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잇 노리는' 최음제 변천사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10.14 00:00:00
  • 호수 13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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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줄 놓게 하는 유혹의 한 방울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여성들은 모르는 사람에게 음료수를 받아 먹지 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남성이 마음에 드는 여성을 유혹하기 위해 음료수나 술에 몰래 최음제를 탔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범죄에 악용되는 ‘최음제’에 대해 알아봤다. 

지난달 3일, 고양시 소재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나이트클럽에서 돼지발정제를 탄 술을 마실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등 부적절한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나이트클럽에서 이뤄지는 남녀 간 교제 상황을 설명하면서 ‘돼지발정제’와 ‘마약’을 거론한 것이다.

보내는
‘칵테일’

지난해 7월에는 고등학교 1학년 남녀 학생들을 상대로 수업시간에 나이트클럽에서 이뤄지는 부킹에 대해 설명했다. 또 나이트클럽에서 여성이 조심해야 할 점을 언급하면서 “클럽에서 술에다가 돼지발정제를 타는 애들이 있다”며 “얘(돼지)들이 (발정제를) 맞으면 맞은 순간부터 막 서로 하려고 붙어서 난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에게 효과가 있을까 없을까? 그거 타서 먹고 난 다음에 여자애들이 더 뭐랄까? 정신을 놓게 되는 경우가 있다”며 “그 사람들이 다 데리고 나가서 다시 어떻게 한 번 해보려고. 따라주는 술 아무나 함부로 막 먹으면 안 돼”라고 발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엔 돼지발정제를 성범죄에 악용하는 사례가 있었다.


개그맨 노홍철씨 역시 돼지발정제를 섞은 소위 ‘칵테일’을 만들어 여자친구에게 주려 했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논란이 일자 노씨는 “화끈한 술자리 얘기를 해달라는 친한 기자의 얘기를 듣고 농담 분위기로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남성이 여성을 흥분시켜 성적욕구를 풀기 위해 돼지발정제를 최음제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인들에게 알려져 있는 최음제 역사는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대 초반부터 마약의 일종인 ‘엑스터시’를 최음제로 복용하는 연예인이 존재했다. 이들은 마약 복용으로 검거된 뒤 “마약이 아니라 최음제인 줄 알았다”고 변명했다. 이때부터 대중에게 최음제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면서 관심이 증폭돼 판매상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돼지발정제 옛말 GHB 등 종류 많아져
제조법? 데이트 강간 등 성범죄에 악용

노점상이나 뒷골목에서 은밀하게 판매하지 않고 행인에게 노골적으로 권하는 호객행위도 했다. 이들이 취급하는 최음제는 여러 가지였다. 술이나 음료수에 타서 마시는 액체로 된 제품부터 알약, 가루약 등 다양한 형태의 최음제가 존재한다. 원산지도 일본, 미국, 독일, 프랑스 등 다양했다. 

이때만 해도 가격이 저렴했던 ‘총알약’이 인기가 많았다. 총알약은 3㎝ 길이의 플라스틱 앰플통에 액체 상태 최음제가 들어있었다. 그 모양이 마치 총알과 비슷하게 생겨서 붙여진 총알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총알약에 돼지발정제 성분이 들어 있어 여성을 성적으로 흥분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음제의 대명사로 불리는 ‘스페니시 플라이’는 청계천 판매상들을 통해 유통됐다. 곤충에서 추출한 물질로 만든 것으로 알려진 이 최음제는 정체불명의 약물로 원료, 제조 방법은 물론 스페인과의 연관성도 알려지지 않았다. 청계천에서는 2∼3회 사용량인 10cc 한 병에 1만5000원 선에서 거래됐다.


스페니시 플라이와 쌍벽을 이루는 유명 최음제 ‘요힘빈’도 청계천에서 1회분 1만원대에 유통됐다. 요힘빈은 아프리카에 있는 ‘요힘브’라는 나무의 속껍질로 만든 가루로 원주민들에게 흥분제로 사용되는 것이 서방 세계에 알려지면서 상품화됐다.

그러나 스페니시 플라이나 요힘빈의 경우 의학적인 약효는 미미하다는 게 의료계 정설이다. 미국 FDA에서는 이미 1970년대에 두 최음제는 효과가 없다고 공표했다. 최음 효과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심리적인 ‘위약 효과’ 때문이라는 설명도 내놨다.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많은 최음제는 독일제 ‘프로코밀 크림’이다. 이 최음제는 1회분 가격이 2만5000원으로 고가였지만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구하기도 어려워 단골들만 거래할 수 있었다. 

구매자들은 대부분 유흥업계 종사자들이, 유명 나이트클럽에서는 단골들에게 ‘서비스’ 차원에서 은밀히 건네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에도 최음제는 불특정 다수에게 쉽게 노출됐다. 스팸 메일이나 인터넷 카페,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 남성들을 유혹했다. 

업소 매니저
서비스 제공

이메일 영업과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 유통되고 있는 ‘물뽕’은 무색무취의 액체 상태로 판매되며 음료수나 술에 타서 복용하면 당시 일어났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데이트 강간 약물(Date Rape Drug)’로 알려져 있다. 

이 물뽕은 24시간 이내에 체내에서 빠져나가 사후 증거를 찾기가 힘들고 가해자를 찾더라고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가 힘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당 양승조 의원은 2010년 국회 국정감사 보건복지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마약이나 향정신성의약품은 엄격하게 단속되고 있지만 최음제 성분이 담긴 돼지발정제나 말발정제는 어느 부처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돼지발정제는 개체 수 증가나 우량종자 관리를 위해 쓰이는데 농어촌 가축병원 수의사나 동물의약품 유통업소에서 2만~50만원 선에 팔리고 있다.

그러나 최근 대표적인 최음제로 인식되면서 전국 곳곳의 성인용품 전문점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유통돼 유흥가와 청소년들 사이에서 손쉽게 매매되고 광범위하게 오용되고 있다.

양 의원은 돼지발정제가 섭취량에 따라 간질이나 내분비계 교란 등 인체에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 수도 있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와 식약청·농림부·국립수의과학검역원 어느 곳도 소관이 아니거나 별도 관리대상이 아니라고 답해 문제가 크다고 주장했다.


당시 시중에 유통 중인 돼지발정유도제나 발정촉진제·시기조절제·성선호르몬자극제 등은 모두 전혀 다른 용도로 인허가를 받은 뒤 불법적으로 전용되고 있던 셈이라고 양 의원은 강조했다.

이후에도 포털사이트와 SNS에서 ‘물뽕’을 판매하는 게시글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기자가 판매자에게 메시지를 보내자 5분도 채 되지 않아 답이 왔다. 효과에 대한 질문에 “운영 5년 차로 많은 단골을 갖고 있다. 한 사람이라도 단골로 모시려 하지, 돈 몇 푼 벌고 문 닫으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격은 3회용 한 병이 30만원, 6회용 한 병이 55만원이었다. 기자가 물뽕 검색부터 계좌번호를 받아내기까지 걸린 시간은 총 15분 남짓이었다. 다음 판매자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으며 질문에 대해 금세 답이 왔다. 그는 일본 수입 제품으로 효과가 확실하다며 절대 들킬 일 없다고 자신했다. 이번 판매업자는 25만원으로 조금 더 저렴했다.  

SNS·포털 등
구하기 쉬워

기자가 한 시간 동안 찾은 판매자는 총 7명이었는데 그중 6명으로부터 답장을 받았다. 이들은 한결같이 일본산, 유럽산, 미국산이라며 저마다 효과를 확실히 보장한다고 구매를 부추겼다. 

그룹 빅뱅 승리가 운영해 유명했던 클럽 버닝썬이 흔히 물뽕이라 불리는 마약 GHB(Gamma-Hydroxy Butrate)를 이용해 성폭력 방조 의혹으로 강간약물에 대한 사회적 파문이 일었다. 버닝썬에서 폭행을 당했다고 <일요시사>에 첫 제보(<단독> ‘승리 클럽 버닝썬’ 성추행 막다 수갑 찬 사연)했던 김상교씨는 SNS에 “버닝썬 고액 테이블 관계자들, 대표들이 술에 물뽕을 타서 성폭행당한 여자들 제보도 받고 방송사 촬영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외국의 유명 포르노 사이트에 해당 클럽 VIP룸 화장실을 배경으로 약물 강간을 당하는 듯한 여성의 동영상이 게재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유엔 마약위원회는 2001년 GHB를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했고, 우리나라도 같은 해 GHB를 마약류로 지정했다. 그러나 원재료를 구하기 쉽고 제조 방법도 쉬워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심지어 포털사이트에 제조 방법까지 올라와 있다. 

국내서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는 증가 추세다. <약학회지>에 실린 ‘약물 관련 성범죄 사건 유형 분석 및 검출 약물 경향’에 의하면 2006년부터 2012년까지 국과수 본원에 약물감정이 의뢰된 성범죄 관련 건은 총 555건이었으며, 연도별 분포는 ▲2006년 28건(5%) ▲2007년 10건 ▲2008년 38건 ▲2009년 75건 ▲2010년 91건 ▲2011년 133건 ▲2012년 180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지난 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관세청을 통해 제출받은 ‘신종 마약 단속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신종 마약 적발량은 9만4532g으로 전년인 2만1378g보다 4.4배 증가했다. 

관세청은 신종 마약 가운데 성범죄에 자주 사용되는 약물 6종(MDMA·LSD·GHB·케타민·러쉬·기타)을 추출해 장 의원에게 보고했다. 올 한 해를 기준으로 하면 이들 적발량과 전년 대비 증가 폭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물뽕’이라 불리는 GHB 적발량이 급증했다. 지난해 적발량은 469g이었지만 올해는 61배에 달하는 2만8800g이 적발됐다. 이는 96만명이 동시 투약 가능한 양이다.

흔히 ‘엑스터시’라 불리는 MDMA는 지난해 3328g에서 6060g, LSD는 487g에서 931g, 러쉬(RUSH)는 1만1454g에서 1만7947g으로 늘었다. 졸피뎀 등 기타 신종 마약 적발량도 전년도 4572g에서 3만6234g으로 크게 늘었다.

세관별로는 인천에서 전체 88%(8만3421g)에 달하는 신종 마약이 적발됐으며, 부산(6.9%·6604g)이 뒤를 이었다. 불과 5년 전인 2016년 신종 마약 적발 건수가 ‘0’건이었던 광주세관서도 올해 3097g의 신종 마약이 적발됐다. 이는 유입 경로가 ‘개발’되고 있다는 얘기다.

나이트·클럽 판매상 활개
‘비쌀수록 효능 좋다’ 광고

데이트 강간에 주로 쓰이는 약물이 매년 더 많이, 더 다양한 지역에서 적발되고 있는데도 약물 사용 성범죄 처벌 규정과 적발 역량 모두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문제는 국내에선 약물 사용 성범죄를 처벌할 별도 가중처벌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형법 299조(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한 간음은 3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한다)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등을 동시 적용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마약류 관리법은 마약류의 자가 복용·유통·거래·소지를 규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타인에 대한 사용 규제, 데이트 강간 등 성범죄에 사용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규정은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에선 관련 범죄 현황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표적 범죄 통계인 경찰 ‘통계 연보’나 대검찰청 ‘범죄분석’에서도약물을 이용한 성범죄 관련 통계는 찾아볼 수 없다.

국회 입법조사처 전윤정 입법조사관은 보고서에서 “데이트 강간 등 성범죄에 오남용되는 약물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실태 파악과 함께 성폭력 범죄에 연루된 현황을 조사하고 통계를 구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나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2015년 <약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으로 약물 사용 성범죄 증가 양상을 짐작할 수 있다. 2006~2012년 국과수 본원에 약물 감정이 의뢰된 성범죄 사건은 총 555건(2006년 28건, 2007년 10건, 2008년 38건, 2009년 75건, 2010년 91건, 2011년 133건, 2012년 180건)으로 매년 증가했다.

‘버닝썬 사건’이 터지기 7년 전 자료에 불과했다.

장혜영 의원실에 따르면, 현재 마약 조사에 투입된 인력은 인천·부산·서울·김해공항 세관 등 총 4개 기관 61명이다. 인천세관에 전체 인력의 77%(47명)가 집중됐다. 부산·서울세관은 전담 인력이 없어 일반 직원이 투입돼 마약 조사 업무를 겸하고 있다. 게다가 관세청이 보유한 마약 탐지기 82대 중 13대(15%)는 사용연한이 이미 지났다. 

장 의원은 “버닝썬 사건 뒤 여성들의 물뽕 등 데이트 강간 약물에 대한 공포는 여전하다. 급증하는 마약 적발률, 변화하는 마약 보급 경로 등을 분석해 적절한 곳에 인적·물적 인프라를 보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거래
단속 어려워”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강간 약물의 무분별한 사용 배경에는 성의 상품화라는 사회문화적 배경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물뽕은 관리감독 제재가 쉬운 다른 약물, 프로포폴 등과 달리 장소와 경로가 특정되지 않는다. 온라인이나 우편 거래 모두를 단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 같은 특성을 이용해 일부 유흥업소에 대량 유포된 것으로 보이는데, 준강간 피해자들이 신고를 꺼리는 문화를 바꾸고 사건이 일어나는 유흥업소 현장을 단속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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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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