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재벌' 해성그룹 10년 후계전쟁 막전막후

땅부자 왕회장 똑같이 한입씩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단재완 해성그룹 회장은 슬하에 장남 단우영 부회장과 차남 단우준 사장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이들은 10년 전 나란히 그룹에 들어와 경영 수업을 받는 중이다. 두 아들은 직책, 지분, 권한 등을 거의 똑같이 2등분해왔다. 하지만 해성그룹 3세 후계구도 역시 지주사 체제 전환이라는 변혁기를 맞이하면서 시험대 위에 올랐다.

단재완 해성그룹 회장은 수차례에 걸친 한국제지 지분 매입과 부친인 단사천 명예회장의 상속 등을 통해 탄탄한 2세 체제를 구축했다. 여기에 가족회사인 해성산업이 단 회장 중심의 지배구조를 든든히 받쳐주고 있다.

탄탄한 체제
손자들 약진

1947년 3월생인 단재완 회장은 경복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1978년 한국제지에 입사했다. 이후 한국제지의 자회사인 한국팩키지 대표이사 등을 겸임하며 착실히 경영 수업을 받았다. 2001년 단사천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한국제지 회장에 취임하며 본격적인 2세시대를 열었다.

단 회장의 경영 승계는 순조롭게 이뤄졌다. 단 명예회장과 부인인 김춘순 여사 사이에 9명의 자녀가 있었지만 아들은 단 회장 하나였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된 단 회장은 오너 2세들 중 한국제지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단 회장의 실질적인 지배력 강화 작업은 2000년을 기점으로 본격화됐다. 단 명예회장이 한국제지 수장으로 재직하던 1997년 말까지만 해도 단 회장의 지분율은 5%대였다. 최대주주였던 단 명예회장(17.6%)과 해성문화재단(6.16%)에 이은 3대주주였다.


이듬해 단 명예회장의 건강이 악화되자 승계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단 회장은 1998년 한국제지 주식 13만6000주(2.72%)를 매입해 지분율을 8.54%로 끌어올렸다. 해성문화재단을 제치고 단숨에 2대주주로 올라섰다.

1999년 단 회장은 한국제지 주식 27만5000주(5.5%)를 추가로 사들여 지분율을 14.04%로 끌어올렸다. 같은 해 단 명예회장은 손자인 단우영 해성디에스 사장과 단우준 해성디에스 부사장에게 한국제지 주식 일부를 증여해 지분율을 8.33%까지 낮췄다.

그 결과 한국제지 창사 이후 40년 만에 최대주주가 단 명예회장에서 단 회장으로 바뀌었다.

상속 등 장차남 2등분…안정적인 2세 구도 
‘컨트롤타워 구축’ 3세 후계작업 변화 조짐

화룡점정은 지분 상속이었다. 단 회장은 부친 타계 후 이듬해인 2002년 한국제지 주식 22만8477주(4.6%)를 넘겨받았다. 이 거래로 단 회장의 지분율은 18.61%까지 상승했다. 사실상 단 회장 1인 체제가 온전히 구축된 셈이다.

이후 2004년 단 회장은 장내매수를 통해 한국제지 지분율을 18.85%까지 끌어올렸다.

그로부터 10여년 뒤인 2012년 단 회장의 지배력은 한층 더 강화됐다. 이번엔 모친인 김춘순 여사가 외아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김 여사는 2012년부터 2013년까지 단 회장에게 한국제지 주식 4만4135주(0.88%)를 물려줬다. 그 결과 단 회장의 한국제지 지분율은 19.73%까지 상승했다.


탄탄한 오너십의 또 다른 근간은 단 회장 가족회사다. 단 회장 일가가 직접 소유·경영하고 있는 해성산업이 15년째 한국제지 2대주주 자리를 유지하며 지배력의 안전판 역할을 해주고 있다.

1954년에 설립된 해성산업은 부동산 임대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성수빌딩과 중구 해남빌딩, 부산 중구 송남빌딩 등을 소유·관리하고 있다. 연간 영업이익률이 20%에 달해 알짜 회사로 불린다.

지난 6월말 기준 해성산업의 최대주주는 단 회장(33.25%)이다. 단 회장의 두 아들인 단우영 부회장(14.61%)과 단우준 사장(14.46%)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단 회장 일가가 보유한 해성산업 지분율만 60%가 넘는 셈이다. 

해성산업은 단 명예회장이 경영일선에서 활동할 때부터 한국제지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다만 당시 지분율은 1.09%로 미미했다.

강남 부자
알짜 회사

한국제지 경영권이 단 회장에게로 넘어가면서부터 해성산업의 지분 매입 행보가 활발해졌다. 해성산업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제지 주식 22만7200주를 사들여 지분율을 5.63%까지 끌어올렸다. 현재 단 회장에 이은 한국제지 2대주주다.

해성산업의 잇단 지분 매입으로 단 회장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한국제지 의결권이 25.36%까지 높아졌다. 해성산업이 대를 이어 오너 일가 지배력 구축의 지렛대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3세 승계 과정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성그룹은 현재 해성산업을 중심으로 지주사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첫 단계로 제지 사업 부문만 따로 떼어내 신설법인 ‘한국제지’를 세울 계획이다. 5000억원대 자산을 가진 100% 자회사가 생기면서 지주비율 50%를 달성, 지주사 성립 요건이 충족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시장에선 그동안 기계적으로 진행돼왔던 3세 후계구도에 변화가 생길지 관심을 쏟고 있다. 현재까지 단우영 부회장과 단우준 사장은 ‘데칼코마니’에 비견될 정도로 동일하고, 균형에 맞춰 승계 절차를 밟아오고 있다.

1979년생과 1981년생으로 두 살 터울인 형제는 어려서부터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두 형제는 나란히 미국 유학을 다녀왔고, 졸업 후에는 똑같이 삼일회계법인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했다. 2008년 장남이 먼저 경영 수업을 시작했고 곧 차남도 그룹에 합류했다.

독자적 분담?
유리한 장남

단 회장은 동일하게 기회를 열어줬다. 일찍이 사업 영역을 분리해 독자경영 기반을 마련해주는 여타 그룹사들과 달리 두 형제는 항상 같은 시험 무대에 섰다. 이 기조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두 사람은 한국제지와 계양전기, 해성산업, 해성디에스 등 핵심 계열사의 사내이사로서, 이사진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단 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고 두 아들이 양쪽에서 아버지를 보좌하고 있는 형국이다.

담당 업무만 다르다. 명목상 단우영 부회장이 운영 총괄을, 단우준 사장은 전략 총괄을 맡고 있다. 제지와 산업용품, 반도체 등 사업 성격이 전혀 다른 전 영역에 걸쳐 3세들이 공동 경영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올해 지주사 체제로 전환되면, 독자적인 역할 분담이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주사 전환 목적은 1차적으로 각 사업 부문별 특성에 맞는 의사결정 체계를 확립해 조직 효율성과 책임 경영 체제를 확립하는 데 맞춰져 있다.

이에 전문 경영 시스템 도입 없이 기존의 3세 공동 경영 방식을 고수할 경우, 지주사 전환에 대한 명분을 잃어 일반 주주들의 지지를 얻기 힘들고 더 나아가 추진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주사 전환이 결국 오너 일가 맞춤형 지배구조 재편을 위한 행보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지난해 인수한 백판지 전문기업 ‘세하’ 이사진 구성 현황이 그 증거다. 단 회장은 두 아들 중 장남인 단우영 부회장에게만 등기임원 자리를 허락했다. 여기에 이사회 의장 자리까지 내줬다. 이전까지 상장 계열사의 이사회 의장 자리는 단 회장 몫이었다. 유일하게 그 권한을 장남에게 넘겨준 셈이다.

‘데칼코마니’ 형제 행보…항상 같은 시험대
보수적인 일가 장남 유리? “속단은 이르다”


반면, 둘째 단우준 사장은 세하 미등기임원으로 전략 총괄 업무만 맡았다.

업계 관계자는 “해성그룹은 향후 단 회장과 두 아들이 지주사를 중심으로 계열사를 두루 경영하는 구도로 움직일 것”이라며 “당장 물리적인 계열분리나 승계 작업이 진행되지는 않더라도 후계자들이 독자경영에 나설 수 있는 토대가 조성될 여지는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장남인 단 부회장이 차남에 비해 승계를 유리하게 끌고 나갈 수 있는 상황에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보수적인 해성그룹 일가에서 ‘장남’이라는 지위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하는데다 2011년 단 부회장이 출시를 직접 진두지휘한 복사지 ‘밀크(milk)’가 대성공을 거두는 등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단 부회장은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삼일회계법인 컨설턴트로 근무하다 2008년 그룹 내 핵심 계열사인 한국제지에 입사했다. 전무로 승진한 직후인 2011년에는 직접 수차례 소비자 조사를 나가는 등 8개월간의 준비 끝에 밀크라는 복사지 브랜드를 시장에 내놨다.

단 부회장은 보수적인 제지기업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 전문 네이밍 업체와 협력하는 한편 해성문화재단이 지원하는 해성여고 학생 등 젊은 고객층을 두루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밀크는 출시 1년 만에 점유율 45%를 달성하며 복사지 시장 1위를 달성했다.

더불어 그룹의 지주사격인 해성산업의 지분 역시 근소하기는 하지만 단 부사장이 동생인 단우준 전무보다 0.15%포인트 앞서있다.

속단은 금물
가능성 다양

재계에서는 해성그룹 3세 경영승계 시나리오를 다양하게 점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향후 단재완 회장이 형제간 공동경영 체제를 만들지, 실적에 따라 한쪽으로 지분을 몰아줄지, 아니면 한국제지 및 해성산업 등 주요 계열사는 형 단우영 부회장에게 주고 계양전기, 해성MDS 등 전기, 반도체 계열은 동생 단우준 전무에게 나눠줄지 알 수 없으며 현재로서는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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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