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승부수’ 박지원의 큰 그림

한마디 한마디에 정치권 술렁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정치 9단’ ‘정치꾼’.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을 대변하는 수식어다. 몸풀기에 나선 박 전 원장은 등장과 동시에 정치권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민주당이 분열한 틈을 타 강도 높은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있다며 정치권에 메시지를 던지는 중이다. 박 전 원장이 던진 메시지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을까?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2016년 주류 세력으로 불리던 친문(친 문재인)계와 갈등 끝에 민주당을 뛰쳐나갔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몸담았던 국민의당에 합류한 바 있는 4선 중진인 그는 2018년 국민의당을 탈당했고, 2020년에 국정원장으로 임명됐다.

정치 9단
컴백 초읽기

지난달까지 문재인정부의 마지막 국정원장으로 일하다가 새 정부가 박 전 원장에게 사퇴를 통보하며 국정원장직에서 내려왔다. 한동안 잠행을 이어가던 그는 곧바로 SNS를 통해 정치 복귀 신호탄을 쏴 올렸다. 

본격적인 시작은 호남 지역 방문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나는 등 광폭 행보를 보였다. 본격적인 정치 재개를 선언한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호남행 이후 최근에는 각종 방송에 출연하며 자신의 정치적 입지 다지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각종 방송에 출연해 “I’m back”이라는 말로 운을 뗐다. 박 전 원장의 발언은 정치계에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국정원이 정치인과 기업인, 언론인에 대한 X파일을 만들어 보관 중”이라고 발언해 논란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해당 자리에서 박 전 원장은 정치인이 돈을 버는 방식, 연예인과의 관계 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특별법을 제정해 폐기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번 발언으로 여권과 국정원에서는 박 전 원장을 향해 비판적인 논평을 내놓고 있다. 직전까지 몸담았던 국정원은 박 전 원장을 향해 “국정원장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취지는 동의하나 박 전 원장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반응이다. 논란이 커지자 박 전 원장은 즉각 머리를 숙였다. 자신의 X파일 발언으로 몰매를 맞고 죽을 지경이라며 앞으로 유의하겠다고 사과했다. 

사과를 했음에도 여전히 억울한 게 남은 모양새다. X파일을 띄운 이유가 국정원이 과거 정보수집 등을 할 때 관련 문서가 정쟁으로 이용된 것에 대한 의견을 밝힌 것이라는 입장이다. 정치권에서는 박 전 원장의 X파일 발언을 두고 의도된 실수라는 시각이다. 

최근 민주당 복당을 선언하는 등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위해 자신의 활동 영역을 넓혀가겠다는 초석을 깔고 있는 셈이다. 이런 까닭에 은연 중에 자신이 많은 정보를 쥐고 있다는 메시지를 정치권에 던졌다는 것이다. 

전격 본격 복귀 선언
1선 아니고 2선서만?

호남을 방문한 이유도 박 전 원장의 정치적 기반이 호남에 있기 때문이다. 목포에서 터줏대감으로 불려오고 있는 박 전 원장은 목포에서만 3선 의원을 지낸 바 있다.


박 전 원장은 정치 9단으로 불리는 인물로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을 띄우기 위한 발언이라고 분석한다. 활발한 행보를 보이는 박 전 원장이 정치 재개를 시작한 이유는 현재 민주당의 내부 분열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현재 민주당은 계파 문제로 유례없는 내홍을 겪는 중이다.

민주당 세력은 친명(친 이재명)계와 친낙(친 이낙연)계, 친문(친 문재인)계 세력 등으로 갈라져 있다. 내분이 가속화된 상황에서 당 지도부는 지방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모두 사퇴한 상황이다. 

3·9 대선 패배 이후 지도부가 총사퇴한 뒤 급하게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지만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윤호중·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이 물러났다. 새로운 비대위원장으로 계파색이 옅은 우상호 전 원내대표가 고삐를 잡았지만 전당대회까지 남은 시간이 짧은 탓에 무언가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편이다.

이 틈을 재빨리 간파한 인물이 박 전 원장이다. 그는 민주당으로 복당 선언을 하며 최근 민주당에게 연일 쓴소리를 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박 전 원장이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 일찍부터 포석을 깔고 있는 게 아니냐는 시선이 나온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데 라디오에 출연해서도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에 대해 빼놓지 않고 언급하고 있다. 

본인 입으로는 대표로 나서지 않고 2선에서 당을 돕겠다고 선언했으나 실질적으로는 직접 친명과 친문 계파 싸움에 뛰어들겠다는 액션으로 읽힌다. 박 전 원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도 당 대표 도전설에 대해 강력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민주당으로 복당을 선언을 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민주당 내에서 할 역할이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김 전 대통령이 만들었던 당이 민주당이고, 과거 김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서 이념을 이어가고 싶기 때문이라는 점이라는 게 이유다.

입만 열면
폭탄급 파장

그는 “현재까지는 1선에 나서서 하지 않겠다. 민주당에 복당하더라도 2선에서 후배들이 잘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병풍 역할만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 복당 후 당 편이 아닌 윤석열 대통령에게 협력할 사안에 대해 협력을 요구하고, 잘못해나가는 부분은 야권 입장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언급했다. 보수와 진보가 극렬히 대립하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제시한 셈이다.

박 전 원장은 최근 대선 등 선거에서 연패한 후로 민주당이 싸우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는 21대 총선에서 목포서 낙선할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떨어져 한동안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탓에 자신의 과거 결과와 민주당의 현 상황 역시 비슷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컸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민들레, 수박 등 계파 전쟁을 끝내고, 싸움보다는 여야가 국회를 정상화한 후 머리를 맞대고 대책 논의해야 할 적임자가 자신이라는 주장이다.

정치 일선에 나서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도 부담을 느끼면서도 정치 원로, 정치 9단으로서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과거 민주당 당 대표 경선 과정이나 대통령선거 과정에서도 박 전 원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강하게 공격한 바 있다. 아침에 눈 뜨면 쓴소리를 해대는 탓에 문모닝이라는 별명까지 생겼을 정도다. 문 전 대통령 당선 이후 박 전 원장은 곧바로 쓴소리를 멈췄다. 오히려 문 전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발언으로 여론을 주도했다. 

아직은
시기상조?

현재 민주당에 강한 어조로 비판하는 이유도 과거와 비슷하게 성공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게 그의 정치 재개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에서 느껴지는 시선은 다르다. 박 전 원장의 민주당 복당 선언 자체가 민주당 당권잡기 경쟁에 참전했다는 것이다. 


현재 민주당은 이낙연 전 대표가 미국행을 택해 친문, DJ계, 친노 세력을 묶을만한 리더가 딱히 없다. 이들 세력을 통합할 인물로 몇몇 인사가 거론되긴 하지만, 현재 친문 세력인 초금회(청와대 출신 초선 의원들의 금요일 모임) 역시 당내에서 정치적 입지를 발휘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런 탓에 박 전 원장이 친명 세력을 견제할 카드로 DJ계, 친노계, 친문계를 통합하려는 포석을 깔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 역시 박 전 원장의 민주당 복귀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그는 박 전 원장의 정치 재개에 대해 “자신의 정치적 공간을 만들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며 “과거 민주당은 젊은 이미지가 강했다. 현재는 너무 고루한 이미지”라고 평가했다. 이어 “민주당은 젊고, 역동적인 본연의 민주당으로 복원돼야 하는데 그의 참전은 거꾸로 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젠 정치원로로서 막후에서만 지원할 때라는 말로 읽힌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박 전 원장이 띄운 586 용퇴론도 쉽게 꺼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그의 등판으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박 전 원장이 아직 정치적인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민주당 인사들에게 자기 세일즈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중재자 역할은 가능
내부선 부담 목소리

아직까진 박 전 원장 본인이 당권을 잡겠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당 대표 등 큰 역할에 관심을 보인 것이라고 해석된다.

정치권 관계자 역시 민주당 중진 의원의 의견과 비슷하다. 민주당에서 전당대회가 제대로 열리지 않을 경우 최소한 비대위원장 혹은 당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싶어한다는 분석이다.

현재 당 대표 및 지도부에 오르내리는 인사들은 10명에 이른다. 친명계에서는 단연 이재명 의원 본인이 거론된다. 현재 친명계에서 당권에 도전할만한 인물로 이 의원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인물은 없다.

친문계에서는 설훈·홍영표·전해철 의원이 거론된다. 이들은 모두 3선 이상이지만 당내 기반이 확고하지 않은 만큼 현실적으로 이 의원을 제외하고는 중량감을 가진 인물이 없는 셈이다.

박 전 원장은 자신의 인지도가 민주당 내 거론 인사들 중에서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정치권 관계자도 “민주당의 지도부, 차기 당 대표로 오르내리는 사람이 박 전 원장에 비해 급이 떨어진다는 게 그의 생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언급되는 인물들이 정치력도 부족하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 때문에 당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으려 한다는 게 이유다. 또 자신의 몸값을 띄우기 위한 것으로 읽히는 가운데 민주당에서 그에게 역할을 제시하길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등판만 한다면 당내서 중재자 역할은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친명 세력과도 DJ 계열인 박 전 원장이 척을 지려고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는 민주당 내 대세가 이 의원으로 불리는 까닭이다.

정치권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민주당과 박 전 원장의 물밑 접촉은 활발하다. 다만 민주당 입장에서는 박 전 원장 카드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민주당 내부적으로 박 전 원장의 이미지가 좋은 편이 아닌 탓이다.

박 전 원장이 완벽한 민주당 편이라는 분위기도 크지 않다. 정치 9단으로서의 중재자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을 하게 될 경우 국민적 신망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당장 국정원장직을 마무리한 뒤 정치권에 등장했다는 점에서는 새롭지 않다는 평가가 내려질 수 있다. 박 전 원장이 민주당의 빈틈을 파고든 이유는 민주당 지도 체제가 붕괴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나름의 역할론을 제시해 구심점 역할을 하고 활동영역을 넓히려는 시도라고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지도부가 탄탄했다면 박 전 원장의 역할론 자체도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구심점 
역할론

한 정치권 관계자는 “박 전 원장 스스로는 당 대표설 등에 선을 긋고 있지만 사실상 원하는 것과 다름없는데 이는 노욕”이라며 “본인 스스로 말하긴 어렵고, 민주당에서 등 떠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도부에 참여하고 싶은 의지를 강하게 표현한 셈”이라고 해석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박지원 복귀와 악재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정치 복귀를 선언했지만 상황은 순탄치 않은 모양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박 전 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가 인정된다며 재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탓이다. 

공수처 수사2부는 공직선거법 및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박 전 원장에 대해 공소 제기를 검찰에 요구했다. 

공수처는 박 전 원장이 지난해 언론과의 인터뷰서 윤 전 총장이 “윤우진 사건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관련 자료를 가지고 있다”는 취지로 언급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박 전 원장의 발언이 국민의힘 대선 경선 과정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봤다. 

최근에는 국정원 X파일과 관련해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을 언급해 논란이 일었다.

하 의원은 “나누지도 않은 대화를 날조해 국민과의 신뢰에 흠집이 났다. 국가 기밀을 언론 관심 끌기용으로 이용한 행위”라며 박 전 원장에 대해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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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