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억 슈퍼카 사기’ 김재량 12년 도피생활의 끝

“케냐에 숨어 잘 먹고 잘 살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2010년 일어난 검은색 엔초 페라리 사고. 이 사고는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왔다. 수십명에 달하는 피해자들이 생겼고, 그 중심엔 ‘김재량’이 있었다. 당시 김재량은 100억원이 넘는 사기 피해액을 남기고 자취를 감췄다. 그의 근황이 최근 밝혀졌다. 

지난해 8월 인터넷 상에 한 사진이 이슈가 됐다. 사진의 내용은 차량 경매 정보. 슈퍼카의 대명사인 부가티와 코닉세그의 차량들이 경매로 올라온 것이다.

다시 수면위로
김재량은 누구?

희귀한 슈퍼카들이 국내에서 경매로 나왔다는 사실에 국내 네티즌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네티즌 사이에서는 이런 슈퍼카들이 경매에 나오게 된 경유에 대해 의구심이 커져갔다. 

공매로 나온 3대의 슈퍼카. 이 사건의 시작은 약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발생한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건. 부실 저축은행 15곳에 대해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진 사건으로, 당시 국내 금융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저축은행들 중 도민저축은행이란 곳이 있었다. 해당 은행의 채권자인 예금보험공사는 도민저축은행에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지자, 채권 회수를 위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그 과정 중 한 창고에서 26대의 슈퍼카들을 발견하게 된다. 예금보험공사는 슈퍼카들을 도민저축은행의 자산으로 구분해 압류했다.


예금보험공사는 26대의 슈퍼카 중 13대는 차량 소유주에게, 10대는 경매 및 공매를 통해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데 사용했다. 그렇게 남은 차량 3대가 바로 앞서 언급했던 한 대의 부가티와 두 대의 코닉세그다. 해당 차량들이 뒤늦게 공매에 나온 이유는 차량에 얽혀 있던 법적 절차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2011년 당시 도민저축은행은 자기 자본금 비율이 약 1% 밖에 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결국 도민저축은행에 내려진 영업정지 처분은 채규철 도민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시작됐다. 채규철 도민저축은행 회장이 해당 차량들을 담보로 받고 불법대출을 해준 것이다. 

공매로 나온 슈퍼카 정체는?… 시작은 ‘김재량’
수십명 피해자 남기고 해외 도피… 미국? 홍콩?

슈퍼카를 담보로 대출금을 받아 간 사람은 김재량이었다. 김재량은 1977년생으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수입차가 흔치 않았던 시절에도 벤츠를 비롯한 BMW 같은 차들을 타고 다닐 정도로 부유했고, 정계는 물론 연예인들까지 두루 친하게 지내며 강남에선 유명인사로 통했다. 

김재량은 다양한 슈퍼카들을 튜닝·수리하는 일과 국내로 직수입해 판매하는 일을 했다. 2003년 ‘소닉모터스’를 설립했고, 재벌2세, 연예인들이 많이 올 정도로 사업이 흥했다.

사업을 이어가던 중 김재량은 두바이에서 슈퍼카가 저렴하게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두바이에서 차량을 구매한 후 국내로 들여와 판매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현실적으로 두바이에서 차량을 가져오기 불가능했던 김재량은 두바이 현지 관리자를 채용하게 된다. 막대한 현금이 오고 가야 하니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했고, 한인 목사 부부로 두바이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종교인을 선택했다. 


한인 목사는 차량 매물이 나올 때마다 리스트를 작성해 김재량에게 보내줬다. 그 규모만 30~40억원으로 알려졌다. 차량 대금을 치룬 김재량이었지만 차량이 영국으로 보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유한 집안에 사업 수익도 나쁘지 않았지만 30~40억이란 돈은 김재량에게도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이때부터 김재량은 본격적으로 사기 행각을 벌이기 시작한다. 사기로 인해 잃은 금액을 사기로 메꾸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사기엔 사기로
110억원 편취

김재량은 “차량의 원래 가격이 10억인데, 너에게만 싸게 주겠다”고 지인들을 속였다. 이런 식으로 차량 한 대를 5~6명에게 팔아 돈을 챙겼고 “차량에 문제가 생겼다. 부품은 주문 해놨고, 고치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시간을 끌었다. 

그의 사기 행각은 끝나지 않았다. 당시 유명 연예인이 차량 수리를 위해 소닉 모터스에 방문했는데 그 차량을 다른 타인에게 판매해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저질렀다. 

김재량은 당시 은행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요즘에는 1금융권, 2금융권을 막론하고 서로 전산을 공유해 고객의 신상정보와 신용정보를 알 수 있어 이 같은 사기가 발생하기 어렵다. 하지만 과거 200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금융사끼리 전산을 공유하지 않았다.

고객의 적합 여부를 파악하고 승인이 나야 대금을 지불하는 요즘 시스템과는 달리 금융계 쪽에서 차량 대금을 먼저 지급해야 하는 선송금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했다. 수많은 리스사에 심사를 넣었고 6곳에서 승인이 났다. 

김재량은 캐피탈에서 총 60억원의 돈을 챙기는 데 성공했다. 편취한 돈의 총액은 110억원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슈퍼카 3대를 담보로 평소 개인적인 친분이 있던 채 회장을 통해 도민저축은행에서 불법대출까지 받았던 것이다. 

김재량은 자신이 몰던 엔초 페라리로 교통사고를 내게 된다. 이게 그 유명한 2010년 ‘검은색 엔초 페라리 사고’다. 이 사고는 당시 자동차 커뮤니티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받았다. 

이후 김재량은 경찰이 오게 되면 자신의 사기 행각이 모두 들통날 것이라 판단했고, 차량을 버리고 곧바로 해외로 도주하게 된다. 

해외로 도피
묘연한 행적

국내 경찰의 요청으로 인해 인터폴의 수사망에도 올라갔지만 김재량의 행적을 찾을 수 없었다. 관련자들 사이에서 ‘미국, 홍콩 등지서 신분을 세탁한 뒤 조용히 살고 있다’는 추측만이 난무했다. 


이런 상황에 최근, 김재량의 충격적인 근황이 전해져왔다. 김재량이 몸을 숨긴 곳은 미국도 홍콩도 아닌 케냐였다. 김재량이 케냐로 몸을 숨긴 이유에 대해선 여러 가지 추측이 있지만, 한국과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되지 않아, 국내 경찰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케냐로 간 것이란 추측이 가장 유력하다.

케냐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A씨는 “김재량은 케냐에서 여러 사업을 진행하며 고위층 사람들과 잘 먹고 잘 사는 중”이라고 전했다. 

A씨에 따르면 케냐 현지에서 김재량은 유명인사다. 케냐에서 김재량을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김재량 사건을 모른다. 김재량은 케냐의 정비소를 운영하는 등 많은 사업을 벌였다.

 A씨에 따르면 김재량은 케냐에서 ‘김재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재량은 고위급 관료들과 군 장성들과 함께하며 인맥을 키워갔다. 교회, 학교에 기부하며 본인을 ‘좋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김재량은 한국 음식을 케냐 현지로 수입해 유통 판매하는 비즈니스 사업도 진행 중이다. 또 김재량 집의 가정부가 3명, 정원 관리사가 2명, 운전 기사와 일가족 수발을 드는 사람 약 10명이 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케냐서 호의호식? 지인이 전해온 충격적 근황
결국 ‘강제 송환’… 유튜버·인터폴·경찰의 합작


A씨에 따르면 김재량은 케냐 현지서도 애스턴 마틴, 람보르기니, 벤틀리와 같은 외제차를 타고 김재량의 부인은 벤츠 SUV, 일제 승용차를 번갈아 갈아타고 있다. 그의 부인은 나이로비 현지에서 땅값이 비싼 핫플레이스의 부동산 자산가로 알려져 있다.

김재량은 두 쌍둥이 아들을 학비가 1인당 매년 6000만원에 육박하는 사립학교에 보내왔다. 독일에 있는 외국인 학교로 입학원서를 제출하고 합격, 김재량 일가는 독일로 이주해 아들의 학업을 마무리지으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도 전했다. 

소재지까지 파악이 완료돼 많은 네티즌들은 ‘참교육’을 기다렸다. 하지만 김재량의 검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케냐는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돼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걸어나와 죗값을 받겠다고 자수하지 않는 이상 어려울 것으로 생각됐다.

A씨는 “케냐는 돈으로 뭐든지 할 수 있는 곳”이라며 “고위 관료들과의 인맥으로 김재량과 같은 범죄자도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던 중 최근 유튜브 채널 ‘카라큘라’에 ‘사기꾼 김재량, 강제소환되어 구속되었습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카라큘라 채널은 그동안 김재량의 사기행각에 대한 공론화와 검거를 위해 힘써왔다. 카라큘라 채널에 따르면 현재 김재량은 케냐 당국의 협조 아래 인터폴 요원, 한국 경찰청 외사국 수사관들에 의해 현지에서 긴급체포돼 국내로 강제송환됐다. 

결국 잡혔다
10여년 만에…

카라큘라 채널은 “그동안 끈질긴 추적으로 사기꾼 김재량이 케냐에 은신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영상을 통해 최초로 세상에 알렸으며 그동안 습득했던 모든 정보들을 수사기관에 제공해 김재량을 국내 강제송환시킬 것을 종용했다”며 “대한민국과 케냐 간의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돼있지 않아 사건이 진척되지 못할 뻔 했지만 외교부 관계자와 인터폴, 경찰청 외사국, 카라큘라가 함께 의지를 불태우고 김재량 강제송환에 온 힘을 모아 결국 값진 결실을 만들어냈다”고 전했다. 

<ktikt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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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