2003년 남편과 자녀, 친구 등을 독극물로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일으킨 A씨는 사건 하루 전날, 보험료가 없어서 보험 설계사에게 보험료를 대납하게 하면서까지 딸의 사망보험에 가입했다.

그리고 딸의 보험금을 청구했다.

A씨는 2년간의 재판 끝에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법원은 2005년 자신의 남편과 존속에게 상해를 입히고 살해해 보험금을 타낸 ‘엄여인 보험 살인사건’과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벌어진 ‘포천농약 살인사건’의 범죄자 두 명에게도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처럼 법원은 국민의 공분을 산 ‘보험 존속살인 사건’의 피의자들에 대해 무관용 원칙에 따라 ‘무기징역’이란 법정 최고 수준의 형벌을 내렸다.

검찰이 추가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는 ▲구조 의무가 있는지 여부 ▲살인의 고의 여부 ▲구조 의무를 얼마나 성실히 이행했는지 여부 등이 핵심이다.

부작위범 성립 여부 관련, 이씨와 조씨가 구조의 의무가 있는지를 살펴보면 이씨의 경우 법률상 배우자로서 구조의 의무가 인정된다.

또 조씨 역시도 이씨와 함께 윤씨를 계곡으로 데려가고,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윤씨를 뛰어내리도록 종용해 위험 발생을 야기한 측면에서 그 의무가 인정된다.

이씨와 조씨가 이 점을 부인한다고 해도 재판부가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2차례의 살인미수 정황, 피해자 명의의 거액의 생명보험이 가입돼있었던 점, 보험 시효가 4시간 앞둔 상황에서 발생된 (피해자의 사망)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살인의 고의 역시도 인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한 현직 판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조씨가 수영에 능숙했고 윤씨가 뛰어내린 뒤 허우적대는 상황을 지켜봤음에도 구조하지 않은 게 크다”며 “이씨도 조씨나 주변에 윤씨에 대한 구조 요청을 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때 구조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다고 볼 수 없다”고 분석했다. <혁>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심우정-조국 딸 스캔들 오버랩

심우정-조국 딸 스캔들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심우정 검찰총장이 ‘딸 특혜 채용 논란’에 휩싸였다. 자격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외교부에 최종 합격했다. 외교부가 오직 심 총장의 딸을 위해 전형까지 엎었다는 게 골자다. 외교부는 특혜가 아니라던 입장을 뒤집고, 심 총장 지녀 채용을 보류했다. 정치권에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사안처럼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필요하다며 맹공을 펼치고 나섰다. 심우정 검찰총장의 딸 심모씨는 ‘아빠 찬스’로 취업에 성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국립외교원 기간제 연구원과 외교부 공무직 연구원에 합격할 수 없었다. 지원 자격 자체가 미달 수준이었다. 일각에서는 입시 비리 혐의를 받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의 사안보다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수사기관이 심씨를 즉각 수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아빠 찬스? 수상한 합격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지난달 2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현안 질의서 심씨의 특혜 채용 의혹을 제기했다. 이 문제는 지난해 9월 심 총장의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서 언급됐었다. 당시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은 심 총장의 장녀가 11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국립외교원 연구원으로 채용됐는데, 심 후보자가 이와 관련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당시 “후보자 장녀가 최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석사 과정을 이수했다”며 “후보자 자녀는 대학생들이 선망하는 국립외교원 연구원으로 채용됐다. (장녀가)서울대 국제대학원 1학년 때 박철희 교수에게 수업을 받았다”며 “박 교수는 현직 주일대사고, 후보자 본인 장녀가 입사할 당시 국립외교원장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철희 국립외교원장은 나카소네 야스히로상 수상자”라며 “제1회(수상자) 박철희 주일대사고, 윤석열정부서 ‘중요한 건 일본 마음’이라고 말한 김태효 차장이 제5회 장려상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심 총장이 “문제가 없다”고 답변하자, 박 의원은 “그러면 채용 서류를 내라.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전부터 채용서류 전체를 내라고 하는 것”이라며 “의원실서 계속 요구하지만 후보자 동의가 없어서 (외교원이) 내질 않고 있다”고 따져 물었다. 외교부의 지난 1월 1차 공무직 연구원 채용 공고에는 ‘경제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가 응시 자격이었다. 그런데 한 달 뒤인 2차 공고는 갑자기 심씨가 전공한 ‘국제정치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로 변경됐다. 외교부는 응시 가능 대상을 확대하려는 목적이었다고 주장하지만 변경 전에 응시했던 이들은 2차 공고 때는 응시조차 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의 공정채용 가이드라인 등에 따르면, 채용공고를 변경할 때는 채용 관련 심의기구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외교부는 인사기획관실과 서면 협의만 거쳤다. 심의기구를 통한 공정성을 확보하지 않은 채 채용 공고를 변경한 셈이다. 채용 경력을 두고도 외교부가 자의적으로 해석해 심씨에게 특혜를 줬다는 지적도 거세다. 채용 공고에는 해당 분야 실무 경력 2년 이상이 응시 자격이었다. 그러나 심씨의 경력은 국립외교원 연구원 8개월,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보조원 22개월, UN 경제사회국 인턴 6개월로 실제 경력은 8개월에 불과했다. 경력 1년도 안 되는데 스펙 과대 포장해 지원 외교부 전형까지 뒤집어…기존 면접자는 탈락 외교부는 학창 시절의 경험도 경력으로 인정한다고 해명했지만, 외교부 산하 기관서 2022년과 2023년에 낸 채용공고엔 인턴이나, 교육생, 학위 취득에 소요되는 행정조교 등은 경력서 제외한다고 적시돼있다. 심씨는 서울대 국제학연구소 산하 EU센터서 연구보조원으로 근무했다고 실무 경력에 적었다. 하지만 서울대 국제학연구소가 발간한 2023년 연례보고서에는 심씨가 연구 보조원이 아닌 EU센터 ‘석사 연구생’으로 적혀 있다. 민주당은 지난 2일 심씨의 외교부 특혜 채용 의혹 관련 진상조사단을 출범했다. 조사단에는 한 의원을 포함해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김영배·홍기원·이재강 의원,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김기표·박희승 의원,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박홍배·이용우 의원, 정무위원회 소속 강준현·이정문 의원,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성회 의원, 교육위원회 소속 고민정·백승아 의원 등 총 12명의 의원이 참여했다. 이들은 심 총장을 포함한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 고발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외교부는 지난 1일,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면접까지 통과해 현재 신원 조사 절차만 남겨둔 심씨의 외교부 공무직 연구원 채용은 감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유보됐다. 공익감사는 감사 대상 기관이 자체 감사기구서 직접 처리하기 어려운 경우 등에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조국혁신당 윤재관 대변인은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감사원은 검찰의 2중대 역할을 자처해 왔다.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하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며 “감사원을 동원해 면죄부를 받으려는 시도는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조사단은 심 총장 자녀 관련 ‘권력형 비리’ 의혹과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규명하고 대응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심 총장 딸의 외교부 특혜 채용 비리 의혹 및 서민금융 대출 논란, 심 총장 아들의 장학금 수령 특혜 의혹 등을 들여다볼 방침이다. 앞서 민주당 외통위원들은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립외교원 연구원 채용 공고상 자격 요건에 ‘해당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 또는 학사학위 소지자 중 2년 이상 관련 분야 근무 경험자’라고 돼있지만 심 총장 딸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특혜 채용 의혹을 주장한 바 있다. 급 바뀐 채용공고 심 총장은 입장문을 내고 “근거 없는 의혹 제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검찰총장의 자녀는 대한민국의 다른 모든 청년들과 같이 본인의 노력으로 채용 절차에 임했다. 국회에 자료 제출을 위한 외교부의 개인정보 제공 요청에도 동의했다”고 반박했다. 한 의원은 최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심씨 특혜 채용에 핵심 역할을 한 인물이 박장호 외교부 외교정보기획국장이라고 주장했다. 한 의원은 “(박장호 외교부 외교정보기획국장은)윤석열정권 출범 직후 2022년 7월 정도에 대통령실 외교비서관실로 들어갔다가 2024년 1월에 외교부로 복귀해 5월 말, 한반도 평화교섭본부를 없애고 새롭게 신설한 외교전략정보본부 외교정보기획국장으로 보직받아 오늘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한 의원에 따르면 2023년 외교부 연구직 채용 1차 공고 당시 직접 면접에 참여한 박 국장은 지원자 A씨를 “한국어가 서툴다”는 이유로 탈락시켰다. 하지만 A씨는 한국서 나고 자라 학위까지 받은 인물로 언어능력을 문제 삼을 만한 근거는 부족했다. A씨의 탈락 이후 외교부는 2차 공고를 내며 채용 자격을 경제 관련 석사학위 소지자에서 국제정치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로 변경했다. 이때 국제협력 분야를 전공한 심씨가 합격하게 된 것이다. 한 의원은 박 국장의 대통령실 근무 경험이 심씨의 채용 과정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채용 실무가 인사기획관실이 아닌 외교정보기획국 산하 외교정보1과서 이뤄졌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그는 “아무래도 용산에 파견 나가 있으면 조금 더 넓게 여러 부처와 관련된 사람들을 접할 수밖에 없다”며 “그런 과정서 어떤 방식이든지 어떤 접점이 이뤄지지 않았겠냐라고 하는 것은 있는데 그 부분은 저희가 조금 더 깊이 파봐야 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공수처 먹잇감 심 총장과 갈등을 빚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 심씨의 사건은 좋은 먹잇감이다. 지난 3일 공수처는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이하 사세행)이 심 총장과 조태열 장관을 직권남용, 특정범죄가중법상 뇌물,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수사3부(부장검사 이대환)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수사3부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석방을 지휘해 고발당한 심 총장 사건도 수사 중이다. 사세행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검찰의 수장인 심우정 검찰총장의 딸을 뇌물성 채용한 행위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바란다”고 밝혔다. 공수처가 수사에 착수하면서 감사원이 공익감사 청구를 각하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공익감사 청구는 6개월 이내 결과를 내놔야 하되 기한은 자체 판단으로 늘릴 수 있는데, 그전에 감사에 착수할지 여부부터 감사위원회의 판단을 거쳐야 한다. 과거 사례를 보면 감사 청구를 각하하는 이유는 통상 이미 같은 사안에 대한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인 경우가 많다. 공수처 수사가 각하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법상 감사원이 거부할 수 없는 국회 요구 감사의 경우에도 수사나 재판을 이유로 ‘사실상 각하’했던 최근 사례도 있다. 감사원은 지난달 25일 국회가 요구한 방송통신위원회 2인 구조 등 감사를 두고, 같은 사안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위법성 여부를 감사원이 결론 내리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된다”고 매듭지은 보고서를 내놨다. 정치권에서는 야권을 중심으로 심씨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입시 비리 논란을 일으켰던 조 전 장관 부부가 받았던 수사와 현재 상황을 비교하면 검찰의 이중적 잣대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조 전 장관이 받았던 검찰 수사를 보면 입시 비리 혐의만으로도 압수수색 등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같은 혐의를 받는 심 총장 딸의 경우 멀쩡하게 살고 있다는 걸 국민 눈높이서 봤을 때 형평성 논란이 일 것”이라며 “이건 상식의 문제”라고 비판했다. 조민은 집유 “강도 높게 수사해야” 용산 파견 키맨 박장호 국장 뒷배? 여당인 국민의힘도 조용하다. 지난달 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간부 자녀 특혜 채용을 두고 “제2의 인국공(인천국제공항) 사태를 넘어 제2의 조국 사태”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공수처가 심 총장과 심씨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인력난이 지속되는 가운데 주요 고발 사건이 이어지면서 수사 지연은 불가피하다. 지난 4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 인사추천위원회는 지난 1월 부장검사 1명과 평검사 3명 등 4명의 검사 임명을 대통령실에 제청했지만 두 달이 넘도록 임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 검사는 인사위 추천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앞서 공수처는 지난해 9월에도 부장검사 1명과 평검사 2명 등 3명의 검사를 추천했지만 대통령실은 반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답이 없는 상태다. 윤 전 대통령은 국회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될 때까지 이들을 임명하지 않았고,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한덕수 국무총리는 송창진 수사2부장의 면직을 재가하면서도 신규 검사 임명은 하지 않았다. 한 총리의 뒤를 이은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경찰청 등 부처 인사는 진행하면서도 공수처 검사는 임명하지 않았다. 신규 검사 임명이 늦어지면서 고질적인 공수처 인력난도 지속되고 있다. 공수처 검사 정원은 처장과 차장을 포함해 25명이지만 현재 검사 인원은 휴직자 1명을 포함해 14명에 불과하다. 정원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신규 검사 7명을 임명해도 정원보다 4명이 부족하다. 공수처 내부에서는 과부하 상태라는 우려가 나온다. 12·3 비상계엄 수사와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 비위 의혹 수사 등 기존 수사에 인력이 집중돼있어 타 수사를 들여다볼 여력이 없다는 토로도 상당하다. 수사? 미지수 공수처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고발 사건이 이어지고 있지만 배당받은 사건을 전부 들여다보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통령실이 하루빨리 검사 임명을 해줘야 타 사건도 들여다볼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반박에 반박 나선 외교부 외교부가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입장을 재반박하는 장문의 입장문을 내놨다. 외교부는 “관점에 따라 제도 운영 과정서 미흡했던 부분이 지적될 수는 있겠지만, 이를 특정 인물에 대한 특혜로 연결 짓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외교부는 지난해 ‘석사학위 소지자 또는 학사학위 소지 후 2년 이상 관련 분야 근무자’를 대상으로 채용 공고한 국립외교원 기간제 연구원에 석사 취득 예정 상태였던 심씨가 채용된 것에 대해 심씨만 특별히 배려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학위 취득 예정서를 공식 증명서로 증빙하면 자격요건을 갖춘 것으로 인정했던 사례가 2021~2025년까지 총 8건 더 있었다”고 반박했다. 외교부는 올 초 외교부 정책조사 연구원 채용 과정서 이미 최종 면접까지 마친 응시자가 불합격 처리되고, 심씨를 위한 ‘맞춤형’으로 응시 자격을 바꿔 재공고했다는 의혹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경제 관련 석사학위 소지자’를 대상으로 1차 공고를 냈을 때 응시 인원이 6명에 불과했고, 그 중 유일하게 경제 관련 석사학위를 소지한 응시자 1명에 대해 외부 인사 2명과 내부 인사 1명으로 구성된 면접위원회가 최종 면접을 했으나 채용 부적격 판정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외교부는 “1차 채용 공고문에 ‘응시자 중 적격자가 없을 경우 선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사전에 공지했다”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2차 공고에선 응시 가능 대상을 넓히기 위해 자격 요건을 ‘국제정치 분야 석사학위 소지자’로 변경했고, 그 결과 19명의 지원자가 응시해 심씨를 포함한 5명이 서류 전형을 통과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이번처럼 1차 공고 후 적격자가 없어 전공·자격증 분야 등 응시 자격 요건을 변경해 재공고한 사례는 타 부처는 물론 외교부 내에서도 과거 전례가 있다면서 “(심씨가)유일하다는 지적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앞서 외교부의 이 같은 설명에 대해 “응모한 사람이 적더라도 (같은) 채용 공고 사이트를 보면 재공고를 해서라도 기한을 연장해 해당 분야 사람을 찾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심씨가 또 다른 응시 요건인 ‘실무 경력 2년 이상’을 충족했는지도 논란이 큰 쟁점이다. 외교부는 심씨의 실무 경력을 국립외교원 경력 8개월, 서울대 국제학연구소 연구보조원, 유엔 산하 기구 인턴 등을 포함해 총 35개월로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외통위원들은 “인턴, 조교 등은 통상 실무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며 “경험과 경력은 엄연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