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합류 여부는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입지를 좁아지게 만든 계기가 됐다. 돌풍을 일으킨 이 대표에게 위기가 찾아온 순간이다. 초반의 존재감은 예전만 못하다. 선대위 구성에서도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의 ‘판정승’이라는 평가가 내려진 탓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의 선대위 출범은 구성 초기부터 내홍을 겪어왔다. 진통의 원인은 같은 당 이준석 대표와 윤 후보의 갈등도 한몫 차지한다. 더 이상 원팀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인식된다. 이 대표는 초기부터 윤 후보에게 김 전 위원장의 합류를 받아들이라며 강하게 압박한 바 있다.
왕따?
이 대표와 윤 후보 사이의 갈등은 사무총장 임명을 두고서도 깊어졌다. 윤 후보 측에서 한기호 의원이 사무총장직에서 사퇴하길 압박했다고 전해진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들은 바가 없다”며 강하게 선을 그었다. 한 사무총장은 이 대표가 당 대표에 취임하면서 임명된 인사 중 한 명이다. 공천권을 가진 사무총장은 ‘곳간지기’라고 불리며 막대한 선거자금도 관리하는 만큼 선대위의 실세로 불리는 직책 중 하나다.
이 대표는 침묵으로 맞서며 불쾌한 심정을 대놓고 드러내기도 했는데 이는 향후 선대위 구성에서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읽힌다.
하지만 최근 이 대표에 대한 당심이 다소 악화된 상태로 국민의힘 홈페이지에는 이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글이 빗발치기도 했다. 선대위를 둘러싼 주도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일부 윤 후보의 지지자들이 목소리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지지자들의 항의는 이 대표가 윤 후보 선대위 구성에 있어 개입을 멈춰달라는 요구가 대부분이다. 윤 후보가 대선후보로서 당무우선권을 가지는데, 이 대표가 지나친 개입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정치권에서는 당무 우선권을 둘러싼 갈등에서부터 이 대표의 흔들린 입지가 보인다는 분석이 나왔다. 당무 우선권을 쥔 윤 후보는 인선 발표에 속도를 냈다.
윤 후보 측은 지난 21일 김 전 위원장을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영입했고,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와 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전 대표의 합류를 예고했다. 이른바 삼김(三金) 체제가 완성된 것.
김종인 합류해도 안 해도 문제
윤석열에게 이미 뺏긴 주도권
이 과정에서도 논란이 발생했다. 윤 후보가 선대위 인선 관련 상의가 끝난 뒤, 이 대표에게 사후에 알린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표 패싱 논란’까지 불거졌다. 윤 후보가 이른 인선 발표와 사후 보고한 이유는 선대위 구성 과정에서 이 대표보다 우위를 점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심지어 지난 22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 차담회 도중 이 대표와 윤 후보 간 선대위 이견 조율 과정에서 격앙된 상황까지 발생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선대위 구성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게다가 김 전 위원장이 급작스레 “합류하겠다고 한 적 없다”고 부인하면서 총괄선대위원장 자리는 공석으로 남은 채 선대위는 반쪽짜리로 출범하게 됐다.
앞서 윤 후보 측이 김 전 위원장에게 선대위 합류 여부에 대해 최후통첩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해당 보도에 대해 김 전 위원장은 “주접을 떨어놨던데 뉴스를 보고 잘됐다”며 대놓고 불만을 드러낸 이상 선대위 합류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 모양새다.
상황이 이쯤되자 윤 후보가 선대위 구성에서 이 대표보다 우위를 차지하게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김 교수와 김 전 대표 사이에서 이 대표의 존재감이 애매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우위를 점한 윤 후보는 이 대표에게 당연직인 상임선대위원장직을 맡으면서 2030세대의 표심을 확보하는 역할도 요구했다. 앞선 상황에서 윤 후보가 같은 당 홍준표 의원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끝내 합류를 거부하면서 약점이 극대화됐다.
윤 후보가 2030세대의 극렬한 지지를 받았던 홍 의원 대신 젊은 피인 이 대표를 수혈해 MZ세대의 표심을 잡는 것은 물론, 젊은 피인 이 대표를 통해 본인의 약점을 극복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 대표는 이 같은 윤 후보 측의 요구에 대해 단칼에 거부했다. 대신 윤 후보에게 홍보미디어본부장직을 겸임하겠다고 제안하면서 위기 극복을 시도하는 모양새다.
나설 수도 안 나설 수도…
입지 좁아져 타개책 시급
과거 이 대표는 오세훈 서울시장 캠프에서 뉴미디어본부장을 맡아 선거 승리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 대표가 두 개의 직을 겸하는 이유는 자신의 역할을 청년층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대선 전반을 관리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자신의 입지가 좁아진 것을 의식한 듯 최근 이 대표의 메시지에서 ‘김종인 지우기’를 시도 중이다. 여전히 이 대표와 윤 후보 사이에 갈등이 잔존하지만, 이 대표는 선대위가 윤 후보 중심으로 구성돼야 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김 교수가 총괄선대위원장을 맡는 ‘플랜B’까지 언급하기도 했다. 김 전 위원장의 합류를 받아들이라고 지속적으로 압박해왔던 것과는 입장이 뒤바뀐 셈이다.
입장을 선회한 이유는 결국 당 대표로서의 좁아진 입지를 극복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윤 후보와 김 전 위원장의 갈등이 격화된 상황에서 당 대표인 이 대표의 책임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권에서는 대선 결과에 따라 이 대표의 내년 정치행보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선 후 이 대표의 굵직한 행보 중 하나는 총선 출마도 포함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입지가 좁아진 후로 선거에 나설 경우 당락을 보장할 수 없다. 지금까지의 돌풍이 역풍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셈이다. 이런 연유로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좁아진 입지를 극복하기 위해 뚜렷한 타개책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존재감
현재 상황에선 자신이 직접 윤 후보에게 제시한 홍보 미디어본부장직을 통해 본인의 존재감을 다시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다. 한 정치 전문가는 “홍보 미디어본부장직을 겸임하겠다고 밝힌 점은 입지를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해당 직책을 통해 대선 승리를 이끌어낸다면 이 대표의 입지는 더욱 넓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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