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특별인터뷰③ 종교계 큰어른의 나라 걱정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내가 아프면 상대도 아픕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바야흐로 갈등의 시대다. 남북·동서·남녀·세대·빈부 등 어느 하나 갈라지지 않은 곳이 없다. 역설적으로 통합이 요구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동안 국민통합에 앞장서왔던 종교의 역할에 의문부호가 붙는다. <일요시사>가 추석을 맞아 종교계 큰어른,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을 만나 그 해법을 청했다. 

오후 6시20분. 전남 구례 소재의 화엄사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운고각으로 모여들었다. 저마다 자리를 잡은 사람들 사이로 북소리가 울렸다. 곧이어 범종각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땅거미가 느릿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한낮의 땡볕이 무색하게 서늘한 바람이 스쳤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화엄사의 저녁 모습이었다. 

19교구 본사
50여개 말사

‘민족의 영산’ 지리산이 품은 화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25교구 중 19번째 교구다. 정확한 명칭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지리산 대화엄사’. 전남 구례군에 위치한 우리나라 대표 사찰 중 한 곳이다.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고승 연기조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만 1400~1500년에 이르는 ‘천년 고찰’이다.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 보제루를 중심으로 한 바퀴 돌면 화엄사의 가람 배치가 한 눈에 들어온다. 보제루 정면으로 대웅전이, 좌측으로 각황전이 우뚝 서있다. 일반적으로 사찰에서는 대웅전이 가장 큰 건물인 경우가 많은데, 화엄사에서는 각황전이 가장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국보67호로 지정돼있는 각황전은 국내 최대 목조 건물이다. 원래 이름은 장육전이었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사라졌다가 조선 숙종 때 재건했다. 각황전이라는 이름도 숙종이 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황전 뒤편으로 난 108계단을 오르면 역시 국보(35호)로 지정된 4사자 3층석탑이 나온다. 4사자 3층석탑은 현재 보수 중으로 추석 명절 이후 대중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은 이 108계단 너머를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꼽았다. 덕문 스님은 “그곳에서 2년 정도 살 기회가 있었다. 화엄사를 가장 대변하는 곳”이라며 “바깥에는 태풍이 불어도 그 공간만큼은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다. 화엄사에서 가장 고요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달 15일 오전 화엄사 삼전에서 덕문 스님을 만났다. 덕문 스님은 2017년 4월 화엄사 주지로 취임한 이후 올해 3월 재임에 성공했다. 여수·순천·곡성·광양·구례 등 전남 동부권 다섯 지역을 관장하는 교구이면서 50여개의 말사를 관리하는 화엄사의 교구장으로 5년째 활동 중이다. 

“이전에 계셨던 선배 스님들이 도량을 잘 가꿔주셨고, 이미 많은 부분을 일궈내셨기 때문에 저는 그저 숟가락 하나 얹는 정도였습니다. 다만 현재 불교를 포함한 종교가 국민에게 얼마나 신뢰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있었습니다. 화엄사가 국민은 물론 지역민과 불자들에게 다가가도록 할 수 있는가에 가장 초점을 맞췄습니다.”

물질과 과학의 시대
사라진 종교의 역할

취임식을 문화재 학술행사로 대체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문화재 활용 부분에 있어서는 관심이 남다르다. 과거에는 정부 차원에서 문화재를 관리하고 보존하는 데만 힘을 쏟았다. 하지만 이젠 문화재를 통한 대중의 마음 정화와 치유가 필요하다는 고민을 가지고 토론을 벌였다. 

계절마다 여러 이벤트를 열어 대중과의 접촉면을 늘려간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화엄사는 올해 ‘홍매화·들매화 휴대폰 카메라 사진 콘테스트’(3월), ‘요가대축제’(6월), ‘모기장 영화 음악회’(7월) 등의 행사를 연달아 열었다. 코로나19로 법회 등 실내에서 할 수 있는 행사가 줄어들자 야외에서 대중을 만나는 자리를 만든 것.


덕문 스님은 코로나19로 집단 우울증에 빠진 국민을 위로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어떤 곳을 가도 환하게 웃는 사람보다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됐다. 지하철만 타도 고개를 든 사람이 거의 없다. 우리 공간(화엄사)에서 국민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했는데, 호응이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화엄사 광주 빛고을 포교원 건립도 마찬가지다. 덕문 스님은 임기 시작과 동시에 광주에 포교원을 짓기 시작했다. 광역도시면서 공용 지역인 광주에 포교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열망은 30년 전부터 있었지만 현실 여건상 이루지 못했다가 덕문 스님 취임 이후 시작해 현재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포교원은 불자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24시간 열려 있는 곳이기 때문에 밤에라도 문득 마음속에 어려움이 생긴다면 언제든지 가서 기도하고 참선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어려움을 털어놓고 싶을 때 들어줄 수 있는 상대가 있는 곳이 포교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도심 속에 있는 불교 사랑방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19년 4월 말사인 천은사의 입장료를 폐지하는 데 화엄사 교구장으로서 결단을 내린 부분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천은사가 자리한 지리산은 1967년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됐다. 당시 정부는 천은사 소유의 토지를 군사작전 도로로 만들어 사용했다. 이후 88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관광객 유치 명목으로 벽소령관광도로 개발이 시작됐다. 

천은사는 문화재 보호를 명목으로 입장료를 받게 됐는데,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면서 지리산을 찾는 방문객들과 갈등을 빚어왔다.

천은사 입장료 문제는 불교계뿐만 아니라 지역민들과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온 만큼 일종의 숙원이었다. 덕문 스님은 천은사 주지 종효 스님, 관계기관 등과 논의 끝에 천은사 입장료 폐지를 이끌어냈다. 지난 3월에는 이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야외 행사

“국가에는 여전히 할 말이 있지만 국민이 불편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사찰의 존재 의의는 국민입니다. 국민을 위해서, 국민에 의해서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찰이 가난해지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으로 결정을 내리게 됐습니다. 현재 주변을 잘 정돈하고 여건을 만들었더니 천은사뿐만 아니라 화엄사도 더 많이 찾아주시는 것 같습니다.”

화엄사에서 시행 중인 승가복지 시스템도 정착 단계에 이르렀다. 5년 전 덕문스님은 ‘출가부터 열반까지’를 약속으로 내걸었다. 스님들의 교육, 의료, 연금, 주거까지 책임지는 승가복지 체계의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한 것. 그 약속은 현재 종단 내 모범사례로 꼽힐 만큼 안정된 상태다. 

“표현은 ‘승가복지’라고 하고 있지만 저는 ‘기본’을 마련해 드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님들은 중병에 걸리면 곡기를 줄이고 주변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일찍 떠납니다. 몸이 건강했더라면 더 많은 깨달음을 얻어서 많은 국민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건강을 해쳐 떠나는 스님들을 보면서 승가복지의 기틀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덕문 스님은 스스로를 ‘흉악한 사판승’으로 표현했다. 사판승은 주로 잡역에 종사해 사찰을 유지하는 데 힘쓰는 스님을 말한다. 요즘으로 말하면 절에서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스님이다. 참선을 통해 수행에 정진하는 이판승과 구분된다. ‘막다른 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게 된 지경’을 뜻하는 사자성어 ‘이판사판’이 여기에서 유래됐다. 

덕문 스님은 수행에 정진하는 스님들, 이른바 이판승에게서 ‘우리나라 불교의 희망’을 보고 있었다. 그는 “수행을 하려는 스님들, ‘내가 이 절에 살겠습니다’하고 대기하는 스님들이 몇 년씩 밀려 있다. 그 정도로 아직 수행하고자 하는, 수행을 갈구하는 모습들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런 모습에서 우리나라 불교의 희망이 있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덕문 스님의 지난 5년은 ‘대중 속으로’라는 말로 요약된다. ‘구례군’ 하면 화엄사, ‘지리산’ 하면 화엄사를 떠올렸던 옛날의 영광이 사라지고 어느 새 ‘잊혀가는’ 처지가 된 사찰을 재부흥시키겠다는 의지가 드러난 시간이었다. 화엄사를 활짝 열고 대중을 품어 종교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덕문 스님은 세상의 풍파에 지친 국민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불교의 본래 목적에 충실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남북은 물론 동서·세대·남녀·빈부 등 갈등이 갈등을 낳는 시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인 화합을 실천하기 위해 화엄사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공업중생
일체유심조

또 물질과 과학이 종교를 대신하는 시대에 사찰의 역할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전제돼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불교에서 중생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사바 세계라고 합니다. 인류 역사를 되짚어보면 하루라도 조용한 때가 있었던가 싶어요.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났고 감염병도 돌았고요. 우리나라 같이 작은 나라에서도 남북이 갈려 있고 동서가 화합하지 못하며 빈부 갈등과 세대 갈등 등 많은 갈등이 존재할 것이라고 봅니다.”

“물질과 과학이 종교를 대신하는 시대가 되면서 가장 먼저 나타난 게 바로 개인주의, 이기주의입니다. 또 마치 다음 생이 없는 것처럼 인생을 막 사는 모습도 나타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공업중생’ 즉 업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코로나19로 ‘내가 아프면 상대방도 아플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것처럼 한 나라, 한 국민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서 덕문 스님은 ‘큰스님’ 원효대사의 화쟁사상을 첫손에 꼽았다. 화쟁사상은 논쟁을 화합으로 바꾸려는 불교 교리를 말한다. 우리나라 불교의 저변에 깔린 가장 핵심적인 사상이다. 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을수록 대화와 소통으로 통합을 꾀하는 화쟁 사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어떻게 마음을 서로 공유하고 나눌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서로 만족의 정도를 낮추면 화합이 쉬워질 텐데 자기만족은 낮추려고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꾸 이기적인 생각을 갖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 모두가 종교‧사회‧국가 등 모든 부분에서 화쟁 사상을 중심으로 화합된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지난 3월 화엄사는 교구 본사 중에서는 최초로 미얀마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연대와 지지를 보내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우리도 1980년대 군사정권을 딛고 민주화를 이뤄냈습니다. 미얀마 역시 우리나라의 군사정권 시절처럼 아픔을 겪고 있는 상태입니다. 미얀마가 현재 상황을 잘 극복해 우리나라처럼 민주화가 꽃피웠으면 합니다. 희망을 갖고 지지하며 또 성원합니다.”

대중의 신뢰 회복해야
정치인 진정성 중요해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 인사들을 향한 당부도 전했다.

덕문 스님은 “나는 정치하는 사람에게 매번 물어본다. ‘정말 국민을 대변하고 그런 자세로 있는지’ ‘(국민 위에)군림하거나 부리고 있진 않은지’ 일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진정성이라 여긴다. 우리 국민도 진정성을 찾아내는 것이 선택의 중요한 덕목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덕문 스님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는 국민에게 ‘화엄 사상’을 전파하는 것이다. <화엄경>의 중심 사상은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임을 뜻하는 ‘일체유심조’다. 다시 말해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 원효대사에게 깨달음을 안겼다는 ‘해골물’ 이야기와 함께 자주 인용된다.

“지금처럼 과학과 물질이 만능인 시대에 가장 필요한 부분은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의지처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가장 허해지는 부분은 마음일 것이고, 많은 것을 가졌으면서도 조금만 잃으면 안 좋은 선택을 하잖아요. 그 이유가 마음의 허함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화엄 사상을 통해 국민의 마음 만족도가 충족되길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화엄사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10월의 첫 삼일, 화엄사가 다시 한 번 대중 속으로 뛰어든다. 화엄사의 사계절 행사 중 가장 큰 축제인 ‘화엄문화대축제’가 다음달 1일부터 3일까지 열리는 것.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열리지 못했다. 올해는 규모를 줄이거나 그래도 어려우면 비대면으로라도 반드시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첫째 날에는 ‘걷기 박사’ 성기홍 박사가 주도하는 트래킹 행사가 열린다. 트래킹 코스는 ‘어머니의 길’로 명명했다. 어머니처럼 포근하고, 어머니처럼 쓰다듬어주고, 어머니처럼 언제든지 위로 받을 수 있는 화엄숲길을 국민들에게 알리겠다고 강조했다. 

둘째 날에는 국보 301호인 화엄사 영산회괘불탱이 공개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괘불로, 역사적·미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원본은 1년에 딱 한 번 괘불제를 통해 공개된다.

덕문 스님은 “야외에 걸괘 그림을 걸고 부처님을 모시고 하는 법회를 ‘야단법석’이라고 한다. 그 야단법석을 괘불제를 통해 진행해 보려 한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마지막 날에는 화엄사의 정신세계를 담은 영성 음악제가 열린다. 이날 순천 송광사에서 화엄사를 거쳐 실상사를 넘어 법보사찰 해인사, 불보사찰 통도사까지 22일의 여정을 진행 중인 순례단이 들를 예정이다. 

마음의
의지처

“화엄사 보제루 편액(현판)을 보면 ‘화장(華藏)’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꽃처럼 향기로운 마음을 품고 있다’는 뜻입니다. 화엄사에서 오시는 모든 분이 늘 향기롭고 마음이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리산을 바라보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또 스님들이 수행에 정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간절한 마음을 기원하셨으면 합니다. 또 화엄사를 그런 향기 가득한 사찰로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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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