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내던진 이낙연 배수진 노림수

마지막 패에 정치인생 올인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결국 승부수를 던졌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연일 대세로 부상하자, 분위기 반전을 위해 내린 결정으로 보인다. 대선레이스에 배수진을 친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는 국회의원 4번과 전남도지사, 총리 경험으로 입법·행정 면에서도 입증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문재인정부에서는 1년3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총리직을 지내며 차기 민주당 대권주자로 급부상했다. 

출발부터
흔들 흔들

총리 재임 이후 출마한 종로에서는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황교안 전 대표와 맞붙어 승리를 거머쥐었다. 당시 황 전 대표는 대표직까지 내던졌지만 패하면서 사실상 정치 인생이 끝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 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대권 행보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차기 대세라는 꼬리표도 함께 따라 다녔다. 

하지만 1년 뒤, 지지율은 수직 낙하했다. 총리 시절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 탓이다. 특유의 명쾌한 언행은 사라졌고, 신중함은 오히려 단점으로 부각됐다는 평가마저 나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발언도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됐다. 대선 출마를 노렸던 이 전 대표에게 ‘리스크’를 안긴 셈이다.

연이은 실책이 이어지면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이 전 대표를 바짝 추격했다. 출마 선언도 이 지사보다 늦은 시점에 이뤄졌다.

불안한 출발을 시작한 이 전 대표는 이 지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1차 경선에서 이 지사에게 밀려 2위에 머물렀다.

결국 그는 지난 8일, ‘의원직 사퇴’ 카드를 꺼내 들었다. 민주당 지도부가 나서 급구 만류했으나 이 전 대표의 뜻은 완강했다. 

이재명 대세론 굳어지자 분위기 반전카드
배지 던지고 호남에 진정성 어필…결과는?

일각에선 이 전 대표의 의원직 사퇴가 경솔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캠프 내 의사 결정 과정도 다급하게 이뤄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반대 의견도 다수였으나 결국 사퇴를 선택했다.

다급하게 사퇴가 이뤄진 만큼 이 전 대표가 지역구 유권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절차나 지도부와의 상의를 거쳤을 가능성은 낮다. 오로지 자신의 대선 승리를 위한 결정으로 지지를 받는 데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는 의원직 사퇴 카드로 자신의 고향인 호남에서 역전을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다른 지역에 비해 호남에서 이 지사와의 격차가 크지 않은 점을 고려한 것으로 읽힌다. 이 지사가 이른바 ‘지사 찬스’를 누린다는 비판에도 지사직을 내려놓지 않는 점을 대비시키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동시에 확장성을 강조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사실상 이 전 대표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앞서 이 전 대표는 호남을 18번이나 방문하며 경선 전부터 공을 들여왔다. 사퇴 후에도 호남의 지지가 필요하다며 자신에게 확장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대권 도전에 대한 진정성을 봐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 전 대표의 사퇴가 당장 효과를 드러낼지는 미지수다. 벌써부터 효과가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최후의
승부처

일각에서는 호남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행보라는 비판과 함께 이 지사에 대한 ‘네거티브 공격’의 패착이 ‘충청 패배’로 나타났음에도 이를 만회할 정책과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런 까닭에 사퇴라는 강수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고, 호남에선 진정성밖에 어필할 수 없다는 것.

사퇴 효과를 통해 반이재명 연대의 표심을 흡수한다고 해도 문제다. 이 전 대표 지지층의 이탈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자신의 지역구인 종로를 내던진 것에 따른 후폭풍이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다는 뜻이다. 종로는 ‘정치1번지’로 불릴 정도로 정치적 상징성이 큰 곳이다. 

민주당 입장에선 내년 대선과 함께 치러질 3·9 재보궐선거에서 이겨야 본전이고 패할 경우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하다. 이런 연유로 재보선 결과에 따른 책임이 이 전 대표에게로 향할 수 있다. 그의 사퇴가 더 나아가 3·9 재보선뿐 아니라 2024년 22대 총선 판세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나 이 전 대표가 금배지를 내던지면서 그에 따른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역대 선거에서는 누가 종로를 차지할지 판세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사퇴에도 불구하고, 경선 컷오프에서 탈락하게 된다면 이 전 대표는 더 이상 되돌아갈 곳이 없게 된다.

과거에도 이 전 대표처럼 의원직을 사퇴한 사례는 몇 차례 있었다. 하지만 사퇴 카드가 늘 효과를 거뒀던 것은 아니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사례가 그렇다. 안 대표는 대선후보 등록과 동시에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지만 당선되지 않았다.


재보궐 지면 
책임론 부상

민주당 김두관 의원도 지난 19대 대선 경선 당시 경남지사직을 중도 사퇴했다가 정치적 입지가 크게 흔들렸고 많은 비판을 받았다. 김 의원은 현재 여권 대선후보 중 지지율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이런 점에서 김 의원과 같은 행보를 밟게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여권 내에서도 벌써부터 재보선에 대한 우려가 번지는 모양새다. 

이 전 대표의 사퇴는 다른 민주당 후보들이 이 전 대표를 공격하기에 충분한 여지를 만들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캠프는 “경솔한 결정”이라며 “호남을 볼모로 잡으려는 저급한 시도가 아니길 바란다”고 비판한 바 있다.

현재 여권에 대한 민심이 악화된 상황에서 마땅히 종로에 내세울 대안이 많지 않다. 몇몇 후보가 하마평에 오르고 있지만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상황에 친문(친 문재인)으로 분류된 홍영표·김종민·신동근 의원이 이 전 대표 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이 역시 큰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이 전 대표에게 필요한 표심은 중도층과 반 이재명 세력의 결집인데, 친문이 도움을 보탤 수 있을지 여부가 확실하지 않아서다.


이 전 대표도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한 듯 “광주가 저를 지지해주지 않으면 저는 끝난다”고 읍소했다. 호남에서 승리를 해도 최종 경선에서 패배한다면 남아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다만 되돌아갈 곳이 없다는 점과 닥쳐올 재보선 책임론을 회피하기 위해 이 지사 선거 캠프에 합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전 대표에게는 피난처가 될 수 있는 셈이다.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최종 경선 이후 함께 경쟁했던 후보들과 지지층 결집을 위해 남은 대선 일정을 이어나간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 경쟁하던 후보들의 선거대책위원회 인사들을 자신의 캠프에 영입한 바 있다. 선대위원장만 12명이 될 만큼 많은 인원을 영입했다. 

갈 곳도 돌아갈 곳도 없다
지역구 공천 가능성 낮아

이를 두고 이 전 대표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오랜 전통”라며 “이 지사에게 패배해 요청이 온다면 선대위를 구성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지사 입장에서는 고민이 될 수 밖에 없다. 명낙(이재명+이낙연)대전이라고 불릴 만큼 둘 사이에 네거티브 공방이 오갔던 데다, 오히려 지지층 결집이 약해질 수 있어서다.

한편으로는 이 전 대표가 사실상 패배를 인정하고, 벌써부터 차기를 노리는 행보를 석택한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황 전 대표도 사실상 정치 생명이 끝났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지만 이번 국민의힘 1차 컷오프에 통과해 존재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황 전 대표 역시 최종 경선에 진출할 가능성은 낮지만 정치적 재기를 노릴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상황에 이 전 대표 본인도 경선 이후 쉽게 물러날 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계에서는 지사직과 시장직에 출마하는 행보를 보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총리 재임 시절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이끌었던 점이 여전히 장점으로 남아 있다. 따라서 지역민심을 초반부터 다져 재기를 노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이 전 대표가 의원직을 내려놓은 이상 당장은 총선에 도전하기도 힘들고, 추후 지역구 공천을 받을 가능성은 굉장히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권에서도 이 전 대표의 다음 행보가 아예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본인도 마지막이라고 언급한 만큼 사실상 경선 패배는 정치계 은퇴라는 시선이 강해서다.

다음 행보는…
이대로 끝?

한 정치권 인사는 “실질적으로 현재 대선 판도를 바꾸기 힘들다. 명분이 없는 마지막이 될 수 있다”며 “오히려 역풍만 맞아 이 지사에게 도움을 준 꼴”이라고도 지적했다.

이어 “이 전 대표가 충청권에서 패배한 뒤가 최종 경선 직전에 의원직 사퇴를 했더라면 진정성을 더 인정받았을 수 있을 것”이라며 “향후 총선에서도 민주당이 패한다면 책임론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따라잡기 바쁜데… 
추미애에 발목 잡힌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3위를 달리고 있는 추미애 전 장관에게 있어 이낙연 전 대표는 공격 대상이다. 추 전 장관은 “네거티브와 무책임의 대명사가 민주당 후보가 돼서는 안 된다”며 이 전 대표를 겨냥했다.

이어 “이 전 대표가 민주당 후보인지 의문”이라며 “국민의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해 프레임을 이용해 같은 당 후보를 공격한다.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후보가 경선장에 나서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고발 사주 사건을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후보에게 책임을 묻는 이 전 대표에게 강력한 유감을 전한다”고 말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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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