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끼리 왜 이래' 극악무도 패륜범죄 실상

아들이 아버지를… 손자가 할머니를…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가족은 ‘천륜’이라고 불린다. 부모와 자식이 하늘의 도리로 이뤄져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천륜도 이젠 옛말이다. ‘패륜범죄’가 만연해서다. 

나이가 여든 가까이 됐지만 할머니는 평소처럼 손자를 위해 주름진 손으로 교복을 빨았다. 빨랫줄에는 정성스럽게 빨아 걸어둔 교복이 지금도 널려 있다. 그런 할머니를 손자가 칼로 찔러 살해했다. 형제가 할머니를 살해한 이유는 잔소리가 심하고, 심부름을 시켜서였다.

남보다
못한 사이

할머니를 살해한 고등학생 형제가 지난달 30일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존속살인 혐의로 형제 관계인 A군과 B군을 체포했다. 경찰 조사 결과 A군은 같은 날 새벽 0시10분경 자택에서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의 얼굴과 어깨 등을 30차례 찌른 혐의를 받는다.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가 할머니를 병원으로 옮기며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으나 할머니는 끝내 숨졌다. 

경찰은 할아버지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A군과 B군을 현행범으로 붙잡았다. 이 과정에서 동생인 B군도 함께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전해진다.


범행 당시 할아버지는 하반신을 거의 사용하지 못해 범행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은 “ 할머니와 손자 사이에 특별한 갈등이 있지도 않고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말 한마디 때문에 가족을 살해한 일은 또 있었다. 바로 1994년 벌어진 ‘박한상 부모 살해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대표적인 패륜범죄로 남아있다. 부모를 살해했던 박씨는 부족함 없이 자라왔다. 아버지가 100억원대 자산가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풍족해서다. 

아버지는 박씨에게 사업을 물려주기 위해 공부를 시켰다. 그러나 평소 공부에 관심이 없던 박씨는 대학 진학 후 유흥에 빠졌다. 유학을 가서는 도박을 하거나 용돈을 받아 탕진하는 등 사치를 일삼았다.

부모가 박씨에게 “넌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라며 질책하자 이에 분노해 범행 계획을 세웠다. 서울 일대를 돌아다니며 칼과 휘발유를 산 뒤 기회를 엿봤다.

3일 뒤 박씨는 집에 불을 냈다. 화재는 주택을 전부 태울 만큼 크게 번졌다. 2층으로 구성된 주택의 지하 1층이 완전히 불에 탔다. 

소방당국과 경찰은 화재를 진압한 뒤 감식을 위해 집으로 들어가 불에 탄 박씨의 부모 시신을 발견한다. 시신에는 칼에 찔린 흔적이 가득했다. 몸 곳곳 50군데가 찔려 피가 흘렀다. 

말 거슬리면 칼 드는 사회
구성원 줄면서 범죄율 상승


부검 결과 부모는 화재로 인해 사망한 게 아니라 흉기에 찔려 사망한 것으로 판명됐다. 단순 화재사건에서 살인사건으로 수사 방향이 전환됐다. 

조사 과정에서 박씨는 “급하게 나오느라 부모님을 구하지 못했다”며 울었다. 경찰은 ‘자식이 부모를 죽일 리 없다’며 몇 가지 조사만 진행한 뒤 용의선상서 제외했다. 이후 경찰은 부모의 원한 관계 등을 조사했으나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하는 등 수사 진행이 순조롭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제보 하나로 인해 수사가 진전을 보였다. 

박씨를 치료한 간호사가 “박씨 발목에 물린 자국이 있고, 머리에 피가 묻어있었다”는 제보를 하면서다. 경찰은 박씨를 상대로 재차 수사를 벌였고, 박씨가 자백을 하면서 사건이 종결됐다. 

범행 동기는 아버지의 ‘잔소리’에 대한 보복과 ‘유산 상속에 대한 욕심’으로 드러났다. 해당 사건은 여론의 공분을 샀다. 박씨가 키워준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점에서다.

검거된 박씨는 전혀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현재 박씨는 사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복무 중인 상태다. 박씨 사건 이전만 해도 패륜범죄는 전례를 찾기 힘들었을 만큼 잔혹한 범죄로 여겨졌다.

그러나 현재 패륜범죄는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다. 패륜범죄란 인간의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빚어진 범죄를 일컫는다. 

법적으로 인정되는 패륜범죄는 존속살해, 존속상해, 존속폭행 등과 같이 주로 ‘존속에 대해 용인되지 않는 폭력적 범죄행위’로 국한돼 규정한다. 형법상 자신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상대로 살인, 상해, 폭행, 유기, 학대, 체포, 감금, 협박 등의 범죄를 저지른 경우다.

법에서는 해당 행위를 ‘존속범죄’로 보고 일반 범죄에 비해 더 큰 중형이 내려진다. 일반 살인의 경우 법정형이 사형,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임에 반해 존속살해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잔소리
한다고…

검찰청이 최근 5년간 접수한 존속 대상 범죄 사건은 2016년 3277건, 2017년 2978건, 2018년 3424건, 2019년 3767건, 지난해 3825건이다. 올해 상반기 통계에서는 이미 2000건을 넘어서 지난해 건수를 넘어설 전망이다.

지난해 존속 대상 범죄 중에서는 폭행이 2817건으로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한다. 뒤이어 상해 432명, 협박 374건, 살해 81건 등이다. 비율로 보면 폭행·상해가 84.9%, 살해는 2.1%에 달한다.


신고하지 않은 범죄까지 합하면 존속 대상에 대한 패륜범죄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법과학회지에 실린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녀살해 분석’ 논문에 따르면 존속살해의 주요 범행 동기 중 가정불화(49.34%), 경제 문제(15.22%)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김대근 한국형사 법무정책연구원 부패경제범죄연구실장은 “과거 가족은 혈연을 중심으로 긴밀한 생활 공동체였지만 최근 개념이 희석됐다”며 “기존 가치관이 와해된 탓에 갈등이 부각됐다”고 설명했다. 

과거 대가족 중심사회에서는 친인척 등이 개입해 질책이 쉽게 가능했다. 이는 가족 간 공동체 의식이 약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가족 간 소통도 문제 중 하나다. 최근에는 핵가족화로 인해 구성원 간 위계질서로 이뤄진 전통적 가족관계를 찾아보기 어렵다. 가족 구성원 간 존중이 사라진 대목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핵가족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가족끼리 서로 지지하거나 도와주는 기능이 축소됐다”며 “과거에는 친척이 함께 그 역할을 했는데, 현재는 이 같은 행위가 축소돼 폭행, 살인 등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패륜범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인 셈이다.

그 밖에도 패륜범죄 발생 원인은 인성교육의 부재, 물질만능주의, 자녀의 늦은 독립 등이 있다. 가족의 기능과 의미보다는 개인의 물질 추구가 더 중요해진 현실이 반영된 탓으로 풀이된다.

끝까지
숨겨줘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존속살해는 동양 문화권에서 자주 발생하는 범죄”라며 “일찍 가족과 떨어져 사는 서구문화권에서는 잘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녀 과보호와 높은 기대심리로 부모의 잣대에 맞추어 가기를 강요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자녀가 독립에 대한 불안감으로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로써 범행을 택한다고 보인다. 

가족 간 패륜범죄의 또 다른 문제점은 발생 가능성이 다른 중범죄에 비해 높다는 점이다. 사회구조의 변화와 유대감이 약화된 상태에서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구성원은 빈번하게 마주친다. 

가족끼리의 신뢰가 무너진 상태에서 공동의 주거 공간 안에 있는 가족이야말로 언제든지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구조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생활 반경 안에서 마주치는 횟수와 시간이 증가함에 따라 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패륜범죄는 폭언과 폭행에서 시작된다. 폭행에서 시작된 패륜범죄는 살해까지 이어기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패륜범죄는 우발적인 상황보다는 가족 간의 사소한 범법행위들이 누적되면서 나타난다.

존속폭행은 직계존속에게 폭행을 가했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다만 상해 정도가 중상 미만일 경우 피해자가 용서를 한다면 처벌할 수 없다. 반의사불벌죄가 적용되는 탓이다.

신고가 들어와 수사기관에서 존속폭행, 존속협박죄에 대해 조사를 한다고 해도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면 처벌되지 않는다. 

핏줄이라서 신고 못 하고 은폐
국가적 대책 시스템 마련 필요

한 전문가는 “현재 존속범죄에 대한 실태 파악과 대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패륜범죄 가해자를 단죄하고, 사건에 대한 사례 분석만으로 범죄를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패륜범죄의 더 큰 문제는 특성상 범행이 은폐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피해를 입더라도 자식 등이 형사처벌을 받는다는 점을 우려해 범죄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경우에만 신고하는 경우가 다수다.

또 피해자와 가해자가 가족이기 때문에 범죄 발생 장소가 가정으로 한정된다. 자식이라는 이유로 잘못을 용인한다는 점에서도 실제 신고하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도 가족 간 패륜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여전히 미흡하다. 패륜범죄를 개인의 비도덕적이고 비이성적인 행위로만 여기고 대안이 마련된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패륜범죄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 살해까지 이어지는 범행동기를 해소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패륜범죄 행위를 금지할 필요성이 제기된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패륜범죄가 발생하기 전 사회의 인식 전환과 효율적인 치료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또 가족 중심 사회의 보양·부양이 해소돼야 패륜범죄 등의 존속살해 근절이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사회 특성상 가족 간 접촉이 많고, 기대감이 높은 상황이 패륜범죄의 발단이 된다는 분석이다. 

자녀의 개성이나 적성 등을 고려할 필요도 제기된다. 진학이나 진로선택 등에 있어서 자녀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는 의미다. 과거 예의를 강조했던 점과는 다르게 최근에는 이 같은 교육이 부족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인성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져야 이러한 패륜범죄가 근절될 수 있다고 여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패륜범죄에 대해 가정의 통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실정이다. 따라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국가가 적극 개입해 통제해야 한다는 것. 

패륜범죄를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가족의 연대성 약화에 따른 사회 문제 현상 중 하나로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개인의 문제?
연대성 약화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패륜범죄 현상에 대한 정확한 규명과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패륜범죄는 형량 가중으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국가가 적극 개입하지 않는다면 패륜범죄의 발생 빈도는 더욱 증가 한다”고 지적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심각한 비속범죄 실상
부모가 자식에 하면 괜찮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존속·비속 관련 범죄가 함께 증가하는 추세다. 존속범죄의 경우 가중 처벌 대상이지만 비속범죄는 다르다.

비속범죄란 부모가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를 뜻한다. 최근 아동 학대 등 부모들의 비속 범죄도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존속범죄는 가중처벌의 대상인 반면 비속범죄는 그렇지 않다. 특히 살해에 대해선 형량의 차이가 존재한다. 

아동 학대 등 끊이지 않아
관련 법 개정 필요성 대두

존속살해는 잔혹성, 패륜성 탓에 가중처벌이 적용된다. 하지만 비속의 경우 가중처벌 규정이 없다. 이에 비속범죄에도 존속범죄와 똑같은 처벌 수준을 적용해야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2월 ‘정인이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성인 자녀 등을 대상으로 한 비속범죄는 여전히 일반 살인죄만 적용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부모가 자식에 저지르는 범죄는 체벌이나 훈육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며 “법을 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고 지적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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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