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특별인터뷰③ 종교계 큰어른의 나라 걱정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내가 아프면 상대도 아픕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바야흐로 갈등의 시대다. 남북·동서·남녀·세대·빈부 등 어느 하나 갈라지지 않은 곳이 없다. 역설적으로 통합이 요구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동안 국민통합에 앞장서왔던 종교의 역할에 의문부호가 붙는다. <일요시사>가 추석을 맞아 종교계 큰어른,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을 만나 그 해법을 청했다. 

오후 6시20분. 전남 구례 소재의 화엄사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운고각으로 모여들었다. 저마다 자리를 잡은 사람들 사이로 북소리가 울렸다. 곧이어 범종각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땅거미가 느릿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한낮의 땡볕이 무색하게 서늘한 바람이 스쳤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화엄사의 저녁 모습이었다. 

19교구 본사
50여개 말사

‘민족의 영산’ 지리산이 품은 화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25교구 중 19번째 교구다. 정확한 명칭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지리산 대화엄사’. 전남 구례군에 위치한 우리나라 대표 사찰 중 한 곳이다.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고승 연기조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만 1400~1500년에 이르는 ‘천년 고찰’이다.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 보제루를 중심으로 한 바퀴 돌면 화엄사의 가람 배치가 한 눈에 들어온다. 보제루 정면으로 대웅전이, 좌측으로 각황전이 우뚝 서있다. 일반적으로 사찰에서는 대웅전이 가장 큰 건물인 경우가 많은데, 화엄사에서는 각황전이 가장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국보67호로 지정돼있는 각황전은 국내 최대 목조 건물이다. 원래 이름은 장육전이었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사라졌다가 조선 숙종 때 재건했다. 각황전이라는 이름도 숙종이 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황전 뒤편으로 난 108계단을 오르면 역시 국보(35호)로 지정된 4사자 3층석탑이 나온다. 4사자 3층석탑은 현재 보수 중으로 추석 명절 이후 대중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은 이 108계단 너머를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꼽았다. 덕문 스님은 “그곳에서 2년 정도 살 기회가 있었다. 화엄사를 가장 대변하는 곳”이라며 “바깥에는 태풍이 불어도 그 공간만큼은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다. 화엄사에서 가장 고요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달 15일 오전 화엄사 삼전에서 덕문 스님을 만났다. 덕문 스님은 2017년 4월 화엄사 주지로 취임한 이후 올해 3월 재임에 성공했다. 여수·순천·곡성·광양·구례 등 전남 동부권 다섯 지역을 관장하는 교구이면서 50여개의 말사를 관리하는 화엄사의 교구장으로 5년째 활동 중이다. 

“이전에 계셨던 선배 스님들이 도량을 잘 가꿔주셨고, 이미 많은 부분을 일궈내셨기 때문에 저는 그저 숟가락 하나 얹는 정도였습니다. 다만 현재 불교를 포함한 종교가 국민에게 얼마나 신뢰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있었습니다. 화엄사가 국민은 물론 지역민과 불자들에게 다가가도록 할 수 있는가에 가장 초점을 맞췄습니다.”

물질과 과학의 시대
사라진 종교의 역할

취임식을 문화재 학술행사로 대체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문화재 활용 부분에 있어서는 관심이 남다르다. 과거에는 정부 차원에서 문화재를 관리하고 보존하는 데만 힘을 쏟았다. 하지만 이젠 문화재를 통한 대중의 마음 정화와 치유가 필요하다는 고민을 가지고 토론을 벌였다. 

계절마다 여러 이벤트를 열어 대중과의 접촉면을 늘려간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화엄사는 올해 ‘홍매화·들매화 휴대폰 카메라 사진 콘테스트’(3월), ‘요가대축제’(6월), ‘모기장 영화 음악회’(7월) 등의 행사를 연달아 열었다. 코로나19로 법회 등 실내에서 할 수 있는 행사가 줄어들자 야외에서 대중을 만나는 자리를 만든 것.


덕문 스님은 코로나19로 집단 우울증에 빠진 국민을 위로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어떤 곳을 가도 환하게 웃는 사람보다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됐다. 지하철만 타도 고개를 든 사람이 거의 없다. 우리 공간(화엄사)에서 국민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했는데, 호응이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화엄사 광주 빛고을 포교원 건립도 마찬가지다. 덕문 스님은 임기 시작과 동시에 광주에 포교원을 짓기 시작했다. 광역도시면서 공용 지역인 광주에 포교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열망은 30년 전부터 있었지만 현실 여건상 이루지 못했다가 덕문 스님 취임 이후 시작해 현재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포교원은 불자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24시간 열려 있는 곳이기 때문에 밤에라도 문득 마음속에 어려움이 생긴다면 언제든지 가서 기도하고 참선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어려움을 털어놓고 싶을 때 들어줄 수 있는 상대가 있는 곳이 포교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도심 속에 있는 불교 사랑방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19년 4월 말사인 천은사의 입장료를 폐지하는 데 화엄사 교구장으로서 결단을 내린 부분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천은사가 자리한 지리산은 1967년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됐다. 당시 정부는 천은사 소유의 토지를 군사작전 도로로 만들어 사용했다. 이후 88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관광객 유치 명목으로 벽소령관광도로 개발이 시작됐다. 

천은사는 문화재 보호를 명목으로 입장료를 받게 됐는데,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면서 지리산을 찾는 방문객들과 갈등을 빚어왔다.

천은사 입장료 문제는 불교계뿐만 아니라 지역민들과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온 만큼 일종의 숙원이었다. 덕문 스님은 천은사 주지 종효 스님, 관계기관 등과 논의 끝에 천은사 입장료 폐지를 이끌어냈다. 지난 3월에는 이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야외 행사

“국가에는 여전히 할 말이 있지만 국민이 불편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사찰의 존재 의의는 국민입니다. 국민을 위해서, 국민에 의해서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찰이 가난해지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으로 결정을 내리게 됐습니다. 현재 주변을 잘 정돈하고 여건을 만들었더니 천은사뿐만 아니라 화엄사도 더 많이 찾아주시는 것 같습니다.”

화엄사에서 시행 중인 승가복지 시스템도 정착 단계에 이르렀다. 5년 전 덕문스님은 ‘출가부터 열반까지’를 약속으로 내걸었다. 스님들의 교육, 의료, 연금, 주거까지 책임지는 승가복지 체계의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한 것. 그 약속은 현재 종단 내 모범사례로 꼽힐 만큼 안정된 상태다. 

“표현은 ‘승가복지’라고 하고 있지만 저는 ‘기본’을 마련해 드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님들은 중병에 걸리면 곡기를 줄이고 주변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일찍 떠납니다. 몸이 건강했더라면 더 많은 깨달음을 얻어서 많은 국민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건강을 해쳐 떠나는 스님들을 보면서 승가복지의 기틀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덕문 스님은 스스로를 ‘흉악한 사판승’으로 표현했다. 사판승은 주로 잡역에 종사해 사찰을 유지하는 데 힘쓰는 스님을 말한다. 요즘으로 말하면 절에서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스님이다. 참선을 통해 수행에 정진하는 이판승과 구분된다. ‘막다른 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게 된 지경’을 뜻하는 사자성어 ‘이판사판’이 여기에서 유래됐다. 

덕문 스님은 수행에 정진하는 스님들, 이른바 이판승에게서 ‘우리나라 불교의 희망’을 보고 있었다. 그는 “수행을 하려는 스님들, ‘내가 이 절에 살겠습니다’하고 대기하는 스님들이 몇 년씩 밀려 있다. 그 정도로 아직 수행하고자 하는, 수행을 갈구하는 모습들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런 모습에서 우리나라 불교의 희망이 있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덕문 스님의 지난 5년은 ‘대중 속으로’라는 말로 요약된다. ‘구례군’ 하면 화엄사, ‘지리산’ 하면 화엄사를 떠올렸던 옛날의 영광이 사라지고 어느 새 ‘잊혀가는’ 처지가 된 사찰을 재부흥시키겠다는 의지가 드러난 시간이었다. 화엄사를 활짝 열고 대중을 품어 종교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덕문 스님은 세상의 풍파에 지친 국민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불교의 본래 목적에 충실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남북은 물론 동서·세대·남녀·빈부 등 갈등이 갈등을 낳는 시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인 화합을 실천하기 위해 화엄사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공업중생
일체유심조

또 물질과 과학이 종교를 대신하는 시대에 사찰의 역할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전제돼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불교에서 중생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사바 세계라고 합니다. 인류 역사를 되짚어보면 하루라도 조용한 때가 있었던가 싶어요.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났고 감염병도 돌았고요. 우리나라 같이 작은 나라에서도 남북이 갈려 있고 동서가 화합하지 못하며 빈부 갈등과 세대 갈등 등 많은 갈등이 존재할 것이라고 봅니다.”

“물질과 과학이 종교를 대신하는 시대가 되면서 가장 먼저 나타난 게 바로 개인주의, 이기주의입니다. 또 마치 다음 생이 없는 것처럼 인생을 막 사는 모습도 나타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공업중생’ 즉 업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코로나19로 ‘내가 아프면 상대방도 아플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것처럼 한 나라, 한 국민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서 덕문 스님은 ‘큰스님’ 원효대사의 화쟁사상을 첫손에 꼽았다. 화쟁사상은 논쟁을 화합으로 바꾸려는 불교 교리를 말한다. 우리나라 불교의 저변에 깔린 가장 핵심적인 사상이다. 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을수록 대화와 소통으로 통합을 꾀하는 화쟁 사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어떻게 마음을 서로 공유하고 나눌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서로 만족의 정도를 낮추면 화합이 쉬워질 텐데 자기만족은 낮추려고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꾸 이기적인 생각을 갖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 모두가 종교‧사회‧국가 등 모든 부분에서 화쟁 사상을 중심으로 화합된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지난 3월 화엄사는 교구 본사 중에서는 최초로 미얀마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연대와 지지를 보내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우리도 1980년대 군사정권을 딛고 민주화를 이뤄냈습니다. 미얀마 역시 우리나라의 군사정권 시절처럼 아픔을 겪고 있는 상태입니다. 미얀마가 현재 상황을 잘 극복해 우리나라처럼 민주화가 꽃피웠으면 합니다. 희망을 갖고 지지하며 또 성원합니다.”

대중의 신뢰 회복해야
정치인 진정성 중요해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 인사들을 향한 당부도 전했다.

덕문 스님은 “나는 정치하는 사람에게 매번 물어본다. ‘정말 국민을 대변하고 그런 자세로 있는지’ ‘(국민 위에)군림하거나 부리고 있진 않은지’ 일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진정성이라 여긴다. 우리 국민도 진정성을 찾아내는 것이 선택의 중요한 덕목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덕문 스님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는 국민에게 ‘화엄 사상’을 전파하는 것이다. <화엄경>의 중심 사상은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임을 뜻하는 ‘일체유심조’다. 다시 말해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 원효대사에게 깨달음을 안겼다는 ‘해골물’ 이야기와 함께 자주 인용된다.

“지금처럼 과학과 물질이 만능인 시대에 가장 필요한 부분은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의지처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가장 허해지는 부분은 마음일 것이고, 많은 것을 가졌으면서도 조금만 잃으면 안 좋은 선택을 하잖아요. 그 이유가 마음의 허함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화엄 사상을 통해 국민의 마음 만족도가 충족되길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화엄사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10월의 첫 삼일, 화엄사가 다시 한 번 대중 속으로 뛰어든다. 화엄사의 사계절 행사 중 가장 큰 축제인 ‘화엄문화대축제’가 다음달 1일부터 3일까지 열리는 것.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열리지 못했다. 올해는 규모를 줄이거나 그래도 어려우면 비대면으로라도 반드시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첫째 날에는 ‘걷기 박사’ 성기홍 박사가 주도하는 트래킹 행사가 열린다. 트래킹 코스는 ‘어머니의 길’로 명명했다. 어머니처럼 포근하고, 어머니처럼 쓰다듬어주고, 어머니처럼 언제든지 위로 받을 수 있는 화엄숲길을 국민들에게 알리겠다고 강조했다. 

둘째 날에는 국보 301호인 화엄사 영산회괘불탱이 공개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괘불로, 역사적·미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원본은 1년에 딱 한 번 괘불제를 통해 공개된다.

덕문 스님은 “야외에 걸괘 그림을 걸고 부처님을 모시고 하는 법회를 ‘야단법석’이라고 한다. 그 야단법석을 괘불제를 통해 진행해 보려 한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마지막 날에는 화엄사의 정신세계를 담은 영성 음악제가 열린다. 이날 순천 송광사에서 화엄사를 거쳐 실상사를 넘어 법보사찰 해인사, 불보사찰 통도사까지 22일의 여정을 진행 중인 순례단이 들를 예정이다. 

마음의
의지처

“화엄사 보제루 편액(현판)을 보면 ‘화장(華藏)’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꽃처럼 향기로운 마음을 품고 있다’는 뜻입니다. 화엄사에서 오시는 모든 분이 늘 향기롭고 마음이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리산을 바라보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또 스님들이 수행에 정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간절한 마음을 기원하셨으면 합니다. 또 화엄사를 그런 향기 가득한 사찰로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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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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