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서 만나는 '칸의 여왕' 전도연

“배우로선 성공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전도연과 연기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죠.” 배우 전도연과 연기 호흡을 맞춰본 배우들은 하나같이 전도연의 상대역이 되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 연기에 정답이 없다고 하지만, 맡은 인물의 본질을 찾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전도연은 글자로 적힌 인물의 내면을 오롯이 구현해내고야 만다. 깊고 풍부한 감정의 파편을 포착해내는 배우 전도연이 5년 만에 드라마로 복귀한다. 허진호 감독의 연출작 JTBC 토일드라마 <인간실격>이다. 

영화 <무뢰한>을 본 후 이동진 평론가는 한 줄 평을 이렇게 남겼다. “전도연이다. 전도연이다. 전도연이다.” 

그 누구보다도 냉철하게 작품을 진단하는 평론가로부터 이 같은 평가를 받는 배우가 또 누가 있을까. 이 평론가는 <무뢰한>에서 배우 전도연은 퇴물이 된 술집 여인 혜경을 연기하면서 새로운 사랑의 설렘을 느끼는 동시에 점점 나락으로 치닫는 한 여인의 절박함, 그리고 그 사이 빚어지는 갈등에서의 분노, 안으로 삭아 들어가는 참담함까지 표현했다고 했다. 

극한의
리얼리즘

한국을 대표하는 연기력은 평가마저도 예술적으로 바꿔내는 듯하다.

<무뢰한>에서 전도연이 연기한 술집 여자 혜경은 희망처럼 찾아온 한 남자가 사실은 경찰로 전 남자친구였던 살인범을 잡기 위한 도구로밖에 자신을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절망하는 인물이다.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누군가는 평생 경험하기 힘든 삶을 몸소 체험하는 인물이다. 믿었던 사람의 배신으로 인해 온전히 정신을 가누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당당했던 첫 장면부터 너무 안쓰러워 쳐다보기도 힘든 처지에 이른 마지막 장면까지, 전도연이 만든 혜경은 극한의 리얼리즘을 갖고 있다.

경험해보지 못한 인물을 추측으로 풀어내는 건 배우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전도연에게 주어진 배역은 언제나 상상하기 힘든 최악의 사건과 갈등이 즐비했다. 어떤 험난한 상황과 내면적 고통이 주어지더라도 전도연은 늘 마치 그 인물이 우리 옆에서 존재하는 것처럼 연기했다. 

전도연의 연기 인생은 한 잡지사의 상품을 받기 위해 간 자리에서 모델로 발탁되면서 시작한다. 애초에 연기자의 꿈이 그리 크지 않았던 10대 시절 전도연은 톡톡 튀는 외형과 밝은 에너지로 광고모델을 거쳐 연기자로서도 비교적 쉽게 데뷔한다. 

이름이 크게 알려지기도 전에 영화 <접속>에 캐스팅돼 한석규와 호흡을 맞춘 뒤 엄청난 흥행을 통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대중에 각인시킨다.

할리우드나 홍콩영화에 밀려 한국영화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시절 <접속>의 누적 관객 기록은 한국영화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전도연이 매우 뛰어난 연기를 하는 배우로 인식되기 시작한 작품은 <해피엔드>부터다. 남편 몰래 바람을 피우다 걸린 뒤, 결국 남편의 복수심으로 인해 상해를 당하는 내용의 이 작품에서 그가 보인 애정은 리얼리즘 그 자체였다.

다양한 애정신에서 그가 보인 얼굴은 이전에는 없었던 현실성이 담겨있었다. 이기적인 언행조차 공감되게 이끌었으며, 표현하기 어려운 쾌락의 영역 또한 온몸으로 구현했다.


JTBC 10주년 특집 <인간실격> 주인공
<굿와이프> 이후 5년 만 드라마 복귀

전도연은 <해피엔드>를 기점으로 배우라는 직업을 비로소 인식했다고 한다.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촬영 전에는 그가 연기한 보라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촬영 말미에서야 비로소 그의 마음을 알았다면서 처음으로 배우가 무엇인지 스스로 깨달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전도연의 작품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전도연에게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준 영화 <밀양>에서는 결혼 전이었음에도, 한 아이의 엄마로 나와 극단적인 모성애를 표현했다. 

<밀양>의 신애는 신을 빌미로 장사하는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이상한 시스템 때문에 상처받고 점점 미쳐가는 인물이었다. 괴로움을 겪다 희망을 찾았다가 밀려오는 배신감으로 분노하고 급기야 광기로 이어지는 신애의 변천사를 단 한 순간도 흐트러지지 않고 완벽히 표현한다.

문화의 본고장인 유럽의 영화인조차 감동하게 한 연기력이었다. 

아시아권에서도 손에 꼽히는 업적을 남긴 후, 영화인 누구나 전도연이 대작을 택할 것이라는 예상 속에서 그가 향한 곳은 저예산 영화 <멋진 하루>였다. 헤어진 전 남자친구를 갑작스레 찾아와 다짜고짜 300만원 가까이 되는 빌린 돈을 갚으라고 땍땍거리는 희수를 연기했다. 

다소 비현실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전도연에게는 그리 어려운 미션이 아니었다. 시나리오가 가진 비현실성이라는 여백을 전도연이 충분히 있을법한 인물로 채워낸다. 그 과정에서 배우 하정우와 함께 일으키는 연기적 시너지가 어마어마하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전도연의 또 다른 대표작이다. 고인이 된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리메이크한 이 작품에서 그는 파출부였지만, 주인집의 가장 훈(이정재 분)과 애정을 통해 계급 상승을 노리는 은이를 연기했다. 

쉽게 이룰 수 없는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모든 것이 불가능한 욕망에 불과했던 것으로 점철되는 내용의 <하녀>에서 전도연은 또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선을 드러냈다. 전도연이 아니었다면 <하녀>가 이토록 회자되는 작품이 될 수 있었을까. 

도전의 연속
필모그래피

매 작품 인간의 깊은 곳에 있는 감정을 오롯이 끌어내는 그다 보니, 전도연에게는 점점 어둡고 무거운 작품만 밀려오게 된다.

10일 안에 목숨을 구해야 하는 남자와 손을 잡은 사기 전과범이었던 <카운트다운>,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에 순진하게 마약을 싣고 가다 10년 동안 가족과 생이별했던 <집으로 가는 길>, 말 그대로 전도연이 어떤 여배우인지 보여준 <무뢰한> , 우연히 알게 된 새로운 남자와 사랑에 빠진 뒤 저돌적으로 돌진한 <남과 여>, 우리에게 여전히 아픈 상처인 2014년 4월의 사건을 재구성한 <생일>까지, 전도연에게는 늘 어렵고 고된 삶을 사는 인물이 주어졌다.


연기하기 어렵고 힘든 작품을 피하고 싶었던 전도연은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과 <비상선언>으로 비교적 가벼운 톤의 상업 영화에 출연한다. 아무리 톤이 가볍다 해도, 전도연이 스크린에 등장하면 공기는 전도연의 내음으로 바뀌어버리지만, 그간 전도연이 걸어온 필모그래피와는 다소 결이 달랐다. 

그런 전도연이 다시 어렵고 힘든 상황에 놓인 인물을 연기한다. JTBC 드라마 <인간실격>에서다. JTBC 10주년 특집 <인간실격>은 다소 무거운 작품이다. 출판사의 작가에서 모든 걸 잃은 40대 여인과 20대임에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무겁고 어려운 작품을 피해 계속 기다리다가 만난 작품”이었다고 밝힌 전도연은 “어둡지만, 빛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4회까지 공개된 이 작품에서 전도연은 다시 깊은 우울감을 그려낸다. 전도연이 연기하는 부정은 꽤 잘나가는 출판사의 작가였지만, 자신의 커리어를 통째로 빼앗긴 후 호텔에서 파출부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인물이다. 

자신의 삶을 앗아간 정아란 작가(박지영 분)에게 악성 댓글을 남기고 경찰 조사를 받기도 한다. 복수심과 분노가 지나치게 넘쳐 극도의 우울함에 빠져 있다. 자신을 아니꼽게 보는 시어머니(신신애 분)와 악을 쓰며 싸우기도 한다.

우울한
낙오자


고부간에 낀 남편은 어떻게든 중간다리 역할을 해보고자 하지만, 성실하고 부지런할 뿐 현명하지는 않다.

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남은 게 하나도 없는 인생이라 여기고, 목숨을 던지려 용기를 내보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그나마 부정을 극진히 아끼는 아버지(박인환 분)가 있지만, 그저 미안한 존재일 뿐이다. 

숨은 붙어 있지만, 마음이 오롯이 작동하지 않는 아픈 인간을 공감되게 그려내고 있다. 이제 겨우 초반부임에도 전도연은 엄청난 열연으로 작품의 분위기를 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미 어린 나이부터 배우로서 기념비적인 업적을 쌓은 그가 사회의 낙오자인 부정을 연기하는 것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었다. 국내 수많은 여배우의 롤모델이자, 창작자라면 누구나 함께 작업하고 싶은 배우가 전도연 아닌가.

그런 그가 인생의 반을 살도록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 괴로워하는 부정을 어떻게 공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사람들이 제게 ‘너가 부정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고 질문했어요. 부정은 꽉꽉 닫혀있는 인물이거든요. 그 인물의 마음을 어떻게 열어갈지 걱정이 너무 됐었어요. 부정을 알고 싶어서 부단히 노력하기도 했고요. 촬영하면서 조금씩 부정의 마음을 알아간 것 같아요.”

“저 스스로 명백하게 ‘인간 실격’이라고 규정지은 적은 없어요. 그럼에도 제게는 배우로서의 삶 외에 다른 삶도 존재해요. 다른 쪽의 삶을 생각해보면 완성되지 않고 부족한 부분이 많아요. 여전히 그 여백을 채워나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부족하지만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어요.”

방영 전에 모든 촬영을 마친 <인간실격>은 공개되기 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영화 위주로 작품활동을 해오던 전도연의 5년 만의 복귀작이기도 하고, 상대역이 청춘을 대표하는 류준열인데다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를 만든 허진호 감독이 연출하기 때문이다.

본질 찾아 늘 치열하게 싸우는 ‘연기 달인’
“나 역시 부족한 사람, 노력으로 채워가요”

특히 전도연의 복귀작이라는 데 대중의 기대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 기대감이 만족감으로 채워지기에, 충분한 초반부다.

연기력에서 경지에 오른 전도연은 어떤 상황에서든 여유 있게 대처할 듯 보이지만, 그 뒤에는 인물의 본질을 찾기 위한 그의 치열한 싸움이 있다. 상대역인 류준열은 전도연 덕에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며, 전도연이 연기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다.

“전도연 선배님을 보면 연기 달인으로서 굉장히 여유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촬영하는 동안에 괴로워하고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놀랐어요. 제가 경력은 얼마 안 되지만, 촬영장에서 여유를 찾은 부분이 있거든요. 이런 부분을 점검하게 되고 초심을 되찾는 계기가 됐어요.”

현장에서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뛰어난 연기력의 후배에게 귀감이 되는 듯하다. 전도연이라는 이름은 많은 남자배우의 캐스팅 이유가 되기도 한다. <멋진 하루>의 하정우나, <무뢰한>의 김남길, 이번 <인간실격>의 류준열조차도 전도연의 상대역이라는 것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됐다.

그저 전도연과 한 번 연기해보는 것이 목적이 된 셈이다. 빠른 호흡으로 자극적인 사건이 이어지는 이야기가 요즘 국내 드라마계에서 트렌드로 통용된다. 하지만 <인간실격>은 처음부터 느리며, 호흡도 길다. 장면이 빠르게 넘어가서 눈을 사로잡기보다는, 한 곳을 지긋이 바라보며 깊은 감정을 염탐하는 작품이다.

그러다 보니 전도연에게도 상대역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던 듯 보인다.

“저는 준열씨가 이 작품 안 할 줄 알았어요. 남자 배우들은 대체로 크고 화려한 작품을 하고 싶어 하잖아요. 강재를 준열씨가 연기한다고 했을 때 의외였어요. 그래서 초반 촬영할 때 스태프들에게 ‘우리 잘 어울려?’라고 많이 물어봤던 것 같아요.”

이제 드라마는 서서히 속도를 낸다. 초반 던져진 갈등이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올 전망이다. 부정은 여러 고난에 정면으로 부딪힐 전망이다. 그 과정에서 전도연이 그려내는 희망이 무엇일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설렘
희망

“이 작품에는 설렘이 있어요. 벼랑 끝에 서 있는 부정이 한 남자를 만나면서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되거든요. 실격한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이 안에는 내가 있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메시지가 있어요. 사건이 크고 미사여구가 화려하진 않지만, 인간이 느끼는 풍부한 감정이 오롯이 살아 있는 작품이에요. 역경 속에서도 힘을 내고 용기를 내는 부정을 시청자분들이 응원해주셨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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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