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3대 배우 집안 ‘내조의 여왕’ 진송아만 아는 이야기②

금수저? 반지하 <기생충>처럼 살았다

배우 박준규의 아내로 더 잘 알려진 진송아가 자신의 삶의 여정을 담백하게 전합니다. 3대가 배우의 길을 걷는 가운데, 주위의 남자들을 내조해온 진송아의 시선으로 우리네 일상을 되돌아봅니다. <편집자 주>

누구나 단꿈에 빠져 있는 새벽, 문득 그런 질문이 스친다. ‘왜 좋은 기억보다 힘들고 아픈 기억이 강렬할까?’. 이번에는 내 삶에 초라함을 느끼게 해준 하나의 프레임을 들여다볼까 한다.

시아버지가 당대 최고의 스타였기 때문에 당연히 남편은 ‘금수저 오브 금수저’였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뒤 우리 수중에는 3000만원이 전부였다. 시어머니와 아들 둘, 우리 부부가 서울에서 방 세 개짜리 집을 찾기에는 버거운 금액이었다.

겨우 방배동의 반지하 집을 얻었다. 불을 켜놔야 앞을 볼 수 있는 그런 집이었다. 

애초에 욕심이 많지 않았던지라, 그럭저럭 살만은 했다. 장마철, 유난히 천둥 번개가 심했고, 창문을 치는 빗소리가 공포감마저 돌게 한 그날만 빼면 말이다. 자는 둥 마는 둥 뒤척이다 침대에서 일어났는데, 발밑이 축축했다.

처음엔 실수로 물을 쏟은 줄 알았는데, 불을 켜고 나니 입이 떡 벌어졌다. 발목까지 물이 차 있었었다. 거실은 이미 물바다였다. 


남편을 깨웠지만, 남편이라고 별 수 있나. 그저 얼굴만 마주 봤다. 워낙 큰 상황이 닥쳤기 때문일까, 우리는 웃음으로 현실을 자각했다. 마침 시어머니와 큰애가 시누이 집에 간 바람에 우리 둘만 감당하면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리 부부는 바가지로 물을 퍼내고, 걸레질했다. 그날이 남편이 걸레질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날로 기억한다.

힘겨운 하루를 보냈는데, 이상하게 안도감이 느껴졌다. 바닥 끝을 경험한 기분이었다. 이젠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대화가 기억난다. 밤새 전쟁을 치른 이후 하늘은 유난히 청명했던 것 같다.

힘들었던 시기는 짧지 않았다. 둘째를 가졌을 때도 고난은 이어졌다. 정기검진은 건너뛰기 일쑤였다. 배는 불러오는데, 아이를 낳을 준비도 되지 않았다. 큰애와 여섯 살 터울이라 아기 물품이 없었다. 도움받기도 쉽지 않았다.

남편이 여기저기에 손을 벌렸다. 천 기저귀부터 젖병까지 받을 수 있는 건 몽땅 받아냈다. 분윳값을 줄이려고 백일까지 젖을 먹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찌 살았나 싶은 시간이다. 그랬던 우리 둘째가 이제 24살이 됐다니, 흘러간 시간이 거짓말 같이 느껴진다. 

그사이 내 남편은 드라마와 예능을 휩쓰는 스타가 됐다. 연기로도 예능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다. 비단 내 남편뿐이랴, 대한민국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는 나라가 됐고, 노래 한 곡으로 전 세계를 열광시키기도 하며, 현재 넷플릭스 1위를 거머쥐는 창작자들이 많다.


지금 우리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문화강국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 콘텐츠 산업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많은 이의 노력이 뒤에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 없이 지금의 내 남편이 있을 수 없듯이, 수많은 배우와 감독, 제작자 뒤에 묵묵히 이들을 도운 ‘안사람’이 얼마나 많았을까.

작금의 문화강국 이미지는 국민 전체가 만들었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도 아버지를 따라 연기자의 길을 걷는다. 아직 잘 알려진 유명 배우는 아니지만, 각자 위치에서 매일 치열함을 드러낸다. 내 자식들도 남편처럼 오랫동안 힘들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들이 감내해야 할 수많은 순간이 있을 테다. 대부분 배우가 그렇게 성장하듯이 말이다.

늘 선택받아야 하는 불안감 속에서 우리 집 세 남자는 기꺼이 이 길을 가고 있다.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극복하기 위해 하루하루 싸워나가는 이들이 유난히 대견하다. 그들의 꿈이 이뤄질 날을 고대한다. 국민 대다수가 배를 곪았던 약소국에서 전 세계를 주름잡는 문화강국이 된 것처럼. 그 꿈이 이뤄지기까지 나 역시 힘껏 도울 생각이다. 마지막 빛나는 웃음을 위해. 


<intellybeast@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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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