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와 부작용' 공공임대주택 빛과 그림자

주거 복지 사이 허점투성이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공공임대주택. 공공 주택 사업자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주택도시기금을 지원받아 공급하는 주택을 말한다.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임대하거나 임대 후 분양전환하는 일종의 ‘주거복지사업’이다. 집값이 급등한 상황 속에서 그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불법투기·입주민 차별 등 다양한 문제가 불거지면서 일각에서는 “많이 짓기만 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집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 지난 15일 KB국민은행 조사에 따르면 문재인정부 5년 동안 전국 평균 아파트값은 37.59%, 서울은 61.59% 올랐다. 같은 기간 서울 지역 중위 주택 가격은 약 6억600만원에서 10억9000만원으로 4억8000만원 이상 올랐다.

‘영끌’ 매입
젊은층 각광

가능한 사람들은 앞다퉈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해 집을 샀다. 결국 무주택자로 남겨진 것은 대부분 사회초년생·신혼부부 등이다. 이들에게는 같은 아픔이 있다. 모아둔 돈은 비교적 적은데 오히려 주거안정은 가장 절실하다는 것이다.

전셋값도 지난 5년간 급등(전국 19%·서울 30%)한 가운데, 대출도 어려워졌다. 이들이 기댈 곳은 사실상 공공임대주택뿐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현 정부와 차기 정부 모두 공공임대주택 확충에 적극적이다. 문정부는 임기 중 공공임대주택을 85만호 공급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 때 각각 21만호, 40만호 공급된 것에 비해 크게 늘었다.


제도 개선도 이어졌다. 우선 문정부는 저소득층·신혼부부·청년 등에게 입주 우선권을 부여했다. 아울러 다양한 공공임대주택 유형을 ‘통합 공공임대주택’으로 일원화했다.

앞서 공공임대주택은 1989년 도입된 영구임대주택, 1998년 국민임대주택, 2013년 행복주택 등 10가지 유형으로 세분화돼있었다. 각 유형별 소득·자산 기준이 제각각이라 수요자들이 일일이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문정부 들어서부터는 ‘중위소득 150% 이하, 자산 2억9200만원 이하인 무주택세대 구성원’ 등으로 신청 기준이 단순해졌다. 

공급 방식도 바뀌었다. 주택 유형별로 고정된 면적을 공급하던 것을 가구원 수에 따라 수요자가 여러 면적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60㎡가 넘는 중형 면적도 새로 도입했다.

공공임대주택 보급은 차기 정부에서도 이어질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앞서 대선 기간 중 ‘비정상 거처 거주자 완전 해소’를 공약하면서 공공임대주택 추가 보급을 시사했다.

“임대차 시장이 공공임대주택 위주에서 민간임대주택 활성화로 전환돼야 한다”는 지론을 펴면서도, 주거 복지 차원의 공공임대주택은 더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윤 당선인은 공약집 98페이지에 “건설임대 중심으로 공공임대주택을 연평균 10만호씩 50만호 공급”이라고 명시했다. 문정부에 비하면 줄어든 수치이지만 과거 보수정권들에 비하면 많은 편이다.


한편 일부 공공임대주택 입주민들은 “많이 짓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정부와 관련 기관들을 비판하고 있다. 공공임대주택이 늘어가면서 여러 부작용이 불거지고 있는 탓이다. 이른바 ‘사후관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공공임대주택과 관련된 논란은 크게 4가지다. 공공임대주택 불법투기 문제·꼼수 입주 문제·분양전환가 폭등 문제·임대 주민 차별 문제 등이다.

공공임대주택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보급되는 만큼, 각종 거래·임대가 제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임대주택을 매매·임대하는 사례가 꾸준히 적발되고 있다. 

집값 폭등 무주택자 설움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급

최근 경기도가 대대적인 수사를 통해 불법투기를 무더기로 적발한 사례가 눈에 띈다. 경기도 공정특별사법경찰단장은 지난 16일 브리핑을 열고 “지난해 12월부터 도내 공공임대주택을 대상으로 불법 매매·임대, 입주 자격 위반행위 등에 대해 기획수사를 벌여 불법행위자 81명, 불법 중개사 70명 등 총 151명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경기기도 공정특별사법경찰단(이하 특사경)은 성남 판교·수원 광교·화성 동탄 등 경기도 소재 7개 신도시 공공임대주택을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해왔다. 특사경에 따르면 파주 소재 공공임대주택 임차인 A씨는 공인중개사와 공모해 임대주택을 매매금지 기간에 불법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10년 거주 뒤 분양전환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거주 9년째에 아파트를 4억원에 팔아넘겼다. 1년 뒤 이 아파트의 분양전환가는 2억3000만원으로 확정됐다. 불법 매매를 통해 1억7000만원의 시세차익을 추가로 챙긴 셈이다.

심지어 이 계약을 중개한 공인중개사는 A씨를 포함해 총 7건의 공공임대주택 판매·임대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3달 만에 고객들에게 총 13억6000만원의 불법 이익을 제공했고, 그 대가로 830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공공임대주택 세입자가 다시 세를 놓은 사례도 적발됐다. 성남 판교 공공임대주택 임차인 B씨는 공인중개사와 공모해 자신이 들어간 집을 타인에게 임대했다. 보증금 2억8000만원 전세 임대계약 위에 보증금 2억5000만원·월세 265만원 월세 임대계약을 덮어썼다.

이번에 이 같은 수법으로 적발된 불법투기 규모는 484억원에 달한다. 경기도 밖의 다른 지역 사례까지 포함하면 불법투기 규모가 더 커질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도 가능하다.

불법투기로 취하는 이득에 비해 처벌이 약한 것도 문제다. 현행법상 공공임대주택을 불법으로 매매·임대하거나 이를 중개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불법투기를 통해 최대 수억원을 벌 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꼼수 입주’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꼼수 입주는 애초에 입주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제치고 입주한다는 점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가져온다. 입주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사람들이 두 배로 억울한 상황을 맞게 되는 셈이다.


“많이 짓는 게 
능사가 아니다”

꼼수 입주는 대개 관련 서류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이루어진다. 입주 조건을 벗어나는 재산의 일부·전부를 다른 사람 명의로 돌려놓고, 입주 조건을 충족하는 것처럼 눈속임하는 방식이다.

2020년 국정감사에서 이전 5년간 서울시 공공임대주택에서 소득 초과‧불법 전대 등으로 적발된 부적격 입주가 1900여건에 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당시 제출된 자료를 보면, 부적격 사유로는 주택 소유가 1108건으로 가장 많았다. 뒤이어 소득 초과 551건, 부동산 초과 118건, 차량 가액 초과 68건 순이었다.

차량 가액 초과는 여전히 골칫거리로 남았다. 최근 성남·화성 등 여러 행복주택 주차장에서 고가의 외제차가 다수 발견돼 논란이 일었다.

행복주택은 공공임대주택의 일종으로, 시세의 60~80% 수준으로 공급된다. 3496만원 보다 비싼 차를 소유했다면 이곳에 입주할 수 없는데도, 이를 훌쩍 뛰어넘는 가격대의 외제차가 심심찮게 발견되고 있다.

특사경에 따르면 화성에 위치한 한 행복주택에는 외제차가 47대나 등록돼있었다. 입주 조건을 위반한 것이 확실한 차량도 12대에 달했다. 실제로 해당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에는 BMW7 시리즈, 아우디, 머스탱 등의 고급 외제차들이 즐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차량 지분 쪼개기’ 수법으로 차량가액 초과를 피했다. 억대를 호가하는 차량의 지분을 1~2% 정도만 입주자 이름으로 등록하고, 나머지는 부모‧지인 등의 명의로 돌려놨다.

차량 명의를 완전히 돌려놓고, ‘방문 차량’으로 속여 계속 드나든 사례도 덜미를 잡혔다. 무자격 동거인을 활용한 수법도 발각됐다. 한 입주자는 1인 세대 조건 청년 자격으로 당첨됐지만, 무자격 동거인과 함께 거주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동거인 명의로 고가 외제차를 소유했다는 혐의도 더해졌다.

당국의 감시가 허술했다는 지적에 이어 ‘공공임대 분양전환 제도의 허점이 입주민을 난처한 상황에 몰아넣는다’는 주장도 나왔다. 공공임대 분양전환은 일정 임대기간을 마치면 분양권을 주는 주거 안정 정책이다.

집값이 급등하면서 분양전환 가격 부담도 덩달아 커졌는데, 현행법에 따르면 커진 부담이 온전히 입주민들에게 향한다는 주장이다.

LH가 “현행법을 따를 수밖에 없다”며 수수방관하는 가운데, 일관성 없는 정책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부천의 한 공공임대주택은 오는 10월 조기 분양전환을 앞두고 있다. 2017년 입주 당시에는 2억원 초반이었던 주변 집값이 지금은 8억원대로 폭등했다. 이대로 분양전환이 진행되면 분양전환가는 7억원을 넘어선다. 5년 공공임대주택에서 10년 공공임대주택으로 넘어오면서 분양전환가 산정 방식이 바뀐 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LH는 5년 공공임대주택 분양전환가를 주택 감정평가액와 건설원가 평균금액으로 산정한다. 반면 10년 공공임대주택은 감정평가액을 넘지 않게 한다는 상한선만 뒀다. 상대적으로 10년 공공임대 아파트의 감정평가액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탈감
허탈감

이에 주민들은 “10년 공공임대주택도 5년 공공임대주택처럼 분양전환가를 산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 외에도 분양전환을 기다리고 있는 10년 공공임대주택은 전국에 26만호가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LH 측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LH 관계자는 “안타깝지만 가격 책정은 분양시점으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 법규”라며 “임의로 가격을 다시 책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임대 기간 동안 집값이 이렇게 폭등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만약 집값이 떨어졌다면 그걸 반영해 분양가가 낮아졌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입법 과정에서 집값 폭등 가능성을 상정하지 못했고, 분양전환가 산정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관련 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결국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의원 등 10명이 관련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10년 공공임대주택 분양전환가 산정에도 건설원가 평균금액 등을 반영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김 의원은 “아직 분양전환되지 않은 10년 공공임대주택 26만8000여호에도 개정 규정이 적용될 수 있도록 개정안을 마련했다”며 “국가를 믿고 공공임대에 입주한 국민들의 고통을 방임해서는 안 된다”고 발의 이유를 밝혔다.

다만 아직 별다른 진전은 없다. 해당 개정안은 국회 소관위원회에 회부된 이후 추가 절차에 들어가지는 못한 상태다.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도 입주민들의 고충이다. 공공임대주택 님비현상부터 각종 별칭까지 생기면서, 일각에서는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꺼리는 움직임까지 포착됐다.

문정부는 2020년 ‘8·4부동산대책’에서 수도권 주택 공급 방안으로 마포구 상암 DMC 부지, 노원구 태릉골프장 부지,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부지 등에 공공임대주택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지역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심지어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지역구 의원들과 지자체장이 이례적으로 공개 반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들만의 돌출행동은 아니다. 국민 권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2017년 5월부터 2019년 6월까지 접수된 전체 공공임대주택 관련 가운데 임대주택 건설을 반대하는 내용이 29.8%(1068건)로 가장 많았다.

투기, 꼼수 입주, 차별 등 부상
사후관리 체계 마련 필요성 대두

2020년 LH가 실시한 심층 면접 결과를 살펴보면 “장애인이나 고령자가 동네에 많아져서 마트나 은행에 갔을 때 대기시간이 길어진다” “부모님 보살핌을 못 받는 기초생활수급자 자녀들끼리 어울려 집단을 형성하는데, 불량학생이 많다” 등 실제로도 부정적인 인식이 주를 이뤘다.

이 같은 인식은 임대 주민들의 소외로 이어졌다. 설계구조상 임대 주민과 분양 주민의 동선이 완벽하게 분리되는 아파트가 등장하는가 하면, 입주자 대표회의를 따로 구성하는 곳도 생겨났다. 하다 못해 임대주택과 분양주택 거주 학생들의 학군을 분리하라는 학부모 요구도 이어졌다.

아울러 임대 주민을 지칭하는 여러 가지 혐오 표현도 세간에 알려져 논란이 됐다. 몇 년 전부터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휴거지(휴먼시아+거지)’, ‘엘사(LH 아파트 사는 거지)’ 등의 멸칭이 공공연하게 사용되는 것이 드러나면서 온 사회가 충격에 휩싸였던 바 있다.

결국 차별적 시선을 견디다 못해 휴먼시아·LH 등이 들어간 아파트 이름을 바꾸는 곳까지 생겨났다. 수원시 영통구에 위치한 ‘LH휴먼시아’ 아파트는 ‘광교해모로’ 아파트로, 권선구의 능실마을LH 19단지는 ‘호매실 스위첸 능실마을 19단지’로 개명했다.

이 가운데 정부의 정책이 공공임대주택 차별이 만연해지는 것에 일부 기여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기존에는 아파트가 들어서면 임대동과 분양동을 나눴다. 단지 내에서도 공간을 명확하게 분리한 게 차별과 편견의 씨앗이 됐다는 주장이다.

이에 최근 정부에서는 ‘소셜믹스’ 방식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소셜믹스는 분양 가구와 임대 가구 동을 따로 분리하지 않고, 한 동에 무작위로 배치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어떤 동에 산다는 정보만으로 임대‧분양 주민을 구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서 더 많이 접촉하면서 각종 편견들을 없앨 수 있다는 점도 기대할 수 있다.

부동산 정책 전문가들은 “임대주택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오랜 편견을 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고길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럭셔리한 공공임대주택에 다양한 계층·연령의 입주자가 들어가고 주변시설이 개선돼 혜택이 제공되면 사람들의 인식이 바뀔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X거지’ 
주홍글씨

산적한 문제에도 존재 필요성은 명확하다. 공공임대주택은 당분간은 무주택자들에게 최적의 대안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많이 짓는 게 능사가 아니다”라는 지적이 “많이 짓지 말라”는 왜곡된 결론으로 귀결돼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어렵겠지만 “지금부터라도 ‘많이 지으면서도 잘 짓고 잘 나누는’ 방법을 찾아 나서라”는 의미로 읽힌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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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