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이재명계' 송영길 공천 소동 후폭풍

이대로 지면 이재명 아웃?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옆집 사람과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하더라도, 마을에 위기가 찾아오면 힘을 합쳐서 ‘공동의 적’과 맞서 싸우는 것이 상식이다. 우크라이나의 예가 그렇다. 전쟁 전 우크라이나는 내부의 지역적, 정치적 내부 싸움이 매우 치열했지만, 러시아가 쳐들어오자 한마음 한 뜻으로 되어 러시아와 맞서 싸우고 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민주당에게 이런 우크라이나 정신을 본받으라고 전한다. 지방선거의 적인 ‘국민의힘’에 맞서 하나가 돼 싸워달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의 서울시장 단수 공천 시도가 ‘3일 천하’로 끝났다. 지난 17일 홍대에서 호기롭게 서울시장 출마선언식을 진행한지 꼭 3일 만인 지난 19일 화요일 늦은 저녁에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측에서 송 전 대표에게 서울시장 공천 배제 결정을 내린 것이다.

3일 천하
구긴 체면

이 같은 결정을 들은 송 전 대표 측은 “공천 배제 방침은 지방선거를 포기하고 민주당을 파괴하는 자해행위”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 수십 시간의 난상토론 끝에 민주당은 송 전 대표에 대한 완전 공천 배제는 철회하고 국민경선 100%에 참여시키겠다고 재차 발표했다.

우여곡절 끝에 경선 참여 자격이 주어졌지만, 송 전 대표의 체면은 제대로 구겨졌다. 당 안팎의 비난을 무릅쓰고 억지로 나온 서울시장 선거에서 자의도 아닌 타의로 선거에서 ‘배제될 뻔’ 했으니 입장이 상당히 난처해진 것이다. 

이대로 경선에서 이긴다 해도 ‘희생’을 각오하러 왔다는 송 전 대표의 대의명분은 힘을 잃게 된다. 민주당의 대선 패배 후 민주당 지도부는 모두 사퇴한 바 있다. 그때 책임을 지겠다고 선언한 지도부의 수장은 다름 아닌 송 전 대표였다.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지방으로 내려가 야인생활을 하던 그가 다시 정계로 돌아오는 데는 고작 한 달가량 걸렸다.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서울시장 후보군의 구원투수로 그를 영입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구인난’에 빠져 고심했던 바 있다. 오세훈 현 서울시장을 이길 필승카드가 부재했던 탓이다.  당내 의원들은 이낙연 전 대표나 송 전 대표, 심지어 이재명 상임고문까지 거론하며 ‘거물급’ 인사들의 등판이 필요하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거물 등판설’에 이 전 대표와 이 고문은 한사코 거부했지만, 송 전 대표는 상대적으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며 가능성을 열어 둔 채로 상황을 지켜봤다.

이후 이어진 끊임없는 당의 요구에 결국 송 전 대표가 승낙했다. 주소지를 서울로 옮기며 서울시장 출마에 뜻을 간접적으로 내비친 것이다. 서울시장 출마에 대한 간접적인 행보는 곧 직접적인 발언으로 이어졌다.

송 전 대표는 지난 10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오세훈 시장의 지지율이 50%나오는 상황이고 누가 나오든 10~15%포인트 지는 선거에, 출마 선언도 안 하는 상황에서 다시 한번 희생하겠다는 자세”라며 “저는 현역 국회의원으로 임기 보장된 의원이다. 현역 2년, 국회의장에 도전할 기회도 포기하고 싸우는 것이 책임지는 자세”라고 출마 사유를 길게 설명했다.

‘어차피 질 선거’에 자신이 나서 패배의 아픔을 떠안고 정권을 내준 것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소리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많은 이가 공감하지 못했다. 심지어 책임론을 주장하는 몇몇 사람은 그가 치르겠다는 ‘희생’에 돌을 던지고 나섰다. 

서울시에 지역구를 둔 민주당 의원 수십명은 입장문을 통해 송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를 반대했고,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도 지난 8일 “전략공관위의 잘못을 바로잡을 책임은 우리 비대위에 있다”며 “부동산 문제로 국민을 실망하게 한 분들이 지방선거에 예비 후보자로 등록했다. 대선 패배에 책임을 지겠다며 물러난 당 대표도 마찬가지로 등록했다”고 비판했다.


송 전 대표 단수공천 불가능…입지 줄어
당 “송·박주민 포함한 국민경선 100%”

민주당은 일찌감치 서울시장 자리를 ‘전략 선거구’로 지정한 바 있다. 공천을 주는 것에 당 차원의 화력을 집중시키겠다는 의미였다.

일각에서 “당 지도부가 원하는 인사를 전략공천하겠다는 거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민주당 측 관계자는 당시 전략 선거구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자 “전략 선거구는 경선을 포함한 다양한 방식으로 후보를 선출하게 된다”며 “전략선거구를 한다고 해서 전략공천을 하겠다는 소리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후 전략공천위의 방향은 송 전 대표를 전략공천하는 쪽으로 잡혀갔다. 서울시장에 도전한 현직 의원들의 출사표를 반려한 채 ‘거물급’인 송 전 대표를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송 전 대표는 캠프를 꾸리고 본격적인 선거 유세 행보에 들어간 듯 보였다. 이대로 민주당 후보로 송 전 대표가 굳어지는 모양새였으나, 당의 예상을 빗나간 점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지지율 차이’였다.

민주당은 송 전 대표쯤 되는 거물급 인사가 나오면 오 시장과의 지지율 차이가 한 자릿수로 좁혀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송 전 대표여도’ 오 시장과의 지지율 차이가 10%포인트 이상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완벽한 동상이몽이었다. 송 전 대표는 ‘희생’하러 왔다지만, 지도부 입장에서는 ‘승리할’ 후보가 필요했다. 수많은 당 내부의 비판과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무릅쓰고 패배한 지도부의 수장을 데리고 온 이유는 서울시장 자리 ‘탈환’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결과가 안 좋게 나올 것 같자 지도부는 공천 배제로 입장을 틀었다. 

해당 결정은 민주당 전략공천관리위원회에서 내렸다. 전략공관위는 보다 객관적인 후보를 찾아내기 위한 민주당의 당내 기구로 공천 심사 기준과 경선 방법 등을 논의해 결정하는 권한을 갖는다.

전략공관위는 위원장을 포함해 총 20명으로 구성됐으며 여성 50%, 청년 10%, 외부인사 30%로 채워졌다. 다만 이들이 내리는 결정은 비대위의 최종 승인 절차를 밟아야만 시행된다. 송 전 대표를 서울시장 공천에서 배제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은 바로 공관위였다.

벼랑 끝
동상이몽


공관위의 결정에 박 위원장이 뜻밖의 반응을 내놓았다. 송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던 그가 갑자기 송 전 대표를 두둔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대선 때 누구보다 헌신했지만 선거 결과에 총괄적인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당 대표를 탈락시키겠다고 한다”며 “서울시장 공천, 경선해야 한다. 송 전 대표와 박주민 의원 배제 결정을 당원과 서울시민, 국민 모두 외면한 결정으로 규정한다”고 규탄했다.

개인의 의견을 넘어 지도부 전체의 생각은 송 전 대표를 버리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략공천위에 던진 것이다.

전략공관위원으로 참여한 정다은 전 부대변인 또한 본인의 SNS를 통해 “송영길 전 대표, 박주민 의원을 배제하기로 했다”며 “반대를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나는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직을 사퇴하겠다”며 공천 배제에 대한 반대 행렬에 동참했다.

이제 송 전 대표를 위기에서 구해줄 곳은 비대위 지도부 뿐이었다.

해당 결정을 듣고 거세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진 송 전 대표는 “전략공천위원회에서 배제했으니 이제 비대위가 결정을 어떻게 할지 봐야겠다”며 비대위가 다른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희망을 걸었다.


그의 마지막 소원을 비대위 지도부는 들어줬다. 국민경선 100%에 송 전 대표를 참여시키기로 최종 결정을 낸 것이다. 전략공천위의 결정을 뒤집은 셈이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손바닥 뒤집듯 하는 민주당 비대위는 현재 잡음에 시달리고 있다. 송 전 대표 사태를 계기로 수면 밑에 있던 계파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번 공천 배제를 주도한 인물은 전략공관위원장으로 선임된 3선의 이원욱 의원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위원장은 대표적인 ‘정세균계’ 의원이다. 이 위원장은 대학교 직속 선배인 정세균 전 총리와 친분이 두텁다.

그들의 인연은 10년도 더 됐다. 지난 2012년 대선후보로 민주당 경선에 참여한 정 전 총리의 캠프에서 이 위원장은 캠프 대변인을 맡은 바 있다.

2017년 경선 때 최재성, 이미경 등 대표적인 ‘정세균계’ 의원들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할 때도 이 위원장은 “당의 후보가 결정되면 돕겠다”며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유보한 바 있다. 정계는 그가 뼛속 깊은 ‘정세균계’인 것을 이때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번 2022년 대선 경선 때도 모든 민주당 의원들이 이 고문을 도울 때 이 위원장은 “최소한 경선 과정에서는 내게 여타 캠프에서의 역할에 대해서 기대하거나 말하지 말아달라”며 “나 또한 정 후보와 같이 백의종군하겠다. 저의 거취를 생각해 주는 여러 의원에게는 감사드린다”고 딱 잘라 선을 그었다.

정세균계?
반이재명?

이런 이력을 갖고 있는 그가 ‘친이재명계’가 장악하고 있는 비대위가 결정하는 사항에 반대 의견을 내비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는 송 전 대표에 대한 공천 배제를 결정한 직후 KBS <최영일의 시사본부>에 출연해 “당과 많은 의원의 우려에도 본인 정치를 계속해서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전략공관위에선 (공천 배제가)차선의 선택이었다”며 “송 전 대표가 선당후사와 선공후사의 정신으로 당을 위해 존중하고 서울시장 후보로 나가는 것을 그만두겠다고 했다면 정말 많은 사람이 박수쳤을 것”이라고 배제 이유를 설명했다.

결국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말로 다시금 되풀이 된 모양새다.

민주당 내부 관계자는 “마치 대선 경선 직후 민주당내 파열음을 다시 듣는 기분이었다”며 배제 소식을 접한 후 소감을 <일요시사>에 전했다.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정세균 의원은 낮은 지지율을 이유로 일찌감치 사퇴한 바 있다.

그 후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고 잠행을 이어오다 대선 석 달 전, 이 고문을 만나 후원회장을 맡을 것을 선언했다. 이에 이재명 선대위 측은 고무된 분위기로 기자들에게 “민주당이 비로소 ‘원팀’을 넘어 ‘드림팀’이 됐다”고 알려왔다.

경선 과정에서 치열하게 다퉜어도 결국 하나될 때는 하나 되는 민주당의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이때의 드림팀 선언은 지금 와서 정계의 ‘놀림감’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 고문 측은 대선 패배의 책임은 ‘전혀’ 지려 하지 않고 있고, 그와 드림팀이 됐다고 선언한 ‘이낙연계’ ‘정세균계’ 등 ‘반 이재명계’ 의원들은 당내 세력 싸움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전략공천위 이원욱 의원이 주도
수면 밑 ‘반이재명’ 이빨 드러내

지난달 24일, 민주당의 원내대표 선거가 그 분위기를 잘 보여줬다. 결국엔 ‘친이재명계’ 박홍근 의원이 당선됐으나 3차 투표까지 가는 초접전이 이어졌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될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민주당 지도부는 애초부터 당내 치열한 선거전을 예방하기 위해 사전 후보 등록도 받지 않은 채 ‘콘클라베’ 방식을 차용한 바 있다.

‘원팀’을 선언했지만 사실 ‘원팀’이 아니기에 차용할 수밖에 없는 방식이었다. 최종 득표 수도 미미한 수준으로 판가름났다고 민주당 측은 전했다. 이는 민주당 의원들의 계파가 하나로 모이지 않고 양분됐음을 의미했다.

민주당 비대위는 이 갈등이 지방선거까지 이어지지 않기만을 바랬으나, 최근 송 전 대표의 공천 배제 소동으로 그 바람이 깨졌다.

배제 소식이 들리자 송 전 대표는 곧바로 “사실상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의 정치 복귀를 반대하는 선제 타격”이라며 배제의 저의를 계파 갈등에서 찾았고 언론들도 ‘명낙대전의 부활’이라며 싸움을 부추겼다.

그러나 이 위원장은 자신은 ‘정세균계’라며 계파 갈등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그는 “계파 공천 운운하는 것은 그 일관성, 진정성, 의도를 의아하게 한다”며 “나는 명낙대전으로 흔히 표현되는 그 어떤 계파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내게 계파 공천의 굴레를 씌우는 것은 수용할 수 없는 모욕”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서울시장 공천 소동은 해프닝으로 끝나는 모양새지만, 굳건했던 ‘이재명계’가 흔들리는 계기는 됐다. 만일 이번 지방선거에서 억지로 공천을 받은 ‘이재명계’로 분류되는 후보들이 국민의힘에 완패한다면 이 고문의 정치적 입지는 상당히 줄어든다.

8월에 있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 고문이 노리고 있다고 알려진 ‘당 대표’는 사실상 물 건너 갈 것이다.

드림팀
깨지다

현재 여러 접전 지역에서 민주당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경기도지사, 서울시장을 비롯해 강원도지사나 충청도지사, 제주도지사에서 대부분 뒤지고 있거나 오차범위 내의 초접전 양상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위기 속에서 민주당은 계파 갈등에 시달리기만 할 뿐, 당 차원의 화력을 집중시키지 못하고 있다. 지방선거를 이길 필승 전략을 기다리고 있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낙연의 행보는?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와 함께 꾸준히 거론되고 있는 인물이 이낙연 전 대표다.

이 전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상임고문과 치열한 접전을 펼치며 민주당의 거물급 인사로 자리 잡았다.

현재 지방선거 후보들의 지지율 차이를 보더라도 ‘대선 컨벤션 효과’는 입증이 된 상태다. 

후보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측은 대선 때 특수를 누구보다 많이 누린 이 전 대표에게 끊임없이 구애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 전 대표 측은 지방선거에 출마할 계획이 없음을 재차 알렸다.

그는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통해 “저는 지난해 대통령 후보 경선 실패 이후 미국 연수를 준비해왔고, 서울시장 출마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민주당 지도자 등 몇 분께 말씀드린 바 있다”고 주장했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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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