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올해 처음으로 대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린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영 힘을 쓰지 못하는 모양새다. 실적이 6분기 연속 뒷걸음질 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안현호 한국항공우주산업 대표이사 사장의 책임론까지 불거지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1년도 공시대상 기업집단, 즉 대기업집단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자산총액이 5조원을 넘어서면서 전체 기업집단 중 68위로 ‘대기업’ 타이틀을 획득한 것이다.
불안한 지휘봉
대기업 타이틀 획득에도 KAI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전문경영인 안현호 사장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2019년 9월 위기속 구원투수로 KAI에 부임한 안 사장의 임기는 3년으로 2022년 9월까지다.
미래 먹거리 발굴로 KAI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게 안 사장의 취임 일성이었다. 국산 항공기 마케팅 활동 강화와 원가절감을 추진하는 한편, 핵심기술의 연구개발(R&D) 확대 등으로 신사업을 발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의 지속이다. 민수 사업에서의 실적 부진이 전반적 수익성을 저해하고 있다.
KAI는 기동헬기 수리온 납품 지연 등에 따라 3분기 실적이 대폭 줄었다. 영업이익이 2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7.8% 쪼그라들었다. 매출은 13.5% 감소한 4451억원이며, 당기순이익은 43.5% 줄어든 70억원이다. 수주는 1조1423억원을 기록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3분기 수리온 납품 지연이 있었다”며 “다만 KF-21 한국형 전투기, 소형 무장헬기(LAH) 등 체계개발사업은 정상적으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앞서 육군이 운용 중인 수리온 기반의 의무 헬기 메디온은 지난 7월, 경기 포천 육군항공대대 활주로에서 불시착 사고를 냈다. 당시 사고로 한국항공우주산업의 수리온 납품은 한동안 중단됐다.
문제는 2020년 2분기부터 6분기 연속으로 실적이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점이다.
KAI의 수익성 급락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으면서 민항기 부품 사업 부진과 완제기 수출 차질의 지속 때문이다.
지난해 2분기 영업이익 612억원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47.5% 감소했다. 이후 3분기에는 230억원 전년 대비 51.9% 줄었다. 4분기에는 적자전환으로 돌아섰다. 영업손실은 83억원으로 전년동기(영업이익 777억원)와 비교해 내리막길을 걸었다.
뚜껑이 열린 올해 실적 역시 바닥을 찍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올 1분기 영업이익은 8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7.3% 감소했고 2분기 영업이익은 6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 감소했다. KAI의 부진한 실적은 이미 예견됐다.
안 사장은 지난 5월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군수매출이 전체의 약 50%, 민수가 30% 나머지는 군수 수출”이라며 “코로나19로 출장을 가지 못하니 완제기 수출이 거의 제로가 됐다. 민수기 역시 코로나19 여파로 급감했다”고 설명했다.
2020년 2분기 이후 6분기 연속 실적 뒷걸음질
안현호 사장 남은 임기 1년…실적 반등 ‘깜깜’
아무리 코로나19로 방위산업계 환경이 악화됐다고 하나 상당수 기업의 주가가 상승하거나 견조세를 유지하는 것과 달리 KAI 주가가 반등의 계기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안 사장의 리더십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조짐을 보인다.
KAI는 올해 상반기 해킹 사건으로 기밀 유출 논란이 불거졌으며 이메일 피싱 사기로 16억원을 잘못 송금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 태국과 인도네시아에 T-50을 일부 수출 계약을 맺었지만, 이들 국가는 오래전에 이미 T-50을 도입했다. 기존 수출국 외에 새로운 판로를 개척해 수주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안 사장이 임기를 다 채울 수 있을지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책임론이 불거지는 것은 KAI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안 사장이 리더에 걸맞는 행동을 통해 위기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선 KAI의 수익성을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기 위해선 코로나19 완화에 따른 민항기 산업 전반의 정상화가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급격한 실적 개선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뜻이다.
한 전문가는 “KAI가 CEO 비전 발표회를 통해 밝혔듯 국내 완제기와 인공위성 분야에서 메인 사업자임은 분명하다”면서도 “다만 대부분이 장기 성장 전략이어서 단기 실적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출시 예정인 신제품들이 항공전투 및 우주개발에 집중된 특성이 있어 그 자체가 국책사업이라는 점에서 장기 성장 비전이 확고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른 전문가는 “KAI 실적은 3분기 바닥을 치고 4분기부터 날아오를 전망”이라며 “지난 7월 1조1000억원(기제부품 7500억원, 완제기 3500억원) 규모의 수주를 달성했고, 연말께 백두 체계 7000억원 수주를 앞두고 있다”고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놨다.
그는 “실적 바닥 구간에서도 흑자 기조를 유지 중으로 당장의 실적보다 중장기 성장성에 주목하고 있다”며 “향후 우주 관련 매출도 지속 확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KAI는 올해초 ‘5대 신규 미래 사업(항공전자·소프트웨어/시뮬레이터·유무인복합체계·UAM 등)’을 추진해 오는 2030년까지 매출 1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힌 바 있다.
KAI 측은 4분기부터 실적이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KAI 관계자는 “백신 접종과 단계적 일상회복에 따라 민수 기체 부문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완제기 부문에서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추가 해외수주도 기대된다”며 “누리호 발사 이후 우주사업의 지속적 성장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점진적 개선?
이 관계자는 “2025년까지 총 투자액 2조2000억원 중 45%인 1조원은 미래사업 등 미래신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사업에 투입할 방침”이라며 “미래기술 기반 신사업을 추진해 아시아를 대표하는 항공우주업체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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