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물전 꼴뚜기’ 망신살 뻗친 법관들 백태

대체 누가 누굴 판단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과거 ‘법관’의 위력은 대단했다. 대학이 ‘우골탑’이라 불리던 무렵, 자식을 법대에 보낸 부모는 동네 잔치를 열었다. 누군가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군가는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법관에 도전했다. 출세와 성공이 꼬리표로 따라붙는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그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법을 다루는 직업은 기본적으로 일반인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 법률을 통해 타인의 유무죄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법관의 도덕성은 법에 대한 신뢰도와 직결된다. 법에 대한 신뢰도는 공정사회의 척도로 작용한다. 결국 판단하는 자가 얼마나 정직하고 깨끗한지 여부가 사회의 수준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출세와 성공

최근 법관의 도덕성을 의심케 하는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특히 헌법재판관, 대법관 등 이른바 ‘끝판왕’이라 여겨지는 직업군이 언급되면서 실망감이 커지는 모양새다. 

이영진 헌법재판관이 부적절한 골프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 재판관은 지난해 10월경 일본에서 사업을 하는 고향 후배가 마련한 골프 자리에 참석했다. 이날 참석한 사람은 이 재판 고향 후배의 고등학교 친구인 자영업자 1명, 이 재판관과 안면이 있는 변호사 등 총 4명이다. 

이날 골프 비용 120여만원을 결제한 사람은 자영업자. 이후 이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한 식당에서 이 재판관 일행은 저녁 식사를 했다. 문제는 이날 식사 자리에서 자영업자가 이 재판관과 변호사에게 자신의 이혼소송에 대해 언급했다는 점이다. 이 자영업자는 재산분할 등에 관한 고민을 털어놨다고 한다. 


이후 골프, 식사 자리에 참석했던 변호사가 자영업자의 소송 변호를 맡게 됐다. 직무 연관성, 대가성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 재판관 측은 “어떤 대가성도 없는 단순 모임이었다”는 입장이다. 자영업자의 이혼소송에 대해서도 “덕담 차원에서 좋은 변호사를 선임해서 소송을 잘하시라 했던 정도”라고 해명했다. 

일부 언론이 자영업자가 변호사를 통해 이 재판관에게 현금 500만원과 골프 의류를 전달해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서는 “애초에 들은 적도 없다”고 딱 잘랐다. 그러면서도 “헌법재판관으로서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점에 대해서는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 재판관이 부정청탁금지법 위반으로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직자는 1회 100만원 이상 금품을 받아선 안 되며 특히 직무와 관련해선 금품수수를 일절 받아서는 안 된다. 헌법재판관은 국회에서 탄핵 결정이 내려지거나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자격을 잃는다. 

골프 접대·재판거래 의혹
법조계 끝판왕들 연루 파문

이 재판관은 2018년 9월 국회 추천 중 바른미래당 몫으로 추천받았다. 충남 홍성 출신으로 32회 사법시험 수석 합격, 사법연수원 22기 수료 이후 1993년부터 법관으로 근무했다. 당시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헌법 이론과 실무에 정통하고 법조인으로서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 기본권 보호에 앞장서 온 이(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헌법재판관 후보로 추천한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4년 뒤 이 재판관은 헌법재판관의 위상을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관의 도덕성과 공정성에 치명적 흠결을 새긴 건 물론 사법부의 신뢰를 추락시켰다”며 이 재판관의 사임을 촉구했다. 

민주당 조오섭 대변인은 지난 3일 서면 브리핑에서 “이 재판관은 ‘가정법원 부장판사를 알고 있으니 도와주겠다고 말한 사실은 전혀 없다’며 사건을 청탁하는 줄 알았다면 절대 나가지 않았을 것이란 구차한 변명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관의 위상을 떨군 건 이 재판관만이 아니다.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불거진 ‘대장동 개발사업 로비·특혜 의혹’ 사건에 권순일 전 대법관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민의힘은 민주당 이재명 의원(당시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한 무죄 판결과 관련해 ‘재판거래’ 혐의로 권 전 대법관을 고발했다. 

권 전 대법관은 이 의원에 대한 대법원 판결 전후로 대장동 개발사업에 자산관리회사로 참여한 화천대유 최대주주인 김만배씨(구속)와 수차례 만난 점 등을 들어 재판거래가 있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여기에 화천대유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월 15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무너진 도덕성
사법부 신뢰 훼손

권 전 대법관은 이 의원이 경기도지사로 재직할 때 무죄가 확정된 선거법 위반 사건의 주심 대법관을 맡은 바 있다. 당시 그는 이 의원 사건 심리 과정에서 무죄 취지의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의견이 화천대유 고문 활동에 대한 대가로 이뤄진 게 아니었냐는 의혹이다. 

권 전 대법관의 이름은 대장동 사건과 관련한 ‘50억 클럽’에도 언급됐다. 50억 클럽은 대장동 개발 과정에서 도움을 주는 대가로 김만배씨로부터 50억원의 로비자금을 수수한 의혹을 받는 정치인‧법조계 인사들을 말한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은 화천대유의 자회사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가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을 근거로 “복수 증언에 따르면 50억씩 주기로 한 6명이 나온다”고 밝혔다. 6명 가운데 한 명이 권 전 대법관이라는 것. 

지난 5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는 실명이 공개되기도 했다. 김만배씨와 정영학 회계사의 대화가 담긴 녹음파일이 재생되면서다. 검찰은 2020년 3월24일 녹음된 파일을 재생하면서 “곽상도·권순일·박영수 등 소위 ‘50억 클럽’으로 알려진 사람들을 포함해 대장동 개발 조력자에 지급할 액수·조달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중간 점검하는 내용이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녹음파일에서 김만배씨는 “50개 나갈 사람을 세주겠다. 박영수·곽상도·김수남·권순일·홍선근”이라며 “이게 현재도 50억원”이라고 말한다. 

흔들리는 위상

최근 검찰은 대장동 사건 전반에 대해 사실상 재수사에 착수했다. 대통령선거 이전에 진행됐던 1차 수사 당시 풀지 못한 성남시와의 연결고리를 찾겠다는 의지다. 이 과정에서 권 전 대법관의 재판거래 의혹도 다시 들여다볼 가능성이 높아졌다. 결국 그동안 드러나지 않은 ‘윗선’을 겨냥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jsjang@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