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큰 그림 접은 최재형의 새 도전과 남은 과제

“당연한 것이 당연한 나라 꿈꿨는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정치 도전이 ‘일단 멈춤’ 상태로 접어들었다. 문재인정부의 고위 관료에서 야당 대선 예비후보라는 드라마틱한 변신에도 국민의 선택은 그를 비껴갔다. ‘준비되지 않은 후보’라는 꼬리표를 끝내 떼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요시사>가 최 전 원장의 3개월을 되돌아봤다. 

지난 8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후보 2차 예비경선(컷오프)에서 윤석열,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등 4명의 후보가 통과했다. 최재형, 황교안, 하태경, 안상수 후보는 탈락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원희룡 전 제주지사,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4위 자리를 놓고 경쟁했지만 컷오프 문턱을 넘지 못했다.

4위 노렸지만
문턱서 고배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선거 때 두드러진다. 특히 대선 때는 후보의 자질과 비전에 대한 검증이 국민의 주요 관심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 17대 대선에서는 ‘경제’가, 바로 지난 대선에서는 ‘도덕성’이 대선판을 관통한 키워드였다.

변화무쌍한 국민의 선택 기준은 그동안 정치와는 인연이 없던 인물을 대선주자로 만들었다. 최 전 원장의 대선 출마도 같은 맥락이다. 문재인정부의 실정을 심판하고 정권교체를 이뤄야 한다는 국민의 열망이 최 전 원장을 정치권으로 불러들였다. 

최 전 원장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평생 걷지 않은 길, 왜 두렵지 않았겠나. 그러나 정권교체에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평생 역사의 죄인이 될 것 같았다”고 대선 출마 배경에 대해 말했다. 문재인정부의 초대 감사원장을 지낸 그로서는 정치 입문이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7월15일 최 전 원장은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했다. 6월26일 감사원장직 사퇴 후 17일 만이었다. 이날 그는 “온 국민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명제인 정권교체를 이루는 중심은 역시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돼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입당 배경을 밝혔다. 

윤석열 대항마로 주목
초반 지지율 못 지켜

그러면서 “정권교체 이후에 우리 국민의 삶이 이전보다는 더 나아지는 게 중요하다”며 “미래가 보이지 않는 청년들이 이제는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 나라를 만드는 데 앞으로 제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문재인정부는 나라의 근본인 법치를 붕괴시켰고, 헌법정신인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흔들었다. 이념에 치우친 실험적인 경제정책을 거듭해 벼락거지란 말이 나올 정도로 부동산 정책에 실패했다”며 “비합리적인 방역대책으로 수많은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 서민들의 삶을 힘들게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너져 가는 대한민국을 일으켜야 할 책무가 제게 있다고 생각하고 정치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법관, 감사원장 등 평생 공직자로 살아온 최 전 원장이 ‘정치’라는 가보지 않은 길을 걷기로 한 순간이었다.

최 전 원장은 ‘변화와 공존’이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이제 공존을 바탕으로 번영으로 나가야 한다”며 “오늘의 대한민국은 경제와 이념적 측면에서 양극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세대 간, 계층 간의 갈등도 많이 심화되면서 국민 통합이 필수 불가결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문정부 관료서
야당 대선후보


그러면서 “이러한 혼돈의 시대에 ‘공존’과 ‘번영’은 가장 중요한 시대적 과제가 됐다.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기반을 닦고 함께 선진화의 길, 번영의 길로 나가야 한다”며 “갈등 통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야만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전 원장은 1956년 경남 진해 출신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1986년 사법고시(23회)에 합격한 후 같은 해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로 법조 생활을 시작했다. 대전지방법원장, 서울가정법원장,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등을 지냈다. 

최 전 원장의 공직 생활은 문재인정부 초대 감사원장으로 지명되면서 큰 변곡점을 맞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2월 감사원장 후보자로 최 전 원장(당시 사법연수원장)을 지명했다.

당시 청와대는 “최 후보자는 판사 임용 후 30여년간 민‧형사, 헌법 등 다양한 영역에서 법관으로서의 소신에 따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익 보호,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노력해 온 법조인”이라고 발탁 배경을 밝혔다. 

이어 “감사원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수호하면서 헌법상 부여된 회계 감사와 직무 감찰을 엄정히 수행해 감사 운영의 독립성·투명성·공정성을 강화하고 공공 부문 내의 불합리한 부분을 걷어내 깨끗하고 바른 공직사회와 신뢰받는 정부를 실현해나갈 적임자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걸출한 정치인 사이서
유의미한 선전 펼쳤다

그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9년 ‘월성 1호기 원자력발전소 조기 폐쇄 결정’ 타당성 감사와 감사위원 제청 등을 두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다. 당시 그는 김오수 검찰총장(당시 법무부 차관)을 감사위원으로 제청하라는 청와대 요구를 연이어 거부하면서 문재인정부와 대척점에 섰다. 

이 과정에서 두 아들을 입양한 가족사와 고등학교 때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친구(강명훈 변호사)를 매일 업어 등하교시킨 일화 등의 미담이 알려지면서 ‘미담제조기’라는 별명이 생겼다. 최 전 원장은 부인 이소연씨와의 사이에서 두 딸을 낳은 뒤 2000년과 2006년 각각 작은 아들과 큰아들을 입양했다. 

최 전 원장은 정치 입문 초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항마’로 불렸다.

그는 “윤석열 후보는 작년부터 문재인정부의 탄압에 외롭게 맞서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개인적 문제를 넘어 조국으로 상징되는 위선과 ‘내로남불’을 밝혀낸 수사를 한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다만 적폐 청산 수사를 주도하면서 많은 분에게 상처를 입힌 것도 사실이다. 무리한 검찰권 행사로 여권의 검찰 개혁 드라이브에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있다”고 평가했다. 

최 전 원장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컸다. 실제 최 전 원장의 지지율은 상승곡선을 그렸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다. 그는 “정신없이 달려온 3개월이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조금씩 정치 현장에 적응해가고 있다. 후회스런 일들도 있고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제대로 된 정치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문재인정부 고위 공직자
야당 대선후보로 탈바꿈


경선 기간 동안 최 전 원장이 보여준 정치 행보는 독특한 구석이 있다.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강조하고, 불필요한 논란에 말 얹기를 자제했다. 한 번이라도 더 국민에게 눈도장을 찍어야 하는 대선 예비후보로선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경선 도중 후보의 전초기지나 다름없는 캠프를 해체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달 14일 최 전 원장은 “오늘부터 최재형 캠프를 해체한다”며 “대선 레이스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선 레이스에서 성공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으로, 새로운 길을 가려고 한다”고 선언했다. 

이어 “주변에 있던 기성 정치인들에게 많이 의존하게 됐다”며 “그런 과정에서 저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기대는 점점 식어갔고,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그 모든 원인은 후보인 저 자신에게 있고, 다른 사람을 탓해서 될 일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제 큰 결단을 해야 할 시기가 됐다. 이대로 사라져버리느냐, 아니면 또 한 번 새로운 출발을 하느냐는 기로에 섰다”며 “지금까지 가보지 않은 방법으로 정치의 길을 가려고 한다. 이 시간부터 최재형 캠프를 해체한다. 홀로 서겠다”고 강조했다.

도덕성 우위
스킨십 약점

최 전 원장의 깜짝 행보는 기성 정치와 차별화를 두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여기에 깨끗하고 진솔하면서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는 후보라는 점을 부각해 다른 후보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다른 후보들에 대한 의혹이 대대적으로 불거지고 ‘도덕성’이 화두로 떠오르자 그 부분을 공략하기로 한 것이다. 실제 ‘미담제조기’ ‘선비’ 등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가 최 전 원장의 행보를 설명하는 키워드가 됐다.

그는 “나는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을 후보다. 또 깨끗하고 진솔하며 과거에 대한 빚이 없는 유일한 후보라고 생각한다”며 “도덕성만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도덕성이 없는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격에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 전 원장의 승부수가 지지율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최 전 원장의 지지율은 정치 입문 초기 정점을 찍고 서서히 하향곡선을 그리다 2차 컷오프를 앞두고서는 정체기를 보였다. 윤 전 총장, 홍준표 의원, 유승민 전 의원에 이어 4위 자리를 두고 다른 후보들과 피 말리는 싸움을 한 것도 정치 입문 초기였다면 예상하지 못할 모습이었다.

‘도덕성’이라는 국민이 정치인에 요구하는 만고불변의 덕목을 충족시키는 대신 스킨십 부분에서 약점을 보인 것이다. 실제 선거운동 과정에서 친근감 부족, 전투력 부족 등의 비판이 제기됐다. 그리고 그 약점이 이번 2차 컷오프에서 최 전 원장의 발목을 잡았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친근감·전투력 부족 지적
“다시 진가 드러날 것” 자신

최 전 원장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인해 국민과의 대면 접촉이 어려운 점이 아쉽다. 저는 국민과 만나서 환담하는 자체가 즐겁고, 그분들의 애환을 들으면서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을 어떻게 그려 드려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제가 마음은 정말 따뜻한 사람이다. 국민 목소리를 너무 경청만 하다 보니 친근감 부족 얘기가 나온 듯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전투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전투력은 평소에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정말 싸워야 할 때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정말 싸워야 할 때 싸웠다. 전투는 성과가 있어야 한다.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문재인정부와 싸워서 성과를 낸 후보 이 중에 누가 있는가”라고 강조했다.

최 전 원장은 강성노조의 횡포에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택배 대리점주의 비극, 자신이 살던 원룸까지 처분하면서 직원들을 살리려 했지만 절망한 마포 맥주집 사장 등을 보면서 대한민국을 살려야겠다는 신념이 더욱 강해졌다고 했다.

고통 받고 있는 국민들의 모습에서 변화에 대한 갈망을 읽은 것이다. 

최 전 원장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꿈꿨다. 불공정과 불의가 득세하는 세상, 집단 우울증에 빠져 있는 사회를 정직하고 공정하게, 배려하고 이해하도록,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변화시키려 했다. 그는 “당연한 것이 다시 당연하게 되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다”며 “그게 내가 꿈꾸는 대한민국”이라고 전한 바 있다.

3개월 경력
앞으로는?

최 전 원장의 대망은 2차 컷오프에서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번 대선 경선으로 최 전 원장은 많은 것을 얻었다는 분석이다. 경선에서 유력 후보들 못지않은 선전을 보여줬고, 2차 컷오프 결과가 나올 때까지 4위 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유의미한 수준의 인지도와 지지세를 확인했다. 최 전 원장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