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기로 남은 이재명의 앞날

눈앞에 놓인 세 갈래의 길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세상은 1등만 기억한다’는 문구가 한국사회를 뒤덮은 적이 있다. 2등과 3등도 노력해 이룬 성적이지만, 세상은 항상 1등만을 기억한다는 아쉬움이 섞인 소리다. 그러나 적어도 2022년 대선에는 이 문구가 먹혀들지 않아 보인다. 정계는 대선에서 2등을 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상임고문을 아직 잊지 않았다. 오히려 몇몇  인사는 그가 정계에 조기 복귀해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사람은 살면서 여러 선택의 순간과 마주한다. 청소년기엔 무엇을 공부해 어떤 학교를 갈지 선택하고, 청년기엔 어떤 일을 하며 장래를 그려 나갈지, 또 누구와 만나 어떤 가정을 꾸려나갈지를 선택한다. 그때그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다.

역할인가
책임인가

정치인들의 정치 인생 또한 마찬가지다. 중요한 순간에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정치인은 대통령까지 클 수도 있고, 조기 은퇴 수순을 밟을 수도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3당 합당을 하지 않았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네 번째 대권 도전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를 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대통령이 되지 못하고 정치 인생을 조기에 마감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상임 고문에게도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대선에서 패배하며 낙담하고 있을 그에게 민주당은 당내에서 리더십을 발휘해 지방선거를 이끌어야 한다는 ‘역할론’을, 그리고 대선 패배를 책임지고 당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말라는 ‘책임론’을 내놨다. 역할론을 제시한 쪽은 이재명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주요 보직을 맡았던 ‘친이(친 이재명)계’ 의원들이고 책임론을 제시한 쪽은 이낙연 전 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모시자는 쪽의 ‘친문(친 문재인)계’ 의원들이다.

민주당 내부 목소리에 의하면, 대선 패배 후 선대위를 해체하기 직전 이 고문은 몇몇 친한 민주당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전 대표의 비대위원장 위촉에 반대할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

패배 후 당내 이권싸움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고문은 공식 대통령선거 기간인 지난 4일 선거유세 중에 “정치를 끝내기에는 아직 젊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그가 대선 패배를 가정하고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 패배로 정계를 은퇴한다거나 대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뜻을 해석할 수 있다. 자신의 말처럼 이 고문은 정계 은퇴를 하기에는 너무 어리다.

올해 59세(만 57세)인 그는 정치인으로서 이미 약 10년의 커리어를 쌓은 베테랑이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경력을 두루 갖춘 이 고문이 동년배 정치인 중에서 국정 경험은 압도적으로 깊다는 데 정치 평론가 모두가 동의한다.

이번 대선을 거치며 ‘비주류’ 정치인이었던 이 고문은 일약 ‘주류’ 정치인으로 탈바꿈했다. 경선부터 본선까지 대중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바탕으로 선거를 치러온 이 고문은 그간 패배한 민주당 대권주자들과는 다르게 정치적으로 많은 것을 얻으며 대선 레이스를 마쳤다.

그중 하나가 ‘차기 대권 가능성 확인’이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 일컬었던 이번 선거에서 보통 정치인이었으면 하나만 터졌어도 곤란했을 논란이 서너 가지가 연이어 터졌다.

여배우 스캔들부터 형수 욕설 논란, 아들의 도박 논란, 배우자의 갑질 논란, 그리고 대장동 비리 관여 의혹까지 굵직 굵직한 네거티브 뉴스가 매스컴을 장식할 때마다 이 고문의 입지는 좁아져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는 재빠른 사과와 진실 규명을 적절히 섞어가며 난관들을 헤쳐나갔다.

기지를 발휘한 이 고문의 대처 덕분에 지지율에는 큰 영향이 없었고, 오히려 대선 레이스 막판에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격차를 좁혀가는 양상을 그려내며 분전했다.

정계 조기 복귀해 당내 역할?
지방선거 다시 출마 가능성은?

일각에서는 ‘김대중 이후에 논란을 가장 잘 대처한 진보진영의 정치인’이란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본인 리스크나 도덕성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대중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내는 ‘정치’를 잘했다는 평가다.

선대위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어떨 때 사과를 해야 하는지, 어떨 때 맞서 싸워야 하는지 이 고문에게는 본능적인 감각이 있다”고 전했다.

리더의 소양이 충분하다는 평가와 함께 나온 것이 이 고문의 ‘책임론’이다. 이처럼 능력 있고 힘 있는 리더가 지금 민주당 비대위에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현재 민주당은 윤호중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비대위가 구성돼있다.

민주당 선대위는 N번방 추적단 불꽃 활동가 박지현씨 등 참신한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쇄신 분위기에 힘쓰고 있다. 민주당은 대선에서 많은 지지를 보내준 ‘이대녀’(20대 여자)'를 중심으로 선거 분위기를 개편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윤 비대위원장은 선대위에서 활동했던 ‘책임’져야 하는 인사다. 지도부가 모두 사퇴한 시점에 비대위를 꾸리기에 부적절한 인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고, 비대위를 이끌 만큼의 여력도 충분하지 못하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현재 윤 비대위원장은 일부 민주당 지지자에게 문자 폭탄을 받는 등 ‘정치적 테러’를 겪고 있다. 다른 선대위 인사들처럼 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게 문자의 주 내용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고문에게 역할론이 제시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책임을 져야 하는 후보긴 하지만, 동시에 국민으로부터 지지율로 인정받은 후보이기에 지금 시점에 비대위원장을 맡을 능력이 있는 후보는 그뿐이라는 것이다.

당초 민주당 지도부는 이 전 대표에게 비대위원장을 맡기려 했으나 당내 분위기와 이 전 대표의 의지에 따라 무산됐다. 리더십 있고, 무게감 있는 인사가 부재한 탓에 돌고 돌아 이 고문에게까지 역할 제안이 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고문 또한 정치적 재기를 노리고 있는 만큼, 이 제안이 성사될 가능성이도 있다. 대선에서 패배한 후보가 후에 차기 당 대표로 선출된 사례는 과거에도 많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랬고, 문재인 대통령도 그랬다. 

바로 복귀?
경기 또지사?

다만 이 고문은 여의도 정치 경력이 전무하다는 점이 약점으로 꼽힌다. 일찌감치 이번 대선은 ‘0’선 의원 간의 대결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 고문은 그간 민주당 대통령들과는 달리 국회에서 국회의원들과 함께 일해 본 경험이 없다. 지방 행정 이력만 갖추고 있는 이 고문의 세력은 결집도도 매우 약한 집단으로 평가된다.

비록 이번 대선에서 ‘주류’로 탈바꿈한 모양새지만, 당권이 약한 그에게 당 대표를 맡겨도 되는지 의구심을 품는 이가 많다. 아무래도 ‘친문파’ 의원이 대다수인 민주당 내에서 세력을 통합하기가 쉽지 않지 않겠냐는 걱정이다. 이 고문은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캐릭터다.


워낙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언변으로 논란이 많이 된 탓에 같은 당에 있더라도 그에게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다고 내부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실제로 이번 경선이 끝난 후 민주당 지도부는 원팀을 표방했지만, 몇몇 중진 의원과 그의 지지자들은 이 고문의 당선을 진심으로 돕지 않았다.

심지어 이낙연 경선 선거 캠프에 있던 한 인사는 윤 당선인의 캠프에 합류해 활약하는 등 분열을 우회적으로 내비치기도 했다.

리더로서의 재목으로서 당에 역량을 보여준 적 없는 이 고문은 이제 시험대 위에 섰다. 다수 의견을 무릅쓴 채 당권을 잡으려면 지난 대선 본선에서 보여준 능력을 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여줘야만 한다.

‘친문’과 ‘친이’의 대립이 극심한 민주당을 하나로 통합해 낼 수 있을지에도 정계 전문가들은 주목하고 있다. 사실 대선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하자마자 바로 당내로 복귀한 사례는 아직 없다. 모두 몇 개월에서 몇 년간 야인 생활을 거친 후에 정계로 돌아왔다.

역대 가장 많은 표차로 대선에서 진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제18대 총선이 있을 때까지 약 1년간 야인 생활을 했다. 후에 당의 요청으로 서울 동작구에 출마했으나 당시 한나라당 정몽준 후보에게 패하여 낙선한 뒤, 2009년에 무소속으로 전북 전주시에서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2010년 2월 민주당에 복당하며 대선 낙선 후 3년 후에나 본격적인 정치 재계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문 대통령 또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패한 후 의원직만 유지하고 평당원으로 잠행을 이어오다 2015년에나 당 대표로 선출되며 다시 대권에 도전하게 된다.

200명에 전화
과연 의미는?

평균으로 치면 최근 민주당 후보들은 대권 패배 후 약 3년이 지나서야 세력을 갖추고 당내 실세로 복귀했다. 이 고문은 3주도 채 지나기 전에 당내 복귀설이 나왔기 때문에, 이는 너무 이례적인 데 많은 이가 공감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배경에서 이 고문이 야인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측을 하는 이도 많다. 그간 대선에서 패배한 후보들이 그랬듯, 패배 후보는 시간을 갖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선거는 가장 중차대한 선거다. 선거 승패는 당의 운명을 판가름할 만큼 무게감이 있기에 역대 대선에서 패배한 세력들은 정치활동을 하지 않는 것을 관례처럼 여겼다.

이 고문이 정 전 장관, 문 대통령과 다른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대선 경선과 본선 과정에서 제기된 수많은 의혹들이 그를 휘감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고문에게는 사법 처벌의 위험마저 도사리고 있다. 이 고문은 지난달 선거유세 과정에서 “저 지면은 감옥 갈 것 같다. 없는 죄도 만들어서 뒤집어 쓸 것 같다”며 상대 후보인 윤 당선인을 공격하는 동시에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듯한 발언을 해 눈길을 끈 바 있다.

대선 기간 지금 이 고문에게 걸린 검찰 수사는 배우자 김혜경씨 공무원 사적 동원 의혹, 허위 해명 혐의, 신천지 압수수색 거부에 대한 허위사실 공표 혐의, 김씨 법인카드 유용과 경기주택공사 합숙소 비선캠프 의속, TV토론에서 정영학 녹취록 왜곡 공개 혐의, 검사 사칭 전과 기록 허위 소명 의혹 등 6개다.

6건과 별개로 대장동 수사도 진척되고 있어 이 후보의 걱정은 날로 깊어지는 중이다. 최근 녹취록 공개와 관련자들의 증언이 하나둘 나오고 있는 분위기에서 이 고문은 자신을 위한 선택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당권을 잡는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면, 이 고문은 지방선거에 직접 뛰어들 수도 있다. 야인인 채로 검찰과 수사를 받게 된다면 진영 차원의 방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이 고문은 역대 대선 패배 후보들보다 빠르고 적극적인 정치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야인으로 지내다 다음 대선에?
당장 수사 받는 입장…선택은?

선거 패배 후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 이 고문은 민주당 모든 국회의원과 자신을 도운 인사 약 200명에게 직접 안부 인사를 하며 정계 복귀 신호탄을 날렸다.

이 고문이 실제로 노리고 있는 것이 당권인지, 지방선거 출마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이 고문 스스로가 야인으로 생활하고 싶지는 않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파악된다.

민주당 입장에서도 차기 대권후보 한 명을 잃는 것은 뼈아픈 손해이기에 그의 정계 복귀를 서둘러 지원할 수 있다. 검찰수사가 진행되고 사법 처벌을 받는 등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받는다면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이 얻었던 모든 것을 다시 빼앗기는 셈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 후보이 지방선거에서 공천받을 만한, 유력하게 점쳐지는 자리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그리고 경기도지사까지 세 자리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모두 민주당 인사들의 실책으로 국민의힘에 내준 자리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큰 표 차이로 국민의힘에 패배했다.

박원순 전 시장과 오거돈 전 시장은 모두 성추문 사태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난 바 있다. 정치 평론가들은 민주당이 이 자리를 탈환하기 위해서는 대선주자급의 무게감 있는 후보가 출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평범한 후보로 민심을 돌리기에는 역부족할 것이란 판단이다.

지금 거론되고 있는 서울시장 후보는 임종석 전 비서실장, 우상호 의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정도인데, 이들을 모두 제치고 이 고문이 나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서울시장뿐 아니라 경기도지사도 가능성이 높다. 이 고문은 지난 민주당 경선이 끝난 후 최종 후보에 당선됐음에도, 끝까지 경기도지사직 사퇴를 미뤄온 바 있다. 국정감사를 도지사 자격으로 참여해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였다.

이 고문이 경기도지사직에 애착이 남달랐다는 건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는 지난달 선거유세 과정에서 자신의 도지사 시절 업적을 언급하며 “경기도지사 시절 도민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다”며 “시민들은 제가 도지사일 때 가장 도지사다웠다고 말해주셨다”고 언급했다.

경기도지사 민주당 후보로는 현재 안민석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경기도지사에는 민주당의 귀책 사유가 없기 때문에, 대선 직전까지 도지사로 일했던 이 고문이 복귀한다면 당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자리다.

당선 가능성과 무게감으로 본다면 이 고문이 경기도지사에 출마하는 게 가장 적절하다고 민주당 고위 인사들은 전한다.

사법 처벌
큰 타격

민주당은 또 다른 승부를 목전에 두고 있다. 패배는 이미 지나갔고, 돌이킬 수 없다. 지금 민주당이 해야 할 것은 패배에 대한 성찰과 대선 과정에서 드러난 상대의 약점 분석, 그리고 당의 쇄신이다. 명분과 사익에 집착하지 말고 승리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만을 연구해야 한다. 이 고문이 어떤 역할을 할 때 당의 승리 가능성이 가장 높아지는지 지금 민주당 비대위는 필사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의 기사> 민주당은 문자 폭탄 전쟁 중?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는 대선 경선이 끝나자마자 미국행을 암시한 바 있다. 그는 1년 정도 미국에 머무르며 남북 관계와 국제 정치 등을 대해 공부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대선 뒤로 연기됐다. 지방선거까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상임고문의 대선 지원 요청 때문이었다.

이 전 대표는 당의 선대위 수장직까지 맡아가며 총력 지원하는 이례적 행보를 보였다. 이 정도로 도와줬어도 이 고문의 지지자들에게는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요즘 민주당 인사들에게 이 고문 지지자들이 문자 폭탄을 돌리는 중이다. 국민의힘과는 달리 당에서 이 고문을 총력 지원 안 했다는 의심에서다.

실제로 원팀 구성과 당의 전폭적인 지지는 약 한 달 남짓 남았을 때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경선 때의 앙금을 씻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언론들은 ‘친문’ ‘친문’ 사이에 있던 감정의 골이 대선 패배를 계기로 수면 위로 드러나는 중이라고 평가한다.

윤호중 비대위원장에는 ‘친문’ 지지자들이, 이낙연 측 인사들에게는 ‘친이’ 지지자들이 문자 폭탄을 보내며 다투고 있다.

당을 쇄신해야 하는 민주당은 지금 서로 물어뜯기 바쁘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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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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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