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살인’ 이은해 검찰 거북한 딜레마, 왜?

“공소장 변경” 요구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남정운 기자 = ‘계곡 살인사건’을 수사 중인 인천지검이 딜레마에 빠졌다. 검찰이 ‘작위에 의한 살인죄’ 혐의 입증에 애를 먹자 재판부가 직접 공소장 변경을 요구했다. 상당히 이례적이다. 검찰의 부실수사나 혐의와 맞지 않는 무리한 기소라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에 검찰이 추가한 혐의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다. 당초 경찰이 결론냈던 혐의와 같다. 동시에 인천지검이 외친 ‘검수완박 반대’의 정당성도 땅에 떨어지게 됐다.

국내 판례에서는 손도 대지 않고 사람이 살해된 적은 없다. 직접살인이 인정되면 유례없는 판결이 될 수 있다. 정신적 지배에 의한 극단적 선택 사건이 살인으로 인정된 판례도 없다. 그만큼 재판부가 짊어진 부담감은 컸을 것이다. 검찰도 난감해졌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반대를 외치며 이은해 사건을 예로 들었으나 결론적으로 경찰 수사와 큰 차이를 보이지 못하게 됐다.

‘부’한 글자에
형량 반 토막?

인천지검은 지난 4월 입장문을 통해 ‘검수완박’ 상태였다면 경찰에서 확보한 증거만으로 ‘계곡 살인사건’ 피의자들을 기소해 무죄판결을 받았거나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이 됐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검찰은 “경찰 차원의 재수사로 피해자에 대한 살인 혐의 입증이 충분했다는 취지의 일부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며 “일산서부경찰서 수사기록 검토 결과 (이 사건의)일부 피의자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송치되긴 했지만 살인의 범의를 입증할 결정적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피의자들이 부인하고 있었으므로 소추(공소 제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검찰의 이 같은 주장은 사실상 뒤집히게 됐다. 최근 인천지법 형사15부(부장판사 이규훈)가 진행한 13번째 심리에서 검찰은 피고인 이은해씨 등에 대한 공소장을 바꿨다. 지난달 30일 “부작위에 의한 살인도 염두에 두라”는 재판부의 요구 때문이다.

재판부가 검찰의 공소장 변경 신청을 허가하면서 사실상 ‘가스라이팅에 의한 살인’이라는 검찰의 논리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계곡 살인사건’ 공소장에 따르면 검찰은 2019년 6월30일 가평 용소계곡에서 피해자 윤모(당시 39세)씨가 계곡물에 빠진 뒤 이씨 등이 구호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살인 계획에 따라 피해자가 물에 뛰어든 직후 허우적대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씨는 위 계곡의 모래톱에 구명조끼가 3벌 있었고, 조모씨에게 튜브가 있어 즉각 피해자를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동행한)A씨에게 이씨는 구명튜브를 가지러 가자고 유인했다. 계곡에서 약 58m 떨어진 곳에 비치된 구명튜브를 가지러 가는 방법으로 현장에서 이탈시켜 피해자에 대한 구호조치를 적기에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씨에 대해선 “피해자와 약 5m 거리에서 튜브를 착용하고 있었음에도 피해자에게 튜브를 던져 주지 않았다”며 “피해자가 물속에 잠겼음에도 즉시 피해자가 빠진 위치 인근으로 다가가 물에 잠긴 피해자를 수색해 물 밖으로 인도하는 등의 구호 조치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혐의를 변경하지 않았다. 혐의는 유지하되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한 것이다. 쉽게 말해 작위적 요소와 부작위적 요소가 결합해있다고 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볼 땐 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법이 금지한 행위를 직접 실행한 상황에는 ‘작위’, 마땅히 해야 할 행위를 하지 않은 경우를 ‘부작위’라고 한다. 통상 작위에 의한 살인이 유죄로 인정됐을 때 부작위에 의한 살인보다 형량이 훨씬 높다.

재판부 “부작위 살인도 염두” 이례적 지적
‘가스라이팅 의한 살인’ 수사 논리 흔들려

법조계에서는 피의자들의 형량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재판부가 검찰에 공소장 변경 요청을 지적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라며 “작위로 재판을 수차례 진행하다 부작위가 추가된 것은 검찰의 논리가 흔들렸다는 것이다. 검찰의 기대와는 다르게 형량이 크게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이날 재판에서 살인 및 보험사기방지특별법위반미수 혐의를 받는 B씨에 대한 증인심문이 진행됐다. 이씨 등이 가평 용소계곡에 갈 때 동행했던 그는 이번 사건의 키맨으로 꼽힌다. 그의 증언이 공개된 건 이날이 처음이다.

B씨는 검찰 질문에 대부분 “알지 못한다, 모른다”고 말했다. B씨는 “윤씨가 물에 빠졌을 당시 현장에서 무엇을 했나”라는 검찰의 질문에 “수영을 잘하지 못하는데 경황이 없었고 물이 무서워서 물에 들어가질 않았다. 현장 주소를 몰라 인근 펜션으로 가서 주인에게 주소를 묻고 계속 개인 휴대전화로 소방대원과 통화했다”고 답했다.

피해자 윤씨의 수영 실력을 알았는지를 묻는 말엔 “수영을 잘 못하는지 몰랐다”고 했다.

B씨는 달아난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살인 혐의를 받는 피의자로선 이례적으로 불구속 수사를 받아왔다. 그는 수사기관에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나 조사에는 성실하게 임해왔다.

앞서 경기일산서부경찰서는 2020년 12월 B씨를 살인 및 보험사기방지특별법위반미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2019년 6월 30일 경기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윤씨가 살해된 사건에 B씨가 가담했다고 본 것이다. 최근 한 방송사가 공개한 영상엔 당시 B씨가 용소계곡에서 물놀이하며 윤씨를 조롱하고 괴롭히는 듯한 모습이 담겼다. B씨는 조씨와 친구 사이이며 이씨와도 알고 지낸 사이다.

가해자 형량
낮아질라 우려

앞서 B씨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지난해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인들과 공모해 2019년 9월부터 12월까지 6000만원 상당의 프로포폴을 판매한 사실이 수사기관에 적발되면서다. 그는 이 사건으로 2020년 12월 구속 기소돼 이듬해 5월 징역 1년형을 받았다.

이는 인천지검이 계곡 살인사건을 재수사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사법당국에 따르면 당시 재감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그는 지난해 말 형기를 마쳤다고 한다. 이씨 등이 2차 검찰 소환조사를 앞두고 도주한 시점과 시간상 근접해 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이씨와 조씨가 잠적한 이후에도 B씨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게다가 B씨가 수사기관에서 자신의 혐의를 줄곧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그의 신병처리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도 혐의를 부인하며 변호인을 대동해 성실하게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B씨가 자신의 공범 혐의는 부인하면서도 달아난 이·조씨와 관련해서는 모종의 구체적인 진술을 한 게 아니냐는 추론도 나온다.

검찰의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추가는 재판부의 부담이 컸다는 것을 방증한다. 특히 경찰의 수사 결론과 같아졌다.

사실상 경찰과
같은 결론으로

앞서 윤씨가 숨지자 변사사건으로 수사한 가평경찰서는 2019년 10월 내사 종결했고 유족 지인의 제보로 일산서부경찰서가 재수사를 벌여 살인 등의 혐의로 이·조씨를 불구속 입건해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로 2020년 12월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 송치했다.

고양지청은 이·조씨가 인천에 거주하는 점을 고려해 사건을 인천지검에 이송했고 인천지검이 지난해 12월까지 재수사를 하다가 이·조씨가 도주했다.

인천지검은 이례적으로 공개 입장을 밝히면서 여론몰이에 나섰다. 직접 수사에 나섰던 인천지검 박세혁 검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검수완박법이 시행됐더라면 계곡 사건 이전 두 번의 살인미수에 대해 “수법과 시기가 달라 직접 수사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계곡 살인 자체를 무혐의 처분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수사를 담당한 김창수 인천지검 형사2부 부장검사도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높은 의혹 수준의 중요사건으로 볼 수 있는 이 사건은 ‘낮은 강도’의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고 밝혔다. 김 부장검사는 “기본적으로 내사 종결 사건이다. 사건이 잘 안 될 것 같은 각이라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특별하고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구속은커녕 기소조차 담보하기 어려운 사건”이라며 “이 사건 역시 ‘선수’의 냄새는 나지만, 그렇다고 증거도 없이 잡으러 들어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고 설명했다.

인천지검, “검수완박이었으면 진실 묻혔다” 거짓 입장
일산서부서, 간접살인 불구속기소 성과 내 검찰로 송치

그러면서 “기술적으로 사건을 받았을 땐 공조할 경찰서가 없었다. 수사지휘권은 폐지됐으므로 경찰의 협조는 은혜적인 것으로 남게 됐다”며 “이씨 등의 주민등록지를 관할하는 인천 소재 경찰서들 역시 1차 수사를 하지 않은 관서라서 적극적 협조 요청은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김 부장검사는 인천지검 형사2부가 30대가 넘는 휴대전화 등을 새로 압수한 뒤 디지털 포렌식 등 증거 분석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김 부장검사는 형사2부 검사들이 온라인으로 피해자 성묘를 했다며 검수완박 국면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검사 수사 전면 폐지 이후 검찰 수사가 불가피한 영역들은 존경하는 어느 의원님 말씀처럼 ‘증발’할 것”이라며 “검찰 수사를 통해 억울함을 풀고 진실을 밝히는 것도 계속 가능하면 좋겠다”고 적었다. 이어 “할 수 있는 것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한 진실을 밝히고, 반드시 범인을 잡아 죗값을 받아내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경찰은 검찰의 사실과 다른 입장에 대해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도 이례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열어 입장을 밝혔다. 남 본부장은 “경찰이 단순 변사 종결한 것을 검찰에서 밝혀냈다는 일부 주장은 분명히 사실과 다르다는 점, 명확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초 가평경찰서에서 변사자 부검과 통화내역, 주변인 조사, 보험 관계까지 조사했으나 명확히 혐의가 드러나지 않아 일단 내사 종결한 것은 맞다”면서도 “한 달 후에 일산서부경찰서에서 재수사에 착수해 살인 혐의를 밝혀 송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난감한 검
불쾌한 경

남 본부장은 또 “그 이후 검찰에서 추가 혐의 사실을 발견해 수사 중이라는 게 팩트다. 현 시스템에서 검찰과 경찰이 각자 역할을 다한 것”이라며 “누구는 잘했고 못했고 하는 식의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곡 살인’ 최종 형량은?

이은해씨와 조모씨의 혐의가 살인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과 살인미수에 이어 부작위 살인죄까지 추가되면서 10년이 넘는 형량이 선고될 가능성은 크다.

그러나 검찰이 기대한 형량보다 적은 형량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이씨와 같이 보험금을 노린 범죄는 이전에도 있었다.

2003년 남편과 자녀, 친구 등을 독극물로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일으킨 A씨는 사건 하루 전날, 보험료가 없어서 보험 설계사에게 보험료를 대납하게 하면서까지 딸의 사망보험에 가입했다.

그리고 딸의 보험금을 청구했다.

A씨는 2년간의 재판 끝에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법원은 2005년 자신의 남편과 존속에게 상해를 입히고 살해해 보험금을 타낸 ‘엄여인 보험 살인사건’과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벌어진 ‘포천농약 살인사건’의 범죄자 두 명에게도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처럼 법원은 국민의 공분을 산 ‘보험 존속살인 사건’의 피의자들에 대해 무관용 원칙에 따라 ‘무기징역’이란 법정 최고 수준의 형벌을 내렸다.

검찰이 추가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는 ▲구조 의무가 있는지 여부 ▲살인의 고의 여부 ▲구조 의무를 얼마나 성실히 이행했는지 여부 등이 핵심이다.

부작위범 성립 여부 관련, 이씨와 조씨가 구조의 의무가 있는지를 살펴보면 이씨의 경우 법률상 배우자로서 구조의 의무가 인정된다.

또 조씨 역시도 이씨와 함께 윤씨를 계곡으로 데려가고,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윤씨를 뛰어내리도록 종용해 위험 발생을 야기한 측면에서 그 의무가 인정된다.

이씨와 조씨가 이 점을 부인한다고 해도 재판부가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2차례의 살인미수 정황, 피해자 명의의 거액의 생명보험이 가입돼있었던 점, 보험 시효가 4시간 앞둔 상황에서 발생된 (피해자의 사망)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살인의 고의 역시도 인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한 현직 판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조씨가 수영에 능숙했고 윤씨가 뛰어내린 뒤 허우적대는 상황을 지켜봤음에도 구조하지 않은 게 크다”며 “이씨도 조씨나 주변에 윤씨에 대한 구조 요청을 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때 구조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다고 볼 수 없다”고 분석했다. <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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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