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윤석열정부가 ‘만 5세 입학’ 정책에 이어 ‘고교 체제 개편’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이번 발표가 확정된 사안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교육부 장관이 공석인 상황에서 나온 정책으로, 지속적으로 ‘졸속’이란 의견이 대부분이다. 교사들은 선행돼야 할 문제 해결이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국회 교육위원회 업무 설명자료에 따르면 지난 12일 교육부는 연내 시안을 마련할 예정인 고교체제 개편 방안을 2024년 시범 운영해 2025년에 전면 적용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또 “필요 시 국가교육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공론을 거쳐 국민 의견을 수렴·조정하겠다”고 밝혔다. 법령 개정도 필요하면 내년 12월까지 추진할 방침이다.
졸속 정책
이 같은 추진 일정은 교육부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보좌진에게 제시한 설명자료에 담겼다. 앞서 교육부는 자립형 사립고등학교를 존치하는 고교체제 개편 방안의 시안을 오는 12월까지, 최종안은 토론회‧공청회 등을 거쳐 내년 6월까지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그 이후의 추진 일정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재인정부 시절 교육부는 자사고, 외국어고·국제고 등 특목고를 2025년에 맞춰 일괄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개편 방안을 내놨다. 윤석열정부 교육부는 지난달 29일 새 정부 업무계획을 통해 이를 재검토하고, 자사고 제도는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추진 일정이 확정되면 현재 중학교 1학년은 고입부터 대입까지 큰 변화를 맞는다. 새로운 고교체제에 따라 고입은 물론 고교 신입생이 되는 2025년에는 고교 학점제가 전 학년에 전면 적용된다. 현 중학교 1학년이 치르는 2028학년도 대입 역시 제도가 바뀐다.
이와 더불어 교육부는 국회에 ‘미래교육 방향에 부합’ ‘기존의 부작용을 완화’ ‘지역의 교육력 제고’ 3가지 방향에서 고교체제 개편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어 ▲고등학교 입학을 위한 사교육 심화 ▲고교 서열화 등 학교 다양화에 따른 예상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방안 ▲지역 교육 여건에 적합한 학교 운영 모델 발굴 ▲지역간 교육 공정성 제고 방안 등을 주요 의견수렴 필요 내용 예시로 꼽았다.
교육부는 앞서 지난달 29일 새 정부 업무계획에서 “부실 자사고 정비, 지역 우수거점학교 운영, 융‧복합 인재 양성 기관으로 역할 전환 등 기존 자사고 부작용 보완 방안도 함께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정부, 25년까지 특목고 일괄 일반고로
윤정부, 25년까지 자립형 사립고 존치키로
다만, 하지만 새로운 고교체제를 2025년에 전면 적용하는 것과 같은 추진 일정은 확정된 것이 아니다. 운영 모델 발굴이나 2024년 시범운영 실시도 개편안 시안과 공론화 과정에서 바뀔 수 있다고 부연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기본 입장은 시안을 마련하고 내년 상반기에 공론화를 거치겠다는 것이다. 해당 자료는 국회 보좌진에게 추진 일정을 설명하기 위한 취지라 새 고교체제 도입 시기, 시범운영 등은 정해진 게 없다”고 해명했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반발을 갖는 부분이 있다. 바로 교육부 장관이 없는 시점에서 누가 고교체제 도입을 했냐는 것이다. 앞서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은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자”는 정책을 제시해 학부모와 교사들는 물론, 여론에 집중 질타를 당했다.
특히 이 정책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정과제에도 없었다. 교육부가 윤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고 처음 나온 이야기다. 당연히 국내 최대 교원단체도, 유·초·중등 교육을 책임지는 시·도교육청도,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장도 발표를 보고 인지했다.
한마디로 상부와 어떤 의논도 거치지 않고 만들어진 정책이었던 셈이다.
당시 박 전 장관은 “학령을 앞당겨 사회적 약자와 중산층 이하 사람들이 조기에 공교육 체계에 포함돼 교육 격차를 줄이는 것이 교육의 책무”라고 했으나, 반발이 심하자 “국민들이 정말로 아니라고 한다면 정책은 폐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을 바꿨다. 그리고 지난 8일, 학제개편에 대한 사과와 함께 자진사퇴했다.
‘만 5세 입학’ 정책이 사라졌지만, 지난달 29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는 똑같이 ‘교육에 대한 국가책임 화개’를 설명하며 ▲유치원·어린이집 단계(유보 통합) ▲초등학교 진입 단계(학제개편) ▲초·중등 교육 단계(기초학력 보장) 등 아동의 성장단계에 따른 제도 개선 계획을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고교체재 개편 역시 초등입학 개편과 마찬가지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고교학점제 자체가 고교체재 개편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고교학점제 자체가 학제개편 문제”
“현실은 안중에 없는 고교학점제도”
먼저는 고교 평가제도 자체가 정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면 선택과목은 ‘성취평가제(절대평가)’로 운영하고, 1학년 학생이 주로 이수하는 공통과목은 ‘성취평가제’와 현행 ‘석차 등급제(상대평가)’를 병행해 운영하기로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두 평가 제도의 취지를 모두 살리는 것은 어렵다.
또 대입제도가 개편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고교학점제가 대입제도에 맞춰지지 않으면 고등학교 수업 및 평가 자체가 왜곡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선택과목만 성적을 잘 받기 위한 내신 경쟁 쏠림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공통 과목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은 이른 나이에 수능 준비에 매달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수능 정시 비중이 확대되면 학생들은 정시 준비를 위해 수업시간에 수능 과목 문제 풀이에 매진하게 된다. 학교는 이런 상황을 방임할 수밖에 없다.
전교조가 동의한 의견도 있었다. 바로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 시 학생들의 미이수를 방지하기 위한 추가적인 지도와 학점을 미이수한 학생들을 위한 보충 이수, 대체 이수의 필요성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부족한 점이 있다. 바로 교원 증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결국 모든 학생이 성취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라면, 교사가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수업 시수를 낮추고, 교육 외의 행정업무 부담을 줄여야 한다. 전교조는 “이 같은 여건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고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하는 고교학점제는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선행 과제
전교조는 고교체계 개편에 앞서 정부가 선행해야 할 과제를 제시했다. 바로 ▲성취평가제 전면 확대 및 대입제도 개편 방안 우선 제시 ▲다과목(교과) 지도교사 수업시수 감축 ▲교원 행정업무 경감을 위한 대책 마련 ▲기본 소양 함양을 위한 공통 과목 확대 ▲교육과정 편성 시 민주적 운영 제도화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중·소도시 및 농·어촌 지역 특별 지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