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인터뷰> 조은지 감독 “웃겨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답니다”

“감정만큼은 편견 없이 봐야 하지 않나요?”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배우 조은지는 영화계에서 꽤 인정받는 배우였다. 독특한 감성을 갖고, 그만의 해석이 분명했다. 교묘한 감정을 캐치해서 뻔한 듯 뻔하지 않게 표현하는 배우로 평가된다. 그런 그가 메가폰을 잡았다. 이성적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사람들의 진심만큼은, 그래도 인정하는 게 좋지 않냐는 질문을 조심스럽게 던진다. 영화 <장르만 로맨스>를 통해서다. 기성 감독들보다도 뛰어난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중에 꼭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마저 남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감독이 나타났다.

대중적으로 매우 인지도가 높은 배우는 아니었지만, 업계에선 나름 출중한 실력을 갖췄다고 평가받은 배우 조은지가 갈증을 해소하는 방법은 글이었다. 일기나 에세이를 쓰며 각박한 사회를 살아가면서 얻은 스트레스를 풀어냈다. 

배우서 감독으로

그렇게 이런저런 글을 쓰던 중 이별 과정에서 겪었던 독특한 에피소드를 담은 글을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지인들은 하나 같이 그에게 말했다. ‘이건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겠어.’

연기를 업으로 살았던 사람이 갑자기 연출에 손을 댄다는 건, 타인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이미지가 있어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따라서 조은지 역시 선뜻 연출을 맡기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글이 좋았다. 그냥 썩혀두기 아깝다는 판단이 들어 연출에 도전했다. 그 작품이 단편영화 <2박3일>이다. 

한 여성이 이별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남자친구 가정의 이혼을 목격하는 기발한 상상이 구현된 작품이다. 남자친구와 이별하기 싫어 집착하고 애걸복걸하는 여성의 심리와 어떻게든 헤어지고 싶은 남자의 마음이 확연히 드러나면서, 상식적이지 않은 한 가정의 이혼을 경험하는 구도가 상당히 흥미롭다.


그런 와중에 연출적인 감각과 재미가 톡톡 튄다. 

<2박3일>은 2017년 제16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다. 배우 출신 감독으로서는 상당히 의미 있는 업적이다. 놀랍게도 <2박3일>은 조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깊이 포함돼있다.

이후 한동안 연기 활동에 전념하던 그에게 연출 제안이 간다. 제목은 <입술은 안돼요>였다. 단편영화를 흥미롭게 본 제작사 대표가 <입술은 안돼요>와 결이 맞는 감독을 찾다 조은지를 발견한 것. 조은지 감독에게는 고맙고 흥미로운 제안이었지만, 일단 브레이크를 건다. 

<장르만 로맨스> 통해 던진 진정성의 의미
 “류승룡 배우 말고는 대체제가 없었어요”

“고마운 제안이었는데, 선뜻 받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제가 각색해보고 그래도 작품과 결이 맞으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했어요. 이미 그 작품은 각본가가 있고, 한 번의 각색을 거친 작품이었거든요. 사실 제작사 대표님도 용기를 낸 제안이죠. 단편 하나 찍은 감독한테 장편을 맡기는 건요. 근데 <2박3일>에서 하나의 주제를 갖고 끝까지 끌고 가는 감정이 좋았다고 하시면서 제안해주셨어요. 현(류승룡 분)과 유진(무진성 분)이 골자로 있었는데, 저는 주위 인물의 폭을 확장했어요. 코미디 요소도 더 많이 했고요. 혜진(류현경 분)도 좀 더 폭을 넓혔죠.”

한 달 동안 각색한 작품은 더 견고해졌다. 조은지 감독은 단순히 코미디 장르의 수준을 넘어 인간이 성장하는 이야기를 독특하게 담으려 했다. 꼭 사회적으로 통념되는 관계가 아니더라도 진심이 있다면 사람들이 공감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출발했다.

그 사이에 제목은 <입술은 안돼요>에서 <장르만 로맨스>로 변경됐다. 


영화에는 불편함이 있는 관계가 그득하다. 한때 문학계의 거장으로 불린 대학교수 현을 중심으로 주위 사람들의 모든 관계가 사회적으로 올바르게 인식되기 어렵다.

현의 전 아내 미애(오나라 분)는 현의 30년 지기 친구 순모(김희원 분)와 연인 관계며, 사춘기가 뒤늦게 온 성경(성유빈 분)은 옆집 유부녀 정원(이유영 분)을 좋아한다. 현을 좋아한다며 집착적으로 따라다니는 제자 유진은 성 소수자다. 두 사람은 불편하고도 특별한 협업을 시작한다. 

이 외에도 슬럼프에 빠진 현과 반대로 부커상 후보에 오른 후배 문애리(최희진 분)가 있고, 현 아내 혜진은 딸과 외국에서 살고 있다.

겉만 보면 누구보다 멋있고 고민거리 하나 없이 살아갈 것 같은 현이지만, 그 안에 렌즈를 대면 누구 하나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이가 없어 외롭기 그지없는 인생이다. 그를 중심으로 불편한 관계를 설명하는데, 그 안에 하나 같이 진심이 녹아있다. 

“불편한 시선이 존재하는 관계가 많은데, 저는 어떤 부분이든 장애물로 생각하지 않아요. 성소수자의 진실한 마음, 전 부인과 친한 친구의 연애, 유부녀에게 고백하는 고등학생 모두요. 우리 모두 보편적인 관계를 맺지만, 그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거잖아요. 교통사고처럼 사고 나듯이 변하죠. 감정은 갑자기 생겨나죠. 그런 감정 자체에 편견을 갖는 게 과연 옳은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현은 자신의 신작 ‘두 남자’의 북 콘서트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려 한다. “우리 모두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것들이 모여”라며 말을 이어간다. 다만 끝까지 이어가지는 못한다. 영화 엔딩이 돼서야 문장이 완성된다. 각기 다른 모양의 사람이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부딪히기도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진심만은 모두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

불편한 관계 가득
재기발랄한 유머

조 감독이 <장르만 로맨스>를 통해 전하고 싶은 주제의식이다. 

“연기할 때도 그렇고 연출할 때도 저는 ‘마음을 다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접근해요. 살면서 진정성을 많이 따지죠. 소통할 때 진정성으로 대하면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대화가 잘 풀리고요. 살다보면 내 모습이 아닌 채로 상대에게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 부대끼기도 하는데, 그걸 이겨내는 게 진정성이 아닌가 싶어요. 내 의도와 생각을 정확히 표현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닌가 하고요. 그런 가치관에서 이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던 건 아닌가 되돌아보게 돼요. 사회적으로 이해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진심이 녹아있다면 그래도 올바르지 않다고 말하는 건 아니지 않냐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이 영화로 그런 말을 하고 싶었어요.”

영화 내에서 가장 까끌까끌한 이미지를 갖고 있던 유진은 영화 말미에 진실한 모습으로 현에 대한 사랑을 증명한다. 어딘가 모르게 불편함을 내비치는 그였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 느낌을 받은 관객이라면, 조 감독의 의도가 제대로 먹힌 셈이다. 

“누군가는 유진을 불편해하겠죠. 그 마음도 받아들입니다. 그럼에도 유진은 정말 진심으로 현을 대하거든요. 그 진심이 관객들에게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영화 내에서 갈등이 있고 어찌됐든 해결해야 하는데, 그게 유진을 위한 응원이길 바라긴 했어요.”

발칙한 관계가 다수 놓여 있고 모든 것이 폭로되는데, 이를 풀어내는 화법은 코미디다. <장르만 로맨스>라는 제목은 로맨스를 주제로 이어가지만, 실제로는 코미디라는 숨은 의미도 담겨있다. 국내 코미디 장르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이병헌 감독의 <스물> <극한직업>과 궤를 같이하는 작품이다. 


대사가 일품이며, 매우 재기발랄한 시추에이션 유머가 녹아있다. 유머 면에서는 탑티어급의 재능을 보여준 감독이다. 여성 감독이 선보인 코미디 영화 중 가장 수준 높은 웃음을 구현한다. 

웃음을 터뜨리다 못해 놀라움으로 이어지는 기발한 발상이 돋보인다. 평소 타인을 웃기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는 사명감이 갈고 닦아진 결과물이다. 

“인간관계가 그리 넓지 않고, 친해지는 과정이 긴 편이라 매우 많은 장소에서 웃기려 하지는 않지만, 막상 친한 사람들 앞에서는 개그 욕심이 엄청나요. 저의 개그로 사람들이 웃는 게 행복해요. 혹자들은 ‘왜 웃기려고 하느냐’고 묻기도 하는데, 그래야 좋아요. 집에 가서 생각하다 보면 ‘왜 그때 그 말을 안 했을까’라며 후회하기도 하고, 크게 웃긴 날은 뿌듯하기도 해요. 한 번 개그를 시작하면 흐름을 끊지 않고 던집니다. 사실 긴 정적에서 불안감을 느끼거든요. 그래서 어떻게든 웃기려고 해요. 안 먹힐 때도 있긴 한데, 도전은 많이 해요. 분위기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요.”

“누군가의 진실한 마음에는 편견 없었으면”
“촬영 내내 강박이 컸어요…기회가 또 있길”

매 순간 웃기고자 했던 노력이 영화 안에 고스란히 담긴 듯하다. 모든 배우가 강력한 웃음을 선사한다. 작품의 화자인 류승룡을 통해 시나리오에 담긴 유머가 스크린 안에서 펑펑 터진다. 류승룡이 아니었다면 <장르만 로맨스>의 고퀄리티 유머는 없었을 테다. 유머 수준이 높은 관객이라면 즐길 것이고, 개그 이해도 낮은 관객에게는 다소 어려운 영화가 될 수 있다.

“<극한직업>이 개봉하기 전에 미리 시나리오를 드렸어요. 생활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으셨어요. <극한직업>이 그렇게 잘 될 줄은 몰랐어요. 제게는 다행이죠. 류승룡 배우 말고는 이 역할을 해줄 분이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영화 촬영 내내 매우 세심한 디테일을 보여주셨고, 메인 주인공이자 어른으로서, 리더십도 발휘해주셨어요. 승룡 선배님 아니었으면, 좋은 작품이 안 나왔을 거예요.”


<장르만 로맨스>는 외연적으로도 큰 역할을 한다. 배우 무진성을 발굴한 것. 어쩌면 이 영화의 실질적 주인공이자, 감독의 페르소나라는 점에서 막중한 임무를 띠는 역할이다. 비교적 경험이 부족한 무진성은 완성형 신예로서 매우 훌륭히 인물을 소화해낸다.

특히 감정의 과잉없이 철저히 절제된 연기가 돋보인다. 조만간 드라마와 영화계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일 배우로 여겨진다. 

“오디션에서 거침없이 연기하는데, 해석이 독특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에게 마음이 가나 싶어 오디션을 한 번 더 봤는데, 연기를 잘하더라구요. 지속적으로 절제된 연기를 주문했죠. 쉽지 않은 역할인데, 정말 연기를 잘해줬어요.”

이 외에도 순모 역의 김희원, 미애 역의 오나라, 혜진 역의 류현경, 성경 역의 성유빈, 정원 역의 이유영 등 출연하는 모든 배우가 매우 훌륭한 연기를 펼친다. 생활연기가 일품이다. 마치 연극을 보듯 물샐틈없는 짜임새가 엿보이는 것은 물론, 뛰어난 합이 절로 느껴진다. 뛰어난 연기자들의 협업이 시너지를 냈을 때 어떤 즐거움이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제가 복이 많아서 좋은 배우들과 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동선을 많이 신경 썼어요. 공간에서 각자 행동하는 패턴이 다를 거라고 생각해서요. 그런 모습이 마치 연극처럼 느껴지게 한 건 아닌가 싶어요. 늘 감사하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배우들은 하나같이 조 감독이 뛰어난 디렉션을 보여줬다고 한다. 배우의 마음을 읽고 자신을 존중하면서 디렉팅을 했다고 밝힌다. 그 표현에는 웃음이 가득 담겨있는데 이는 좋은 감독을 향한 애정으로 비춰진다. 

출연배우들 호평

“저는 배우들이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 나름대로 감정선을 명확하게 잡아놓고 있어서, 디렉팅을 너무 분명하게 한 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배우들의 자유를 구속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이제 와서는 좀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 사실 첫 장편이라 스스로 옭아맨 게 많았던 것 같아요. 스케줄 안에 주어진 숙제를 모두 풀어야 한다는 강박이 컸죠. 옆에서 여유를 줘도 스스로 힘들게 만들었어요. 사실 이 영화를 통해서 많이 배웠어요. 다시 연출의 기회가 생긴다면,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고 더 소통하면서 교류할 것 같아요.”


<intellybeast@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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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