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전두환이 남긴 의문들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11.29 15:34:03
  • 호수 13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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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욕바가지…예우는 없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전두환씨가 세상을 떠났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전씨는 공보다 과가 너무 컸던 탓에 실패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그는 죽기 전까지 추징금 미납, 반성하지 않는 태도 등 매듭짓지 못한 부분들이 많았다. 

전두환씨가 지난 23일, 향년 90세로 사망했다. 이날 악성 혈액암인 다발성 골수종 확진 판정을 받은 전씨는 오전 8시40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숨졌다. 전씨는 지난달 26일 육사 11기 동기이자 12·12 군사반란을 함께 일으킨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망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미납 추징금 
956억원은?

전씨가 사망하면서 납부하지 않은 추징금 956억원 납부에 의문부호가 붙었다.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전씨에 대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이 최종 선고됐다. 검찰의 추징 과정은 순탄치 않았는데 3년마다 일부 재산을 압류하며 시효 만기를 연장하는 데 그쳤다. 

2003년 미납 추징금 추징 시효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오자 전씨는 추징금 314억원만 납부했다. 이후 검찰은 해당 연도 재산 명시를 신청해 법원이 받아들였다. 전씨는 당시 29만1000원의 예금과 채권 등을 재산목록으로 제출했다. 

전씨는 회고록에서 “법원은 나에게 재산목록을 제출하도록 통보해왔다. 내가 사는 사저 별채를 비롯해 값이 나갈만한 유체동산 등 일체의 재산목록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목록에는 1997년도에 추징이 집행된 금융 자산 휴면계좌에서 발생한 이자 29만1680원도 포함돼있었다. 일부 언론은 마치 내가 ‘전 재산이 29만원뿐’이라고 기재한 것처럼 왜곡 보도해 국민의 오해를 샀고 법원 명령에 따라 제출한 재산목록에 기재된 자산은 그해(2003년) 10월 경매에 붙여 18억168만원이 추징됐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지난해까지 추징금 중 총 1235억원을 환수했다. 올해 7월에 전씨의 장남 전재국씨가 운영한 시공사에서 3억5000만원을, 8월에 임야 공매 낙찰 방식으로 10억원 상당을 추징하는 등 14억원을 환수했다.

추징금 시효는 10년이지만 이 기간에 단 1원이라도 납부하면 10년씩 시효가 연장된다. 반면 추징 실적이 없으면 시효는 자동 소멸한다. 이 때문에 보통 소멸 시점이 다가오면 검찰에서 재산압류 등 조처를 취해왔다.

전씨 추징금은 미납 상태로 남을 될 가능성이 커졌다. 추징금은 유가족에게 법적으로 상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써 납부 대상자인 전씨 사망으로 미납 추징금 징수는 사실상 어려워진 상태다.

검찰은 제3자 명의의 재산에 대해 추징금 추가 집행이 가능한지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검찰은 서울중앙지검에 2013년 7월 특별환수팀을 구성하고 미납 추징금을 집행해왔다. 

공보다 과 ‘실패한 대통령’ 
12·12 쿠데타 등 권력 장악

전씨는 2017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자신에게 부과된 추징금에 대해 “이미 사용한 정치자금까지 물어내라고 한다” “죽어도 완납은 불가능한 금액”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전씨의 미납 추징을 환수할 수 있는 ‘전두환 추징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굉장히 교묘하고 복잡한 방법을 동원해 재산을 은닉했을 거라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추징금 몰수를 위해 국회서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특례법’ 등 여러 관련 법안을 제정했다”며 “(전씨의 경우)현실적인 어려움과 법리적인 어려움, 두 가지가 동시에 작용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 의원은 복잡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재산을 은닉해 수사기관의 레이다망에서 벗어나 있을 가능성이 있고, 이번 별채에서 불거진 ‘소유권 주장’ 등은 현실적인 어려움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추징금 집행 방법에 대해 박 의원은 “살아 있을 때 넘겨준 재산의 경우 받은 사람이 범죄로 획득된 재산이라는 걸 알았다면 몰수할 수 있다”며 “형사소송법에 보면 이미 몰수나 추징에 대한 형이 확정된 경우, 사망해서 상속된 재산에 대해서도 추징 같은 것을 할 수 있게 돼있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발표한 고액 체납자 명단에 따르면 전씨가 체납한 지방세는 10억원 가까이 된다. 서울시는 전씨가 사망함에 따라 과거 전씨 자택에서 압류한 물품을 조만간 공매 처분할 예정이다. 하지만 향후 5년 내 전씨의 다른 재산을 찾지 못할 경우 시는 체납 세금은 더 환수할 수 없게 된다.

전씨가 고액 체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은 두 아들 재국, 재만씨 소유의 재산을 공매처분하는 과정에서 5억3699만원의 지방소득세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미납에 따른 가산금이 붙어 9억7400만원에 이른다. 지방세 등 세금은 당사자가 사망하더라도 유족에게 상속된다.

그러나 유족이 상속을 포기할 경우 세금 납부 의무를 지지 않을 수 있다.

5·18 운동 진실
이대로 묻히나

전씨는 한국 현대사의 ‘문제적 인물’로 조명된다.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결성하고 1979년 12·12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다. 이후 광주 5·18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유혈 진압했다. 집권한 뒤 전씨는 철권통치로 민주화를 막기도 했다.

특히 5·18민주화운동은 1950년 6·25전쟁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펴낸 회고록에서 전씨는 “5·18 사태는 ‘폭동’이란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고 밝혔고 12·12 군사반란에 대해선 “우발적 사건”이라고 주장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전씨 측 인사인 민정기 전 비서관은 5·18민주화운동 피해자에게 사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5공화국 당시 대통령이던 전씨의 공보담당 비서관을 지낸 민 전 비서관은 최근까지 전씨를 보필한 최측근이다. 

5·18민주화운동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민 전 비서관은 “그 당시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몇 날 며칠 어디서 어떤 부대를 어떻게 지휘했고, 누구한테 어떻게 발포 명령했다는 것을 적시해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물어 거기에 대해서 사죄하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 그리고 광주 피해자들이든 유족에 대해서 사죄할… 그런 뜻이 없느냐 하는 것은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전 대통령이 오늘 11월23일이 33년 전 백담사 가던 날인데, 그날 여기서도 성명을 발표하고 피해자들한테 여러 가지 미안하다는 뜻을 밝히셨다. 광주 청문회 때도 말하셨고 여러 차례 그런 말을 하셨다”고 강조했다. 


당시 백담사행을 앞둔 전씨가 밝힌 담화문을 살펴보면 ‘5·18민주화운동’을 ‘광주 사태’로 지칭했다. 결과에 책임을 느끼고 상처를 치유하지 못해 후회한다면서 유족을 위해 뭐든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날 담화에서 전씨는 사과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하지 않았다. 그는 담화문을 통해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는 상처는 아물기 전에 건드리면 다시 커져 치유가 어려워진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 문제가 남긴 상처를 근원적으로 치유·해결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은 반성과 자책을 느끼고 있다”고만 했다. 

광주 피해자의 아픔과 한이 풀어질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겠다고 말한 그는 5·18 진상규명과 관련해 성실하게 답변한 적이 없다. 법정 앞에서 발포 책임을 묻는 기자들에게 사과는커녕 호통을 치기도 했다.

사과 없이
떠나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씨는 2003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라고 발언했다. 2017년에 출간한 회고록에서는 “내가 광주에 내려갔다면 작전지휘를 받아야 했을 현지 지휘관만큼은 나를 만나거나 봤어야 했는데 그런 증언을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2019년 11월7일 강원도 홍천의 한 골프장에서 정의당 임한솔 부대표가 5·18에 대한 책임에 대해 묻자 “광주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 있어? 광주 학살에 대해 나는 모른다”고도 답변하기도 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이 사과 없이 세상을 떠난 전씨를 비판하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지난 24일, 5·18민주화운동 피해자 70여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관련 기자회견에서 “너무나 많은 인권침해에 대해 일말의 책임·사과·반성 없이 사망한 것에 유감”이라고 말했다.

민변이 낸 성명서에는 “영원히 닫힌 그의 입을 통해 진실을 알기 어렵게 됐다. 반성하지 않는 입에서 진실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지만, 그의 죽음으로 이제는 그런 기대마저 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인권 유린 사건은 형제복지원 사건이다.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불법감금, 강제노역, 구타, 암매장 등이 발생했다. 1987년 형제복지원을 탈출한 사람들에 의해 그 만행이 세상에 알려졌지만 가해자인 박인근 형제복지원 이사장은 업무상 횡령 혐의 등만 인정돼 징역 2년6개월만 선고받았다. 

박 원장은 전두환정권으로부터 ‘부랑아 퇴치 공로’를 인정받아 1981년과 1984년 각각 국민포장과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은 “교사범이 아무런 반성이나 사과 없이 죽었다. 피해자들의 울분은 누구에게 풀어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향직 형제복지원 서울·경기 피해자협의회 대표는 이날 “형제복지원 사건에서 주범인 박인근은 하나마나한 미약한 심판을 받은 후 사과 없이 죽어버렸다. 전두환과 박정희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복지원서 불법 감금·강제 노역
“이순자라도 나서서 사과해라”

이 대표는 입장문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은 1987년 민주화운동의 시발점이 됐던 박종철 열사 사망 사건에 묻히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며 “희대의 악인 전두환 사망과 관련해 5·18 사건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언론들에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서운한 마음을 감추기가 어렵다”고 했다. 

전씨가 사망하자 전씨 배우자인 이순자씨라도 나서서 사죄하라는 의견도 나왔다. 지난달 28일 이씨는 장남 전재국씨가 경호원 3명을 대동한 채 노태우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았다. 

이날 임재길 전 청와대 수석에 따르면 이씨가 “(남편)건강이 좋지 않아 함께 오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임 전 수석은 “(영부인이었던 두 분이)서로 오랫동안 같이 여러 일을 했기 때문에 옛날이야기를 하고 건강 이야기도 나눴다”고 설명했다.

조문을 마치고 나온 이씨는 ‘유가족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느냐’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사과할 생각은 없느냐’고 묻는 취재진 질문에 답을 거부하고 장례식장을 떠났다.

전씨가 사망했음에도 경찰청이 전씨와 이씨에게 제공한 경찰 경호팀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경호 대장(경정) 1명을 포함해 경호팀은 총 5명으로 구성된다. 경호 대상 수와 관계없이 주야간 등 근무교대에 필요한 최소 인원으로 앞서 5명 기준 매년 약 2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호 대상 인원이 줄었지만, 당직 인원 등을 고려할 때 5명이 경호 운영을 위한 최소 인원”이라고 설명했다. 전씨 경호팀은 경정인 경호 대장을 비롯해 경위 이하 경찰관 4명으로 구성됐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권한을 박탈하지만 ‘경호·경비 제공’만은 예외다.

경찰은 의무경찰이 폐지돼 국회에서 전직 대통령 경비 인력을 줄여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되자 지난 2019년 12월 전두환·노태우씨를 포함한 전직 대통령 자택을 경비하는 의경 부대를 모두 철수했다. 그러나 경호는 줄곧 유지해왔다.

자녀들이 
대신하나

2017년까지 밀접경호 인력 10명과 의무경찰 1개 중대(80명)가 전씨와 이씨가 거주한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의 경호 및 경비를 맡았다. 이후 2018년 1월 밀접 경호 인력이 5명으로 줄었고, 2019년에는 의경 인력이 60명으로 줄어든 데 이어 의경제 폐지에 따라 그해 말 경호 인력에서 완전히 빠졌다.


<9d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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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