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성수 기자] 회장 딸이 강남땅을 사들였다. 그 위에 올린 건물까지 세트로 샀다. 수십억원이 들었다. 부모 잘 둬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딸은 아직 어리다. 자신 명의의 빌딩이 있는지 조차 모를 나이다. 과연 어디서 난 돈으로 '새파란 건물주'가 된 것일까. 혹시 부모가 탈세를 노리고 몰래 사준 건 아닐까.
상장사 등 여러 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는 중견기업 오너일가의 빌딩 매입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수십억원짜리 건물이 오너 딸의 수중으로 흘러들어간 정황이 석연치 않다. 매매가도 시세와 달라 구린 구석이 있다.
의문의 주인공은 모 기업 A회장의 두 딸이다. 딸들은 강남에 있는 한 빌딩을 매입하면서 '건물주'가 됐다.
대법원 인터넷등기소에 따르면 A회장의 장·차녀는 지난해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빌딩을 매입했다. 장·차녀는 빌딩 소유권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등기부등본에 표기된 거래가액은 60억원. 이중 금융권에서 대출받은 금액은 24억원이다. 자매가 쥔 현금이 36억원이었다는 계산이다.
어디서 난 돈?
문제는 이 돈의 출처다. 어린 나이에 어떻게 '큰돈'을 마련했는지 거액의 매입 자금이 불분명한 점에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는 편법상속 논란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차명재산 부분도 의심해볼만 하다.
A회장의 두 딸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 공식석상은 물론 전혀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호사가들의 입길에도 오른 적이 없다. 그렇다보니 정확한 신상 파악이 어렵다.
다만 A회장의 프로필을 통해 딸들의 나이 정도는 대략 추론이 가능하다. A회장은 30대 후반이다. 국내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다른 대기업에서 잠시 근무하다 선대회장인 부친이 사망하면서 지분과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이를 감안하면 그의 딸들은 아직 미성년자란 결론이다. 많아야 10대 후반이란 얘기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꼬마'들이 한두 푼도 아니고 수십억원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대목이다. 자매는 모회사와 일부 계열사의 등기직을 맡은 적이 없는데다 주주로 등재돼 있지만 지금까지 배당금이 단 한 번도 지급되지 않아 의혹을 더한다.
A회장 딸들의 빌딩 매입을 두고 불거지는 또 다른 의문 한 가지. 바로 '다운계약서'의혹이다. 부동산 업자들은 A회장 측이 세금을 덜 내기 위해 거래가격을 낮춘 다운계약서를 작성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두 딸 명의의 ○○빌딩 시세는 70억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등본상 거래액과 비교하면 10억원가량 차이가 난다. 건설교통부와 국세청 조회 결과 이 빌딩의 공시지가와 건물 기준시가는 약 50억원 정도로 나타났다. 당연히 실거래가로 따지면 이를 웃돈다.
A회장 미성년 자녀 수십억 강남빌딩 매입
거액 자금 출처 의문…다운계약서 의혹도
이 빌딩은 대한민국 중심인 강남, 그중에서도 '노른자'라 할 수 있는 서초구에 위치해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일대의 실거래가가 공시지가와 기준시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흥정된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빌딩과 비슷한 규모의 주변 빌딩이 70억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부동산 관계자는 "○○빌딩은 서초구 중심에 있다. 얼마 전 이 빌딩과 비슷한 규모의 주변 건물이 70억원에 팔렸다"고 귀띔했다.
고위 공직 후보자의 청문회에서 단골 메뉴인 다운계약서는 매도인과 매수인이 합의해 실제 거래가격이 아닌 허위 거래가격으로 매매한 계약서다. 대개 양도소득세나 취·등록세 등 세금 납부를 줄이기 위해 시도된다. 이 행위가 적발될 경우 취득세의 3배를 내게 돼 있다. 고의적 탈세라면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세금과 관련해 두 딸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것도 절세 차원이 아니냐는 시각이 강하다. 일각에선 투기 의혹도 제기된다. 한 중개업자는 "한명이 단독으로 건물을 보유한 것보다 여러 사람이 소유하면 절세에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다른 중개업자는 "최근 재벌가 사람들이 강남 일대 빌딩을 경쟁적으로 매입하고 있다"며 "왜 그러겠는가. 땅값이 오를 대로 올랐다는 평가지만 앞으로도 상당한 가격상승이 기대된다는 전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법적이나 도의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일축했다.
회사 관계자는 "그런 얘기가 어디서 나왔냐. 전혀 아는 바가 없다"며 "오너의 가족과 재산은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전혀 알 수 없을 뿐더러 확인도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운계약서 의혹에 대해선 이 역시 사적인 일로 확인할 수 없으나 평소 오너의 도덕성으로 봤을 땐 법대로 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탈세? 편법상속?
정도 경영. A회장이 회장 취임식에서 처음 화두로 던진 이후 줄곧 추구해 온 경영철학이다. 한마디로 부당·편법 없이 정정당당하게 승부하자는 뜻이다. 이는 곧 회사의 경영방침이기도 하다.
딸의 부동산 취득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에 대해 누구나 쉽게 납득할 만한 해명이 없다면 A회장이 강조하는 '바른 길'은 무리한 요구일 수 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회사 측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안일한 대응과 석연찮은 해명이 오히려 의혹을 더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