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외국인학교 수상한 사무실 추적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2.04.12 09:06:42
  • 호수 1370호
  • 댓글 0개

재단 이사장 회사가 학교 건물에?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학교는 범죄로부터 학생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타 시설에 비해 외부인 출입에 더 엄격하다. 하지만 경기수원외국인학교에선 외부인이 자유롭게 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외부인은 사무실이 학교 건물에 있어 출퇴근을 했을 뿐이다. 

경기수원외국인학교(이하 수원외국인학교)는 2006년 9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전액 투자해 수원시 영통구 영통동에 개교했다. 경기도가 100억원, 지식경제부가 50억원 등 모두 150억원의 건축비를 지원했고, 수원시는 100억원의 터 3만3000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등 총 250억원의 국민 혈세가 투입됐다.

250억원
혈세 투입

수원외국인학교는 유치원 1학급, 초등학교 5학급, 중학교 3학급, 고등학교 4학급 등 모두 13개 학급(학생 정원 260명)으로 이뤄졌다. 도서관, 체육관(수영장), 강당 등 각종 편의시설과 64실 규모의 기숙사가 설치됐고 초·중·고교 전 과정 13개 학급에 520명의 외국인 학생을 수용하며 200명 중 25%는 내국인에게 할당된다.

장기적으로 이 학교의 학생 정원을 500명으로 늘리고 교육 언어도 영어는 물론 독일어, 일본어까지 확대해나가겠다고 밝히면서 수원 인근 거주 외국인들에게 큰 기대를 품게 했다.

그러던 중 2011년 수원외국인학교에서 교비 불법 전용 문제가 불거졌다. 설립자였던 P씨가 수원외국인학교 교비 136억원을 빼돌려 대전외국인학교 공사대금 등에 쓴 것으로 드러나 형사 처벌을 받았다.


경기도와 수원시는 P씨에게서 운영권을 돌려받고자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2019년 10월, 법원의 조정 결정이 내려졌는데 P씨가 교비 30억여원을 학교에 변제하고 미국에 주소지를 둔 비영리법인 ‘효산국제교육재단’에 운영권을 넘기라는 내용이었다.

시민단체는 “효산국제교육재단 이사진이 P씨와 함께 대전외국인학교를 운영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학교 운영권을 넘기지 말아야 된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경기도수원교육지원청은 “효산교육재단이 결격사유도 없을 뿐더러 인가를 하지 않으면 학교 폐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감안해, 법원 결정에 따라 효산국제교육재단에 운영권을 넘겼다. 

2020년 1월 수원시와 효산국제교육재단이 맺은 운영 협약서에는 “효산국제교육재단은 학교 건축물과 토지를 어떤 경우에도 담보물로 제공하거나 임대, 매각, 기타 처분을 할 수 없다”며 “효산국제교육재단이 법령 또는 협약 의무를 위반한 경우에는 본 협약을 즉시 해지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임대계약서도 없이 무상 사용
외부인 출입…솜방망이 처벌

그런데 효산국제교육재단이 운영하는 수원외국인학교에 한 중소기업 사무실이 입주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해 8월 에이치앤드씨는 취업 포털사이트에 채용공고를 올렸다. 부동산 임대 및 개발업과 무역업이 주력 사업인 에이치앤드씨의 주소지는 수원외국인학교와 동일했다. 

모집 분야는 사업기획이며 세부 업무 내용으로 보유 부동산 매각, 필요 부동산 매입, 건물 신축과 관련된 업무 소개 등이었다. 이외에도 대관 업무와 민원 신청인 법무 업무도 있었다. 학교와는 전혀 무관한 업무들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해 11월, 수원 시민 A씨가 에이치앤드씨 위장 사무실 의혹을 제기하면서부터 수면 위로 드러났다. A씨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에이치앤드씨의 거짓 구인공고를 확인해달라”는 민원을 접수했다.


지난 1월,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경기지청(이하 경기지청)은 “해당 기업은 수원시를 소재지로 해 채용공고 당시인 8월24일부터 10월23일까지 실제 근무장소가 수원시였음을 확인했다”고 답변했다. 

결국 지난달 3일 A씨는 경기도수원교육지원청에 “에이치앤드씨가 취업 포털사이트를 통해 수원외국인학교 주소로 특정하고 구인모집 광고를 했다. 학교 건물을 기업 사무실로 사용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며 “에이치앤드씨 본사 사무실이 평택으로 돼있지만 식당이었으며 거짓 장소로 확인됐다. 비슷한 기간 안양, 군포 등을 근무지라고 한 뒤 채용 공고하는 내용이 있어 현장을 확인했으나, 사무실로 이용하지 않는 것 같다”고 민원을 넣었다.

이어 “수원외국인학교 내에서 부동산 매매하는 기업이 학교 시설물을 사무실로 사용하는 것이 적법한 것이냐”고 물었다. 

교육청 적발
고작 ‘주의’만

경기도수원교육지원청은 “학교시설 사용 허가는 교육 목적에 지장이 없는 범위 안에서 학교의 장이 결정할 사항이다. 해당 학교를 방문해 해당 기업이 행정적 처리 없이 학교시설을 이용하고 해당 기업 직원이 출입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답변했다. 

또 “법인의 모든 재산의 관리책임은 이사장에게, 학교장은 교육용 기본재산과 학교용 보통재산의 운용에 대한 책임이 있다”며 “해당 기업이 수원외국인학교장의 허가 등 행정적 처리 없이 학교 재산(시설)을 사용한 사실과 관련해 학교 재산(시설)에 대한 관련자의 업무 소홀이 인정되기에 이에 대해 주의를 촉구하고 앞으로 이 같은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도록 조치했음을 알려드린다”고 덧붙였다.

경기도수원교육청에 따르면, 해당 기업이 이용한 건물은 학생 출입이 없는 별도의 건물로, 해당 기업의 물건은 모두 반출된 상태고 직원들 또한 더 이상 학교를 출입하지 않고 있다.

초·중등 교육법 제60조2(외국인학교) 및 ‘외국인학교 및 외국인유치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규정’ 제5조(설립 자격)에 의거해 수원외국인학교 운영권이 있는 효산국제교육재단은 비영리외국법인으로 수원외국인학교 운영과 관련해 수원시와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경기도수원교육지원청은 학교 운영 관련 검토가 요구되기에 필요한 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수원시에 통보하는 작업을 마쳤다. 당해 법인이 학교 재산(시설)을 임대계약서 작성 등 행정적인 처리 없이 기업이 무상으로 사용하게 한 사실 등 접수내역을 전달한 것이다.

등기와 다른
실제 사무실

경기도수원교육지원청은 해당 기업과 효산국제교육재단 이사장의 연관성을 파악할 수 없어 해당 기업에 대한 조치는 불가하다고 밝혔다. 

해당 기업의 사무실 사용 시기와 해당 조치를 묻는 질문에 경기도수원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학교시설을 무단으로 사용한 것을 적발하고 ‘주의’ 촉구를 했다. 사무실 사용 기간은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경인미래신문>에 따르면 수원시도 해당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원시가 재발 방지를 위해 수원외국인학교에 ‘엄중 경고’ 조치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에이치앤드씨는 어떻게 학교 건물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었을까.

이를 위해서는 에이치앤드씨 연혁을 살펴봐야 한다. 에치앤드씨의 시작은 2003년 샘메디칼로 시작했다가 1년 뒤 2004년 씨에스메디케어로 사명을 변경했다. 5년 뒤 씨에스메디케어 대표이사로 이모씨가 취임하는데, 수원외국인학교 운영을 맡는 효산국제교육재단 이사장과 동일인으로 추정된다. 

효산국제교육재단 홈페이지에 이사장 사진과 함께 인사말이 나와 있다. 이씨 밑에서 일했다고 밝힌 A씨에게 효산국제교육재단 이사장 사진을 보여주자 “씨에스메디케어 회장이었던 그 사람이 맞다”고 말했다. 

또 이씨는 “고용노동부 관계자와의 통화에서 해당 기업 대표이사를 제외한 근로자 5명이 학교에서 근무했다는 내용과 함께 이씨가 효산교육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학교 건물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근로자 5명 학교로 출퇴근
“별관 사무실 비어서 사용”


<일요시사>가 입수한 녹취록에는 이씨와 관련해 ”에이치앤드씨 전임 대표가 수원외국인학교 이사장이었다. 해당 인물이 이사장이었던 시절 학교에 별관 사무실이 비어있어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고용노동부 관계자가 언급한 내용이 담겼다.

이어 “해당 주소가 학교다 보니 부동산 등기등본부에 등록하지 않고 평택 사무실로 기재한 뒤 실제 근무는 별관 사무실에서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A씨는 “이씨가 운영한 씨에스메디케어는 이상한 회사였다. 업무 내용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연수원 관리인 모집, 조경관리, 집사 등 갖은 업무를 직원들에게 시켰다”며 “그뿐 아니라 연장, 휴일수당은 정상적으로 지급하지도 않았다. 모집공고에 표기돼있었는데, 수당에 대해선 면접 때 꼼수를 제안했다”고 이씨가 운영한 회사에 대해 폭로했다.  

이어 “이씨는 ‘실질적으로 야근과 주말 근무도 있다. 주 40시간 이상 초과근무하게 되면 세금을 더 내게 되니 그 나머지 금액은 현금으로 지불할 테니 증거를 남기지 말자’고 말했다. 그 말만 믿고 야근했는데 현금으로 지불하지 않았다”며 “나 말고도 다른 직원들도 초과근무를 거절하면 이씨 말 한마디에 해고를 당했다. 또 연중무휴 근무는 자연스럽게 강요되고 하루만 쉬어도 퇴직 사유가 됐다”고 주장했다. 

결국 A씨는 에이치앤드씨(당시 씨에스메디케어)와 부당 해고와 임금체불건으로 법정 다툼을 벌였다. A씨는 부당해고에 관한 보상으로 280여만원을, 임금체불에 관한 보상으로 100여만원을 회사로부터 받았다. 

에이치앤드씨 사무실은 2004년부터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내에서만 움직였다. 2016년 5월부터 만안구 안양로 모 빌딩 지하에 자리 잡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4일 기자가 해당 주소지를 직접 찾아가 에이치앤드씨에 대해 묻자 해당 건물 관리 경비원은 “이 건물에서 이사간 지 1년이 넘은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에이치앤드씨가 사용했던 지하 1층은 다른 회사가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1년 전
이사 갔다”

현재는 에이치앤드씨 군포지점으로 이름을 바꾼 뒤 주소까지 변경한 것으로 추정된다. 군포지점 주소로 찾아갔지만 회사 간판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수원외국인학교 측은 “해당 내용에 답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9dong@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8년 만에 다시 건넌 탄핵의 강

8년 만에 다시 건넌 탄핵의 강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16년 12월9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야당이 발의하고 여당 의원 일부가 찬성표를 던져 가결됐다.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파면’이라는 결과를 낳은 국정 농단 사태의 ‘결정적 순간’이다. 8년 뒤 국회 본회의장서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11일 만이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다. 시동이 걸린 탄핵 열차는 국회를 지나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향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헌재의 시간이다. 두 번 만에 직무 정지 지난 14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재적의원 300명 가운데 300명이 참석해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 가결됐다. 대통령 탄핵안 가결 요건은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 즉 200명 이상의 ‘가’표다. 범야권으로 분류되는 192표 외에 국민의힘의 8표가 필요했다. 이날 본회의서 나온 찬성 204표 중 국민의힘서 12표의 이탈표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탄핵안 표결 전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의원 수인 7명보다 많다. 기권과 무효표 역시 국민의힘서 나왔다고 계산하면 23명의 의원이 당론인 ‘탄핵 반대’와 다른 선택을 한 셈이다. 탄핵안 가결 이후 우원식 국회의장은 탄핵소추의결서를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에게 전달했다. 정 위원장은 탄핵소추의결서 정본과 사본을 각각 헌재와 대통령실로 보냈다. 14일 오후 7시24분 탄핵소추의결서가 대통령실에 전달되면서 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탄핵안이 가결된 지 2시간여 만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맡는다. 한 총리는 탄핵안 가결 이후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온 힘과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한 총리는 현재 내란 혐의 관련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만일 야당의 탄핵소추로 한 총리의 직무가 정지되면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국무총리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피청구인’이 된 윤 대통령의 운명은 헌재에 달렸다. 헌재는 탄핵소추의결서를 접수한 직후 ‘2024헌나8’의 사건번호를 부여했다. 사건명은 ‘대통령(윤석열) 탄핵’이다. 사건은 재판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재판부에 회부됐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신속하고 공정하게 재판하겠다”고 말했다. 헌재는 탄핵소추의결서를 접수한 날부터 180일 이내에 대통령 탄핵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노 전 대통령 때는 63일, 박 전 대통령 때는 91일 만에 헌재의 최종 판단이 나왔다. 헌재가 탄핵안을 인용하면 윤 대통령은 파면되고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기각하면 탄핵안은 즉시 파기되며 윤 대통령은 국정에 복귀할 수 있다. 헌재의 결정에 따라 이르면 내년 4월, 늦게는 8월에 조기 대선이 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상계엄 이후 11일 만 국민의힘 이탈표로 가결 문제는 헌재가 현재 ‘6인 체제’라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이종석 헌재소장과 이영진·김기영 재판관이 퇴임했지만 여야가 추천 인원수를 두고 다투면서 3명을 임명하지 못했다. 헌재법 23조1항은 헌재가 사건을 심리하기 위해서는 재판관 7명의 출석이 필요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6인 체제서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헌재는 앞서 탄핵소추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해당 조항의 효력을 임시로 정지시켰다. 그러면서 현재 6인 체제서 이 위원장의 탄핵 심판뿐만 아니라 헌재에 계류된 다른 사건의 심리를 모두 진행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사건도 같은 방식으로 처리가 가능한 상황이다. 다만 대통령 탄핵 심판이라는 헌정사에 중요한 사건을 6인 체제로 진행하는 게 헌재 입장서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6인 체제로 결론을 내릴 경우 만장일치가 돼야 한다. 헌재가 어떤 결론을 내리든 정당성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치권은 헌재를 ‘완전체’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한 상태다. 국민의힘은 여당 몫 후보로 조한창 변호사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정계선 서울서부지방법원장과 마은혁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를 각각 추천했다. 인사청문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인사청문회를 거친 뒤 국회 본회의서 임명동의안이 통과되면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다. 현재로선 한 총리가 이들을 임명하게 된다. 헌재로 공을 넘긴 정치권은 그야말로 시계 제로(0) 상태다. 지난 7일 1차 탄핵안이 정족수 미달로 ‘투표 불성립’된 이후 일주일 만에 가결로 결과가 바뀌면서 본격적인 탄핵 정국에 돌입했다. 탄핵안 가결의 ‘키’를 쥐고 있던 국민의힘은 혼돈 그 자체다. 보수 진영 대통령이 두 번 연속 탄핵 심판대 위에 서게 되면서 ‘궤멸’ 위기에 직면했다. 끝까지 반성 없어 지도부 붕괴는 가시화됐다. 탄핵안 가결 이후 국민의힘 선출직 최고위원 5명(김민전·김재원·인요한·장동혁·진종오)은 모두 사의를 표명했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선출직 최고위원 5명 가운데 4명이 사퇴할 경우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넘어가게 된다. 한동훈 대표는 직무 수행 의지를 드러냈지만 의원총회서 사퇴 요구가 나오는 등 입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퇴를 선언했다. 당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친윤(친 윤석열)계와 당권을 쥔 친한(친 한동훈)계 간의 책임론 공방은 국민의힘을 극심한 내홍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친박(친 박근혜)계와 비박(비 박근혜)계가 갈등을 벌이다가 분당 사태까지 벌어졌던 8년 전과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국민의힘은 문재인정부 이후 5년 만에 정권교체로 간신히 회복한 국민 신뢰를 또다시 잃게 됐다. 국민은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탄핵안 가결에 이르기까지 11일 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모습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특히 지난 7일 1차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국회 본회의장을 떠나는 모습은 국민 분노에 불을 지폈다. 결국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보수 진영으로부터도 비판이 쏟아졌다. 윤 대통령은 헌재뿐만 아니라 국민 여론·수사기관·정치권 등에 완전히 포위된 ‘사면초가’ 상황에 빠졌다. 탄핵안 가결 이후 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서 “저는 지금 잠시 멈춰 서지만 지난 2년 반 국민과 함께 걸어온 미래를 향한 여정은 결코 멈춰 서서는 안 될 것이다. 저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숨통 죄는 내란 혐의 그러면서 자신의 국정운영 성과를 강조했다. 정치권과 국민에 대한 당부 발언도 내놨다. 하지만 탄핵안 발의 배경인 12·3 비상계엄 선포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끝까지 국민에 대한 사과나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윤 대통령의 태도에 비판이 제기됐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앞서 진행한 네 번의 대국민 담화서도 그는 모든 상황의 원인을 ‘야당 탓’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 정례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탄핵 표결 직전 11%까지 떨어졌다. 부정 응답은 85%까지 치솟았다. 긍정 응답은 60세 이상을 제외한 모든 연령층서 한 자릿수를 기록했다. 헌재 탄핵 심판서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다 해도 국정 동력을 기대할 수 없는 수치다.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TK(대구·경북)도 16%에 그쳤다. 검찰·경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특검 등 수사기관도 윤 대통령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현재 내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미 구속된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등 관련자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직접 진두지휘했다는 취지의 증언을 쏟아내고 있다. ‘내란 우두머리’로 지목되고 있는 상황이다. 내란죄는 외환죄와 함께 대통령 불소추특권의 예외 범죄다. 내란 우두머리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뿐이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과정서 그에게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적용했다. 지난 14일 구속된 여인형 방첩사령관도 같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들이 ‘윗선’ 즉, 내란 우두머리로부터 지시를 받았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다. 여당은 궤멸 직전에 몰려 헌재 9인 체제 결론 내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명태균씨 관련 수사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최근 몇 개월 새 이른바 ‘명태균 녹취록’이 민주당을 통해 일부 공개되면서 윤 대통령과 배우자 김건희 여사는 수세에 몰리는 상황이었다. 명씨의 행보에 윤 대통령 부부의 뒷배가 작용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 그 후폭풍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두 번 만에 탄핵안 가결을 이끌어낸 야권은 공세를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그간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국회 과반 의석(192석)을 무기로 윤 대통령을 압박해 왔다. 김 여사 특검법은 이미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황서 윤 대통령은 더이상 거부권을 쓸 수 없다. 내란 혐의를 받는 일부 국무위원과 군‧경 관계자에 대한 탄핵소추도 일사천리로 국회 문턱을 넘고 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탄핵안 가결 이후 “12·3 내란 사태는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며 “내란 수괴 윤석열의 직무 정지는 사태 수습을 위한 첫걸음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을 비롯해 내란 가담자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로 사태의 전모를 밝혀내고 처벌이 내려질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 사흘 만에 내놓은 대국민 담화서 법적·정치적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조기 퇴진 제안에도 ‘하야보다는 탄핵이 낫다’는 입장을 보이며 거절 의사를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이나 박 전 대통령은 탄핵 심판 당시 한 차례도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지만 율사 출신인 윤 대통령은 직접 변론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앞선 대국민 담화서 비상계엄의 당위성에 대해 거듭 이야기했다. 헌재서도 자신이 왜 최후의 수단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는지 그 배경을 밝히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만큼 고도의 통치행위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국회와 윤 대통령의 치열한 공방전이 예상되는 지점이다. 문제는 이 과정서 표류할 ‘대한민국호’의 상황이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각종 경제지표가 곤두박질치면서 이는 고스란히 국민의 짐으로 얹어지고 있다. 헌재 판결, 조기 대선 등 향후 이어질 정치 일정서 일어날 갈등도 국민에겐 피로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민이 극복하긴 했지만 피로 지켜온 민주주의가 상처 입은 점도 뼈아픈 대목이다. 피해는 국민 몫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윤 대통령의 이기적인 계엄령 도박에 대한 대가는 한국의 5100만 국민이 할부로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비상계엄 선포부터 탄핵안 가결까지 걸린 시간은 열흘 남짓이다. 향후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최대 8개월까지 이 국면이 계속될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에게 청구될 계산서에는 얼마가 쓰여 있을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