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철근가공업협동조합 신주열 이사장

‘사람이 없다’ 대한민국 철근, 그 현실을 직시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철근가공업계의 전체 매출 규모는 건설업 전반으로 봤을 때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철근가공업계에 바람이 불면 건설업계는 휘청인다’는 말이 나올 만큼 그 중요성은 다른 업계를 압도한다. 최근 철근가공업계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일요시사>가 신주열 철근가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만나 현황을 들어봤다. 

과거에는 근로자들이 현장에서 직접 철근을 가공했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건축구조물이 높아지고 대형화되면서 공장 가공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당시 2~3개뿐이던 철근가공업체는 제강사가 철근가공업계에 뛰어들기 시작한 2010년대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나 현재는 200여개에 이르렀다. 

이리 치이고 

국내 철근가공업계 시장 규모는 연간 1200만톤가량으로, 이 중 600만~700만톤이 공장에서 가공된다. 매출 규모는 올해 7월 철근가공업협동조합에서 발표한 표준 가공단가 6만3000원(1톤당) 기준으로 4000억원 정도다. 철근가공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근로자 수는 4000여명에 달한다.

2003년 이후 17~18년 만에 하나의 업종으로 정착해 성장한 것이다.

최근 철근가공업계는 최대 위기 상황을 맞았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50인 미만 사업체로 확대 시행되면서 업계 전반이 흔들릴 만큼 타격을 입고 있기 때문.


300인 이상 사업장,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에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는 1년의 계도기간이 있었지만, 50인 미만 업체는 계도기간 없이 전격 시행되면서 철근가공업계 역시 큰 충격을 받았다. 

지난 19일 서울 송파구 금문철강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신주열 철근가공업협동조합(이하 가공조합) 이사장은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철근가공업계 전반에 미친 충격파에 대해 “생각하기 싫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그는 지난해 3월 가공조합 이사장으로 취임, 1년6개월 동안 코로나19·주 52시간 근무제 및 단가 현실화 등 철근가공업계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주 52시간 도입으로 인력난
저가 입찰 경쟁으로 운영난

“철근가공업계는 전체 비용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70%에 이르는 대표적인 노동집약산업입니다. 근로자가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셈입니다. 하지만 주 52시간 근무제, 코로나19의 창궐 등으로 인력 부족, 인력 유출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철근가공업계는 말 그대로 무너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철근가공업계 종사자의 90%는 외국인 노동자다. 철근가공은 도심에서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지 확보가 용이한 지방에 공장을 짓는 경우가 많다. 철근가공업체들은 근로자들의 출퇴근 문제 해결을 위해 기숙사를 짓거나 사택을 마련한다. 이들은 공동생활을 하며 주 68시간 이상 근무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창궐해 외국인 근로자의 국내 입국이 제한되면서 철근가공업계는 인력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여기에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근로시간이 줄어들자, 동시에 임금도 줄어든 외국인 근로자들이 다른 업계로 수평 이동하는 현상까지 일어났다.

근로자가 가장 중요한 업계에서 근로자가 빠져 나가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철근가공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노동강도는 굉장히 높습니다. 이른바 ‘쥐어짜기’식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납품기한을 맞출 수 있고 회사 운영이 가능합니다. 그 정도로 영세하고 열악하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내년입니다. 아직은 정부 단속 조치가 느슨한 수준이지만 내년 1월부터는 정말 칼바람이 불 수 있습니다.”

결국 답은 철근 가공단가의 현실화다. 철근가공업체들은 건설사와 제강사에서 발주받고 철근을 가공해 납품한다. 대부분 철근가공업체는 입찰을 통해 물량을 수주하는데, 이 과정에서 가격경쟁이 일어난다. 최저가 입찰로 진행되기 때문에 단가를 맞추기 위해 철근가공업체들이 출혈 경쟁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입찰 과정에서 표준 가공 단가로 정한 5만2000원(올해 7월 이전 기준)보다도 낮은 가격을 써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건설사와 유통사는 4만원 중반 대에도 물량 공급이 가능한 업체와 계약하면서 업계 전반의 표준 가공 단가가 흐지부지되는 일이 반복됐다.

200여개 업체가 4000억원 규모의 물량을 두고 피 터지는 경쟁을 벌이는 사이 업계의 존재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가공조합은 결국 지난 7월 표준 가공 단가를 1만1000원 인상했다.

“올해 철근가공 시장이 어려웠습니다. 최저시급이 오른 부분에 대해서도 3년간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철근가공업계 전반이 정말 무너질 것 같은 예상이 들어 가공조합에서 지난 7월1일부터 표준 가공 단가를 6만3000원으로 정해 발표했습니다. 이 표준 가공 단가를 정착시키는 게 가공조합의 1차 목표입니다.” 

외형은 컸지만 내실 걸음마 수준
건설사·제강사 선제적 대응 필요

가공조합은 ▲3년간 최저시급 인상분 ▲인력난으로 인한 추가 비용분 ▲복잡가공 증가에 따른 원가 상승분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따른 리스크 비용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가공 환경 변화를 표준 가공 단가 책정에 반영했다고 밝혔다.

이제 공은 건설사와 제강사로 넘어간 상태다. 결국 발주처에서 표준 가공 단가에 맞춰 물량을 발주해야 현실화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표준 가공 단가를 발표했지만 이게 반영되는 것은 빨라야 올해 말, 내년 초입니다. 현재 돌아가고 있는 현장은 이미 작년에 계약이 이뤄졌기 때문에 당시 단가로 진행됐습니다. 일부 건설사와 제강사에서 단가를 올려주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작년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행히 일부 제강사에서 내년부터 기존 계약분의 소급 적용과 매년 인상 요인을 반영한 합리적 연간 가공 단가를 적용하겠다는 고무적인 소식도 들리고 있다. 

신 이사장은 철근가공 단가가 현실화되지 않으면 철근가공업계 전반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 건설현장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입찰 과정에서 저가 경쟁이 일어나면서 낮은 가격으로 계약하고,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으로 임금 수준이 맞지 않는 외국인 근로자가 떠나면서 결론적으로 업체가 파산에 이를 수도 있다는 걱정이다. 

건설 현장에서 철근가공 물량의 중요성은 상당한 수준이다. 물량 수급이 늦어지면 현장 전체가 올 스톱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실제 올해 철근 품귀현상이 일어나면서 몇몇 건설 현장에서 공사비 증가, 공사 지연 등의 악영향이 발생했다. 납품 기한의 증가는 비용과 직결되기 때문에 건설사와 제강사 모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철근가공업계는 외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한 것과는 별개로 내실에 있어서는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가공조합은 표준 가공 단가 현실화 정착, 표준하도급계약서 개정, 일정 요건의 허가제 도입 등을 통해 철근가공업계의 맷집을 키워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정부 정책이나 가격 변동에 있어 휘둘리지 않을 정도의 힘을 기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저리 치이고

“건설사와 제강사에서 철근가공업계가 당면해있는 애로사항을 선제적으로 대응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철근가공업계가 매출 규모는 작지만 건설업계 전반에 끼치는 영향이 큰 만큼 상생과 공존을 통해 함께 성장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희 가공조합도 철근가공업계가 하나의 산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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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